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first day of my life in living alone, a portal opened RAW novel - Chapter 203
203. 두근두근 대신
식사를 하는데 뭔가 허전함이 느껴졌다.
중요한 걸 깜빡한 느낌.
뭐였지?
주머니를 뒤적거린다. 휴대폰은 있다.
요리를 빼먹었나?
식탁을 훑는다. 말이 간단하지, 있을 건 다 있다. 아이들도 전부 잘 먹고 있다.
그럼 뭐지? 뭐를 깜빡한 거지?
나중에 기억 나겠지 뭐.
그냥 숟가락을 드는데 왠지 모르게 한기가 들었다.
“음?”
기분 탓인가 싶은 찰나였다.
빠지지지지직.
뒤에서부터 그림자가 드리웠다.
“응? 뭐지?”
내가 고개를 돌리기 전, 지율이가 활짝 웃으며 목소리를 냈다.
“엇, 삼촌!”
기억났다.
“아하.”
깜빡한 건 고성우였다.
“일어났냐?”
내가 고개를 돌리자 고성우가 눈을 희번덕거렸다.
“오냐……. 일어나셨다…….”
“하하하하, 미안! 깜빡했다!”
“미안한 건 알아?”
“어쩐지 뭔가 허전하더라니.”
“인간적으로 너무한 거 아니냐? 어떻게 밥 먹는데…!”
“하하하하! 미안하다니까. 얼른 앉아.”
지율이도 웃으며 말했다.
“아하하핫! 나도 삼촌 있는 거 깜빡했네! 미안!”
“아니야, 지율이는 안 미안해도 돼. 잘못 없어.”
“진짜?”
“그럼.”
고성우는 나를 향해 눈을 흘겼다.
“나쁜 건 아빠가 나빴지.”
나는 웃으면서 고성우의 팔을 툭 쳤다.
“삐치기는. 미안하다니까. 하하하!”
“됐어!”
“지율이는 괜찮다며.”
“지율이는 지율이니까. 넌 다르지.”
“알았다니까, 아무튼 앉아. 일단 밥 먹어.”
“밥은 있어?”
“많이 해놨지. 어쩐지 나도 모르게 많이 했다니까.”
“그래?”
“그래.”
고성우는 식탁 위를 슥 훑더니 말했다.
“맛있는 거 많이 했네?”
“그러니까.”
“이번만 봐준다.”
안 봐주면 어쩔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굳이 그런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고성우가 지율이의 뒤를 지나 의자로 향하다가 멈춰 섰다.
“……?”
평소에 고성우가 앉곤 했던 자리에는 피노키오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피노키오의 배는 여전히 열려 있었고, 핫도그가 거기 쌓인 음식들을 먹어치웠다.
“……개밥그릇이 특이하게 생겼네? 근데 뭐 여기다 놨냐?”
고성우는 싹이를 보며 말했다.
“네가 만든 거야?”
나물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던 싹이는 고개를 가로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아니야? 그럼 이건 어디서…….”
그 순간 피노키오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우왓씨…!”
놀란 고성우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뭐, 뭐야 이거? 개밥그릇이 말도 하네?”
“저는 개밥그릇이 아니라 피노키오랍니다.”
“피노키오?”
고성우는 인상을 찡그린 채 피노키오를 유심히 쳐다보다가 내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입 모양으로 ‘코 길어지는 그 피노키오?’라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어…….”
고성우는 피노키오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래, 반갑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내 이름? 나는… 고성우.”
“고성우 님!”
“그냥 아저씨라고 해.”
“네, 아저씨!”
“피노키오…….”
“네!”
“아니, 그냥 중얼거린 거야.”
“그렇군요!”
고성우는 혼란스럽다는 듯한 얼굴을 한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딱딱!
무룩이가 앞발로 테이블을 두 번 내려쳤다.
“시끄럽다냥! 앉아서 밥 먹으라냥!”
“알았어, 왜 승질을 내고 난리야.”
고성우는 투덜거리며 두리번거리다가 말했다.
“근데 의자가 없잖아.”
그때 갑자기 바닥에서 덩굴들이 솟아나 꽈배기처럼 꼬이더니 의자 형태를 이뤘다.
싹이가 눈짓을 하고는 말했다.
“생겼네?”
“……그러게.”
고성우가 자리에 앉았다. 여전히 자신을 깜빡했다는 사실에 삐친 마음이 돌아오지 않았는지 툴툴거렸다.
“밥그릇이 없…….”
“삐삐!”
어느새 삐삐가 고봉밥을 준비해서 내밀었다.
“어? 어, 고마워.”
고성우는 고봉밥을 받아들고는 잠시 두리번거리다가 또 툴툴거렸다.
“수저가 없잖아.”
나는 웃으면서 핀잔을 줬다.
“거, 애도 아니고 엄청 툴툴거리네. 얼음으로 만들어서 쓰든가.”
“음식이 따뜻한데 어떻게 얼음으로 만들어서 쓰냐?”
“다시 얼리든가.”
“이…….”
그때 덩굴에 감긴 나무수저가 고성우 앞으로 배달됐다.
싹이가 눈짓을 했다.
“생겼네?”
“……고마워.”
고성우는 아직도 삐쳐 있는지 왠지 모르게 심통이 난 얼굴이었다.
“삼촌!”
지율이가 새끼손가락을 펴 보이며 말했다.
“다시는 깜빡하지 않을게! 약속!”
“정말?”
“정말!”
“고마워.”
고성우는 숟가락을 들다가 환하게 웃으며 지켜보는 피노키오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슬쩍 내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눈빛으로 묻고 있었다. 대체 정체가 뭐냐고. 나는 미소를 지으며 ‘피노키오’라고 대답했다.
* * *
식사를 마친 뒤에는 약속대로 크리켓을 찾아나설 차례.
“삼촌 꼭 지금 가야 돼?”
지율이가 아쉬움을 표하자 고성우는 활짝 웃어 보였다.
“조만간 또 놀러올게.”
“빙판도 또 만들어줄 거야?”
“지율이가 원하면 언제든지.”
“약속!”
“약속.”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헌터인데도 고성우처럼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고성우 정도로 강한 헌터가 필요하지 않아도, 고성우는 웬만하면 움직인다. 사람들을 위해서.
“다녀와라.”
내가 말하자 지율이가 손을 흔들었다.
“잘 다녀와, 삼촌!”
아이들도 목소리를 더했다.
“고오오옴!”
“삐삐!”
“멍멍!”
지켜보던 싹이가 나지막이 말했다.
“또 보자.”
끝으로 무룩이도 한마디 더했다.
“다음에는 맛있는 걸 가지고 오라냥.”
고성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래!”
왠지 모르게 눈이 촉촉해진 고성우는 얼른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몸을 돌렸다.
마지막까지 피노키오와는 어색해서 그런지 대충 손인사만 했다.
그렇게 고성우가 휴도를 떠났고, 지율이가 뒷산 쪽으로 손을 뻗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 출발하자! 크리켓 찾으러!”
피노키오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지율이의 옆에 붙었다.
“응!”
다 같이 크리켓을 찾으러 뒷산으로 향했다.
* * *
아이들이 앞장서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무룩이가 앞장서서 꼬리를 살랑이며 걸었는데, 신난 핫도그가 꼬리를 흔들며 앞지르려고 했다.
“헥헥헥헥헥헥.”
“뒤로 가라냥!”
무룩이가 인상을 쓰자 핫도그는 속도를 살짝 늦췄다. 하지만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즐거워 보였다.
“헥헥헥헥헥헥.”
핫도그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다시 무룩이를 앞지르려고 했다.
“냥냥냥냥냥냥!”
무룩이가 솜방망이 같은 앞발로 핫도그의 등짝을 때렸다.
팡팡팡팡팡팡!
먼지를 털어내는 꼴이었고, 핫도그는 더 신이 나서 꼬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뒤로 가라냥!”
“멍!”
또 말은 잘 들었다.
핫도그는 무룩이의 바로 뒤로 바짝 붙어 걸었다.
그 와중에 나란히 걷던 곰곰이와 삐삐는 서로의 어깨가 닿았고, 어느새부터인가 서로를 강하게 밀기 시작했다.
“고오오오오옴……!”
“삐삐이이이이……!”
“곰!”
“삐!”
곰곰이와 삐삐는 서로를 밀치다가 결국 넘어지고 말았다.
“조심해야지.”
지율이가 양손에 곰곰이와 삐삐의 목덜미를 잡고 들었다.
“알았지?”
“고, 고옴…….”
“삐삐…….”
곰곰이와 삐삐는 금세 거짓말처럼 사이가 좋아졌다.
피노키오는 양손을 입 옆에 붙이고 목소리를 높였다.
“크리켓아! 내 목소리 들려? 크리켓아!”
지율이도 도왔다.
“크리켓아아아아아! 꼭꼭 숨지 말고 나오렴!”
나는 싹이와 함께 뒤에서 천천히 따라가고 있었다.
“음?”
싹이가 갑자기 멈춰 섰다.
“왜 그래?”
“찾은 것 같다.”
“응?”
“크리켓.”
“진짜로?”
싹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 * *
싹이의 말을 듣고 산을 내려와서 향한 곳은 바로 싹나무의 정원.
휴도 전체가 싹이의 영역이기는 하지만, 모든 감각이 퍼져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싹나무에 직접적으로 닿아 있다면 감지가 가능했다.
싹나무 앞 이리저리 뻗어 있는 가지에 달린 나뭇잎이 만들어낸 그늘.
크리켓은 사람처럼 누워 있었다. 맨 위쪽 두 다리를 팔처럼 사용했다. 마치 양손 깍지를 껴서 베개를 만든 것처럼 머리를 받쳤다. 그리고 맨 아래쪽 다리는 꼬고 있었고.
편안히 자고 있는 모습을 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크, 크리…….”
피노키오가 목소리를 내는 순간이었다.
“크리켓아!”
지율이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울렸다.
“크리잇!?”
깜짝 놀란 크리켓이 기다란 더듬이를 파르르 떨며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자신을 둘러싸고 지켜보고 있는 우리를 쭉 둘러봤다.
“엇, 무슨… 아?”
크리켓이 피노키오를 보고는 폴짝 뛰어올랐다.
“피노키오!”
“크리켓!”
이산가족이 상봉한 듯 둘은 그대로 얼싸안았다.
“어디 갔었어?”
“어디 갔었던 거야!”
반응을 보아하니 크리켓도 피노키오를 찾았던 듯했다.
“크리켓아, 어제 우리를 만났을 때 왜 피노키오에 대해서는 얘기를 안 했어?”
지율이의 물음에 크리켓은 위쪽 네 발을 모으며 대답했다.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괜히 심려를 끼쳐드리고 싶지도 않았고요. 여러분도 모르고 계시는 부분이기도 했죠. 그래서 찾아다니다가 잠시 쉬려는 찰나에 저를 이렇게 찾아오셨네요. 정말 기쁘고 감사합니다.”
피노키오가 배의 뚜껑을 열어 보였다.
“얼른 들어와!”
“응!”
크리켓이 피노키오의 배 안쪽으로 들어섰다.
딸깍.
피노키오가 배 뚜껑을 닫았고, 지율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먹은… 거야?”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그때 피노키오의 가슴팍에 작은 문이 열렸다. 크리켓이 그곳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여기가 내 집이야.”
“피노키오 몸이 집인 거야?”
“그렇지.”
피노키오는 소중하다는 듯이 양손을 자신의 가슴팍에 얹었다.
“이렇게 크리켓이 안에 있으면 따뜻해지는 기분이야. 그리고 심장도 뛰는 것 같고.”
“심장이 좀 시끄럽기는 하지만.”
크리켓이 웃음 섞인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날개를 비벼 귀뚜라미 특유의 소리를 냈다.
피노키오의 심장은 두근거리는 소리 대신 귀뚜라미 소리가 났다.
“저도 아빠처럼 심장을 가지고, 심장 소리가 났으면 했거든요. 결국 흉내를 낸 거지만요…….”
피노키오가 시무룩해지려고 하는데 지율이가 귀를 기울이다가 목소리를 높였다.
“되게 좋겠다!”
“응?”
“평소에도 이렇게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잖아! 그리고 심장이랑 얘기도 할 수 있고, 심장 소리도 예쁘잖아! 그러니까 되게 좋은 거지!”
“정말?”
“응!”
지율이가 진심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고, 피노키오는 나무인데도 녹아내릴 것처럼 웃었다.
“고마워.”
지율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고마워?”
“심장 소리에 대해서, 나와 크리켓에 대해서 좋게 말해줘서.”
지율이는 진심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물었다.
“그게 왜 고마워?”
“응?”
“그냥 사실을 말한 건데 왜 고맙지?”
“그렇게 말하니까 더 고마워!”
피노키오가 지율이를 와락 끌어안았다.
멀뚱멀뚱 서 있던 지율이는 피노키오의 등을 토닥여주면서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마치 애들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나는 그게 웃겨서 또 한참 소리 없이 웃었다.
* * *
“나는 크리켓을 싫어해! 나는 아빠가 보고 싶지 않아! 나는 휴도에 와서 너무 불행해! 나는 지율이와 아저씨를 만난 게 싫어!”
피노키오가 거짓말을 할 때마다 코가 쑥쑥 자랐다.
빠직! 뿌직! 빠지직!
피노키오는 거짓말을 한 다음 자신의 코를 꺾는 것을 반복했다. 그렇게 나무작대기 여러 개를 우리에게 내밀었다.
“선물이에요! 선물이야! 별건 아니지만 받아줘!”
피노키오는 우리 모두에게 나무작대기를 하나씩 내밀었다.
일단 주니까 고맙게 받았다.
이걸 어디에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고마워! 잘 간직할게!”
지율이가 활짝 웃어 보였다.
“멍멍멍멍멍멍!”
나무작대기를 입에 물고 있는 핫도그가 제일 마음에 들어 하는 듯했다.
무룩이는 나무작대기를 앞발로 톡톡 치고 있었다. 싫지는 않은 눈치다.
곰곰이와 삐삐는 일단 챙기는 느낌이었고.
“이제 어디로 가려고?”
나의 물음에 피노키오가 웃으며 대답했다.
“아빠를 찾아야죠.”
“그래? 아버님은 어디 계시는데?”
“아마 고래 뱃속에 계실 거예요.”
“응…?”
“아마 모르실 텐데, 하늘을 나는 고래가 있어요. 그 고래의 뱃속에 계실 거예요.”
하늘혹등고래를 얘기하는 게 분명했다.
나는 휴대폰으로 하늘혹등고래의 이미지를 검색해서 보여줬다.
“이 고래를 얘기하는 게 맞아?”
“엇? 알고 계셨네요?”
피노키오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어딘가에는 있을 거예요. 아빠도 저를 찾고 계실 거고요. 그러니까 금방 다시 재회하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정말 감사했습니다.”
피노키오는 곧장 휴도를 떠날 생각인 듯했다.
아빠를 찾으러 가겠다는데 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 지율이가 입 옆으로 양손을 모으고 하늘에 대고 소리쳤다.
“하늘혹등고래야아아아아아! 피노키오 아빠를 먹고 있는 하늘혹등고래야아아아아! 얼른 데리러 와아아아아아아!”
피노키오가 어색하게 웃었다.
“먹고 있는 건 아니야. 하늘혹등고래의 배가 집 같은 거라서…….”
그때 아이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나도 모두의 시선이 향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라…?”
저 멀리서 거대하고 시커먼 것이 다가오고 있었다.
하늘혹등고래였다.
귀촌 첫날 차원문이 생겼다 20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