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332
지금 저 녀석 살아있다.
유현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류트를 보며 속으로 실소를 흘렸다. 그의 몸을 붉게 물들이고 있는 건 피가 아니었다. 아마 페르시에게서 가져간 시약이겠지.
아니, 피로 생각되는 것도 있었다. 희미하지만 피냄새가 난다. 정말로 엘프에게 공격을 받기는 한 거 같다. 일부러 허용한 걸까, 아니면 이것도 일종의 장치인 걸까.
무엇이든 상관 없다.
‘뭐하자는 거야.’
유현은 작게 혀를 차면서도 일단 정면을 주시했다. 눈앞에 적이 있는데 류트의 장난에 시선을 빼앗겨 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유현은 검의 손잡이에 손을 뻗었다.
“저 자식들 죽여 버리겠어-!”
방금 전 엘프의 말 한마디로도 상대의 적의를 읽었는지 일행은 긴장한 얼굴로 전투 준비를 했다. 남궁민의 호통에 정신을 차린 길유미가 빠득 입술을 깨물며 창을 든다.
그 얼굴에 망설임은 보이지 않는다. 류트를 보고서 오해한 거겠지.
“어···?”
뒤늦게 도착한 이서연이 류트를 보고서 고개를 갸웃했다. 의외로 눈썰미가 좋았던 걸까. 류트의 상태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낀 듯하다. 하지만 확신은 못하는 어리둥절한 얼굴.
누군가 움직이기만 해도 싸움이 시작될 일촉즉발의 순간.
“···저 자식 뭐하는 거야?”
페르시가 긴장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태연한 얼굴로 뒤에서 속삭였다. 유현의 등 뒤에 가려져 있었기에 엘프의 시선에는 잘 보이지 않는 위치였다.
유현은 어깨를 으쓱했다.
페르시는 처음부터 류트의 상태가 이상했다는 걸 눈치챈 듯하다.
“나참. 도대체 이게 뭔 짓이야.”
어이없는 녀석을 보는 것처럼 실소를 흘리고는 은밀하게 마법을 준비한다. 류트의 장난도 장난이겠지만 지금은 전투 상황이다. 페르시도 진지해질 수밖에.
“전부 죽여버려!”
엘프 남성 하나가 용맹스럽게 소리쳤다. 그러자 뒤에 있던 엘프 궁수들이 화살을 쏘았고, 앞에서는 검을 든 엘프 여럿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엘프 마법사 하나가 주문을 외우는 것도 보였다. 덤벼드는 엘프의 숫자를 보며 유현은 피식 웃었다.
‘우리를 너무 무시하고 있는데.’
류트가 당했다, 라는 상황이지만 숫자는 이쪽이 많았다. 더욱이 전열에 선 엘프 검사의 숫자는 3명으로 후방에 있는 일행을 지켜주기에는 어딘가 부족한 숫자.
날아오는 엘프의 화살을 쳐내면서 유현은 일행을 살폈다.
이미 남궁민과 길유미는 엘프 검사와 싸우고 있는 중이었다. 흥미진진한 싸움이었다. 민첩한 엘프의 움직임은 예전에 싸우던 고블린들과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날렵했다.
그래서 일까. 강한 힘으로 상대를 짓누르는 타입인 남궁민에게는 까다로운 상대였다. 하지만 까다롭다는 거지 진다는 건 아니었다.
거센 질풍을 동반하며 휘둘러지는 남궁민의 무거운 일격에 엘프가 긴장하는 얼굴이 보인다.
“칫! 힘만 쌘 원숭이 같은 놈이!”
“시끄러워! 도망치기만 하는 녀석이 말은 잘하네!”
망설임 없이 상대를 죽이려고 하는 남궁민의 자세는 마음에 든다. 저번 밤에 엘프가 어떻게 생겼는지 논했을 때 보여주던 얼빠진 모습하고는 전혀 딴판이었다.
공격을 피하기만 하던 엘프도 그저 밀리기만 하는 건 아니었다. 종족 특유의 날렵한 몸놀림을 살려 공격을 피하고는 카운터를 노린다. 쌍검까지 들고 있어 화려하게 흔들리는 검날에 남궁민의 눈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허리, 목을 동시에 노리고 들어오는 엘프의 두 검을 남궁민은 능숙하게 피해냈다. 거기서 남궁민이 이용하는 건 무기로서의 장점이었다. 공격 거리는 남궁민이 우위.
어떻게든 거리를 좁혀 공격하려는 엘프에게 남궁민은 조금도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다. 흥분하면서도 차분히 자신의 장점을 유지하고 있는 건 한 두번의 경험으로는 안된다.
‘로렐라이 때의 일이 도움이 되고는 있군.’
고블린들 또한 민첩한 움직임이 특징. 로렐라이 때 지금 같은 타입들을 질리도록 싸웠으니 저렇게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는 것일 거다. 유현은 작게 안심하며 앞을 바라봤다.
“어, 언제!?”
어느새 유현은 후방에 있던 엘프 궁사 한 명에게 다가섰다. 접근하는 걸 전혀 몰랐는지 예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역시 엘프라서 그런가. 죽이기 아까울 정도로 미인이다.
가죽 갑옷을 입고 있음에도 육감적인 몸매가 숨김없이 드러난다. 가느다란 허리와 탐스러운 살이 인상적인 허벅지까지, 엘프의 몸매를 한 번 쓰윽 훑던 유현은 검을 움직였다.
“그러니까 주위를 잘 신경 써야지.”
“커헉!”
유현은 아름다운 엘프의 가슴팍에 검을 박아 넣었다. 완전히 등 뒤까지 관통한 검날에 엘프는 피를 울컥 토해내고는 입술을 바득 깨문다. 뭐라고 말하는 거 같은데 잘 모르겠다.
계속해서 뭐라고 중얼거리기에.
유현은 엘프의 하복부 쪽을 발로 밀쳐내고는 검을 뽑아냈다. 콰드득, 근육과 살을 끄집어내듯 검을 뽑아내자 엘프는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힘없이 쓰러졌다.
그렇게 한 명을 가볍게 처리한 유현은 주위를 둘러봤다.
살아 있는 다른 엘프 궁수가 고전중인 엘프 검사를 돕기 위해 후방에서 활을 쏴보지만 랑샤셴과 송가연의 방해로 제대로 시위를 당기지 못하고 있었다.
자세를 잡으려고 하면 랑샤셴이 활을 쏘았고, 어떻게든 거리를 벌리면 송가연이 정령으로 엘프를 괴롭혔다. 자신의 주위로 요란하게 날아다니는 정령을 보며 엘프가 소리친다.
“···인간 따위가! 정령으로 나를!?”
일단 검사를 지원하는 것보다 자신의 안위를 우선시 하겠다는 건가. 엘프의 활시위가 자신의 숨통을 조이고 있는 정령에게 향했다. 화살촉 위로 바람이 모여든다.
역시 엘프답게 그녀 또한 정령을 사용하려나 보다. 하지만 그것을 위한 작은 준비 시간이 그녀의 목숨을 앗아가기에 충분했다.
-퍼드득!
끝까지 놓치지 않고 따라 붙던 랑샤셴이 궁수의 머리통을 날려버렸다. 마력이 담긴 화살에 엘프의 안면이 폭탄이라도 맞은 것마냥 피범벅이 되며 반쯤 터져나갔다.
···뭐 대충 상황은 끝나 가는 거 같다.
엘프 궁수가 머리통을 잃은 채 쓰러지는 사이 한 쪽에서 비명이 들렸다.
“···끄윽! 이 년이!”
이서연에게서 버프를 받은 길유미가 멋진 창놀림으로 엘프의 가슴팍을 베어내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지만 엘프도 그냥 당하지는 않겠다는 건지 파고든 길유미를 향해 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 상황에서 길유미가 피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순간 그 뒤에서 천설화가 맹수처럼 달려들어 엘프의 등에 검을 박아 넣었다.
“크억!”
정확히 심장을 꿰뚫린 건지 그 충격으로 엘프가 손에서 검을 떨어뜨리고는 무릎을 바닥에 떨구며 주저앉았다. 누가 자신을 공격한 건지 확인이라도 하려는 걸까.
서걱-.
고개를 천천히 돌려보려 했지만 천설화는 무자비하게 박아 넣었던 검을 뽑아내고는 엘프의 목을 베어냈다. 가슴에 검을 박아 넣고, 목을 베는 동작이 부드럽게 이어졌다.
보고 있던 유현은 자기도 모르게 감탄이 나왔다. 아름답게 상대를 죽인다. 조금 이상한 표현이지만 지금 천설화가 보여준 행동은 그렇게 밖에 표현할 게 없었다.
하지만 정작 그 앞에 있던 길유미는 놀란 눈을 했다.
“······아. 어, 언니?”
천설화는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엘프가 죽었음에도 차갑게 빛나고는 무시무시한 눈빛에 길유미는 약간 겁에 질린 표정을 했지만 작게 웃으며 천설화를 향해 손을 뻗었다.
길유미가 손을 뻗어 볼에 묻은 핏물을 닦아주자.
-아, 고마워.
파레디아가 대신 감사 인사를 한다. 천설화는 아무런 감흥 없는 얼굴로 주위를 훑었다. 그러면서 그녀가 보여주고 있는 건 다른 사냥감이 없는지 찾고 있는 살육자의 눈이었다.
순간이지만 그녀의 눈동자와 유현도 마주칠 수 있었다. 하지만 적과 동료는 판단할 수 있는 이성은 있기에 그녀는 유현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광화 때문인가.’
분명 이종족과 싸우는 것도 그녀는 처음일텐데도 능숙했다. 전신에 피를 물들이며 저벅저벅 엘프의 시체를 아무렇지 않게 밟고 지나가는 그 모습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마치 귀신같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녀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마치 설풍의 마녀 같다. 천설화의 주위를 맴도는 새하얀 얼음 결정들. 그것은 천설화를 철저하게 지키고 있었다. 엘프의 화살도, 마법도 얼음 결정은 뚫지 못했다.
그것을 보며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엘프 마법사가 믿기 어렵다는 것처럼 소리쳤다.
“···그, 그건! 너 뭐야! 정체가 도대체 뭐냐고!”
그 소리에 주위를 훑고 있던 마녀의 눈이 엘프 마법사에게 꽂혔다.
씨익.
사냥감을 발견했다는 즐거음 때문인지 그녀는 차가운 미소를 짓고는 땅을 박찼다.
핏물로 젖은 흙 위를 쌔게 밟으며 질주하는 그 모습에 엘프 마법사가 재빠르게 마법을 준비했다. 달달 떨리는 손이 열심히 수인을 맺는다. 엘프의 소리가 높아진다.
과연 시간에 맞출 수 있는 걸까.
“오, 오지마! 오지 말라고!”
하지만 아쉽게도 엘프 마법사는 꽝이었다. 마법이 미처 완성되기도 전에 천설화는 엘프의 가슴에 검을 박아 넣었다. 그대로 상대를 밀며 뒤에 있던 나무까지 밀어붙였다.
콰당, 하며 나무에 몸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천설화는 엘프의 가슴에 박아 넣었던 검을 매끄럽게 뽑아냈다.
쓰르륵 나무에 등을 기댄 채 피로 긴 선을 그리며 엘프의 시체가 미끄러져 내리고 있다. 천설화는 엘프의 시체가 완전히 쓰러질 때까지 구경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천설화의 시선을 마주친 모두가 몸을 움찔거렸다. 하지만 일행이 어떤 반응을 하던 개의치 않는 건지 천설화는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는 저벅저벅 걸어왔다.
고개를 흔들어 머리카락에 묻은 핏물을 털어내는 그 모습은 상당히 터프했다. 그런 천설화의 모습을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던 길유미가 옆에 있던 남궁민에게 물었다.
“···야. 남궁민. 나도 아까 저런 모습이었어?”
“아니···. 길유미도 너도 엄청 화난 얼굴을 했지만 저 정도는 아니야.”
“우아아···. 설화 언니 한테 덤비면 안되겠다. 예전에 먹보라고 놀린 적 있는데···.”
“잘못한 거 있으면 빨리 사과하는 게 좋을 거다. 정말 진심으로 하는 충고야.”
“으, 응···”
길유미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에 천설화를 향해 송가연이 달려가더니 어느새 물의 정령을 소환하고는 그녀의 몸을 깨긋하게 씻겨주고 있다.
이미 몬스터와 싸울 때도 여러 번 있었던 일인지라 천설화는 광화 상태에서도 얌전하게 있었다. 송가연이 부지런히 그녀를 씻기는 사이 유현은 바닥에 있는 그것을 쳐다봤다.
“슬슬 일어나는 게 어때.”
“흠흠···.”
유현의 말에 류트는 어색한 얼굴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툭툭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는 몸에 박혀 있던 화살을 차례대로 뽑아냈다. 잘 보면 화살촉도 없는 빈 껍데기 같은 화살들 뿐이었다. 그게 자신의 것이라는 걸 알고 있던 랑샤셴은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당연스럽지만 그 후로 길유미가 류트를 미친 듯이 갈구는 장면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