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62
유현의 말에 아이리스는 이미 예상했던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보상은 저희 쪽에서 충분히 해드릴 겁니다. 만약 원하시는 게 있다면 요구하셔도 좋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불가능해.”
“·········”
확고한 대답에 아이리스는 조금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눈앞에 있는 남자가 쉽게 고개를 끄덕일 거라고는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유현의 표정은 부정적이었다.
‘이런.’
아이리스가 표정을 흐리자 유현은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그녀가 오해하면 곤란하다. 딱히 그녀와 벽을 쌓을 생각은 없다. 유현은 그녀에게 적의를 가지고 있진 않다.
더욱이 그녀가 적의를 가지면 귀찮아진다. 여러 가지로 얻을 게 많은 요정이다. 그리고 그 어떤 요정도 아닌 눈앞에 있는 요정을 적으로 돌리면 위험해진다.
오히려 유현은 그녀에게 약간의 호의 정도는 가지고 있었다. 이건 지금이 아닌, 회귀 전에 쌓아온 그녀와의 인연의 결과였다. 유현은 한 때 아이리스를 위해 싸운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혹했다. 많은 플레이어가 죽었다. 모험가들과의 전쟁에서 끝내 패배했다. 유현은 목이 잘리고 수많은 요정들이 미궁 깊숙이 도망가야 했다. 그리고 그 후에 그녀는 어떻게 되었을까. 뻔한 이야기다. 유현은 보지 못한 그녀의 최후를 떠올리며 쓰게 웃었다.
결론만 말하면 회귀 전 유현이 죽은 이유의 중심에는 아이리스가 있었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유현은 그걸 원망하진 않는다. 그녀를 위해 싸웠다고 하지만, 정확히는 유현은 자신을 위해 싸웠을 뿐이다. 아이리스를 위해 싸운 건 단순히 소문이 합쳐지며 만들어진 이야기였다.
한 때 모험가만을 죽이기 위해 미궁을 떠돌던 플레이어가 있었다. 수많은 모험가를 죽이고 미궁을 헤매던 괴물이 우연한 일치로 한 요정과 손을 잡게 되었다.
요정은 괴물을 이용했다. 괴물도 요정을 이용했다.
요정은 괴물에게 모험가들에 대한 정보를 주었고, 괴물은 요정이 준 정보를 따라 모험가를 죽여 나갔을 뿐이다. 괴물이 모험가들과 싸운 것에 대의는 없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 같은 남들 듣기 좋은 이유 따위 같은 건 없었다.
오히려 괴물이 모험가들과 많은 피를 흘리며 싸운 건 엉망진창인 이유들뿐이었다. 그건 마치 저주와도 같았다. 싸울 수밖에 없도록 옭아매는 저주. 그렇게 모험가에 대한 살의로 미쳐있던 괴물은 한 번 죽고 나서야 살의를 지울 수 있었다.
유현은 그 때의 괴물이 멍청하다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괴물을 다시 보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렇지만 모험가들은 멀지 않은 미래에 다시 미궁을 쑤시고 다닐 것이다.
많은 이들이 죽을 것이다. 그들의 무기는 언젠가 다시 유현에게 향해 있을 것이다. 괴물이든 아니든, 미궁에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이유 하나로.
그럼 그 때도 혼자서 싸우고 있을 건가?
그 물음에는 역시, 대답은 하나다.
“딱히 가르쳐주기 싫어 그런 건 아니야. 그러니까 오해는 하지 않으면 좋겠네.”
유현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리스는 지혜로운 요정이며, 여인이었다. 그렇다고 착한 요정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합리적인 사고 정도는 가능한 요정이다.
“나는 정말 어떻게 마력을 깨우쳤는지 모를 뿐이야. 애초에 그런 힘을 어떻게 깨우칠 수 있는지 설명하는 것도 얼마나 어렵고 멍청한 짓인지 너도 알고 있을 텐데.”
마력을 각성하는 건 가르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그러니까 요정들은 플레이어에게 영령이 가진 힘을 일부분 이어 받게 함으로서 마력을 각성하게 만든다.
만약 가르친다고 되는 범주였다면 유현은 이미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스스로 각성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이점이 있는지 안 이상, 그럴 마음이 없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차분하게 생각해 봐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예.”
묘하게 아이리스가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다. 이전이나 지금이나 역시 그녀는 힘을 추구하고 있다. 그 이유를 유현은 대략적이나마 알고는 있다.
아무래도 이 미궁에 퍼져 있는 요정들 모두가 사이좋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복잡하게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경우가 많았다. 정말로 바보 같은 일이다.
서로 힘을 모아도 부족할 지언데 서로 으르렁 거리는 꼴이란. 우습기만 하다.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어째서였을까.
‘왜 이 녀석은 혼자서 싸운 거지?’
수많은 요정들이 있는데, 그녀는 자신을 따르는 요정들만으로 모험가들과 전쟁을 벌였다. 그 이유는 뭐지. 모험가들은 어째서 그녀만 집요하게 -.
‘쯧.’
머리가 아프다. 역시 기억이 나지 않아. 갑자기 지끈 거리는 두통에 유현은 얼굴을 찌푸렸다. 떠오르지 않는 걸 강제로 생각해 보려고 하니 이런 듯싶다.
“이유현님의 말은 잘 알겠습니다.”
다행히 아이리스도 잘 알아주었는지 긴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실망에 젖어 있는 한숨이었다.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나.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
[이름:이유현] [직업:무직] [레벨:8]생존본능D
전투지속D
상황분석D
[특수보유능력: 존재하지 않습니다.]몇 번을 봐도 이상한 인간이다. 아이리스는 그의 스테이터스 창을 보며 생각했다.
스으으으.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이유현의 모습이 사라진다. 아이리스는 닫히는 문 너머로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류트. 그의 말은 어떻게 보였나요.”
그녀의 부름에 답하듯 방 한쪽에서 갑자기 한 사람의 모습을 드러냈다.
옅은 하늘색의 머리카락을 깔끔히 묶은 그는 류트였다. 신전 안임에도 그는 경갑을 착용하고 있고, 허리에는 투척용 단검을 몇 개 매다는 식의 가벼운 무장을 유지하고 있었다.
가늘게 뜬 눈으로 닫힌 문을 쳐다보고는 쓴 웃음을 짓다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거짓말은 아닌 거 같습니다. 딱히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고요. 오히려 예상외로 유현 씨는 아이리스님에게 약간의 호의를 가지고 있는 거 같습니다.”
“그가 저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다고요?”
예상치 못한 대답에 아이리스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삭막하기 짝이 없는 남자가 어째서?
하지만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류트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
그럼 잘못 안 게 아닐까?
그것 또한 아니다.
모른다면 모른다고 답할 그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정안[正眼]을 가진 당신이 잘못 볼 리가 없겠지요.”
“···하하. 너무 신뢰하시면 곤란합니다. 상대에 따라 제 능력이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요. 특히 요정들 대다수가 제 능력이 통하지가 않지요.”
“그건 저희 요정들이 특별한 가호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 알고 있습니다. 예전에 리아 이리아스님에게 물어봤으니까요. 그런데 어쩌면 유현 씨도 제 능력이 통하지 않는 게 아닐까요?”
류트는 너무 자신의 능력을 가볍게 본다. 아이리스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는 없습니다. 이유현의 스테이터스에서는 류트의 정안을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은 없었으니까요.”
“너무 스테이터스를 믿으면 곤란한데 말입니다. 굳이 능력이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주의를 한다면 진실은 숨길 수 있는 법이니까요. 특히 유현 씨 정도 되는 남자라면.”
아이리스는 류트의 눈을 응시했다. 가늘게 뜬 눈이 인상적이었던 그가 어느새 눈을 크게 뜨며 여기를 보고 있다. 류트의 눈은 맑고 깨끗했다. 그렇지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신기한 눈이기도 했다.
그의 눈은 특별했다. 그는 진실과 거짓을 구별할 줄 아는 능력을 가졌다. 그에게는 어지간한 거짓말은 통하지 않는다. 그런 그에게 세계는 어떻게 보이고 있을까.
이제 19살인 그가 저렇게 어른스러울 수 있는 건 정안이라는 특별한 눈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가 봐온 세계는 범인의 상상력으로는 쉽게 떠올릴 수 없다.
거짓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 그건 좋은 점보다도 나쁜 점이 많다. 때로는 알지 못하는 진실 같은 게 세상을 사는데 이로운 법이다.
한 동안 류트를 쳐다보던 아이리스는 작게 눈웃음 지었다.
“당신이 아란스 말고 다른 사람을 높게 평가하는 건 상당히 오랜만이군요.”
“하하, 그렇습니까? 아란스 대장이야 워낙 대단한 분이니까요.”
아란스 디페로우.
성인이 되기도 전인 16살에 이미 익스퍼트 클래스에 이른 괴물 같은 남자. 그런 그가 고블린들 따위에게 부상을 입고 왔을 때는 류트라도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놀란 류트에게 돌아온 그의 말은 가관이었다.
-놀아주다보니 이렇게 되었다.
그는 그 때 많은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치명적인 상처는 없었다. 그건 위험한 공격들은 허용한 적이 없다는 소리다. 그 때 고블린들도 아란스의 실력을 어느 정도 눈치 챘을 거다.
강한 인간.
하지만 자신들 모두가 힘을 합쳤을 때도 진다고는 생각하진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 덕에 그들은 형편없을 정도로 어이없게 게이트웨이 연결을 막던 결계의 축을 내주었다.
별동대로 인해 축이 붕괴되었을 때 고블린들이 전력을 다하여 공격하지 않은 건 아란스의 실력을 완전히 깨달았기 때문이겠지. 클랜장들은 아란스를 두려워했다.
‘···뭐, 굳이 끈질길 게 달라붙었어도 상관 없었겠지만요.’
아란스 대장 말고도 훌륭한 인재는 많았다.
다만 그럼에도 로렐라이에서 고블린들에게 밀린 건 의도적이었을 뿐이다. 눈앞에 있는 아름다운 요정을 위해. 개인적으로 로렐라이에게는 미안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리아스의 이득을 위해 움직인다.
그게 류트였다.
지옥에서 간신히 끌어 올려준 그날의 은혜를 갚기 위해서는 로렐라이 같은 짓도 몇 번이나 가능했다. 이리아스를 위해 어둠을 가슴에 묻고 가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이리스 이리아스. 끔찍한 괴물들 사이에서 한 줄기의 빛을 내려준 요정.
류트는 그녀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생각이었다. 그게 이 세상을 제대로 직시 하게 되었을 때 제일 먼저 생각했던 다짐이었다.
“그러면 류트. 한 가지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부탁 말입니까?”
명령이 아닌 부탁.
그 차이를 뭐라고 말해야 할까. 류트는 그걸 떠올리며 약간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 작품 후기 ==========
중간 중간 글을 수정한 부분이 있습니다. 주로 틀린 스테이터스 수정이 많았는데 변경된 부분만 골라서 따로 공지에 올리겠습니다. 혼란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 주인공의 초기 마력 스테이터스를 ‘0’ 으로 수정했습니다. 마력 각성을 하기 전이었기에 마력 수치를 가지고 있는 게 이상하다고 판단하여 변경했습니다.
능력치 앞에 붙어 있는 알파벳은 재능의 등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