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first day of my life in living alone, a portal opened RAW novel - Chapter 48
48. 냠냠 빠득빠득
강척에서 30년 넘게 장사를 했다는 소갈비 전문점 앞.
“이거 어쩌죠? 연구소에서 급히 연락이 와서……. 빨리 복귀를 해야 되는 상황이거든요.”
대역죄인이라도 된 듯한 도라경.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제가 식사를 대접하기로 했는데…….”
“정말 괜찮아요. 식사야 다음에 해도 되죠.”
나의 괜찮다는 말은 조금도 먹히지 않았다.
“다음에 꼭 식사 대접할게요. 꼭이요.”
울상을 짓는 도라경을 향해 지율이가 활짝 웃어 보였다.
“괜찮아요!”
도라경은 조금 놀란 듯 눈만 깜빡거렸다. 지율이는 가까이 다가서더니 도라경의 손을 덥석 잡았다.
“다음에 같이 먹어요!”
“……그래, 다음에는 꼭 같이 먹자.”
“네!”
“지율이 손은 참 부드럽고 따뜻하네.”
“소장님 손도 따뜻하고 부드러워요!”
“그래?”
“네! 마음씨처럼요.”
도라경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는 이내 녹아내리듯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지율이 말대로 부드럽고 따뜻한 마음씨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할게.”
“지금도 그런데.”
도라경은 미소로 말을 대신하고는 현백이의 등에 손을 가져다 댔다.
“지율이하고 인사해야지?”
“네.”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 현백이는 지율이에게 다가섰다.
“다음에 보자. 오늘 봐서 너무 좋았어.”
“나도! 또 만나!”
“응. 잘 지내고 있어.”
“그래!”
화기애애하게 인사를 나누는데 구정석은 침통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갈비가…….”
그는 토끼처럼 수시로 코를 벌름거렸다. 그리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결제는 제가 하고 갈게요.”
도라경의 말에 내가 손을 내저었다.
“아니에요, 결제는 무슨.”
“제가 식사를 대접하기로 했었잖아요.”
“다음에 하기로 했잖아요.”
짧은 실랑이를 벌이는데 구정석이 혼자 중얼거리듯 말했다.
“이렇게 인사할 시간에 들어갔었으면 몇 점은 먹다 나왔을지도…….”
도라경이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핀잔을 줬다.
“저 들으라고 그러는 거예요?”
“아닙니다. 그냥 저는…….”
“오늘 연구소에서 석식 불고기 나온다던데, 그거라도 먹으면 좀 나아지겠어요?”
“불고기……!”
일순 구정석의 얼굴이 밝아졌다. 하지만 금세 그늘이 드리웠다.
“불고기도 좋지만, 그래도 갈비한테는 안 되죠. 그것도 구내식당 불고기랑 30년 전통의 전문점 소갈비랑은, 어휴. 경량급과 무제한급의 싸움입니다.”
“……나중에 갈비 꼭 사드릴 테니까 그만하세요.”
“나중……!”
구정석은 기가 찬다는 듯이 말했다.
“지금의 갈비와 나중의 갈비는 다릅니다. 지금 이 순간 먹고 싶어 하던 저와, 미래의 저는 다를 것이란 말입니다. 지나간 갈비는 돌아오지 않는 법이죠.”
지율이가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봤다. 눈빛으로 저게 무슨 말이냐고 묻고 있었다. 나는 그냥 피식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어 보였다.
“그만해요, 다른 분들 계신 곳에서……!”
도라경이 팔꿈치로 구정석의 옆구리를 찔렀다.
“푹 들어갔죠?”
구정석이 찔린 곳을 어루만지며 물었다.
“네?”
“갈비로 채워져야 할 공간이…… 비어 있는 겁니다.”
도라경이 길게 한숨을 내쉬며 구정석의 옷자락을 살짝 끌어당겼다.
“나중에 얘기하죠.”
그러고는 나와 지율이를 향해 말했다.
“진짜로 이만 가볼게요. 지율아, 다음에 보자.”
“네, 들어가세요.”
“안녕히 가세요!”
현백이도 나를 향해 고개를 꾸벅인 뒤, 지율이와는 가볍게 포옹을 했다.
“다음에 봐.”
“응!”
구정석은 인사를 나눈 뒤에도 갈빗집에 시선을 고정했다. 도라경에게 끌려가면서까지도 그랬다. 두 사람이 은근히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럼 들어가서 먹을까?”
나의 물음에 지율이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렇게 둘이서 갈빗집으로 들어섰다. 그냥 소갈비 전문점이 아니라, 직접 축사를 운영하는 곳이었다. 소갈비가 가장 유명하지만, 생고기와 육회도 팔았다.
벽에 붙어 있는 커다란 사진. 소들이 깨끗한 축사에서 여물을 먹고 있는 모습이었다. 믿음직스럽지만, 조금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소?”
지율이가 소 사진을 가리키며 물었다.
“응, 그렇지.”
“실제로는 저렇게 생겼구나.”
“몰랐어?”
“응, 처음 봐.”
키즈채널에서 손에 끼우는 인형으로만 봐서 실제 모습을 모르고 있었다.
“그래? 그럼 꼭꼭이 처음 봤을 때 놀랐겠네?”
“꼭꼭이는 멋있는 닭 같아.”
“닭은 알아?”
“응!”
“그럼 곰곰이는?”
“곰돌이도 본 적 있어.”
“삐삐는?”
“삐삐는 놀라웠어. 근데 동화책에 있는 그림하고 비슷했어!”
지율이는 다시 소 사진으로 시선을 옮겼다.
“쟤네들을 먹는 거구나…….”
“……그, 그렇지.”
“맛있게 생기지는 않았어.”
“음…… 아무래도 살아 있는 모습은 그렇지.”
“귀여워서 미안하네.”
“이따가 기도하면서 미안해하고 고마워하자.”
“응!”
그때 사장 아주머니가 와서 직접 주문을 받았다.
“생고기 모둠하고요, 왕갈비 2인분 그리고…… 뼈갈비는 뭐예요?”
“뼈대에 붙어 있는 고기만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1인분 무게가 많이 나가요.”
“그럼 뼈갈비도 하나 주세요.”
갈비는 역시 뜯어야 제맛이다.
“몇 분이나 더 오세요?”
아주머니의 질문에 지율이가 답했다.
“아빠랑 저랑 둘이서만 먹어요.”
“둘이서만?”
아주머니는 내게로 시선을 옮기고 말했다.
“저희 생고기 모둠만 해도 양이 꽤 많아요. 다 못 드실 텐데.”
“일단 다 먹어보고 싶어서요. 그리고 왕갈비는 2인분 이상 가능하다고 해서.”
“많이 주문하시니까 1인분만 맞춰드릴 수도 있어요.”
“그냥 2인분 다 주세요.”
“그럼 남은 건 말씀하세요, 포장해드릴 수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주머니가 생긋 웃어 보인 뒤 몸을 돌렸다.
지율이는 처음 먹는 갈비가 기대되는지 싱글벙글 웃었다.
“그렇게 좋아?”
“응!”
“아빠도 갈비 진짜 오랜만에 먹네.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기억도 안 나.”
“얼마나 오래됐어?”
“아마 10년은 됐을걸?”
“10년이면 얼마나 길어?”
“음…….”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열 밤을 자잖아?”
“응.”
“열 밤을 열 번 자야 돼.”
“그렇게나 길어?”
“아직 끝이 아니야. 열 밤을 열 번 자는 걸 서른여섯 번쯤 해야 돼.”
“열 밤을 열 번…… 그걸 또…….”
지율이는 손가락을 접어가며 생각했지만, 안 되겠는지 불안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하하, 지금은 몰라도 돼. 금방 알게 될 거야.”
“알게 되는 거구나.”
“응. 그러니까 지금은 편하게 먹는 데 집중해.”
“알았어!”
밑반찬들이 깔렸고, 사장 아저씨가 숯불을 가지고 왔다.
“조심하세요오.”
지율이는 숯불과 석쇠를 보고는 눈을 반짝였다.
“우리 아빠도 이거 할 줄 알아요! 자주 불덩이 만들어요!”
“그래? 아저씨네는 참나무 숯이라 향이 더 좋을 거야.”
“참나무 숯?”
“응. 참나무로 만든 숯이야.”
“잘 모르겠지만 알겠습니다!”
아저씨는 허허 웃으며 몸을 틀었다.
“금방 맛있는 고기 갖다 줄게요오.”
곧이어 아주머니가 고기를 가지고 왔다. 친절히 다 구워주는 곳이라 먹기만 하면 돼서 편했다.
“맛있겠다!”
지율이는 고기가 익어가는 냄새를 맡더니 활짝 웃었다.
“많이 먹어.”
아주머니가 많이 먹으라는 말을 하고 자리를 뜨려는 찰나였다.
아뿔싸. 지율이는 아직 젓가락질을 하지 못한다. 손가락을 끼워서 사용하는 교정용 젓가락도 아직 어설픈 수준인데.
“사장님. 혹시 포크는 없겠죠……?”
나의 물음에 아주머니는 지율이를 힐끗 보고는 말했다.
“포크는 없는데, 어쩌죠?”
“어쩔 수 없죠.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괜찮았다. 내가 하나하나 다 먹여주면 되니까.
“오늘은 아빠가 먹여줄게.”
“아니야, 혼자 먹을 수 있어.”
“어떻게?”
“이렇게 하면 되지.”
지율이는 젓가락을 움켜쥐고 고기를 푹 찔러서 들어 보였다.
“그래, 그것도 방법이네. 혼자서 하기 힘든 거 있으면 말해야 돼.”
“응!”
앞접시에 한 점씩 놓아주면 지율이는 젓가락으로 찔러서 냠냠 잘도 먹었다.
“소는 맛있게 생기지는 않았는데 이렇게 맛있어질 수 있네.”
“많이 먹어.”
“아빠도!”
등심으로 시작하여 우삼겹으로 마무리한 생고기 모둠.
중간에 서비스라며 육회 조금과 소고기가 들어간 육개장도 맛이 상당히 좋았다.
지율이는 육회도 가리지 않고 잘 먹었다.
잘 먹기만 해도 예뻤다.
뭘 하든 그랬다.
뼈가 붙어 있는 왕갈비 그리고 뼈대를 큼직하게 가져와서 들고 뜯어먹는 뼈갈비가 익어가는 중이었다.
“앗!”
지율이가 갑자기 깜짝 놀란 목소리를 냈다.
“왜 그래?”
“깜빡했어!”
“뭘?”
“이거!”
지율이는 양손을 모아 보였다.
“아아, 기도.”
“응!”
“지금이라도 하면 되지.”
“괜찮을까?”
“그럼.”
“그럼 지금이라도 하자!”
“그래.”
지율이는 양손을 모으고 기도를 옹알거리며 기도했다. 기도의 대상이 궁금했고, 기도를 마치면 물어볼 생각이었다.
다시 눈을 뜬 지율이는 소갈비를 보며 말했다.
“미안해. 근데 너무 맛있어. 잘 먹을게. 고마워.”
기도의 대상은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될 듯했다.
“이건 이렇게 뜯어먹으면 되는 거야.”
뼈갈비 끄트머리에 휴지를 칭칭 감아서 건넸다.
“우와아아아.”
지율이는 뼈갈비가 마음에 드는지 입이 귀에 걸렸다.
나도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는데, 생각 이상으로 부드럽고 맛있었다. 양념도 깊게 잘 배어 있고 육즙도 풍부했다. 뼈에 바짝 붙어 있는 부분은 특유의 질김이 있었는데, 그게 깨끗하게 싹 벗겨져서 씹는 맛이 있었다.
빠득!
갈비를 먹을 때 날 만한 소리는 아니었다.
빠드득! 빠득!
그랬다. 지율이는 갈비뼈까지 씹어먹었다. 심지어 소갈비뼈를.
“아니, 무슨 하이에나도 아니고…….”
황급히 지율이 쪽으로 다가가 살폈다. 역시나 지율이의 치아는 괜찮았다. 식사 중은 맞는지 싶을 정도로 새하얀 치아는 빛까지 반사할 것 같았다.
“괜찮아?”
“응! 맛이 썩 괜찮아!”
이런 말은 또 어디서 배웠는지.
어느새 손님들이 꽤 많아져서 갈비집 내부는 북적거렸다. 지율이가 뼈를 씹는 소리를 신경 쓸 사람은 없는 듯했다.
“뼈도 맛있어?”
“응, 괜찮아. 근데 고기 부분이 더 맛있어.”
“그럼 굳이 안 먹어도 돼.”
“그런 거야?”
“그럼.”
“그럼 고기만 먹을래.”
“그래, 뼈는 남겨.”
“아니야, 가져갈 거야.”
“가져간다고? 왜?”
개를 키운다면 확실히 챙길 가치가 있긴 했지만, 우리한테 개는 없었다.
“싹이랑 곰곰이 줄 거야. 무룩이랑 삐삐는 안 먹겠지?”
“싹이랑 곰곰이도 먹을지 모르겠는데.”
“싹이는 뭐든지 다 먹으니까 괜찮아.”
“그런가?”
그렇게 둘이서 오붓한 식사를 마쳤다.
카운터로 향하자 아주머니가 생긋 웃어 보였다.
“맛있게 드셨어요?”
지율이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네에! 맛있었어요!”
나는 조용히 웃으며 지갑을 꺼내 들었는데, 아주머니가 말했다.
“이미 계산 되셨어요.”
“네? 누가 계산했어요?”
“아까 여자분이 전화 주셔서 계산 마치셨어요.”
도라경이었다.
“아……. 그냥 계산할게요. 그분한테는 환불 부탁드립니다.”
“전화 주신 분이 그러실 거라고, 절대 받지 말라고 하시던데요? 저희는 어쩔 수가 없네요.”
아주머니는 웃으며 말했다.
“나중에 그분께는 직접 갚으시는 게 어떠시겠어요?”
“아무래도 그래야겠네요.”
그때 지율이가 도끼눈을 뜨고 주먹을 쥐어 보였다.
“원수는 꼭 갚아야 하는 것……!”
“어어?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어?”
나의 물음에 지율이가 해맑게 대답했다.
“만화에서. 악당이 이렇게 말했어.”
아이들이 보는 만화에서 이런 말을 해도 괜찮은가?
“그래? 그래서 악당은 어떻게 돼?”
“나중에 미안하다고 사과해. 그리고 주인공이랑 친구야.”
악당이 개과천선을 하는 클리셰인 듯하다. 너무 걱정 안 해도 되겠지.
“그리고 둘이 결혼해.”
화들짝 놀란 내가 고개를 돌렸는데, 지율이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또 다른 악당이 생겨. 원래 주인공을 좋아하던 여자애거든. 그리고 그 여자애를 좋아하던 남자애도 분노해. 주인공이 여자애 마음을 아프게 했다고. 그래서 악당 둘이 결혼해.”
“어? 어어?”
점점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중에 아빠랑 같이 보자.”
“응!”
교육상 괜찮을지가 아니라, 대체 무슨 내용인지 내가 궁금해서였다.
강척에 위치한 30년 전통 소갈비 전문점.
사장인 중년 남자는 김토일과 지율이가 먹고 간 자리를 치우고 있었다.
‘보기 좋은 부녀였어. 우리 애도 딱 그만할 때가 있었는데. 이제 다 커서는 취직까지 했으니 원. 오랜만에 전화나 해볼까? 귀찮아하지는 않겠지? 얼굴 좀 봤으면 좋겠는데.’
중년 남자는 미소를 머금은 채 치우다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가 떨리는 손으로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 지율이가 먹다 만 소뼈였다.
‘씹은 자국인데? 이게, 어떻게…….’
중년 남자는 부서진 소뼈를 이리저리 살폈다.
‘아니, 나머지는 어디 간 거야? 이빨은 괜찮나?’
그가 30년 이상 고깃집을 하면서 처음 겪는 일이었다.
요트를 타고 휴도로 향하고 있었다.
슬슬 어둑어둑해졌다.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에는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두워지고 있는 데도 불편함은 느끼지 못했다.
밤눈이 밝아졌다.
나는 천천히 요트를 몰면서 주머니에 넣어뒀던 가족관계증명서를 꺼내 들었다.
다시 봐도 가슴이 뭉클해지고 뜨끈해졌다.
이따 사진을 찍어서 고성우에게 보내줘야겠다.
고성우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빨리 정식으로 가족이 되지는 못했겠지.
그렇게 휴도로 향하는데 갑자기 확 어두워졌다.
“어?”
시선을 멀리 두면 지금 요트가 있는 곳보다는 밝았다.
고오오오오오오오오오…….
익숙한 느낌에 고개를 들려는 찰나,
“빠아!”
지율이가 하늘을 가리켰다.
고개를 들자 언제 어디서 나타났는지 하늘혹등고래가 보였다.
끼요오오오오오오오오……!
하늘 전체가 울리는 듯한 울음소리.
그늘은 계속 우리 위를 드리워 있었다.
마치 경주라도 하듯이 하늘혹등고래는 속도를 맞춰서 하늘을 헤엄쳤다.
“우와아아아아아아…….”
지율이는 입을 크게 벌린 채 하늘혹등고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도 생각지도 못한 경험에 미소를 짓다가 휴대폰을 꺼내 들어 촬영 버튼을 눌렀다.
“역시나 안 되네.”
하늘혹등고래가 마력으로 파장을 일으켜 카메라에 담기지 않았다.
“뭐 좋은 일이 있으려나…….”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리는데 하늘혹등고래의 높이가 점점 낮아졌다.
“어? 어어?”
아차 하는 순간이었다. 순식간에 불과 약 5미터 정도의 높이까지 다가왔다. 그 누구에게 말해도 믿지 않을 상황. 말도 안 되게 낮게 날았다. 요트가 바람의 통로에 들어선 묘한 느낌.
철썩!
기분 탓이 아니었다. 몇 차례 요트 전체가 들렸다. 수면 위로 떠올랐다가 다시 떨어졌다.
행운의 상징이고, 하늘의 천사라 불리는 하늘혹등고래.
하지만 지나치게 가까우니 긴장됐다.
“꺄하하하하핫!”
지율이는 그저 좋아하면서 활짝 웃었다.
그 순간 나는 안심했다. 내가 지율이를 안심시켜야 되는데. 그럴 필요가 없으니 괜찮겠지. 하늘혹등고래의 마력에서도 평온함이 느껴졌다.
“음?”
그때 하늘혹등고래의 마력의 느낌이 묘하게 변했다. 그리고 하늘혹등고래가 지느러미를 펼친 채 옆으로 기울었다. 거대한 지느러미 끝이 바다를 스쳤다.
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시원한 파도가 생겨났다. 짙푸른 파도의 끝은 하얗게 센 머리칼처럼 길게 휘날렸다.
“우와아아아! 시원해!”
지율이는 만세를 한 채 눈을 질끈 감고 웃었다.
“그러게.”
나는 잠시 운전대를 놓고 지율이를 끌어안았다.
우리에게 장난을 친 하늘혹등고래는 다시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나와 지율이는 뺨을 붙인 채 멀어지는 하늘혹등고래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서로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웃고 있는 게 느껴졌다.
행복한 귀갓길이었다.
“음……?”
휴도에 다 와 갈 때였다.
“어……? 이상하다……?”
아니, 휴도가 있던 자리에 거의 다 왔다.
“뭐지?”
휴도가 보이지 않았다.
귀촌 첫날 차원문이 생겼다 49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