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41
“이제부터 여러분들이 쌓으신 로그를 확인해서 그에 따른 튜토리얼 보상 지급이 진행될 것입니다.”
아이리스는 벌써 똑같은 말을 10번 가까이 반복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그녀는 지루하다는 표정 하나 없이 모든 플레이어들에게 친절한 모습을 보였다. 그 동안 신전 안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왔다 갔다.
물론 당연스럽지만 모두 지구의 현대인들이었다. 다만 특이한 것이 있다면.
“···이번에도 한국인이 아니었네.”
여기에 소환된 건 한국인 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나라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이 영어를 나불거리며 요정들에게 항의 하는 모습은 상당히 재미있는 광경이었다.
그 중에서도 제일 많이 들려온 말은 당연히 ‘FUCK’ 이라는 단어였다.
분노를 참지 못한 몇몇 외국인 남자들이 욕설과 함께 요정에게 달려들었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신전 안은 그녀들의 장소였다. 이곳에서라면 그녀를 죽이기보다 신전을 먼저 부수는 게 요정을 죽이는 지름길이겠지.
우우우웅!
몇 번째인지 세는 걸 포기하고 하염없이 신전 안으로 들어오는 플레이어들을 지켜보고만 있던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슬슬 포기해야겠다.
“오늘은 포기해야겠네.”
처음에는 기다려보려고 했지만, 계속해서 플레이어들이 들어온다. 한 파티가 나가면 다른 파티가 곧 바로 들어오는 식으로 1시간 넘게 진행되었다.
아마, 신전 밖으로는 여러 파티들이 줄을 서고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닐까. 이 이상으로 근성을 가지고 기다려보는 건 시간낭비라고 느꼈기에 나는 슬며시 자리를 떠났다.
그러자 아이리스가 흘낏 나를 쳐다봤지만 무시했다.
방을 나오자 내 생각대로였다. 문 앞에서 길게 줄을 서고 있는 플레이어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걸 보며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는 그대로 그들을 지나쳤다. 정말로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구나.
그렇게 처음 보는 플레이어들을 아무렇지 않게 스쳐지나가던 중이었다. 갑자기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이유현씨···?”
어딘가 들어본 목소리였다. 그렇기에 등 뒤로 들려온 그 소리에 이끌려 조심스레 고개를 들려보자 이제권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 동안 많은 고생을 한 것인지 얼굴에 혈색이 없고, 눈이 메말라 있다. 잘도 살아남았네. 그를 보자마자 그런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그를 천천히 살펴보던 중 특이한 것이 발견되었다. 그는 혼자였다. 보통이라면 그가 이끌던 학생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른 학생들은 어떻게 된 거죠?”
“···그, 그게 말이죠.”
시선을 피한다. 지금의 나는 어떤 눈을 하고 있을까. 차갑지도, 화가 나는 것도 아닌, 감정 따윈 느낄 수 없는 무미건조한 눈을 하고 있을 것이다.
‘사람이 변했군.’
예전에는 어느 정도 눈에 힘을 주던 남자였지만 지금은 그저 빌빌 거리는 남자였다. 기세가 사라졌다. 예전에는 조금 오만한 눈을 하고 있었는데, 꽤나 험한 꼴을 당했나 보다. 파티로 이끌던 학생들은 어떻게 된 걸까. 죽었을까, 아니면 서로 간의 분쟁으로 떨어지게 된 걸까.
만약 죽었다면 이제권은 더욱 곤란해질 것이다. 튜토리얼이 완전히 끝나면, 튜토리얼에서 죽었던 모든 사람들이 신전 안에서 눈을 뜨게 될 테니까.
어느새 내 눈길을 피하며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서 연민보다는 한심함을 느꼈다. 그런 감정을 가슴속으로 느끼며 그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등을 돌리자 몇 번이나 나를 부르는 듯한 소리가 돌렸지만 무시했다.
길게 이어진 줄들을 지나치며 확인 된 것인데, 내 눈에 익숙한 교복을 입은 플레이어들도 조금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길유미랑 남궁민과 똑같은 교복들이었다.
좀 더 줄을 확인해 보지만 이제권과 함께하던 아이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아직 통과하지 않은 걸까. 아니면 그냥 그곳에서 죽어버린 걸까.
줄의 끝까지 확인했음에도 그들은 보이지 않았다.
*
“오, 오빠! 갑자기 사람이 확 늘어났어요!”
내가 여관으로 돌아오자 길유미가 내뱉은 첫마디였다. 붉은 혈색이 감도는 게 상당히 흥분 한 듯하다.
확실히 그녀의 말대로 여관 안에 처음 보는 얼굴들이 늘어나 있었다. 그 중에서는 금발 머리의 사람도 있었기에 섣불리 말을 걸기도 뭐했다.
한국인의 특징 중 하나가 여기서도 나타나는 듯하다. 말을 걸어볼까, 말까 아이들이 고민하고 있는 사이 그들은 식사를 시작했다.
부지런히 수저를 움직이는 게 오랜만에 맛보는 요리에 감동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이세계의 요리임에도 불평하나 없이 그들은 꾸역꾸역 입안으로 음식을 쑤셔 넣는다.
그런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기에 우리들은 어딘가 이질적인 식당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금 여유롭게 식사를 하는 건 오로지 우리뿐이었다.
그들을 지켜보던 중 이서연이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다행이네.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서 말이야. 저렇게 다른 사람들도 보이니까 어딘가 안심이 돼.”
“···확실히 그렇네. 우리만 여기에 있는 게 아닐까, 걱정했는데.”
쓸데없는 걱정이다. 어차피 지금 이상으로 플레이어들의 수는 늘어날 테니까. 2회차도 있고 3회차도 있다. 그 후로도 계속 플레이어들은 소환될 것이다.
갑작스러운 손님의 증가에 요리사겸 여관 주인장으로 일하고 있는 남자가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던 중일 때였다. 여관 앞에서 주춤거리고 있는 파티를 발견하고 곧 바로 그들에게 향했다.
“더 이상 손님을 받지 않습니다. 방이 모두 꽉 찼어요.”
문 밖으로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여관 주인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벌써 방이 꽉 찬 건가. 어째서 유난히 이 여관이 인기가 있는 걸까. 특별한건 없던 거 같은데.
어쩌면 사람의 눈길을 사로잡는 특별한 기운 같은 게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다른 여관으로 발길을 돌리는 플레이어들을 지켜보았다.
여관 밖의 길거리는 어제와 비교하면 완전히 분위기가 달라졌다. 어딘가 사람의 소리가 많이 들려온다. 한산했던 길거리가 플레이어들로 인해 가득 채워진 것이다. 싸늘했던 휴식터에 사람들의 온기가 채워지고 있었다.
우리는 한 동안 여관 창문 너머로 돌아다니고 있는 사람들을 관찰했다. 대부분은 같은 학교의 아이들을 찾고 있는 중일 것이다. 실제로 반 쯤 찢어진 교복을 입고 있는 이들을 발견하면 소란스럽게 변했다.
“어, 저거 영후 아니야?”
“예지도 같이 있네. 다행이다···.”
아이들의 엉덩이가 흥분에 가득 차 들썩인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어 하는 그 모습에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뭐하고 있어. 갔다 와.”
“옙!”
그 말과 함께 아이들은 사이좋게 동시에 밖으로 뛰쳐나갔다. 왜 그 동안 가만히 있던 걸까. 내 눈치 볼 것 없이 갔다 오면 될 것을.
턱을 괴며 길거리로 뛰쳐나가는 아이들의 등을 바라보던 중, 문득 송가연만이 가만히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는 누가 살아 돌아왔는지 관심이 없는지 여전히 책만 보고 있었다.
소란스러운 식당의 분위기에도 그녀는 차분한 얼굴로 책을 읽고 있다. 사악, 사악 넘어가는 종이 소리가 이질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녀석들이 살아 돌아온 친구들을 확인하는 데에는 꽤나 시간이 걸릴 거 같았기에 뭔가 시간을 죽일 필요를 느꼈다. 그러자 눈에 들어온 것은 송가연 쪽에 쌓여 있는 책들이었다.
“책 좀 빌려도 돼?”
“예. 보세요.”
고개를 끄덕이며 흔쾌히 수락하자 나는 [지하 미궁 마왕의 전설] 이라는 책을 빌려보았다. 그녀가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이라고 말한 게 어느 정도 사실인 듯 책에는 귀여운 삽화들이 삽입되어 있었다.
조용히 책을 읽어 내린다. 떠들썩한 식당의 분위기 사이에서도 우리는 흔들릴 것 없이 조용히 글을 읽는 것에 집중했다.
책의 내용은 흥미롭지만 유치한 이야기였다. 정말로 아이들을 위한 동화인 것마냥 문장은 짧고, 쉬운 단어들로 구성되어 있다. 덕분에 읽기에는 부담이 없을 정도로.
내용의 주체는 간단했다. 이 끝없이 이어져 있는 지하 미궁의 끝에 무엇이 있을까. 그런 것을 논하는 이야기였는데 핵심적인 건 미궁의 최심부에 마왕이 살아 있다는 이야기였다.
최심부라면 심계를 말하는 걸까. 심계의 끝은 나도 가본 적이 없다.
어린 시절부터 미궁에 대해 궁금해 하던 남자 아이가 커서 미궁을 탐험하는 이야기. 동료를 모으고 모아, 결국 미궁의 최심부에 살고 있는 마왕을 만나는 이야기가 책에 나오고 있었다.
마왕.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무시무시한 존재임이 분명하겠지. 하지만 웃긴 게 있다면 인간들이 지상에서 쫓겨나기 전, 한창 전쟁을 벌이고 있을 시기에 마왕이라고 불린 존재가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인간이었고, 강한 인간이었다. 그리고 인간에게 있어서는 마왕이 아닌 영웅이라 불리던 남자였다.
우리들, 아니 이곳 세계의 주민들은 그를 이렇게 불렀다.
‘용사’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