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368
불가해의 영역으로 변한 신전에 자리 잡은 괴물을 토벌하는 건 그 누구도 불가능했다. 괴물의 힘이 문제가 아니다. 녀석이 있는 신전 주위로는 접근조차 할 수가 없었다.
모든 생명을 검게 익혀 죽여 버리는 파멸의 힘이 그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었고, 아무리 마법으로 몸을 보호한다고 하던 신전의 중심에 이르는 순간 그 누구도 버틸 수 없었다.
그건 유현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마검의 힘을 빌려보면 접근은 가능할 것이다.
지금도 신전을 향해 탐욕을 부리고 있는 마검은 주인을 마소에서 지켜주겠지.
하지만 그래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괴물을 죽여 봤자 유현에게 남는 건 없었다.
그리고 정작 녀석의 앞에 간다고 하더라도 죽일 수 있을지 의문이었고.
괴물이 신전 안쪽에서 깨어나고 하루가 지난 지금 유현의 일행은 에이리어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딱히 무언가 탐색하기 위한 건 아니었다. 유현은 폰테르나가 남긴 걸 찾고 있었다.
신전을 습격하고 그들은 곧 바로 도망쳤다.
아침이 되자 이번 사태의 원흉을 그들이라 생각하며 많은 숫자의 모험가들이 추적을 시작했다.
폰테르나 팀이 도망칠 수 있도록 도울까, 생각도 했지만.
류트가 남긴 낙인을 무사히 확인했는지 그들은 연락을 보내왔다.
몇 가지 이야기들이 끼어 있었지만, 요약하면 자신들을 도와줄 필요가 없다는 소리였다.
하기야-. 모험가들은 그날 밤 폰테르나 팀을 추적을 할 수 있는 타이밍을 놓쳤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갑자기 신전에서 마수가 모습을 드러낸 탓에 정신이 없었다.
신전 주변으로 마소의 농도가 높아지면서 불가해의 영역이 만들어졌고, 그날 밤 모험가 전원이 신전 주위에서 벌어진 이변을 구경했다. 그 기회를 폰테르나는 잘 살렸다.
“···류트. 아직 멀었어? 도대체 얼마나 걸어야 하는 거야.”
길유미가 하품을 쩌억 벌리며 말했다. 이른 아침부터 움직이니 졸린 듯했다.
“하하. 조금만 더 참아주시겠습니까?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류트는 길유미의 질문을 능청스럽게 웃어 넘기고는 앞을 바라봤다.
현재 유현의 일행이 향하는 곳은 류트가 낙인을 남겼던 곳이다.
폰테르나는 신전 안에서 중요한 자료를 가지고 나왔다고 서번트를 통해 알려왔다.
그 자료는 현재 류트가 새긴 낙인이 있는 자리에 숨겨놨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 유현은 그 자료를 찾으러 가는 중이었다.
그 동안 온갖 일들을 겪은 탓인지 일행은 신전에서 벌어진 일에 빠르게 적응했다.
그나마 문제가 있다면 송가연이라고 해야 할까. 이서연이 말하기를 그날 이후로 이틀간 악몽을 꾸는 것 같다고 한다. 어쩔 수 없는 건가. 그녀가 본 건 지옥이었다.
말로만 들었기에 그녀의 심정을 완전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신전 아래에 숨겨져 있던 무수한 시체들.
그건 사람의 것이 아니라 호문클루스가 아닐까.
송가연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중 그렇게 생각이 되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숲을 헤치고 나아가던 류트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흐음. 이 근처인데 말입니다.”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거리던 류트의 눈이 빛을 발한다. 무언가 발견한 듯하다.
싱긋 기분 좋게 웃던 류트는 수풀 안쪽에 숨겨져 있는 돌덩어리를 빼냈다.
정말이지, 조금은 발견하기 쉬운 곳에 만들어 놓으면 좋을 텐데.
“여기에 있군요. 부디 쓸만한 자료여야 할 텐데 말입니다.”
돌덩어리의 옆면에는 종이다발 같은 게 붙어 있었다. 류트는 종이다발을 조심스레 떼어내서 곧 바로 페르시에게 넘겼다. 이 자료는 페르시에게 있을 때 제일 의미가 있다.
“···하야. 확실히 내 동생 작성한 거네.”
페르시는 종이를 받고서 곧 바로 자신의 동생이 적은 거라는 걸 알아챘다. 눈동자에 잠시나마 그리움이 떠돌았지만 순식간에 사라졌다. 남은 건 사막처럼 메마른 감정뿐.
페르시는 그 자리에서 종이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내용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수십장은 되어 보이는 그걸 전부 확인하려면 반나절 정도 걸릴 거 같지만, 일단 기다려본다.
무겁게 가라앉은 페르시의 분위기에 모두들 입을 다물었다.
-페르네는 어떤 여자인 걸까.
유현도 근처에 앉아 기다려보는데 파레디아가 말했다.
-설화는 페르시가 불쌍하대. 원래는 여동생을 꽤나 아꼈을 거 같다면서.
파레디아의 생각이 아니었던 걸까. 유현은 천설화를 힐끔 쳐다봤다.
그녀는 말이 없다. 실어증 때문이기도 했지만 파레디아가 대신 말을 전할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평소에도 말이 없다고 밖에 할 게 없었다. 하루에 그녀가 표현하는 의사는 몇 가지 없다.
···그러니까. 대충 식사를 할 때뿐인가.
지금 와서 생각하니 정말로 그녀는 밥을 먹을 때 빼고는 말이 없었다.
그런 그녀가 이렇게 감정을 말하는 건 정말로 드문 일.
-페르네를 만나면 죽일 거야?
싸늘하게 흘러나온 그 한마디는 지금 누구의 말인 걸까.
파레디아의 생각인 걸까, 아니면 천설화인 걸까.
그 물음에 유현은 담담히 대답했다.
“페르시가 원한다면.”
페르네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그녀가 보여주는 눈빛을 생각하면, 여동생을 죽이는 것에 망설임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그녀의 목 밑에 칼을 내밀 때는 어떨까.
그 때가 되었을 때 그녀는 자신의 여동생의 목에 검을 박아 넣을 수 있을까.
페르시가 종이에서 눈을 뗀 것은 대략 1시간 정도가 지나서였다.
읽은 건 두 장 정도 뿐인데, 그녀는 어딘가 지친 듯한 표정을 했다.
그 만큼 어려운 내용이었을까. 아니면 심각해서 그런 걸까.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른다. 유현은 슬슬 움직이기로 했다.
***
마수가 도시를 완전히 망가뜨린 탓에 현재 모험가들은 임시적인 거점을 만든 상태였다.
임시거점에서는 신전에서 터져나온 마소에 오염된 모험가들을 치료하는 중이었다.
몆몆은 아직도 눈을 뜨지 못하는 심각한 중태였다. 마치 저주처럼 몸 안을 갉아먹고 있는 마소는 지금도 생명력을 앗아가고 있었다. 다행히 그건 소수였지만一.
”망할 수인족 놈들! 너희들은 도대체 뭔 짓을 한 거야!”
임시 거점에 도착하자마자 수인족을 욕하는 고성이 들려왔다.
그 고성에 이서연이 몸을 움찔거렸다. 하도 수인족으로 변장을 하고 돌아다니니 저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 걸까. 유현은 이서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안심시켰다.
“아니-. 우리는 아무것도 안 했다니까!?”
“좆까는 소리 하고 있네! 그러면 어째서 수인족들만 그 날 무사했던 거지?”
대중 주위를 흘겨보니 모험가들은 두 집단으로 갈라져 있었다.
하나는 수인족-. 다른 하나는 그 외의 이종족들이었다.
지금 여기서 수인족들은 거의 공동의 적이 되어 있었다.
둘러싸듯 포위하고 있는 다른 종족들을 보며 수인족들의 안색은 시커멓게 변해갔다. 그런데 오히려 그것이 다른 종족들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그건 우연이라니까! 우리도 피해자야!”
토끼 귀를 한 수인족이 애타게 해명해 보지만 주위의 반응은 싸늘했다. 특히 오크와 드워프들 같은 경우에는 싸늘함을 넘어 살의와 적의를 보내고 있었다.
“크윽···.”
소리치던 토끼 수인도 의미 없는 짓이라는 걸 알았는지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뒤로 물러섰다. 지금 여기서 수인족들의 편을 드는 다른 이종족 모험가들은 없었다고 해도 좋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마수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며 주위에 있던 모험가를 습격했을 때 피해가 없던 건 수인족들이 유일했다.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수인족들은 마수의 공격의 반대편에 있었다.
마소에 오염이 되고, 마수에게 목숨을 잃은 모험가들은 수인족들을 제외한 전부다.
유일하게 수인족들만 피해가 없었다는 건 어딘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더욱이-.
“우연!? 이 자식이! 아직도 숨기는 거야!? 그 때 신전을 습격한 건 분명 수인족이었어! 너희 종족은 도대체 뭘 꾸미고 있는 거지? 설마 아론 그 자식으로는 안 끝난 건가!?”
폰테르나 팀이 수인족으로 변장해 신전을 공격한 게 효과가 컸다.
비록 그것이 그들이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덕분에 상당한 여파를 만들어 냈다.
안 그래도 아론 사건 이후로 수인족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았다.
게다가 지금은 미궁 도시에서도 아론의 처우를 가지고 싸우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수인족으로 변장한 폰테르나 팀이 신전을 습격했고, 그 결과 알 수 없는 괴물이 모습을 드러내 수많은 사상을 냈으니 감정이 치솟을 수밖에 없었다.
수인족 입장에서는 억울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들이 해명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증거를 논하기에는 현재 일이 벌어진 신전에 접근하는 것부터가 불가능.
수인족과 다른 종족들 사이에서 벌어진 싸움을 불구경하듯 쳐다보고 있을 때였다.
“저,저기···. 에반님 이야기 좀할수 있을까요?”
에리스가 엘프 무리를 이끌며 말을 걸어왔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엘프들의 눈빛 또한 주위의 수인족을 바라보듯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나마 에리스의 여동생인 이리스는 별 다른 감정이 없어 보이지만.
‘이거 우리한테도 영향이 오는 건가.’
솔직히 말해서 다른 엘프들이 어떻게 보든 상관 없다.
중요한 건 에리스겠지. 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입니까?“
“저기···. 저희는 이제부터 지상으로 올라가려고 해요. 혹시 같이 가시겠어요?“
그렇게 말하고서 에리스가 조심스레 한걸음 거리를 좁혔다.
귀를 가까이 해달라는 그녀의 손짓에 유현은 몸을 내밀었다.
-제가 다 준비해놨으니까 문제없을 거예요! 저만 믿고 오시면 되요!
최대한 은밀하게 속닥거린 거 같지만, 뒤에 있는 엘프들의 시선이 따갑다.
이 순진무구한 엘프는 굳이 그걸 남들 보는데서 속닥거려야 하는 걸까.
에리스의 등뒤로 이리스의 눈이 가늘게 변하는 게 보인다.
유현은 이리스의 눈을 보면서 쓴웃음을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