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333
“이야···. 길유미 씨의 손바닥은 정말로 맵군요. 예전에 하던 그 배구라는 것 때문에 그런 겁니까?”
6계층으로 무사히 넘어오고 3일 정도가 지난 가운데 류트가 볼에 새겨진 손자국을 매만지고는 쿡쿡 웃으며 말했다. 며칠이 지났는데 가라앉기는커녕 더욱 심해지는 것 같다.
이서연이 치료를 했는데도 저 정도라면 길유미의 손이 얼마나 매운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런데도 류트 또한 아무렇지 않게 웃고 있는 걸 보면 제정신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결국 류트가 평소에 보이는 특유의 은은한 웃음이 길유미의 성질을 건드렸다.
“시끄러워···. 다음에는 정말로 진심을 다해 때릴 테니까. 다음에는 시속 300km짜리라고.”
“···설마 그건 진심으로 한 게 아니었습니까?”
“확! 이번에는 정말로 진심으로 해줄까!?”
“아, 아닙니다.”
류트가 그제야 굳은 얼굴을 하고는 시선을 피했다. 그래도 저걸 보면 아프긴 했나보다. 옆에서 걷고 있던 남궁민이 류트에게 조심하라고 조언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남궁민도 전에 한 번 당했던 걸까. 본 적은 없지만 뭔 일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쩐지 길유미에게 기가 잡히고 있는 두 남자의 모습은 흥미로우면서도 우스웠다.
“하하, 쟤네들 재미있게 노네? 즐거워 보이는 걸. 류트 저 자식 그런 짓 할 때부터 알아봤어. 내 아까운 시약들 가지고 그런 장난이나 하다니.”
옆에서 같이 걷고 있던 페르시가 웃으면서 말한다.
결국 지금 같은 사태가 벌어진 이유는 계층의 통로에서 있었던 엘프 모험가들과의 전투 때문이었다. 길유미는 그 때 류트가 정말로 죽은 줄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싸움이 끝나고 류트가 멀쩡한 얼굴로 일어나 상황을 설명하니 길유미가 벌겋게 변한 얼굴로 류트를 갈구었다. 당연스럽지만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랑샤셴도 자신의 화살이 그런 식으로 쓰인 게 싫었는지 싸늘하게 지켜봤었다.
어쨌든 그 때의 소란도 잠시.
무사히 6계층으로 넘어오고서 몇 번이나 전투가 있었지만 그다지 어려운 싸움은 없었다. 7계층에서 1계층 넘어왔을 뿐인데 몬스터들의 수준이 눈에 띌 정도로 낮아진 것이다.
다만 안심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지금 당장만 해도 무언가 발견 되었으니까.
“유현. 모험가들의 흔적인 거 같아요.”
“아, 알고 있어.”
랑샤셴의 보고를 들으면서 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주위에 싸움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최근에 있었던 싸움인지 몬스터들의 시체가 썩지 않고 그대로 있다.
마석 채취를 위한 해체 작업의 흔적도 보이니 모험가들의 짓이라고 밖에 생각이 되지 않는다. 전에 만났던 엘프들도 그렇고. 어쩐지 이 주변으로 모험가들이 많이 오는 것 같다.
이것도 데페르라가 점령되어서 그런 걸까.
이건 모험가들이 데페르라를 거점으로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별로 좋은 소식은 아니다. 로베리아가 발견될 확률은 낮겠지만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니까.
‘조심하는 게 좋겠어.’
엘프들이 로베리아에 있는 계층에서 발견된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
순조롭게 이동이 계속되나 싶었지만 역시 그런 건 없었다. 한 동안 여유롭게 미궁을 나아가던 유현은 앞에서 느껴오는 진동에 미간을 찌푸리고는 정지 신호를 보냈다.
우르르르르릉-.
심상치 않은 소리다. 점점 가까워져 오고 있는 소리에 유현은 송가연에게 말했다.
“앞에 뭐가 오고 있는지 확인해 줄 수 있겠어?”
“네.”
미궁이 울릴 정도로 커다란 소리지만 아직 거리는 있었다. 다만 이쪽으로 가까워지고 있어서 그렇지. 송가연도 시급을 다투는 일이라는 걸 아는 건지 빠르게 행동에 나섰다.
1분 정도가 지났을까. 송가연이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확인해 보니 생긴 건 개미처럼 생겼어요. 다만 크기가 1m 정도로···. 아마 블러드 앤트가 아닐까 싶어요. 아마 숫자는 최소 50···. 이쪽으로 오고 있는 거 같아요.”
“블러드 앤트인가.”
그녀가 블러드 앤트를 본 적이 있던가. 잠시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송가연이 이렇게 블러드 앤트에 대해 알고 있는 것도 평소에 책을 많이 읽어서겠지. 안 그래도 출발할 때 페르시가 왜 이런 걸 들고 가냐고 말했던 고서들을 틈만 나면 읽던 그녀다.
그녀가 뭘 읽는지는 이제 유현도 잘 알 수 없게 되었지만 어쨌든 그녀의 보고는 신뢰성이 높았다. 유현은 나직이 고개를 끄덕이는 동시에 류트와 페르시에게 눈짓했다.
“마법을 준비해줘. 무슨 마법을 사용할지는 둘의 선택에 맡길게.”
그러자 페르시가 힐끗 눈치를 보며 말했다.
“블러드 앤트는 불 속성 마법에 약한데···. 숫자도 많고···. 화끈하게 한 방 어때? 응응?”
“···맘대로 해.”
“오케이. 허락해 준거다?”
유현의 허락이 떨어지자 페르시는 싱글벙글 웃는 얼굴을 하고는 류트에게 무언가 말하기 시작했다. 그걸 보니 정말로 큰 거 하나 쓰실 예정인 듯하다.
지난 시간 동안 계속 자잘한 등급 낮은 마법만 사용했으니 몸이 근질근질 했던 게 분명했다. 뭐, 아차피 큰 무리를 이끌고 있는 소형 몬스터의 접근이니 나쁘지 않은 판단이기도 했다.
페르시에게서 대충 설명을 들은 건지 류트가 보조하기 시작했다. 본래 페르시 혼자서도 광역 마법이야 어렵지 않게 시전 할 수 있지만 이건 마력을 아끼기 위한 수단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페르시가 어서오라고 말하는 얼굴로 마법진을 완전히 개진했을 때였다.
“온다.”
유현이 신호를 보내기 무섭게 녀석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미정령들이 아련하게 흘리고 있는 얕은 빛 아래에서 붉은 머리를 가진 개미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붉은색 더듬이를 흔들며 징그러울 정도로 많은 숫자가 통로를 채우고 있다.
“으으으···. 어쩐지 개미가 크니까 무섭네요.”
이름에 어울리게 온몸이 붉은 녀석들은 그다지 보기 좋은 인상을 주지는 않고 있었다. 옆에서 이서연이 표정을 흐리며 몸을 움찔거렸다. 아무래도 징그러운 듯하다.
개미의 무리는 적을 발견 했음에도 망설임 없이 돌진해오고 있었다. 미궁 안에서 지진이라도 일어나는 것처럼 녀석들의 발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 전부 불타오라라···!”
페르시가 눈을 번뜩이며 마법을 발현 시켰다. 류트가 마력을 보조하며 완성된 거대한 마법진이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마력의 색이 아니다. 불꽃이 흘러나오고 있어서 그렇게 보일 뿐이었다. 마법진은 스스로 장작이 된 것처럼 불에 타오르고 있었다.
무슨 마법을 쓴 걸까.
콰아아아아앙-!
마법진 안에서 엄청난 양의 불꽃의 탁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불이 홍수가 난 것처럼 미궁의 통로를 헤집고 앞으로 나아간다. 유현은 얼굴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고온의 불꽃이 통로를 채우니 그 열기가 생생히 느껴진다. 바라보고 있던 일행도 조금 무서움을 느낀 건지 한발자국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앞에 있다가는 화상이라도 입을 것만 같다.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던 불꽃의 탁류는 그대로 블러드 앤트들을 집어 삼켰다. 개미의 형상을 가진 몬스터답게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없던 건지 녀석들은 용감히 불꽃에 덤벼들었다.
끊임없이 화염을 토해낼 것 같던 마법진은 이윽고 모습을 감추었다. 페르시의 마법이 만들어낸 참상은 엄청나다고 밖에 할 말이 없었다. 고열에 바닥이 녹아내리고 있다.
불꽃이 춤추듯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오로지 검게 타오르는 개미의 시체만 보였다. 유현은 대충 불꽃들이 사그라지자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살아있는 녀석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아무래도 살아있는 놈은 없는 거 같다.
타닥-. 타닥.
곤충 특유의 키틴질이 불에 타오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게다가 이상한 냄새까지. 주변에는 불꽃에 온몸이 타들어가고 있는 블러드 앤트들의 시체가 수도 없이 널려 있었다.
···송가연이 몇 마리라고 했더라.
대충 50 정도 된다고 했던 거 같은데.
하지만 지금 마법으로 달려오던 블러드 앤트들은 전부 몰살당한 것 같다. 괜히 긴장하고 있던 유현의 일행만 허탈한 표정을 했다. 싸움이 없는 건 좋지만 역시 허무했다.
“후후. 어때. 마음에 들었어? 싸우지 않고 끝냈으니 얼마나 좋아.”
결과를 확인하며 페르시가 기분 좋아 보이는 웃음을 흘렸다.
물론 그녀의 말대로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유현은 페르시에게 물었다.
“마력은 어느 정도 사용했어?”
“···음? 마력? 그게···. 류트가 많이 도와줬지.”
“그래서 어느 정도?”
“그, 그러니까···. 자, 잠시만! 맘대로 하라며!?”
“맘대로 하라고 했지만 그래도 선은 지켜야지. 이건 너무 쓸데없이 마력을 소모했잖아.”
분명 숫자는 많았다. 하지만 블러드 앤트는 그렇게 강한 몬스터가 아니었다. 집단을 이루면 분명 무섭기는 하지만 일정 수준으로 숫자를 줄이면 어렵지 않게 사냥할 수 있는 놈들이었다. 아마 절반 정도만 죽였어도 어렵지 않게 제압했을 터.
그다지 혼날 생각은 없었는데 페르시는 예상치 못한 행동을 했다.
“······. 허?”
송가연을 방패로 등뒤에 숨어버린 것이다. 송가연도 조금 당혹스러운지 딱딱하게 웃는다. 그녀의 등 뒤에서 페르시는 애처로운 표정을 지었다. 유현은 피식 웃고는 페르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음···.”
“잘했어. 다만 다음에는 적당히 하고.”
“···뭐야. 안 혼내는 거야?”
“그럼 혼내줄까?”
페르시는 살살 고개를 저었다.
*
페르시의 마법 덕분에 큰 체력 손실 없이 이동이 계속되었다.
고온에 녹아내린 블러드 앤트의 시체들을 지나 얼마나 움직였을까.
방금 전 싸움이라고 할 수 없는 일방적인 학살이 있던 곳과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유현은 걸음을 멈추었다. 덩달아 일행의 걸음도 멈춘다. 앞에 뭔가가 있다.
일단 제일 먼저 눈에 보인 건 블러드 앤트들의 시체였는데 아무리 페르시의 마법이 강력해도 여기까지 닿았을 리는 없다. 적어도 20분은 걸어야하는 위치였으니까.
그러면 다른 이들이 죽였다는 소리인데.
‘역시 모험가인가.’
딱딱한 키틴질 껍질에 남아 있는 검흔을 보면 모험가들이 죽였다는 걸 자연스럽게 유추 할 수 있었다. 이런 몬스터의 시체들은 오면서도 여럿 봤으니 그냥 넘어갈 수 있겠지만.
그 때였다.
“유현 씨. 저기 좀 보겠습니까?”
류트가 무언가 발견했는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쪽으로 시선을 옮기자 모험가들의 시체가 다수 보였다. 몬스터와 싸우다가 모험가들이 죽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상한 게 있어서 문제였다.
시체를 바라보는 유현의 눈이 가늘게 변한다.
“눈치 채셨습니까?”
“···몬스터한테 죽은 시체는 아니네.”
발견된 모험가들의 시체는 오크들이었다. 숫자는 6명 정도로 블러드 앤트의 시체가 난잡하게 돌아다니고 있기에 좀 더 뒤져보면 늘어날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몇 명이 죽었는지가 아니다.
녀석들이 어떻게 죽었는지다.
튼튼해 보이는 오크의 육신에 박혀있는 여러 개의 화살들.
···어떻게 보면 인간들의 손에 죽었다고 자연스럽게 생각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문제는 사용된 화살들이었다. 류트도 그걸 눈치챘던 건지 나직이 말한다.
“드래곤 애로우군요. 수인족들이 주로 사용하는 화살입니다.”
드래곤 애로우.
일반적인 화살보다도 길이가 길고, 굵기가 두꺼운 그건 수인족들이 즐겨 쓰는 화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