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first day of my life in living alone, a portal opened RAW novel - Chapter 33
33. 공동
좀 더 자세히 보고자 눈에 힘을 줬다. 별 의미가 없는 짓인 걸 알면서도 매번 무언가를 자세히 들여다볼 때면 미간을 찡그리고 눈썹부터 힘을 주기 시작했다.
“어?”
눈에 힘을 주니까 더 잘 보였다.
이게 말이 되나?
다시 집중했다. 마치 망원경처럼 확대가 되는 느낌. 애초에 이 거리를 보는 것도 신기한데, 약간의 확대 기능까지.
이게 말이 되네.
이건 지율이의 알껍데기 덕분임을 확신했다. 내가 가지게 된 능력들에 대해서 조금씩 이해도가 높아졌다.
능력에 대한 이해는, 약발이 죽이는 몸에 들어온 약이 무엇인지 아는 것부터 시작이다.
“지율아.”
“응?”
“저기로 가보자.”
내가 가리키는 곳을 힐끗 본 지율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에?”
“저기 토끼가 있는 거 같아.”
“정말?”
토끼 얘기가 나오자마자 지율이의 광대가 승천했다.
내게는 너무 당연한 것들이 지율이에게는 한없이 새로울 수 있었다.
좀 더 지율이 입장에서 세상을 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듯했다.
* * *
거리가 제법 있긴 했지만, 경사도 심하지 않고 길도 비교적 깔끔한 편이었다.
풀이 많았다. 발에 걸린 풀잎이 뜯기는 소리와 진한 풀 향이 전신을 감쌌다.
“이게 진짜 산림욕이구나.”
“욕은 나쁜 거야.”
그새 욕이 뭔지는 아는 듯하다.
“하하하, 그 욕이 아니야.”
“아니야?”
“응.”
“그럼 뭐야?”
“목욕할 때 욕이야.”
“산 님? 산님욕은 산이 목욕하는 거야?”
“아니, 이렇게 숲에서 산책하는 걸 산림욕이라 그래.”
“물은?”
“물 대신 이렇게 숲의 기운을 쐬는 거야.”
피톤치드, 살균 효과, 녹색을 보면서 얻는 편안함과 정신적 해방 등에 대한 것까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하나하나 설명하는 게 쉽지도 않고, 얘기가 너무 길어질 게 분명했다. 지율이 입장에서도 한 번에 너무 많은 정보가 들어오면 어려울 것 같았고.
“흐으으음.”
지율이는 양팔을 넓게 벌리고 숲을 느끼는 듯했다. 그러다 팔을 내리고는 나를 올려다보며 눈을 크게 떴다.
“상쾌해진 것 같아!”
“그래?”
“응! 싹이 안을 때하고 조금 비슷해.”
“그래?”
“응!”
지율이는 이미 산림욕을 해왔던 듯하다.
“아, 거의 다 왔다.”
“저기 있다!”
아직 제법 거리가 있었지만, 지율이도 쉽게 털 뭉치를 발견했다.
시력 자체는 나보다 지율이가 훨씬 좋았지만, 각도상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땅에 박혀 있는 듯한 둥그렇고 하얀 털 뭉치는 움직임이 없었다.
슬슬 토끼가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나는 털 뭉치보다 그 앞에 있는 나무에 시선을 뺏기기 시작했다.
거대했다. 혼자서만 다른 나무들보다 대여섯 배는 커 보였다.
“잠깐만 지율아.”
나는 약삼의 효과로 두 다리에 힘을 주며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제자리에서 힘껏 뛰어올랐다.
“오…….”
생각 이상으로 높이 몸이 떠올랐다. 7~8미터는 될 듯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높이에 절로 웃음이 번졌다. 심지어 전력으로 뛴 것도 아니었다.
중간중간 유난히 큰 나무들이 보였다. 앞으로도 뒷산을 살펴보는 재미가 무궁무진할 듯했다.
쿵.
바닥에 착지한 순간 나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뒤꿈치부터 시작해 발목과 무릎은 물론, 정수리까지 충격이 전해졌다.
“어우.”
힘을 낼 수 있다고 해서, 내 몸이 그 힘을 고스란히 견딜 수 있는 것은 아닌 듯했다.
“왜? 아파?”
지율이가 걱정하는 눈빛을 보냈고,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별거 아니야. 얼른 가보자.”
“응!”
그렇게 털 뭉치에게로 향했다.
* * *
약 5미터.
둥그런 털 뭉치는 좌우로 조금씩 흔들리기만 할 뿐,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냥 토끼는 아닌 게 확실했다.
마력이 느껴졌으니까.
이제는 익숙하다. 휴도에는 각종 마수나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것들이 잔뜩이니 놀랍지 않다.
어느 정도 경계야 필요하다지만, 코키오인 꼭꼭이나 허니베어인 곰곰이를 생각하면 위험이라는 게 존재할지 의문이다.
“빠아.”
지율이가 축구공 크기의 털 뭉치를 가리켰고, 나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어느 각도에서 봐도 그저 둥그런 털 뭉치일 뿐이었다. 위험할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나무 작대기 하나를 집어서 조심스레 툭툭 건드렸다.
“어이.”
내가 작대기로 찌르며 목소리를 내자 옆에서 지율이도 웃으며 말했다.
“어이!”
털 뭉치는 반응이 없었고, 지율이는 내게로 시선을 옮겼다.
“자나 봐.”
“예쁘게 불러볼까?”
“응!”
지율이마저 ‘어이’라고 부른 게 괜히 신경 쓰였다. 욕설 같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좋은 것도 아니었으니까.
“토끼야.”
“토끼야아아아아.”
“일어나.”
“그만 자고 일어나! 잠꾸러기야!”
털 뭉치가 움찔움찔 움직였다.
“깼나?”
“움직인다! 움직인다!”
갑자기 땅이 들썩거렸다. 묵직하게 쌓인 흙이 숨을 쉬듯 들썩거렸다. 이내 부글부글 끓는 비지찌개처럼 흙이 튀어 올랐다.
“어…….”
뭔가 잘못됐다 싶었지만, 생글생글 웃고 있는 지율이를 확인하고는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지율이를 믿는다. 내 딸이라서 가지는 신뢰도 있지만, 마력을 가진 존재들을 감지하는 능력에도 확신이 있다.
곰곰이의 원래 모습처럼 커다란 무언가가 솟아올랐고, 흙이 쏟아졌다. 흙먼지가 서서히 걷히면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하얀 토끼였다. 거대한 토끼.
“어…….”
희귀 마수인 달토끼였다. 거대한 몸을 전부 땅속에 숨긴 채 꼬리만 내놓고 있던 것이었다. 거대한 몸집 외에 특이점이라면 앞다리 대신 팔이 달렸다. 손도 영장류처럼 자유롭게 사용했다. 다섯 개의 손가락은 전부 둥글둥글 짧았다.
달토끼라는 이름은 달에서 절구질을 하려면 저 정도 커야 되지 않겠냐고 붙었다. 손을 잘 쓰는 것도 한몫했고.
“우와아, 엄청 크다. 원래 곰곰이만큼 큰 것 같아.”
지율이는 생글생글 웃으며 달토끼를 올려다봤다.
나도 달토끼를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다. 손질을 해본 적도 없다. 살아 있는 달토끼를 본 사람은 헌터들 중 소수만 해당된다. 달토끼가 스트레스에 약해서 제압을 하면 금세 폐사를 하는 까닭이다. 살아 있는 중에는 계속해서 마력을 뿜어내 카메라에 담지도 못한다.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해를 끼치는 마수는 아니다. 하지만 먹는 양이 많아서 놔두면 농가에 피해를 입히기 십상. 도시에 나타난다면 마트의 채소를 다 먹어버릴지도 모르고. 마수원 같은 곳에서 키울 수도 없는 게 잡으면 죽으니까.
이래저래 인간과는 맞지 않는 마수다. 귀여운 생김새 때문에 인기가 많고, 절대 오염되지 않는 털가죽 덕분에 몸값이 비싸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조금 전까지 땅속에 있었는데도 눈처럼 새하얀 털을 뽐냈다.
“안녕, 토끼야!”
지율이가 손을 흔들어 보였고, 달토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힝?”
거대한 몸집과는 달리 작고 귀여운 목소리. 하찮게 느껴질 정도였다.
“핫.”
나도 모르게 웃었고, 달토끼는 반대편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힝?”
“여기서 뭐 하고 있었어?”
지율이가 묻자 달토끼는 동글동글한 손으로 나무를 가리켰다. 정확히는 나무 중앙에 골짜기처럼, 굴처럼 비어 있는 공동(空洞)을 가리키고 있었다. 공동 안쪽은 어둠만이 가득했다.
“돌아가는 길을 찾고 있었대.”
지율이가 말했다.
“돌아가는 길?”
“응! 저기서 나왔는데, 다시 돌아가려니까 길이 없대.”
달토끼는 고개를 빠르게 끄덕거렸다.
“이히잉. 히잉. 이힝.”
지율이가 달토끼의 말을 통역했다. 사연인즉슨, 나무의 공동에 길이 없어서 그 밑으로 굴을 파다가 잠들었다고. 땅에 묻힌 채 잠들어 있는데 나와 지율이가 와서 깨운 것이었고.
“이힝…….”
달토끼는 자리에 주저앉아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여기에서 나왔다고?”
내가 나무 공동을 가리키자 달토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힝.”
검은 차원문이겠지.
갑자기 휴도로 오게 돼서 당황한 모양이다. 조금 더 지나면 금세 이곳에 적응해서 이런 걸 유추할 수도 없었겠지.
이제 막 이쪽으로 온 달토끼인지라 당황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인간인 나를 앞에 두고도 크게 경계하지 않았고. 워낙 예민하기에 내게 위협을 느끼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진짜 예쁘다.”
지율이는 달토끼에게 다가가 털을 쓰다듬었다.
“이힝?”
달토끼는 지율이를 딱히 경계하지 않았다.
내가 봐도 달토끼의 털은 아름다웠다. 괜히 달토끼 모피가 비싼 게 아니다. 코트 한 벌을 만들 수 있는 양이 수억에 거래된 적도 있을 정도다.
수억. 큰돈이다. 지율이 출생신고를 위해 돈도 필요하다. 휴도에서 살아도 의외로 돈 들어갈 곳들이 있다. 자급자족하려면 할 수 있지만, 좀 더 윤택한 삶을 위해서는 그렇다.
내가 천천히 다가섰고, 달토끼가 나를 바라봤다.
“이힝?”
나는 씩 웃으며 달토끼의 배를 쓰다듬었다.
“진짜 예쁘네.”
당연히 사냥할 생각은 없었다. 돈은 다른 식으로도 얼마든지 벌 수 있었으니까. 못 벌면 못 버는 대로도 괜찮았고.
사냥 및 수확의 기준은 교감의 정도였다. 비교적 교감도가 낮으면 미안해하고, 감사해하며 먹었다.
“집에 못 가서 그래?”
지율이의 물음에 달토끼고 시무룩한 목소리를 냈다.
“이힝.”
“가족들이 기다려?”
“이히잉.”
“그건 아니야?”
“이힝.”
“그럼 내가 새로운 가족이 되어줄게!”
“이힝?”
“여기도 엄청 살기 좋아!”
“이힝!”
어느새 달토끼도 우리 가족이 되는 듯했다. 나는 그냥 웃어 보였다. 적어도 휴도는 공동의 소유라고 생각했다. 다들 지분이 있었다. 휴도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모두의 도움이 필요했으니까. 물론, 최대주주는 나라고 생각했지만.
“여긴 뭐가 있나?”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거대한 나무의 공동 안쪽을 들여다봤다. 너무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휴대폰 플래시를 비췄다. 나무 공동은 주먹 크기의 뚱뚱한 버섯들로 꽉 차 있었다. 흰색, 누런색, 황색, 황갈색, 고동색 등 다양했다.
“어? 이거……!”
체리시 머시룸(Cherish Mushroom).
귀중하다는 의미로 이름이 지어지기도 했지만, 버섯들이 각각 빛깔에 따라 다른 향과 맛, 속을 품고 있어서 붙은 이름이었다.
체리시 머시룸은 등급별로 가격이 달랐다. 어두운색이 대체로 비쌌지만, 흰색도 고동색보다 비쌀 수 있었다. 그만큼 다양한 부분들을 고려하여 등급을 정했다.
가장 저렴한 체리시 머시룸도 10그램에 1만 원은 한다. 크고 상태가 좋은 것은 1킬로그램짜리가 한화로 2억3천만 원에 거래된 적도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버섯’이라는 타이틀은 트러플(송로버섯)에서 체리시 머시룸으로 넘어간 지 오래다.
“와…….”
나는 손전등으로 공동 안을 슥 비췄다. 각양각색의 체리시 버섯들. 혼자서 수억이 나갈 만큼 거대한 것은 없었지만, 전부 합치면 10킬로그램도 훌쩍 넘을 듯했다.
“안에 뭐 있어? 나도 볼래!”
지율이가 내 옆으로 바짝 붙었다.
“더 들어와, 더.”
나는 지율이를 감싸 안아 함께 공동 안으로 들어섰다.
“이거 봐. 다 버섯이야.”
내가 휴대폰을 천천히 움직이며 버섯들을 비췄다.
“우와아아아아…….”
지율이는 입을 크게 벌린 채 버섯을 봤다.
“오늘은 버섯파티야!”
“버섯파티다!”
힘차게 소리치다가 옆을 돌아봤는데 달토끼가 커다란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왓, 쓰억……!”
깜짝 놀란 나는 이상한 소리를 내는 동시에 뒤로 물러서며 손을 휘둘렀다.
파앙! 후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거센 바람이 휘몰아쳤고, 거대한 달토끼가 뒤로 밀려나 데굴데굴 굴러갔다.
귀촌 첫날 차원문이 생겼다 3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