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cension Through Skills RAW novel - Chapter 544
제 544화
544. 찬탈자의 보물상자 (2)
“답이라.”
태산은 중얼거렸다. 녹색 마녀는 조용히 몸을 낮춘 채 태산의 대답을 기다렸다.
“드높은 자리에 도달한 거는 맞지만, 너랑 나랑은 상황이 많이 달라.”
태산은 애초에 홀로 오롯한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단지 찬탈자의 존재가 그걸 가로막고 있던 것이었다.
그렇기에 찬탈자로 오염된 자신을 버리고, 새로운 자신으로 채우는 것만으로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녹색 마녀는 아니었다. 그녀는 고신의 오염 따위를 당하지 않았다. 그녀가 도달한 경지가 불멸자인 것이었다.
태산의 해결법은 녹색 마녀에게 대입할 수 없었다. 이야기를 들은 녹색 마녀의 눈이 가라앉았다.
“그렇…… 습니까.”
“그렇다고 초월자로 향하는 길이 무엇이냐고 말하면…… 나도 모르겠네.”
애초에 지금의 태산은 초월자가 아니었다. 녹색 마녀가 바라는 곳과는 다른 영역에 도달해 있었다.
엇비슷하기는 하지만 근본적인 부분에서 차이가 있으니 무어라 설명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한 가지 봐주실 수 있으십니까?”
“무엇을.”
“저를 말입니다.”
녹색 마녀는 고개를 들었다.
“저 자신을 읽어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녀는 무척 간절한 어조로 말했다.
잠시 그녀를 바라보던 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바란다면.”
“감사합니다.”
녹색 마녀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태산의 앞에 드러냈다. 태산은 그렇게 보인 그녀를 향해 시선을 보냈다.
스킬을 발동할 필요도 없다.
지금의 태산은 만물을 관조할 수 있다.
하물며 녹색 마녀처럼 자신을 드러낸 상태라면, 말 그대로 그 모든 것의 파악이 가능했다.
태산의 시선이 녹색 마녀를 꿰뚫는다.
“아…….”
녹색 마녀가 순간 몸을 움츠렸다. 전신의 장기, 근육 하나하나 남김없이 드러난 감각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물러서지 않고 자신을 드러냈다.
그리고 태산은 보았다.
그녀가 일평생 쌓아 올린 자신만의 것을.
그것은 결코 작은 양과 질이 아니었다. 거대한 탑이나 다름없었다. 녹색 마녀는 불멸에 오를 만한 자격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 이상의 무언가는 보이지 않았다.
분명 거대하고 웅장한 탑이지만, 한계는 명확했다.
태산은 시선을 거두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보셨는지요…….”
잠시 고민한 태산은 직접적으로 말했다.
“너는 많은 것을 쌓아 올렸어. 그 결과 불멸자에 이르렀지. 하지만…… 네가 쌓아 올린 것이, 위대한 경지에 닿을 정도는 아니야.”
“그렇다면 해결법은.”
“없어. 적어도 당장은.”
태산은 담담히 말했다.
녹색 마녀가 쌓아 올린 탑은, 지금은 한계였다.
저 이상으로 쌓을 수 없고, 쌓으려고 시도하면 무너져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상태였다.
‘저런 식으로 한계점이 생기는 건가.’
처음부터 쌓아 올리는 것을 잘못 쌓는다면, 오래지 않아 벽에 부딪혀버린다. 홀로 오롯한 자리에 오를 수 없다.
어느 정도 예상하기는 했지만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다. 태산은 녹색 마녀에게 말했다.
“…….”
이야기를 들은 녹색 마녀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드높은 경지에 도달하는 것. 그녀는 일평생 그것을 바라왔다.
그런데 지금 그 가능성 자체가 막혀 있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녀의 고개가 땅으로 떨어졌다.
“……그렇다면.”
천천히 녹색 마녀의 입이 열렸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태산을 바라봤다.
그 눈에는 아직도 꺼지지 않는 열망이 있었다.
“저의 탑이 문제가 된다는 말씀이지요.”
“적어도 현시점에서는 그렇지.”
“그렇군요. 이게 문제야. 이게…….”
녹색 마녀는 홀로 중얼거렸다. 무어라 결론을 내린 건지,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진심으로 감사드리옵니다. 위대한 분이시여.”
지금 태산이 알려준 건 세계의 귀중한 가치였다.
초월자들만이 알고 있는 비밀 중 하나였다.
그걸 계약을 맺었다는 이유로 알려준 건, 녹색 마녀에게 있어 기적과도 같은 기회였다,
“그러면 한 가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말해 봐.”
“만약에 나중에, 제가 한 가지 부탁드리면…… 들어주실 수 있으십니까?”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 거라면. 얼마든지.”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녹색 마녀는 그리 말하며 손을 휘둘렀다.
[녹색 마녀와의 계약이 종료되었다.]태산과 그녀 사이에 이어져 있던 시선의 계약이 끊겼다.
녹색 마녀 스스로가 포기한 것이었다.
“괜찮아?”
“바라는 대답은 들었으니까요. 이 이상 위대하신 분과 시야를 공유하는 건 폐입니다.”
녹색 마녀는 천천히 물러섰다. 태산은 그녀에게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위대하신 분이 말씀해주신 것을 토대로 답을 찾아야겠지요. 그리고 나오지 않는다면…… 다시금 찾아뵙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녹색 마녀는 떠났다.
그녀가 무엇을 할지는 대충 짐작이 갔다. 그리고 태산에게 무엇을 바라는지도.
‘잘 됐으면 좋겠네.’
태산도 그녀에게 받은 것이 제법 있는 만큼 그녀를 응원했다.
그리고 태산은 라키라타스가 내려준 권능을 확인했다.
[투쟁으로 일어난 죽음] [자신의 주인을 제외한 모든 것을 죽이려는 죽음의 폭력.]“이걸 어떻게 써먹을까.”
권능 그 자체인 만큼 허투루 사용할 수 없다. 고민이 되었다.
장비로 만드는 방향도 생각해봤지만, 권능을 담을만한 재료가 존재할 것 같지는 않았다.
잠시 고민한 태산은 결정을 내렸다.
권능의 일부를 권능과 융합한다.
태산은 투쟁으로 일어난 죽음을 자신의 가슴에 닿게 만들었다.
콰드드드득!
그리고 죽음과 자기불변이 충돌한다.
서로 상반되는 두 개의 개념이 저항한다. 서로를 배척하며 밀어내려 한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저항이었다. 고신과 초월자의 권능을 뒤섞는다니. 애초에 이룰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태산은 경계를 가지고 있었다.
“내 말 들어.”
조용한 말과 함께, 짐승이 일어난다. 자기불변과 투쟁의 죽음을 게걸스럽게 제압해 압박한다.
꾸구구구국.
통제되지 않고 저항하려던 두 개념이 강제로 하나가 된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새로운 권능으로 변화한다.
[투쟁으로 일어난 죽음과 초월 [자기불변]이 변화했다. 초월 [경계부정]을 얻었다.]“생각보다 쉽게 됐군.”
반발을 어렵지 않게 찍어누를 수 있었다. 자기불변이 경계로 인해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게 변한 것이 의미가 있는 것 같았다.
[초월 : 경계부정] [숙련도 : 13%] [모든 개입에 대한 부정. 이 세계의 것도, 이 세계의 것이 아닌 것도. 당신에게 개입하는 모든 것을 거부하고 부정하고, 죽이려 든다.]태산을 두르던 칠흑이 잿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성질 또한 변화했다. 자기불변은 담담하고 차갑게 외부와의 개입을 차단했다면, 경계부정은 좀 더 폭력적이었다.
카가가각.
당장 태산을 두른 경계부정은, 태산에게 닿으려는 세계의 개념들조차 적대하여, 짓밟고 죽이려 들고 있었다. 태산이 경계부정을 갈무리했다. 그제야 일렁이는 잿빛 기운이 조금 가라앉았다.
“적극적이군.”
태산에게 접근하는 모든 것을 적대하는 힘. 검은색이 아닌 잿빛으로 변화한 만큼 그 격과 힘 또한 더욱 강력해졌다.
‘이 정도면…… 라키라타스의 공격도 몇 번 막을 수 있으려나.’
전력까지는 모르겠지만, 진심을 담은 공격은 최소 두세 번까지는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만한 급에도 충분히 통용된다면 훌륭한 변화였다. 태산은 만족했다.
“그러면…….”
대충 확인할 건 전부 확인했다.
이제 미궁을 내려가야 할 시간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마법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 거야?”
태산이 중얼거리는 순간이었다.
촤악.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공간이 갈라졌다.
* * *
“처리할 일이 끝나지가 않네.”
미궁을 만든 마법사가 모습을 보인다. 그는 무척 지쳐 보였다.
“그래도…… 이제는 적당히 정리됐어. 방향성도 잡혔고. 기다리게 해서 미안.”
미궁에 발을 디딘 마법사는 태산을 바라봤다. 그리고 흠칫 놀랐다.
“……이상한 게 보이는데.”
태산을 두른 경계부정은, 마법사를 향해 적의를 보이고 있었다.
“가만히 있어.”
태산은 조용히 말했다. 경계부정이 주인의 뜻을 따라 천천히 사그라들었다.
“거…… 참. 잠깐 사이에 또 이상한 걸 얻었네.”
마법사는 떨떠름히 중얼거렸지만, 캐묻지는 않았다. 어차피 태산의 힘과 격을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굳이 받아들이려 할 필요가 없었다.
태산은 마법사에게 물었다.
“미궁 내려가도 되냐?”
구도자가 된 태산도 미궁을 내려가도 되는가.
그 질문에, 마법사는 긍정했다.
“상관없어. 애초에 이전에 말했잖아. 네 전용으로 층을 새롭게 만들 거라고.”
“이제 와서 내 전용이 가능한가 싶어가지고.”
라키라타스와도 맞상대가 가능하다. 그러려면 미궁의 퀘스트도 그만한 급이어야 하는데, 그런 것을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마법사도 그 부분은 인정하는지 쓴웃음을 지었다.
“나도 그래서 고민이 많았어. 하지만 이왕 말한 거는 지켜야 하거든. 그리고…… 조금 애매하긴 하지만, 마침 마땅한 것을 찾기도 했고.”
마법사는 손으로 계단을 가리켰다.
“가 봐. 기다리고 있는 존재가 하나 있으니.”
태산은 계단을 내려갔다.
[96층 퀘스트 시작.] [아릴난의 근원을 찾아라.] [보상 : 아릴난의 권능.] [비밀 보상 : ???]아릴난.
태산의 기억에 있는 이름이었다.
태산은 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새하얀 여인이 한 명 있었다. 머리카락과 눈동자 색은 먼지를 먹은 것과 같은 잿빛이었다.
묘하게 이국적인, 평범한 생김새와는 어딘가 다른 이목구비.
아카샤가 조용히 말했다.
[여신이시여.]“오랜만이구나. 나의 사도였던 아이야.”
[잊혀진 여신. 아릴난이 등장했다.]* * *
아릴난.
“너도 오랜만이군. 나의 은인.”
“오랜만입니다.”
태산은 살짝 놀랐다. 설마 아릴난이 96층에서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리고 시스템이 설명한 대로라면, 96층의 퀘스트는 아릴난에 대한 것이었다.
물끄러미 태산을 바라보던 아릴난이 입을 열었다.
“냄새가 사라졌구나.”
냄새라면 하나였다. 아릴난은 태산을 처음 만났을 때 미약하게 찬탈자의 냄새가 난다고 말했었다.
그게 지금 사라졌다는 의미였다.
“이질은 더욱 강해졌지만…… 적어도 그것의 냄새는 나지 않아. 내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야.”
아릴난은 만족스러워했다. 태산은 마법사를 바라봤다.
“그녀가 96층의 퀘스트를 주나?”
“그래.”
마법사는 긍정했다. 아릴난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은 무척이나 묘했다.
“내가 너를 알고 있었다 이거지. 눈앞에서 보고 있는데도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데.”
“나는 너를 기억하고 있지만. 마법사. 다만 내가 기억하는 너는 지금과는 많이 달랐지만.”
아릴난은 묘한 웃음과 함께 말했다.
“이전에도 다른 초월자들과는 달리 홀로 이상한 것을 추구하기는 했지만 설마 이런 공간을 만들 줄은 몰랐는걸. 그때도 지금도 나는 너를 이해할 수 없구나. 필멸자들을 위해, 자신을 버리다니.”
“……진짜 나를 아는 놈만 할 수 있는 말인데.”
하지만 여전히 마법사는 아릴난을 알 수 없었다.
아릴난은 담담히 말했다.
“찬탈자가 나를 찬탈했으니까. 너희는 나를 알 수가 없는 것이 당연하지.”
아릴난은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아카샤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영원히 잊힌 채였으리라.
하지만 오랜만에 아릴난을 본 태산은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조금 더 뚜렷하게 이 세계에 각인되어 있었다.
“무언가를 떠올린 겁니까?”
“아아. 그래.”
아릴난은 만족스레 웃었다. 그녀가 아카샤를 바라봤다.
“네가 너 스스로 오롯해졌기 때문인가. 나를 기억하는 자의 기억이 더 뚜렷해졌다. 그 결과 나는 한 가지 사실을 떠올릴 수 있게 되었지.”
“그것이 무엇입니까?”
“나.”
아릴난은 이를 드러냈다.
“내가 나를 잃어버리기 전에, 나였던 것. 빌어먹을 찬탈자가 강탈해 간 나만의 개념. 그것이 위치한 찬탈자의 보물상자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