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first day of my life in living alone, a portal opened RAW novel - Chapter 321
321. 풀어요 (2)
고성우와 퀸이 돌아갔다.
한가로운 휴도에 지율이의 목소리가 울렸다.
“자! 빨리 다들 여기 앉아!”
나, 곰곰이, 삐삐, 핫도그, 무룩이, 싹이 그리고 시큰둥한 얼굴의 레오가 돗자리 위에 앉았다.
“이제부터 소꿉놀이를 시작하겠습니다아아아!”
그랬다.
내가 선물한 소꿉놀이 세트.
지율이는 손에 들어온 선물을 알차게 활용하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소꿉놀이를 시작했다.
“일단…….”
지율이는 플라스틱으로 된 식기류와 모형 음식들을 보다가 우리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시작해볼까?”
내가 손을 들어 보였다.
“네! 말씀하세요!”
지율이의 손짓에 내가 입을 뗐다.
“소꿉놀이면 역할이 필요하지 않나요?”
“그렇네!”
잠시 고민하던 지율이가 목소리를 높였다.
“아빠는 아빠 역할, 곰곰이는 곰곰이 역할, 삐삐는 삐삐 역할, 핫도그는 핫도그 역할, 무룩이는 무룩이 역할…….”
너무 그대로 아닌가 싶었던 찰나였다.
“싹이는 내 딸 역할이고, 레오는 남편이야!”
충격적인 반전.
싹이가 지율이의 딸이라니.
아니, 그보다 레오를 내 사위로 둘 생각을 해본 적은 없는데.
나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과몰입하지 말자.’
싹이가 생긋 웃으며 물었다.
“역할극이라 이거지? 내가 네 딸인 것이냐?”
“응!”
팔짱을 낀 레오가 인상을 찡그렸다.
“남편…?”
“응!”
“우리가 부부란 뜻인가?”
“맞아!”
“그럼 결혼식부터 올려야 되는 것이 아닌가?”
“아니야! 그냥 부부로 시작이야!”
“인간들은 결혼식이라는 행사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상한 데서 보수적인 레오.
“이건 소꿉놀이잖아. 그러니까 그냥 우리가 부부로 시작하는 거야.”
“네 놀이에 어울려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라. 그러니 할 거면 제대로 해야 한다.”
“아니라니까!”
“결혼식을 올려야 한다.”
처음으로 레오는 어디가 모자란 게 아닐까 생각했다.
지켜보던 나는 해결방안을 내세웠다.
“자, 이러면 됐지?”
내가 내민 종이 한 장에 모두의 시선이 모아졌다.
해결책은 바로 혼인신고서.
당연히 내가 대충 끄적거린 가짜 혼인신고서다.
“요즘은 결혼식을 하지 않고 부부가 되는 경우도 많아. 굳이 법적인 걸, 사회적 약속을 따지자면 이렇게 혼인신고서를 작성하지. 여기에 서명을 하면 부부가 되는 거야.”
지율이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물었다.
“여기에 서명하면 진짜 부부가 되는 거야?”
“여러 과정들이 더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거라고 할 수도 있어.”
사실 혼인신고 유무를 떠나서, 사회적 약속을 떠나서 두 사람의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법적으로 혼인관계를 가지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것이 혼인신고다.
한국에서는 그렇다.
“한국에서는 그래.”
나의 말을 들은 레오는 조금 놀란 듯했다.
“혼인… 신고….”
지율이가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소꿉놀이 할 수 있겠네!”
혼인신고서 위로 ‘김지율’이라는 이름 석 자가 파란색으로 새겨진다.
아무런 망설임 없는 거친 필체.
흡사 예술의 경지에 이른 듯 보인다.
“자!”
지율이가 색연필을 내밀었고, 레오는 마치 묵직한 옥새라도 건네받듯 손에 쥐었다.
“이름 써!”
지율이가 외쳤고, 레오는 천천히 색연필을 가짜 혼인신고서 위로 가져갔다.
“흥! 어울려주지!”
레오가 서명을 하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글씨.
드래곤의 언어일까? 아니면 과거에 레오가 살던 차원의 언어일지도.
탁.
레오가 색연필을 탁 놓았다.
“했다.”
그 순간이었다.
지이이이이잉…….
레오의 서명에서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우와, 예쁘다!”
지율이가 활짝 웃었다.
“뭐야, 이거 왜 빛나?”
내가 묻자 레오는 당연한 걸 왜 묻냐는 식으로 말했다.
“나의 서명에는 힘이 있다. 곧 그 힘이 발휘될 거고 계약은 성립된다.”
“뭐?”
점점 빛이 강해지는 가짜 혼인신고서.
“그럼 지율이랑 진짜로 혼인신고를 한다는 거야?”
나의 물음에 레오가 나지막이 말했다.
“원했던 것 아니었는가? 이로써 소꿉놀이가 가능해질 것이다.”
“야, 이 미…!”
지율이 앞에서 욕을 할 수는 없었다.
“저게 성립되면, 대체 뭐 어떻게 되는 건데?”
“드래곤 사회에서 우리는 정식으로 부부…….”
나는 빡 소리가 울리도록 레오의 머리통을 한 대 때렸다.
“무슨…? 네 이놈! 드디어 정신을 놓은 것인가?”
레오가 목소리를 높였지만, 내 귀에는 그저 잡음에 불과했다.
나는 진짜가 되려는 가짜 혼인신고서를 향해 불길을 뿜었다.
화르르륵!
불길이 사그라졌다.
하지만 빛을 머금은 가짜 혼인신고서는 그대로였다.
“뭐야 이거?”
내가 당황하는 목소리를 내자 레오가 팔짱을 끼고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드래곤의 말에는 힘이 있다. 언약은 물론, 서약은 더욱 강한 힘을 가진다. 인간들이 스스로를 초월하고 강력한 힘을 가져봤자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의 영역. 나의 서명을 인간이 태워 없앨 수는 없다.”
“그딴 걸 자랑스럽게 말하지 말라고!”
내 딸이!
지율이가!
대외적으로 여섯 살(만 다섯 살), 실제로는 사실상 어제 돌잔치를 한 지율이가 유부녀가 되게 생겼다.
비록 드래곤 사회에서라지만,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레오를 내 사위로 받아들일 생각은 없다.
“우와!”
지율이는 그저 해맑았다.
“혼인신고서 막 날아다녀!”
가짜 혼인신고서가 허공에 둥실둥실 뜨기 시작했다. 곧 진짜가 되려는 모양이다.
“핫도그!”
나는 혼인신고서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거 태워버려! 최대 출력으로!”
핫도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멍’하고 짖었다.
쿠쿵!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핫도그.
헬하운드 중의 최강.
거대한 몸에 끓어오르고 불타오르는 심장과 폐.
화륵, 화르르륵!
크르릉거리던 핫도그가 가짜 혼인신고서를 향해 불을 뿜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거대한 화염이 가짜 혼인신고서를 집어삼켰다.
일순 하늘이 화염으로 덮여 붉고 빛나는 천장이 생겼다.
화륵, 화르르륵!
불길이 걷혔다.
하지만 빛나는 가짜 혼인신고서가 팔랑거렸다.
“저거 왜 안 타?”
내가 목소리를 높이는데 레오가 피식 웃었다.
“헬하운드라고 다를 것 같은가? 전부 드래곤에게는, 특히 내게는 안 된다.”
나는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얘들아! 도와줘! 저거 없애버려!”
그러자 곰곰이가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쿠마아아아!”
곰곰이가 전신에서 황금빛 번개를 번쩍거렸다.
원래 허니베어에게는 없는 능력이지만, 무룩이를 통해 인형 모습을 할 수 있게 된 이후로 저런 힘이 생겼다.
퍼펑! 퍼퍼퍼펑!
곰곰이가 번개를 쏴댔고, 핫도그도 다시 불을 뿜어냈다.
“이힝! 이히히힝!”
어느새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삐삐.
삐삐는 가짜 혼인신고서를 향해 음파를 쏘기 시작했다.
삐삐의 음파 역시 곰곰이처럼 무룩이 덕에 생긴 새로운 힘.
아이들이 각자의 필살기를 쏟아내는 와중에 왠지 모르게 불안해 보이는 레오.
“네 서명이 담겼어도 곧 소멸할 거다.”
나의 말을 들은 레오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하지만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퍼펑! 화르륵! 파파파파팟!
아이들이 힘을 합쳤음에도 불구하고 가짜 혼인신고서는 멀쩡했다.
“베어엉.”
“삐이잉.”
“끼이잉.”
주눅이 든 곰곰이, 삐삐, 핫도그.
“크, 크하하하하하! 보았느냐! 이것이 나의 힘이다!”
어깨가 한껏 솟은 레오.
“저것은 서명대로 이뤄질 거다!”
“야 인마! 진짜로 지율이랑 부부가 되려고 그러는 거야?”
내가 소리치자 레오는 그제야 정신이 들었는지 눈을 살짝 크게 떴다.
“그것은…….”
레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가짜 혼인신고서를 올려다봤다.
“이런. 진짜로 유부드래곤이 되게 생겼군.”
나는 레오의 어깨를 탁 쳤다.
“남의 일처럼 얘기하지 말고 얼른 취소해!”
“못한다. 이미 내 손을 떠나갔어. 저건 드래곤 세계의 약속 같은 것이라…….”
“그럼 네 힘도 아니네!”
이 황당한 일에 곧 황망한 심경이 될 것을 생각하니 다리에 힘이 풀렸다.
가짜 혼인신고서가 점점 떠올랐다.
“저것이 하늘에 닿으면 이뤄지는 것이다.”
레오도 조금 당황했는지 멍하니 떠오르는 가짜 혼인신고서를 올려다봤다.
“이런……!”
나는 가짜 혼인신고서 위로 바람이 떨어지게 했다.
휘이이이이이잉!
거센 바람이 휘몰아치며 가짜 혼인신고서가 떠오르지 못하게 짓누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버틸 수 없음을 알 수 있었다.
마치 대자연에 맞서는 기분.
“냐하아아아앙.”
그 와중에 늘어지게 하품을 하는 무룩이.
“무룩아! 너도 좀 도와!”
무룩이는 쩝쩝거리며 ‘내가 왜?’하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망할 고양이! 너 오늘 츄르는 없어!”
그러자 무룩이는 고개를 살짝 들고 혀를 낼름거리며 웃음기 가득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이미 먹었다냥.”
“뭐라고?”
“오늘 츄르는 이미 먹었다냥.”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가짜 혼인신고서가 하늘을 향해 떠올랐다.
이대로 진짜 혼인신고서가 되는 것인가.
지율이는 이렇게 허무하게 유부녀가 된다고?
드래곤 세계에서 이혼은 어떻게 하지?
아니! 이혼녀는 더더욱 말이 안 되지!
그렇다고 레오랑 부부인 것도 말이 안 되고!
그때였다.
쿵!
거대한 나무가 구부러져서 가짜 혼인신고서를 짓눌렀다.
싹이가 가짜 혼인신고서를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싹아!”
내가 화색을 띠자 싹이는 손끝을 아래로 향했다.
쿠구구구구구구구…!
싹이가 짓누르는데도 가짜 혼인신고서가 버텼다.
쿵! 쿠쿠쿠쿠쿠쿠쿠쿵!
수많은 나무들과 덩굴들이 짓누르는데도 가짜 혼인신고서 한 장이 버텼다.
“소용없다. 저것은 드래곤 세계의…….”
레오가 말을 마치기 전이었다.
쿠우우우우우우우우…….
싹나무의 일부가 구부러져서 가짜 혼인신고서를 짓눌렀다.
가짜 혼인신고서는 천천히 짓눌려 바닥에 닿았다.
“말도 안 돼…….”
당황스러운 기색이 가득한 레오.
“말도 안 된다. 대체 어떻게…?”
아무래도 싹이의 힘도 엄청나게 거대한 듯하다.
문제는 가짜 혼인신고서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
“이렇게 눌러둘 수는 있지만, 그게 끝이다. 파괴할 수는 없어.”
싹이의 말에 레오가 웃음을 터트렸다.
“크, 크하하하! 그렇지! 그래! 그건 쉽게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레오의 등짝을 때렸다.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레오도 자기 잘못은 아는지 등을 어루만지며 눈치를 살폈다.
“아무튼 그게…….”
그때 지율이가 가짜 혼인신고서를 짓누르고 있는 싹나무 앞에 쪼그려앉았다.
모두 지율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지율아?”
내가 목소리를 냈는데, 지율이가 가짜 혼인신고서의 끄트머리를 잡았다.
푱.
지율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싹나무 아래 깔려 있던 가짜 혼인신고서를 뽑아냈다.
다들 벙찐 얼굴로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가짜 혼인신고서는 마치 이끌리듯 하늘로 향했지만, 지율이의 손아귀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결혼 취소!”
지율이가 가짜 혼인신고서를 세로로 부욱 찢었다.
퀴유우우우우웅!
찢는 찰나, 갈라진 가짜 혼인신고서 사이로 공간이 찢어졌다.
문자 그대로 이 세상의 차원을 찢은 듯이 검보랏빛의 빈 공간이 생겼다.
가짜 혼인신고서에서는 빛이 사라지며 평범한 종이로 되돌아갔고, 세상에 생긴 균열도 차츰 메워졌다.
잠시 적막이 흘렀다.
“짠!”
지율이가 양손에 가짜 혼인신고서의 반쪽씩 잡고 들어 보였다.
“혼인신고 취소!”
그러고는 나를 보며 활짝 웃어 보였다.
“빠아! 기분 풀렸지?”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풀렸지.”
어찌저찌 잘 해결됐다.
무슨 일이 생기든 압도적인 힘이 있으면 괜찮은 듯하다.
귀촌 첫날 차원문이 생겼다 32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