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first day of my life in living alone, a portal opened RAW novel - Chapter 32
32.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아
무언가를 찾는 일은 숨을 쉬는 것과 같았다. 차원문 관련 현장에서 돈이 될 만한 무언가를 찾는 게 주된 일이었다.
또 무언가를 찾아 나설 판이다. 조금도 지겹지 않다. 지율이와 함께니까.
찾는 일은 지겨울 수가 없을지도 모른다. 찾은 것이 얼마나 만족스럽냐의 차이지.
특정하지 않아도, 삶이라는 게 무언가를 찾는 것의 연속이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뭐든 쉴 곳을 찾고, 먹을 것을 찾고, 입을 것을 찾고, 숨을 곳을 찾고, 의지할 대상을 찾고, 가족을 찾고, 사랑을 찾고, 행복을 찾고.
나는 쉴 곳을 찾아 휴도로 왔지만, 매일 기대했던 것 이상을 찾고 있었다.
“토끼 찾으러?”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 지율이를 보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응.”
지율이를 만난 뒤로는 그 무엇이든 후순위에 불과하다. ‘눈에 들어가도 안 아프다’라는 말이 이해가 된다.
“나중에.”
의외의 대답.
“왜?”
“싹이한테 밥 줘야지.”
“밥 주고 가면 되지?”
“아빠 힘들어서 안 돼.”
“응?”
“거북이 아저씨 도와주느라고 아빠 계속 힘들었잖아.”
가슴속으로 부드럽고 따뜻한 손이 들어온 듯했다. 마음을 직접적으로 만진 것 같은 느낌. 내가 조금만 더 감상적인 사람이었으면 눈물이라도 글썽거렸을 듯하다.
“아빠 생각해 주는 거야?”
속으로는 온탕에 빠진 달콤한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렸지만, 겉으로는 약간의 미소만 지어 보였다.
“응! 당연하지!”
“우리 딸밖에 없네.”
“그건 아니야!”
“어?”
“무룩이도 있꼬, 곰곰이도 있꼬, 꼭꼭이도 있꼬, 싹이도 있꼬, 팜독들도 있꼬…….”
나는 지율이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그치, 그렇지. 다른 가족들도 있고, 친구들이 참 많아졌어. 그치?”
“응! 그래서 좋아!”
“그래?”
“응!”
“아무튼, 이따 토끼 찾으러 갈까?”
“아니야, 나중에 갈래.”
“아빠 진짜 괜찮은데.”
“그래도 나중에 가. 무리하면 안 돼.”
어쩜 이렇게 기특할까.
아빠 미소라는 게 얼굴에 박혀 버렸다.
* * *
“어, 음.”
깜빡 잠이 들었다. 시간을 확인하니 오후 1시가 조금 넘은 상태. 겨우 한 시간 조금 넘게 잤지만, 몸은 날아갈 것처럼 개운했다.
잘 때마다 회복된다는 느낌이 이토록 또렷하다니. 잘 맛이 난다. 진정한 의미로 힐링이 된다.
컨테이너 밖으로 향하자 지율이와 무룩이, 곰곰이가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셋의 뒤로 다가섰다.
“뭐 하…… 하하하하핫!”
지율이가 꼭꼭이의 알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본 것 중에 가장 크고 새파란 꼭꼭이의 알에 사람 얼굴을 그려놨는데 피카소의 뺨을 후려칠 정도였다. 어마어마하게 추상적이었다. 다 잘하는 듯한 지율이였지만, 그림에 소질은 없는 듯했다. 삐뚤빼뚤한 게 귀여워서 좋았지만.
“지율이가 그린 거야?”
“응!”
지율이는 유성펜을 들고 생긋 웃어 보였다.
꼭꼭이의 알 세 개는 조민택을 통해 경매를 진행하기 직전.
또 알을 낳았나? 근데 왜 여기 있지? 집 앞에 낳았나?
꼭꼭이의 알에 대해 묻고 싶었지만, 그전에 지율이의 그림에 집중했다.
“잘 그렸네. 뭐 그린 거야?”
나의 물음에 지율이는 말똥말똥한 눈으로 바라보며 되물었다.
“몰라?”
“어……?”
“나 잘 그렸어?”
“응! 엄청!”
“그런데 몰라?”
“어? 그게…….”
지율이는 알쏭달쏭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여기서 틀리면 실망할 게 분명하다. 맞춰야 한다.
하지만 꼭꼭이의 알에 큼지막하게 그려진 것만 보고 맞히기는 쉽지 않았다. 푸른빛이 도는 알 가득히 채우고 있는 자유분방한 이목구비. 사실 인간의 얼굴인지도 의심이 된다.
다크 판타지 장르에서나 등장할 법한 모습이다. 내가 작명을 한다면 ‘한기 서린 패왕의 알’이라고 할 듯하다.
“응?”
지율이의 재촉에 나는 확률이 높은 대답을 택했다.
“아…… 빠?”
나는 애써 웃으며 스스로를 가리켰다.
“정다아아압!”
진짜 나였구나. 지율이 눈에는 내 얼굴이 저렇게 보이는 걸까? 스스로가 어마어마한 미남이라 생각하며 살지는 않았지만, 어디 가서 빠진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는데. 꼭꼭이의 알에 그려진 내 얼굴을 보니 왠지 자신이 없어진다.
“와, 정다압.”
그림 실력도 조금씩 늘겠지. 생각해 보면 지율이가 처음 그린 그림이었다. 누가 알려준 적도 없는데. 어쩌면 그림에 재능이 없는 게 아니라, 천재인 걸지도?
지율이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돌잔치도 까마득한 어린 나이.
그렇다. 내 딸 지율이는 천재다. 완벽하다. 최고다.
나는 활짝 웃으며 가볍게 박수를 쳤다.
“짝짝짝짝.”
입으로 소리를 내며 지율이의 박수도 유도했다.
“정답!”
지율이가 해맑게 웃으며 손뼉을 한 번 쳤는데, ‘짝’이 아닌 ‘쩍’하는 소리가 울렸다. 마치 거세게 휘두른 각목 두 개가 맞부딪쳐 부서지는 소리.
“고, 고오오옴…….”
옆에 있던 곰곰이가 당황하며 조금은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무룩이의 눈썹 양끝은 유난히 내려갔다. 녀석은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지율이를 향해 눈을 흘겼다.
“하, 하하, 지율이 힘 조절 좀 배워야겠네.”
“응! 알아!”
“알아?”
“응! 세게 끌어안으면 무룩이가 싫어해! 곰곰이도 힘들어해!”
자신의 괴력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듯하다. 지금까지 특별히 문제도 없었으니 걱정할 일은 아니다.
설사 사고를 쳐도 상관없다. 우리끼리 살고 있으니 누군가를 다치게 할 일도 없고, 무언가 좀 부서져도 괜찮다. 물건이야 다시 사면 되지 뭐.
“예쁘다아아.”
지율이는 조심조심 무룩이와 곰곰이를 쓰다듬었다.
저런 모습을 보면 걱정할 것도 없었지만.
“그런데, 알은 꼭꼭이가 주고 갔어?”
“응, 아니?”
“응, 아니?”
“알은 꼭꼭이가 줬는데, 아직 안 갔어.”
“아직 안 갔다고?”
그때였다.
“뽥!”
뒤에서 울린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꼭꼭이의 마력을 느끼고는 고개를 들었다. 꼭꼭이가 컨테이너 지붕에서 몸을 웅크린 채 나를 바라봤다.
“뽜앍!”
“기다린 거야?”
“뽥뽜봙!”
꼭꼭이는 지붕에서 내려오더니 컨테이너 출입구를 부리로 콕콕 쪼았다.
“먹을 거 달라고?”
“뽥!”
일부러 컨테이너 근처에서 알을 낳은 모양이다.
보통 조류는 총배설강이라 알은 무조건 세척이 필요하지만, 코키오의 경우도 배변을 하지 않는 마수라서 갓 낳은 알도 깨끗하다. 사실상 낳았다기보다는 만들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잠깐만 기다려.”
나는 주섬주섬 쌀을 챙기려고 했는데, 꼭꼭이가 거센 목소리를 냈다.
“뽥뽥!”
“이거 말고?”
“뽥!”
“그럼 이거?”
“뽥뽥!”
“이거?”
“뽥뽥!”
수차례 여러 식재료들로 손을 가져갔지만, 꼭꼭이는 번번이 거부의 목소리를 냈다.
“그럼 이거?”
내가 마지막으로 꺼내 든 것은 통발 미끼로 쓰려고 챙겨둔 황소 밴댕이의 머리와 내장.
“뽜아아아아앍!”
누가 봐도 꼭꼭이는 행복한 목소리를 냈다. 조류 특유의 휘둥그레 뜨고 있는 눈은 여전했지만, 즐거워하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래, 너 많이 먹어라.”
꼭꼭이는 컨테이너 앞에서 황소 밴댕이의 머리와 내장을 전부 먹어치고 나서야 만족한 듯이 돌아갔다.
“생선 대가…….”
지율이를 본 나는 다시 말했다.
“생선 머리랑 내장으로 알을 받았으니 훨씬 이득이네.”
지율이가 웃으며 물었다.
“이득이야?”
“그렇지.”
“이득이구나!”
“응. 이득이란 말도 아네?”
“몰라.”
“어? 근데 왜 좋아했어?”
“아빠가 좋아하니까.”
나는 피식 웃고는 이득이란 단어에 대해 알려줬다. 지율이는 금세 이해하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난 알고 있었다냥.”
무룩이는 앞발을 핥으며 가소롭다는 듯이 말했다.
“역시 무룩이는 대단하네!”
지율이가 감탄하자 무룩이는 어깨를 펴고 으스댔다.
“난 원래 대단하다냥. 영광인 줄 알라냥.”
“고오오오옴…….”
곰곰이도 감탄의 목소리를 냈다.
셋이서 놀고 있는 것만 봐도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참…….”
한기 서린 패왕의 알처럼 보이는 꼭꼭이의 알이 시야에 들어왔다. 다시 봐도 을씨년스러웠다. 유성펜이어도 지우려면 얼마든지 지울 수 있었고, 조민택에게 경매를 맡기는 것도 가능했다.
저 정도 크기에 빛깔이면 가격도 상당하겠지. 하지만 지율이의 첫 그림을 지우고 싶지 않았다.
요즘 사람들은 별 의미도 없는 물건에도 플렉스(Flex)랍시고 돈을 쓴다. 자기 돈을 어떻게 쓰든 그건 그 사람 마음이긴 하지만.
나도 플렉스를 하려고 한다. 지율이가 그림을 그린 꼭꼭이의 알을 평생 간직하기로 결심했다.
* * *
“달걀 프라이를 할 거야.”
나의 말에 지율이가 눈을 반짝였다.
“프라이! 프라이 좋아!”
“오늘은 왕 프라이야.”
“왕 프라이?”
“응, 이걸 쓸 거거든.”
지율이가 그림을 그린 꼭꼭이 알을 쓸 생각이었다.
“걱정하지 마. 지율이 그림은 안 망칠 거니까.”
나의 말에 지율이는 두 주먹을 꼭 쥔 채 말했다.
“걱정 안 해.”
“그래? 안 망칠 거 알고 있었어?”
“아니. 그림은 다시 그려도 되니까.”
지율이의 마음은 하늘과 바다처럼 넓고 높으며 깊은 듯하다.
나는 실톱을 사용하여 꼭꼭이 알의 윗부분을 썰기 시작했다. 사실상 뚜껑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한기 서린 패왕의 알이 노려보는 기분이었지만, 톱질을 멈추지는 않았다.
알의 뚜껑을 열자 내용물이 찰랑거렸다. 써는 과정에서 가루가 많이 들어가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래 보이지는 않았다. 영양성분 자체는 껍질도 좋은 편이니 먹어도 상관없지만.
알의 내용물을 기름을 두른 프라이팬 위에 천천히 부었다.
치이이익.
커다란 프라이팬에 꽉 차올랐다. 금세 투명했던 흰자가 하얗게 물들어갔다.
“우와아아. 예뻐.”
지율이가 감탄했고,
“고오오오옴.”
곰곰이는 먹고 싶어 했다.
어느새 무룩이는 사라져 있었다. 또 순찰을 나간 듯했다.
흰쌀밥을 그릇에 담고, 미리 만들어둔 양념장을 꺼냈다. 대파, 양파, 마늘, 물, 식초, 소금, 설탕, 올리고당, 참깨, 참기름을 섞어 만든 양념장은 향만 맡아도 군침이 돌았다.
원래 계란장을 만들 때 쓰는 양념장인데, 지금은 거대 계란 프라이에 곁들여서 밥이랑 같이 먹을 생각이었다.
“자, 먹자!”
나는 곰곰이 앞에도 밥그릇과 숟가락을 따로 줬다.
“고오옴?”
곰곰이는 조금 당황하는 듯했는데, 내가 입을 열기 전에 지율이가 시범을 보였다.
“곰곰아, 이렇게 하는 거야.”
지율이가 포크수저로 계란을 조금 뜨고 밥에 올렸다. 그리고 양념장은 어떻게 할지 조금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나를 힐끗 쳐다봤다.
나는 조용히 양념장을 조금 떠서 계란 위에 뿌렸다. 곧장 지율이가 따라 했고, 곰곰이가 숟가락을 들었다.
“고오오오옴.”
곰곰이는 어설픈 숟가락질을 했다. 약간 흘리고 튀었지만, 인형의 몸이라는 걸 감안하면 양호했다.
“내가 도와줄게.”
지율이는 곰곰이의 밥부터 챙겼다.
나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밥을 크게 한술 떴다.
“맛있네.”
“응! 맛있어!”
요즘은 틈만 나면 각종 요리 레시피들을 보곤 한다. 지율이에게 맛있는 음식들을 해주고 싶은 것은 당연하고, 내게도 먹는 즐거움이 커지고 있다.
* * *
빈 꼭꼭이의 알은 안쪽을 깨끗이 씻었다. 위쪽을 잘라서 만든 뚜껑은 일단 얹어뒀다. 접착제로 다시 붙일까 하다가 생각을 바꿨다. 경첩을 달아서 진짜 뚜껑처럼 만들기로 했다. 안쪽이 워낙 넓으니 잡다한 것도 보관할 수 있어서 장식품 겸 보관함으로 쓸 수 있겠지.
“음…….”
지율이의 그림으로 얼굴을 가진 꼭꼭이의 알은 다시 봐도 ‘한기 서린 패왕의 알’이 가장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빠아아! 빨리 가자!”
지율이가 컨테이너 밖에서 재촉했다.
“응, 알았어!”
황소 밴댕이 살점들이 든 커다란 봉투 그리고 물을 잔뜩 채운 봉투를 챙겨서 밖으로 나오던 중이었다.
“오?”
내 전완근이 쩍쩍 갈라졌다. 꼭꼭이의 알, 은문어, 쇠삼에 약삼까지. 온갖 좋은 것들을 먹은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었다.
“가자!”
지율이가 조금 앞장섰고, 나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따라붙었다. 곰곰이는 집에서 자고 있었고, 무룩이는 순찰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농지보다 선착장 쪽을 먼저 들렀다. 어제 바다거북에게 붙어 있던 따개비들을 그대로 두고 왔다.
역시나 자리에는 따개비들이 그대로 있었다.
“빠아.”
“응?”
“훌륭해.”
“갑자기?”
“어제 거북이 아저씨가 엄청 행복해했어.”
“편해지긴 했지.”
“얼른 이거 가져가서 싹이 주자.”
“잠깐만.”
나는 따개비들을 물이 담긴 봉투에 넣었다. 물기야 다 말랐지만, 소금기를 씻어내는 게 좋을 거라 생각했다.
“우아아아아아…….”
“오우.”
물에 넣은 따개비들은 아직 살아 있었는데, 분화구 같은 구멍에서 복어 입처럼 생긴 것이 뻐끔거렸다.
나는 물과 따개비가 든 봉투를 빙빙 돌렸다. 따개비를 세탁기에 헹굼을 돌리듯. 봉투에서 물만 버린 다음 몸을 틀었다.
“다 됐다. 가자.”
“응!”
농지 앞.
팜독들은 전부 허니포켓밭에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농지 중앙에서는 많이 커진 싹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는 3미터가 조금 넘어갔다. 하지만 형태의 변화는 크지 않았다. 여전히 줄기들이 주를 이뤘다. 초록빛도 그대로였고. 잘 커지고 있으니 괜찮겠지.
농지에 발을 들이자마자 상쾌한 향이 퍼졌다. 마치 숲속에 들어선 듯했다. 싹이 혼자서 뿜어내는 향이었다.
“싹아아아아아아.”
지율이는 곧바로 싹이를 끌어안았다.
싹이는 이제 익숙하다는 듯이 줄기들을 엮어 팔처럼 움직였다.
―왔구나.
“응! 잘 있었지?”
―덕분에.
나는 봉지 가득 챙겨온 황소 밴댕이 살점들과 따개비들을 들어 보였다.
“이런 것도 먹나?”
―물론. 바닥에 뿌려줘라.
역시 마력과 연관된 것이면 나쁠 리 없었다. 종류가 종류인 만큼 흙으로 돌아가게 만들며 영양분을 먹는 듯했다.
“다음에 또 올게!”
지율이가 싹이의 기둥을 탁탁 두드렸다.
―오늘은 금방 가는구나?
“응! 토끼 찾으러 가거든!”
―항상 즐거워 보이는구나.
“응! 즐거워! 싹이는 안 즐거워?”
―…….
“응?”
―……즐겁다.
지율이가 해맑게 웃었다.
“다행이다.”
그 순간 지율이 위로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듯했다.
말 그대로 눈이 부셨다.
휴도에서 지율이와 함께하는 순간들 전부가 크나큰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율이를 만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아니면 이런 행복을 평생 몰랐겠지.
* * *
토끼를 찾겠다고 나선 곳은 뒷산.
사실 토끼가 있을지 없을지는 모른다.
나는 있으면 있는 대로 좋고, 없으면 없는 대로 좋다고 생각했다.
일단 지율이와 함께 뒷산을 탐험하는 자체로 좋다. 이거야말로 진정한 체험학습이다. 개인적으로도 가보지 않은 곳들을 살펴보고 싶다.
토끼까지 만나게 되면 더 좋다. 보는 자체로 힐링이 될 테고, 지율이는 무언가 성취하는 기쁨을 알게 될 테니까.
실패해도 뒷산을 탐험하며 얻을 즐거움은 여전하다. 그리고 세상이 뜻대로 되지만은 않는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거기에 좌절하거나 실망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원래 성공하면 추억이고, 실패하면 경험이다.
“빠아!”
“응.”
“토끼 있을까?”
“글쎄. 있으면 좋겠다. 그치?”
“응!”
“무슨 색 토끼가 있으면 좋겠어?”
지율이는 잠시 걸음마저 멈추더니 심각하게 고민했다.
“하하핫, 그렇게 심각하게 고민 안 해도 돼.”
“책에서는 흰색 토끼 그림이었는데, 아빠가 인터넷으로 보여준 다른 색깔 토끼들도 너무 귀여웠어.”
“그치?”
“어떤 토끼든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
“한번 가보자.”
지율이를 처음 만났던 연못을 지나고, 꼭꼭이에게 알을 받았던 곳을 지났다. 가파르지는 않지만, 산이다 보니 길도 험한 편이고 당연히 경사가 있었다.
“힘들면 말해. 아빠가 안아줄게.”
“하나도 안 힘들어!”
“그래?”
“응!”
나도 처음 오는 길이다 보니 계속해서 체크하며 조심히 걸음을 옮겼다.
생각 이상으로 울창한 숲.
시간을 확인했다. 조금 있으면 저녁. 위험한 건 없겠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가는 게 나을 듯했다.
“지율아, 오늘은 이만 돌아가고 내일 다시 올까? 저녁 준비도 해야 되고 하니까.”
“그래!”
지율이는 떼를 쓰지도 않았다.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 나는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내일 도시락도 싸서 오자. 무룩이랑 곰곰이도 같이.”
“좋아!”
“토끼는 내일 제대로 찾자!”
“내일 찾자!”
함께 웃으며 만세를 하는 순간이었다.
“어?”
멀리 떨어진 곳, 나무 사이사이로 유난히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자리를 잡고 있는 게 보였다. 예전 같았으면 보일 거리가 아니었다. 체감상 200미터 이상의 거리.
나무들도 워낙 많아서 시야를 가렸는데, 딱 내가 서 있는 곳에서만 그 틈을 뚫고 보였다. 그리고 그 나무 부근에 희끗희끗한 털 뭉치 하나가 굴러다녔다. 직감적으로 그 털 뭉치가 토끼임을 확신했다.
귀촌 첫날 차원문이 생겼다 3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