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first day of my life in living alone, a portal opened RAW novel - Chapter 19
19. 매일 놀랍다
쇠추로 전신을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 착각이 아니라, 마력을 느낀 탓이다. 가볍게 심호흡을 하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작은 등산칼 정도는 항상 소지하고 다녔다.
“지율아, 쉿.”
코키오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천천히 몸을 돌리며 생각했다.
나는 은문어를 죽일 수 있었다. 마수에게 상처를 입히고 죽이는 게 가능하다는 뜻. 알을 지키러 온 코키오. 분명히 암컷이다. 그렇다면 해볼 만하다.
코키오는 마수 중에는 드물게 수컷과 암컷이 확연히 갈린다. 생김새부터 공격성이나 강함까지.
암컷 코키오는 암탉과 흡사한 모습에 작은 멧돼지와 비슷한 몸집이다. 마력이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강함도 그 정도.
반면에 수컷 코키오는 숙련된 헌터도 방심하지 못할 정도로 강하다. 큰 놈들은 경차 사이즈에 부리질과 발톱으로 10밀리미터 철판을 종이처럼 찢는다.
“…….”
왕관처럼 자리한 톱니 모양의 붉은 벼슬. 목, 가슴, 등을 덮은 황갈색과 오렌지색이 섞인 털. 배와 다리 그리고 꼬리로 길게 이어지는 청록색 깃털과 노란색 발에 검은 발톱.
완벽하게 수탉의 모습인 코키오가 노란 바탕에 검은 눈동자를 빛내고 있었다.
“……아.”
여기는 알이 있는 곳인데 어째서 수컷 코키오가 있는 거지? 암컷은 또 따로 있는 건가?
눈앞의 코키오는 고개를 들어서 봐야 할 정도로 거대했다. 1톤 트럭보다도 컸다. 세상에서 가장 큰 코키오라 확신했다.
옛날 같았으면 그냥 모든 걸 포기했을 상황.
눈알을 굴려 지율이를 힐끗 봤다.
“빠아! 닭이다! 꼭꼭이! 엄청 크다! 꼭꼭이!”
지율이가 보는 키즈채널 중에서 꼭꼭이라는 이름의 닭 캐릭터가 있었던 것 같다.
“후우우…….”
내가 죽더라도 지율이를 살린다는 정신도 안 된다. 반드시 나도 살아남아야 한다.
등산칼을 꽉 쥐었다. 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근력. 실낱같은 희망은 있다.
코키오는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며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전신을 옥죄는 듯한 압박감에 호흡마저 멈췄다.
코키오는 분명히 부리질을 할 것이고, 그 순간 목을 노린다.
기회는 단 한 번.
“오랜만이다냥.”
무룩이의 한마디.
“잘 지냈냥?”
코키오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뽥?”
“밥은 먹었냥?”
“뽥뽥.”
“안 먹었냥?”
“뽥.”
코키오에게서 어떠한 공격성도 느껴지지 않았다. 무룩이를 대하는 코키오의 감정은 반가움.
“꼭꼭아!”
지율이가 목소리를 높이자 코키오가 고개를 돌렸다.
“뽥?”
“배고빠?”
“뽥.”
지율이가 내 바지를 당겼다.
“빠아! 꼭꼭이 배고프대.”
“어? 어어.”
나는 등산칼을 쥔 채 코키오를 바라봤다.
“뽜앍?”
마수의 감정 감지. 괜찮다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등산칼을 집어넣은 뒤, 챙겨온 도시락을 꺼냈다.
“먹을 만한 거라면…….”
소스를 뿌리지 않은 샐러드를 꺼냈다. 고기도 함께.
“뽥?”
“먹을래?”
나는 조심스레 그릇째로 내밀었다.
“뽥.”
코키오는 천천히 가까이 다가왔다. 커다란 부리에 긴장을 놓지 못했다. 코키오는 내 마음을 아는지 부리 끝으로만 조심스럽게 샐러드를 집어 갔다.
“뽥뽜봐봐봙.”
입에 맞는지 기뻐했다.
“이건 가져도 돼?”
지율이가 알을 들어 보였다.
다시 긴장감이 휘몰아쳤다.
언제든 지율이를 낚아챌 준비를 하고 있었다.
“뽥.”
코키오는 신경도 쓰지 않고 내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부리 위쪽으로 나를 툭툭 밀며 애교를 부렸다.
“더 달라고? 알았어, 잠깐만.”
뭐라도 꺼내서 내주는데 무룩이가 하품을 하고는 말했다.
“이 녀석은 뭐든 잘 먹는다냥.”
지율이는 내게 알을 들어 보였다.
“이거 먹자!”
“어?”
나는 코키오의 눈치를 살폈다. 코키오는 여전히 관심도 없었다. 수차례 말이 오간 뒤에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됐다.
코키오는 우리에게 알을 선물로 줬다.
알은 무정란이었다.
가장 놀라운 점은 알의 출처.
알은 눈앞에 있는 수컷 코키오가 낳은 것이었다.
“고마워. 잘 먹을게.”
코키오, 아니, 꼭꼭이는 경쾌하게 대답했다.
“뽜봙!”
상상도 못 한 ‘새 친구’가 생겼다.
* * *
“빠아아!”
꼭꼭이 등에 탄 지율이가 활짝 웃어 보였다.
“재밌어?”
“응!”
앞장서던 무룩이가 고개를 돌렸다.
“꼬맹냥이 마음에 든 모양이다냥.”
“그래?”
무룩이가 달라 보였다. 항상 순찰을 다닌다고 할 때 우습게만 생각했는데, 코키오와도 친구였을 줄이야.
휴도에서 뭐가 나오든 놀라지 않을 줄 알았는데, 세계 최대 크기에 알을 낳는 수컷 코키오라니.
이제는 정말 무엇을 봐도 놀라지 않을 것 같다. 장담할 수는 없지만.
“무룩아.”
“말해라냥.”
“혹시 꼭꼭이 같은 친구가 또 있어?”
“내게 친구는 없다냥.”
“응?”
“전부 내 부하들이다냥.”
“아.”
무룩이가 걸음을 멈추더니 진심으로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물었다.
“너도 내 부하 아니냥?”
“그런 거였어?”
“부하가 부하인 걸 모르면 어떡하냥!”
“아, 그래. 미안해.”
“알면 됐다냥.”
웃기는 녀석이다. 휴도 전체가 자기 거고, 나와 지율이를 포함해 전부 부하라고 생각하다니.
“아무튼, 꼭꼭이 같은 부하가 또 있어?”
“부하들은 많다냥.”
“그래? 예를 들면?”
“나는 대장 중의 대장이다냥. 부하들이 얼마나 많은데 어떻게 전부 예시를 드냥.”
“내가 괜한 질문을 했구나.”
무룩이는 다시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조금 고민이 있기는 하다냥.”
“무슨 고민?”
“요즘 못 보던 녀석들이 자꾸 생긴다냥. 그래서 계속 순찰을 다니는 거다냥.”
무룩이가 꼭꼭이를 힐끗 보고 말했다.
“꼭꼭냥도 알게 된 지 얼마 안 됐다냥.”
검은색 차원문과 관련이 있는 거겠지.
“뽜봙.”
꼭꼭이가 다리를 접고 바닥에 웅크렸다.
“빠아! 내려줘!”
내가 지율이를 안아 들자마자 꼭꼭이가 다시 일어섰다.
“잘가!”
“뽥!”
“잘가라냥!”
“뽥!”
꼭꼭이는 나의 인사를 기다리듯 눈을 마주쳤다.
“다음에 또 보자.”
내가 손을 흔들어 보이자 꼭꼭이는 머리를 한 번 세차게 흔들었다.
“뽥!”
그러고는 머리를 앞뒤로 흔들며 어디론가 걸음을 옮겼다.
“아하하하핫! 꼭꼭이 걷는 거 웃겨!”
지율이가 배를 잡고 웃었고,
“그러게. 웃기네.”
나도 피식 웃음을 흘렸다.
“별게 다 웃기다냥.”
무룩이는 시큰둥하게 말하다가도,
“이상하긴 하다냥.”
꼭꼭이를 보며 중얼거렸다.
* * *
생각지도 못했던 꼭꼭이와의 만남.
뒷동산의 일부만 바라보다가 내려왔다. 도시락도 꼭꼭이에게 준 것을 제외하면 그대로였다.
컨테이너 뒤편이 보일 즈음 고개를 돌렸는데 뭔가 이상했다.
뒷산이 이렇게 컸었나?
여전히 행복하고 평화로운 곳이라고 생각했지만, 동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컸다.
착각이 아니었다. 분명히 높아졌다.
이 정도는 그리 놀랍지도 않네.
컨테이너로 돌아와서 쉬려는데 무룩이가 왠지 모르게 서성거렸다.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다냥.”
나는 손수레에 비료들을 싣고 농지로 향할 생각이었다.
“나도 갈래!”
지율이가 목소리를 높이며 따라붙었다.
“그래, 같이 가자.”
손수레를 밀려고 하는데 무룩이가 길을 막았다.
“무룩아, 비…….”
비키라고 하려다가 그냥 내가 돌아서 갔다.
무룩이가 또다시 옆으로 따라붙었다.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다냥.”
“그렇다기에는 계속 얼쩡대잖아.”
무룩이는 묘하게 불만 섞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뭐 잊은 거 없냥?”
“잊은 거? 뭐지?”
“모르면 됐다냥.”
나는 피식 웃으며 수레에서 손을 뗐다.
“배고파서 그러는구나?”
“아니다냥!”
“그래? 이거 먹고 싶지 않아?”
내가 주머니에서 츄르를 꺼내 들자 무룩이의 동공이 흔들렸다.
“딱히 먹고 싶지 않다냥! 그냥…!”
“그냥?”
“궁금할 뿐이다냥.”
도시락을 먹지 않아서, 농지에서라도 먹이려고 챙기길 잘했다.
“먹자. 이리 와.”
“안 먹어도 상관없다냥.”
“궁금하잖아.”
무룩이는 괜히 자존심을 세웠는데, 지율이가 웃으며 말했다.
“무루가 먹어!”
“됐다냥.”
“궁금해! 보고 시포!”
지율이는 무룩이가 츄르를 먹는 모습이 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꼬맹냥이 그렇게까지 말하면냥…….”
나는 츄르를 까서 지율이에게 줬다.
“여기를 잡고 조금씩 짜서 주면 돼.”
무룩이는 벌써 눈을 반짝거리며 코를 벌름거렸는데, 입가에는 침까지 맺혀 있었다.
“자, 머거!”
지율이가 츄르를 내밀었고, 무룩이는 곧바로 다가와 혀를 날름거렸다.
“이, 이게 뭡냥냥냠냥냥…!”
무룩이는 먹으면서 말했다.
“엄청냠냥냥, 맛이담냠냠냥냥냥…!”
지켜보던 나는 피식 웃었다.
“먹든지 말하든지 하나만 해.”
무룩이는 먹는 걸 택했고, 지율이는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 * *
“프앙!”
농지 근처에 다다르자마자 팜독 리더가 마중을 나왔다.
“기다렸어?”
“프앙!”
“이따 좀 도와줄래?”
“프와앙!”
도와주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하는 팜독에게 고마웠다.
“다음에는 너희들이 좋아할 만한 것 좀 가져와야겠다.”
농지 중앙의 정체 모를 새싹의 크기는 비슷했다. 다른 식물들처럼 저절로 쑥쑥 자라지는 않았다.
쪼그려 앉아 손으로 흙을 만졌다. 퍼석거리고 부드러웠다.
“이 정도면 모래 수준인데.”
“부드러워!”
지율이는 지력이 없는 농지도 마음에 드는지 흙장난을 쳤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생각하기 나름이었다.
“일단 비료를 좀 줘볼까.”
나는 비료포대를 뜯은 뒤 들어 올렸다. 농지를 돌아다니며 비료를 흩뿌렸다. 지율이는 계속 옆을 따라다녔고, 무룩이는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농지 전체에 비료를 뿌린 다음에는 팜독들에게 부탁했다.
“다 잘 섞이게 좀 해줄래?”
“프앙!”
팜독들은 흙 속의 돌고래처럼 움직였다. 농지 전체의 흙과 비료가 잘 섞였다.
비료를 뿌린다고 지력을 돌아오게 만들 수는 없었지만, 새싹의 영양분이 될 수 있을 듯했다.
일반적으로 지력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불도 피우고, 퇴비를 주는 게 일반적이었다. 회복할 시간도 필요했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비료라도 뿌린 거지, 통상적인 방법이 큰 효과를 발휘할 것 같지는 않았다.
지력이 넘치던 농지 전체를 단번에 바싹 마르게 한 새싹이었으니까.
“이거라도 실컷 먹어라.”
나는 식물 영양제 앰플들을 새싹 주변에 꽂아 넣었다.
“조금이라도 자라겠지.”
“그걸 키우려고 그러는 거냥?”
무룩이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키워보려고.”
“츄르를 주면 잘 자랄지도 모른다냥.”
“아니, 그건 아닐 것 같아.”
“혹시 모르니까 해봐라냥.”
“아니야, 절대 그렇지 않을 거야.”
“그럼 나한테 줘도 된다냥.”
“결국 그게 목적이었구나. 이따 돌아가면 또 줄게.”
“진짜냥?”
“그래.”
섬이 자기 거라느니, 이 구역의 대장이라느니, 모두가 부하라느니 해도, 결국은 츄르에 사족을 못 쓰는 고양이다.
“나도 새싹이한테 밥 줄래!”
지율이가 옆으로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그래, 여기…….”
내가 식물 영양제 앰플을 내밀었는데, 지율이는 새싹 옆으로 손을 가져가더니 주먹을 불끈 쥐었다.
쿠지지지직.
기왓장 으스러뜨리는 소리가 났다.
지율이의 주먹 밑으로 검고 윤기 나는 가루가 떨어졌다.
알껍데기 가루였다.
“새싹한테 주는 거야?”
“응!”
지율이 입장에서는 가장 소중히 하는 간식을 나눠주는 셈이다. 고운 마음씨가 예뻐서, 지율이가 너무 귀여웠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게 아빠 미소구나 싶은 찰나였다.
투둑.
무언가 어깨에 닿아서 고개를 돌렸다.
“어…?”
내 어깨에 초록색 잎사귀 하나가 닿아 있었다.
새싹에서 무수히 많은 줄기들이 뻗어 나와 천천히 움직였다.
귀촌 첫날 차원문이 생겼다 2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