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assin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122
‘…힘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어.’
참으로 얄궂게도, 수많은 강자들이 얽혀버린 이 결전은 마침 강령술의 부작용이 풀리는 시점에 벌어지게 되었다.
나는 주먹을 몇번 쥐었다 피곤 한숨을 내쉬며 근처에 있는 두명의 헌터를 바라보았다.
미국의 칠성인 라이언 브리스톨과, 독일의 칠성 율리안 첸빌츠.
이 둘만 해도 대단한 전력이었지만, 이제는 정보의 제한을 푼 탓에 자비에와 예시엘을 비롯한 기타 S랭크 헌터들마저 이 자리로 모여들 것이다.
‘이렇게까지 사태가 커지게 될 줄은 몰랐는데.’
사실, 나는 처음 라이언의 손에 붙들려 어디론가 끌려갔을 때만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아스트리데와 헤네시아가 나를 찾아올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라이언 측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애초부터 그러한 결단을 내릴 만한 배경이 있었던 것인지, 같가지 수를 사용해 완벽히 두 사람의 추적을 따돌린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도주 방식에 한계가 온 시점도 정확히 오늘이었다.
여러모로 참 상황이 알맞게 들어맞았다 볼 수 있다.
“라이언이여, 정말 이런 눈에 띄는 함정에 그들이 찾아올 것이라 생각하나.”
“무조건 오지. 네가 그놈들을 못 봐서 그래. 이틀 동안 한숨도 쉬지 않고 내 뒤를 쫓던 놈들인데 오죽하겠어?”
라이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두 사람은 상대가 함정을 펼쳐놓았든 그렇지 않든 결국 이곳에 찾아올 것이다.
그만한 실력이 그녀들에게는 었었고, 또한 그만큼 잔뜩 화가 나 있을 터였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지원 의사를 표한 타국의 헌터들보다 먼저 이 자리에 당도한 것은 바로 헤네시아와 아스트리데였다.
척 보기에도 사나운 살기를 풍기고 있는 헤네시아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애먹었어. 별 볼일 없는 잔챙이라고 생각했는데, 도망 하나는 잘 치네.”
“미안하지만, 그 생각도 오늘부로 바뀌게 될 거야.”
라이언 역시 지난번 그녀들과의 전투를 치른 뒤 나름대로 대응법을 고려해왔을 것이다.
또한 이대로 전투가 벌어진다면, 서로가 체력을 소모한 시점에 맞춰 타국의 헌터들이 지원군으로 도착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라이언 측의 노림수였다.
“이번엔 끝까지 가보자고, 서로 중간에 내빼기 없이.”
“누가 할 말을.”
단단히 화가 난 헤네시아는, 뜸을 들이는 기색조차 없이 무지막지한 마력을 스태프 쪽으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실로 무자비하게 공격 주문을 연사하기 시작했다.
퍼엉!
퍼어엉!
화르륵!
콰가가각!
그에 대응해 율리안 역시도 주먹 크기 정도의 반투명한 강철 구체를 무수히 소환하며 방어 스킬을 펼쳐냈다.
겹겹히 둘러싸여 형성된 마력의 장벽이 헤네시아의 공격을 안정적으로 방어해나갔다.
쩌엉!
쩌어어엉!
“…라이언이여, 자네 말이 틀리지 않군. 확실히 저 둘은 강하다. 우리 둘만으로 이길 거란 보장이 없겠어.”
“그걸 위한 지원군이지. 우린 그저 팽팽한 싸움을 이어가기만 하면 돼.”
출중한 공격력을 지닌 라이언과, 그런 라이언에게 부족한 방어 능력을 커버해줄 수 있는 율리안.
두 사람의 조합은 내가 생각하기에도 안정적이고 이상적인 형태로 구성되어 있었다.
또한 지금 보니 이전에도 몇 차례 합을 맞추었던 전적이 있는듯했다.
쉽사리 방어가 뚫리지 않자, 헤네시아는 혀를 차며 전법을 바꿔 거대한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곁에 있던 아스트리데에게 말했다.
“대마법을 쓸 거야. 지켜줘.”
“…응. 알겠어.”
그렇게 되니 이번에 급해지는 것은 라이언과 율리안 쪽이었다.
이전의 전투에서 그 위용을 본 적 있던 라이언은, 율리안에게 눈짓하며 다급히 힘을 끌어올렸다.
“역시 저렇게 나오는군. 막아야 해.”
“맡겨둬라.”
쿠르르릉!
라이언이 순식간에 먹구름을 불러내며 하늘을 어둡게 만들고, 그런 먹구름들 사이에서부터 거대한 강철의 기둥이 내려와 땅에 내리꽂혔다.
아마 다른 한 사람인 율리안 쪽의 스킬인듯했다.
“파과(破戈)의 기둥. 현(絃).”
우우웅─!
율리안이 스킬을 가동하자, 그 순간 강철의 기둥이 울리며 엄청난 충격파를 발산하기 시작했다.
그 표적이 된 것은 당연히 아스트리데와 헤네시아, 동시에 라이언의 벼락 역시 그녀들을 향해 매섭게 떨어져내려온다.
번쩍!
콰르르릉─!
그에 아스트리데는, 지니고 있던 검 하나를 하늘에 던지며 동시에 율리안을 향해 달려들었다.
마력이 담긴 검은 놀랍게도 벼락을 빨아들여 흡수해버렸고, 헤네시아 역시 더블 캐스팅으로 어떻게든 충격파를 견뎌내며 술진의 작성을 이어나간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오는 아스트리데에, 율리안은 다시금 스킬을 발동하며 대응했다.
“파과(破戈)의 기둥. 격(挌).”
쩌억.
쩌어억.
피잉!
거대한 기둥으로부터 분리되어 마치 포탄을 방불케 하는 속도로 아스트리데를 급습하는 송곳들.
허나 아스트리데는 허리춤에서 또 다른 검 하나를 꺼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그것을 전부 베어 넘겼다.
그리고 정확히 그 시점에, 헤네시아의 대마법이 완성됐다.
후우웅.
“…전부 얼어버려.”
쩌어엉!
쩌저저저저적─!
순식간에 넓게 펼쳐진 마법진이 방대한 마력을 방출했고, 눈부신 빛과 함께 그 범위에 있던 모든 것들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3초가 지난 뒤, 눈앞에 드러난 것은 한쪽 면의 길이만 50미터가 넘어 보이는 거대한 얼음의 장벽.
그 범위에 포함된 라이언과 율리안의 모습은 어느덧 찾아볼 수조차 없다.
‘…….’
정말이지 무지막지한 위력이 아닐 수 없었다.
고작 40초 정도의 영창으로 이 정도 범위의 마법을 시전하다니, 내가 만나본 모든 마법사와 비교하더라도 톱클래스의 경지다.
그렇게 라이언과 율리안의 움직임을 봉쇄한 두 사람은, 서서히 내게로 다가와 한숨을 내쉬며 말을 걸었다.
“…응. 다친 곳은 없어 보여.”
“오래도 걸렸네. 네가 말한 이틀도 이제 전부 지났어. 슬슬 선생님에 대한 정보 좀 말해 주지?”
그런 그녀들의 말에, 나는 평온한 표정으로 나지막이 한 마디만을 던져주었다.
“그런 말을 하기엔 아직 안 끝난 것 같은데.”
동시에, 얼음의 장벽이 갈라지며 딱 사람 두명이 들어가 있을 법한 크기의 강철 구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곳에서 밖으로 나온 율리안과 라이언이 입을 열었다.
“…들었던 것보다도 훨씬 위험한 존재들이군. 라이언이여, 이 둘은 무조건 여기서 처리하는 편이 옳다.”
“그러게나 말이야. 뭐, 기다리던 쪽도 예상보다 빨리 와준것 같은데?”
슬쩍 기감을 높여보니, 어느샌가 근처까지 다가온 수 명의 기척이 느껴진다.
그 모두가 일정 기준을 넘어선 강자, 아마 지원을 약속한 각국의 S랭크 헌터임이 분명했다.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헌터들에, 아스트리데와 헤네시아의 얼굴에도 조금은 긴장이 차올랐다.
“아스티, 가능하겠어?”
“…조금 전의 둘, 예상보다 강해. 그리고 같은 수준이 한 명 더. 진심을 내지 않는다면 힘들지도.”
그렇게 형성된 대치 구도 속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던 나는 씩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앞으로 10초쯤인가.’
정말이지 타이밍이 좋게도, 사라졌던 내 힘이 거의 모두 돌아오고 있었다.
“오빠! 거기 있지 말고 이쪽으로 와.”
자비에나 예시엘과 함께 있던 서하가 나를 향해 소리쳤고, 그것을 들은 헤네시아가 슬쩍 내 눈치를 살폈다.
그런 반응 속에서, 나는 천천히 어디론가 걸음을 옮겨나갔다.
그곳은 바로, 서로가 대치하며 전투를 준비하고 있는 공간의 바로 정중앙이었다.
모두의 의문 섞인 시선이 날아들고, 나는 그런 시선 속에서 가장 먼저 아스트리데와 헤네시아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그리고는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네.”
“뭐?”
“답답해서 죽는 줄 알았네. 아무리 모습이 바뀌었대도 그렇게 티가 안 나나?”
내 말에 헤네시아는 그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시큰둥히 나를 응시했다.
마치 이 조그만 게 갑자기 웬 개소리를 내뱉냐는듯한 얼굴.
그에 나는 참지 못하고 그런 그녀의 머리를 한대 쥐어박아주었다.
콩!
“읏! 갑자기 무슨 짓이야? 이게 미쳤나?”
“미친 게 누군데 그래? 이게 저번부터 감히 누구한테 건방지게…….”
그런 내 반응에 헤네시아는 점점 더 영문을 모르겠다는 태도를 보였고, 그 사이 곁에 있던 아스트리데가 슬쩍 다가와 말을 전했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
“아스티? 대체 뭐가?”
“혹시, 선생님이야?”
헤네시아와 다르게, 초월적인 직감을 지닌 아스트리데는 이미 어느 정도 내 존재를 짐작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에 나는 나지막이 고개를 끄덕이며 사실을 시인했다.
“그래. 사정이 있어서 불가피하게 말을 못하고 있었다 이것들아. 역시 네가 쟤보단 낫네.”
“…뭐야, 아스티. 정말이야? 이 꼬맹이가 진짜 선생님이라고?”
“넌 진짜로 이따가 보자.”
아무튼 지금은 한발 앞서 해결해야만 할 일이 있었다.
나는 그대로 뒤를 돌아 미묘하게 굳어진 표정을 하고 있는 헌터들과 시선을 마주했다.
이미 커져버린 사태, 어쩌면 이제부터가 비로소 진정한 싸움의 서막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관은 없었다.
‘게임도 안하고 푹 쉬었더니 머리가 개운해.’
어차피 이제는, 누가 오든 전부 내 발밑으로 깔아뭉갤 자신이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