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academy, I became the only magician RAW novel - Chapter 190
Chapter 190 – 연합(4)
홍유화에게 말했다.
네가 아니면 안 된다고.
진심을 담았다.
감정도 담았다.
사람을 설득할 때 상대의 부족함을 내가 채워줄 수 없다면, 감정에 호소하는 것밖에 없다.
홍유화는 어마어마한 부자다.
적탑주의 하나뿐인 손녀. 세계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마도서를 탐닉한 마법사. 그녀의 탐욕은 끝을 몰랐고, 적탑주는 그녀의 탐욕을 이루어줄 지식과 부가 있었다. 그녀는 부족함을 모르고 자랐다.
내 자랑거리인 돈도, 그녀의 수준에선 한 푼, 두푼인 수준. 연금술에 대한 지식은 그녀가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녀는 홍련의 찬탈자가 되어 꽃을 피워야 하니.
연금술 테크는 그녀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이것도 안된다.
‘별로 없어.’
마도구나, 마도서 혹은 유물. 그것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녀에게 어울리는 것은 별로 없다.
한 가지, 영약이 있기는 하지만, 홍련은 아직 구할 수 없는 물건이다. 금지에 있다거나, 그 금지의 수준이 높다는 것도 있지만, 홍련은 1,000여년의 세월을 거쳐야 피기 때문이다. 그 시기는 바로 내년.
그렇기에 이것도 구할 수 없다.
그래서.
가 그녀를 설득하려면 감정을 담을 수밖에 없었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다. 아무리 냉철하다고 해봤자, 사람이기에 감정을 지닐 수 없다. 특별한 병이 아니라면 말이다. 내 전전전 여자 친구가 그랬었다.
덥석.
홍유화의 양손을 잡았다. 내 진심이 전해지도록 말이다.
“너, 너……”
홍유화가 얼굴을 붉힌 채 나를 바라봤다. 입꼬리가 실룩거렸다. 나는 그간의 경험으로 이런 반응을 보이는 여자들은 내 부탁을 들어주려고 안달하는 것을 알았다.
거의 다 넘어왔군.
“네 도움이 필요해.”
진심과 감정을 담았다.
입꼬리가 강력하게 실룩거렸다.
홍유화의 특징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유화 네가.”
“조, 좋아. 내가 그렇게 필요하다면 뭐.”
홍유화는 내 부탁을 들어 주었다.
나는 환하게 웃었다.
*
검후(劍后) 백지연.
이 인물은 태생부터 비범했다. 아기 때는 돌잔치 때, 근처에 있는 물건이 아니라 자기 부모님을 향해 걸어서 검을 잡았으며, 5살 때는 검을 다루는 법을 터득했다.
만 10세에는 하격 영웅, 즉 영웅 입문자에 들어섰으며, 17세에 중격의 영웅으로 이름이 높았다.
그리고 그녀의 나이 만 25세, 상격에 들어섰다. 「명예에 전당」에 기록된, 최연소로 상격에 든 비범한 태생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했지만, 명문가 출생인 그녀에게는 온갖 혼담이 들어왔었다.
그리고 그녀의 부모님은 혼담으로 그녀의 앞길을 막지 않았다.
“제 딸의 신랑은 저희가 아니라, 지연이가 정할 것입니다. 혼약은 결국 서로가 행복해야 행복한 생활을 이어갈 수 있으니까요.”
백지연은 그 말에 감격하며, 꼭 멋진 신랑을 잡아 오겠다고 맹세했다. 그러나 검후의 눈은 너무 높았다. 최연소 상격에 든 만큼, 상격으로 활동하면서 같은 상격끼리 생활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맘에 드는 남자를 찾지 못한 채 20년이 지났고.
그리고 지금, 검후의 나이가 40대에 접어든 지금 유저들에게 폐경 아줌마라고 놀림을 받는 실정이었다.
“후우.”
백지연이 분 입김에 백색의 연기가 위로 올라갔다. 매캐한 스모크 향기가 났다. 백지연의 설정을 떠올리자니, 괜스레 슬펐다.
“아, 미안하군. 아직 학생이었지?”
“네.”
백지연이 입에 붙인 담배를 손으로 껐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휴지통으로 손을 튕겨서 담배를 던졌다.
“술이나 담배는 안 하나?”
“둘 다 안 하는 걸 자랑으로 삼고 있습니다.”
“좋은 자세야. 상격 정도가 된다면, 의지만으로 끊을 수 있지만, 한 번 맛 들이면 둘 다 참아야 한다는 점에서 좋은 뜻은 아니니까.”
백지연이 쓰게 웃으면서 나를 바라봤다.
“너를 먼저 소집한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비밀 정보를 입수했거든.”
“비밀 정보 말입니까?”
백지연이 품 안에서 반으로 반듯하게 접은 종이를 꺼냈다.
“위에서 초상능력(超常能力)자가 입수한 정보의 일부야. 아, 이건 나를 포함해서도 협회에서 3명밖에 모르는 사실이기도 하고.”
사락.
나는 종이를 받아서 읽었다.
[나치 제국 특급 위험인물 정리.]1. 통칭 가면남 & 예언의 존재
2. 진리
3. 황제
4. 사자왕
5. 이서하
.
.
.
명단을 바라봤다. 익숙한 이름들이 가득 있었다.
……대부분이 내가 가진 신분의 이름이었다. 6명의 인원 중에서 나 혼자 3명을 차지하고 있는 건가.
“……이건?”
“나치 제국 놈들이 가장 주시하는 인물들이지. 나치 제국들을 단신으로 위협할 수 있는 존재들을 명단에 집어넣고, 그놈들을 암살하려고 벼르고 있거든.”
“특급 정보기는 하네요. 근데 이걸 왜 저한테?”
“초상능력이 뛰어나기는 하지만, 검은 태양이 자리를 잡은 나치 제국의 정보 기밀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흔치 않지. 다만, 협회는 예전부터 너를 주시하고 있었다.”
“저를요?”
“그래, 네가 가진 정체 모를 힘 때문이지. 초능력인 초상능력자의 힘을 무시하며, 최상격인 내 감각에도 제대로 잡히지 않는 네 힘 때문에 협회는 너를 예언의 아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과연…….”
“사실 이걸 보여주는 이유도 그 이유 때문이다. 나치 제국이 다른 이들을 제치고 단신으로 제국을 위협할 명단에 이름을 넣었어. 나치 제국이 속이고자 하는 연막작전일 가능성도 있다는 걸 협회는 배제하지 않고 있다.”
“그렇군요.”
예언의 존재.
미래를 예지하는 어떤 마인에 의해서 정체를 알게 된 존재였다. 모든 마(魔)를 멸하게 될 존재라 불렸으며, 그 존재 때문에 거악들이 초반에 한국영웅학교를 습격했었다.
하긴, 틀린 추측도 아니다. 역천의 기는 별빛의 마력만큼은 아니지만, 모든 존재를 부정하는 힘을 가졌다. 내가 모든 상성에서 완벽한 우위를 차지한다면, 서가연은 마에 한정되지만 어마어마한 상성을 발휘하니까.
“사실 나는 그때 네가 거절했으면 좋았다고 생각했다.”
“저 말입니까?”
“영웅은 전장에서 피어난다. 사람을 지키느니, 자신의 정의를 위한다느니, 뭐가 되었든 영웅은 사람을 죽이기 때문이다. 세계를 마에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 마인,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 사회의 룰을 어기는 빌런들. 그것들을 단죄하는 것은 결국 영웅이기 때문이지.”
백지연은 담배를 입에 물었다. 라이터를 붙이지 않았다.
상격 이상이 되면 무언가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지만, 의존하면 더 강해지는 것들이 존재한다. 백지연은 후자의 경우였다.
“너는 법적으로 성인이지만, 내가 보자면 결국 어린애거든.”
“알고 있습니다. 평소부터 존경하고 있었으니까요. 이제 연세가…….”
“……조용히 해라.”
“넵.”
“아무튼 협회에서 너를 보호할 것인가, 너를 미끼로 적을 일거에 소탕할 것인가 의견이 나뉘었다. 원래대로라면 너를 보호하는 쪽으로 안전하게 키우겠지만, 상황이 여의치가 않아.”
“그렇군요.”
“나치 놈들이 이상해. 너무 활개 치고 있어. 유럽에서 집중 공격을 받으면서, 백신전을 건드렸다. 그것도 모자라 중국에서 활동하고, 이제는 한국까지 건드리고 있어.”
“마가 뇌수에 침입한 거 아닐까요?”
“……너, 너무 날 편하게 대하는 거 아니냐? 아니, 나야 격식 없는 대화가 좋기는 하건데…….”
“죄송합니다. 저는 동갑이나, 연하가 좋아요.”
“…….”
너무 놀렸나 싶었다.
조금 더 놀리고 싶었지만, 마음을 차분히 먹었다. 이제는 이곳이 현실이니까. 사실 이래야 호감도가 올라서…….
‘이상형이 자기랑 동갑인 척 하는 연하라니, 진짜 어이가 없어.’
나는 안쓰러운 눈으로 백지연을 바라봤다.
원래라면 그녀는 김서현에게 달라붙겠지만, 이 세계관은 김서현이 여성이다.
‘왜 남장을 하는지는 아직도 못 들었지만.’
그녀의 태생과 관련이 있을 거다.
나는 한 번 본 다음 본론으로 넘어갔다.
“나치 제국의 장점은, 전투는커녕 운동하지 않은 민간인이라도 최저 헌터 이상의 전투력을 바꾸는 마인병으로 만드는 것이죠. 그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민간인들이 희생하고, 인신 공양을 하기에 나치 제국이 세상을 적으로 돌렸지만.”
“오히려 일부 부패한 국가들은 그걸 장점이라고 생각하지.”
“맞아요. 하지만 아무리 나치 제국이라도 이렇게 섣불리 적을 만드는 것은 이상하긴 해요. 한국은 지리적으로 멀어서, 지원하기 힘든데, 그것을 건드렸다면, 보통 두 가지의 경우를 충족하는 경우거든요.”
“…….”
“하나는 놈들이 검은 태양의 유물을 찾아서, 검은 태양이 나치 제국을 강화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거악과 협정을 맺은 것.”
“……설마.”
“아마 매우 높은 확률로 그랬을 거라 추정됩니다.”
나는 에리히와 힘러를 떠올렸다. 그리고 직전에 있던 아돌프와의 대화 역시도.
놈들은 절박했지만, 그 끝에는 묘한 여유가 있었다.
‘그리고 나치가 움직이는 조건이 대게 저 둘이기도 했고.’
그러니 말할 수 있다.
이놈들, 좀 많이 수상하다고.
“네 말대로라면 확실히 위험한 상황이기는 하군.”
백지연이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백지연은 나를 보호하자는 쪽으로 말했을 거다. 그러나 상황은 급박하다. 나를 미끼로 써도 될 만큼 말이야.
‘솔직히 나 정도면 엄청난 미끼지.’
떡밥도 많이 뿌렸다. 가면의 남자, 혹은 내가 같은 인물이라는 것을 몇몇은 유추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가진 역천의 기는 예언의 존재가 가진 힘과 비슷하다는 것 역시.
‘슬슬 싸울 때가 되었지.’
적의 수장과는 인사를 했다.
전초전을 치렀으니 얼굴을 맞대고 봐야 할 때가 되기도 했다.
연합은,
내 생각을 보답해 줄 수 있는 조직이 될 것이다.
“너를 미끼로 쓸 거다.”
“네, 상관없습니다.”
“위험할 거다. 죽음보다 더한 상황에 당하겠지. 나치 놈들에게 죽음조차 안식이 될 수 없다. 그들은 시체에서 영혼을 끄집어내, 사람들을 희롱한다. 타인의 부정적인 감정이 그들에게 힘을 주기 때문이지.”
“뭐, 나름 대비해둔 게 많아서요.”
“나치 제국에 잠입했던 놈들 중에 너와 같이 말한 애들이 있었다. 유능한 놈들이었지. 그러나 그들 모두가 결국은 안식을 원했다.”
“…….”
“나는 네가 그렇게 되는 걸 원치 않는다.”
치익.
그녀가 물고 있던 담배에 불이 붙으며, 가느다란 연기가 위로 솟았다.
‘진짜 괜찮은데.’
왜냐면 용언이 있기 때문이다.
검은 태양의 진신이 강림하는 것이 아니라면 괜찮다.
‘사실 진신이라도 어찌어찌 될 것 같기도 하고.’
그들이 이곳에 올 수 없는 이유는 창세의 신이 정한 법칙 때문이다.
용들은 중간계의 수호자라 불리며 균열을 막는 이유와 동일하다. 그들은 막대한 권능과 중간계에서 외계에서 온 존재들과 대적할 경우, 미증유의 힘을 받는다.
신들이 이 세계에서 힘을 제대로 못 쓰는 이유와 동일하다.
“후우.”
백지연이 허연 연기를 내뱉었다. 복잡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렇군. 하긴, 내가 이래라저래라 할 처지도 안되지.”
백지연이 품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목함을 꺼내었다. 마법적 장치가 걸려있음에도, 목함 밖으로 냉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가 말했던 영약이다. 냉기의 마력을 증진시켜주는 빙정이지. 천 년을 묵은 놈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백년은 묵은 놈이다. 꽤 쓸만할 거다.”
“감사합니다.”
나는 목함을 아공간 속으로 넣었다.
이건 화련이에게 줘야겠다. 그리고 겸사겸사 그릇을 만드는 데에 도움을 달라고 해야겠군.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다음 소집일은 마음 준비 단단히 하도록. 그때부터는 유럽에 가야 할지 모르니까.”
“네.”
*
나는 길드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삭막한 콘크리트로 지어진 빌딩 숲을 지나치며, 오늘 야식을 뭘 먹을지에 대해서 고민했다.
‘오랜만에 불족발에 막국수나 먹을까.’
양은 좀 많이. 먹일 식구가 많기도 하거니와 내 식사량이 워낙에 늘어서 생긴 일이었다.
야식을 생각하며 길드에 도착하니, 설화련이 나를 반겨줬다.
“어르신!”
“화련아.”
설화련이 뛰어오며 환한 얼굴로 나를 반겼다.
요즘 들어서 설화련이 부쩍 밝아진 듯 했다.
길드에서 계속 같이 다니면서 가문처럼 다녀서 그런가. 덕분에 밝아졌다. 이게 바로 설화련이 숨겨두었던 천성이었겠지.
‘원작에서는 쿨뷰티 냉미녀였는데.’
그런데 난 이 모습이 더 보기 좋았다.
길드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서 설화련 전용 수련장으로 향했다. 훈련장의 안은 삭막했다. 몇 개의 운동기구 전부와 검은색의 상자뿐이었다.
‘많이 자랐네.’
설화련이 지닌 특수 스탯 영(影)이 저번보다 성장한 느낌이다.
고독.
으로 만든 그림자의 감옥이 한층 성장했다.
‘이 정도면 내 특수 스탯을 잘라서 줄만 한데.’
그러나 그림자의 왕이 남긴 특수 스탯은 나한테 달라붙어서 떨어지질 않았다. 마치 내가 정당한 주인이라는 듯 행동했다. 설화련 역시, 내 힘을 깎아서 자신에게 힘을 주는 것도 싫어했다.
‘나한테 그리 어울리는 힘이 아니라서.’
솔직히 말하자면 가장 효율 좋은 방법이라도 다른 능력에 비해 월등히 떨어진다는 느낌이 있다.
기사로 승급한 그림자 기사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다른 능력과 합쳐지지 않아, 혼자 붕 뜨고 있으니까.
‘……그러고 보면 그림자와 어울리는 게 빛이었나.’
빛과 관련된 재능을 하나 사는 걸 검토해봐야겠다.
“화련아. 얼음의 힘을 꺼내 보렴.”
“네.”
설화련이 고개를 끄덕이며 힘을 끄집어냈다.
화악.
주변의 기온이 내려간다. 설화련의 눈이 파랗게 빛나며, 머리카락에 서리가 끼기 시작했다.
그녀가 가진 극빙의 힘이었다.
‘이 정도면 문제가 없겠는데.’
재능, 열람으로 그녀의 능력을 살핀다. 이 정도면 빙정을 섭취해도 문제없이 흡수할 수 있을 정도.
“그런데 오늘은 그림자 훈련하는 날 아닌가요?”
“맞다. 그러나 오늘 좋은 물건이 있어서.”
아공간에서 목함을 꺼냈다. 설화련의 눈이 커졌다.
“이건……?”
“그동안 훈련을 열심히 한, 화련이를 위한 선물이다.”
“……감사합니다.”
설화련이 울먹거리며 목함을 받았다.
그 뒤 적당히 힘을 증가한 설화련이 중격 끝에 도달했다. 이 정도면 금방 상격에 도달할 거다. 내년 후 쯔음.
“감사합니다, 어르신. 어르신의 은혜는 하늘과 같군요.”
“고마우면 부탁 하나만 들어주거라.”
“제 한 몸을 바쳐서 부탁을 완수하겠습니다.”
“고맙다. 역시 화련이 뿐이다.”
“……!”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솔직히 저는 서하 님 편인데 가끔 어지러워 질 때가 있어요.
-주인은 연애 경험이 있는 것 같은데, 왜 이리 자살할 때가 많지.
‘……모르겠다.’
홍유화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설화련을 바라봤고, 설화련은 극빙처럼 차가운 눈으로 홍유화를 노려봤다.
“뭐, 어쩔 수 없네. 그래도 서하가 내 두 손을 꼭 잡으면서 부탁한 건데, 내가 들어주지.”
흥-콧소리를 내며 홍유화가 머리를 뒤로 넘기며 말했다.
설화련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네, 어르신의 부탁이라면, 제 한 몸을 바쳐서라도 이루어야지요. 어르신의 소중한 것을 받았는데…….”
설화련이 얼굴을 발그레 붉히며 제 배를 쓰다듬었다.
내가 설화련에게 준 특수 스탯 영(影)에서 파생된 그림자 병사가 기분 좋은 듯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뭐? 너 설마 건든 거야?”
“어르신이 그냥 저에게 내려준 은혜죠. 제 평생을 바쳐도 모자라지 않은 성은(成恩)입니다.”
“하.”
홍유화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설화련을 바라봤다.
“……상관없어. 서하를 혼자 독차지하는 건 포기했으니까. 그래도 먼저 앞지르는 건 아니지?”
“앞지르다뇨?”
“그러니까……!”
홍유화가 화내면서 말하려다 나를 보고 멈칫했다.
나는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홍유화를 바라봤다.
“……미안, 내가 열을 냈네. 생각해보니, 그럴 리가 없을 텐데.”
“뭘 말이죠?”
“서하가 너랑 했다면, 서하의 반응이 저렇지 않았을 테니까.”
“…….”
홍유화가 훗-하고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그래서 우리가 할게, 이거야?”
“응. 여기에 음의 힘과 양의 힘을 합쳐서 그릇을 만들 거야.”
“그릇? 보아하니 마법적 처리가 엄청난데…….”
홍유화가 나를 힐끔 보더니 조용히 속삭였다.
-역시 연금술의 신이라 불린 남자 답네.
나는 홍유화의 말에 멈칫했다. 주기적으로 창천에 물약을 공급해서 김서현이나, 에르실은 알거라 생각했는데.
‘아니, 에르실도 외견으로 맞췄으니 틀린 건 아닌가?’
나는 설화련을 바라봤다.
설화련이 분하다는 듯이 홍유화를 바라보다가 이내 진정했다. 하긴, 암살 가문으로 태어난 그녀는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이 뛰어났고…….
-어르신. 그래도 어르신이 가면남이라는 것은 저만 알지요?
설화련이 암살 가문 특유의 암호로 내게 조용히 속삭였다. 나는 암살 가문 특유의 암호라곤 쥐뿔도 모르지만, 재능, 열람(-)이 있기에 알아서 해독할 수 있었다.
-그렇다.
가볍게 대꾸해주니, 설화련의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다.
다행이군, 다행이야.
그렇게 작업을 마치고, 우리는 돌아갔다. 설화련은 오토바이를 타고 길드로 돌아갔다. 나는 홍유화를 펜트하우스에 데려다줬다.
“이대로 보내게?”
“……어?”
“나 조금 힘든데. 우리 집에서 동영상이라도 보지 않을래?”
홍유화가 나를 붙잡고, 떨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