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first day of my life in living alone, a portal opened RAW novel - Chapter 95
95. 가디언
식사를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식사 준비를 하는 것은 아니다.
재능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요즘은 밀키트 같은 것도 있으니까.
사실 고난이도 요리가 아니라, 가벼운 한 끼 식사야 조금의 정성만 있으면 가능하다.
여건이 따라주지 않으면 어차피 선택권은 없지만.
과거의 토일은 돈을 아끼기 위해 직접 요리를 했다.
지금은 경제적 자유를 얻었음에도 직접 요리를 해야 했다. 토일이 하지 않으면 할 사람이 없었으니까.
섬에 사는 게 아니었더라도, 요리를 해줄 사람이 있었더라도 결과는 같았겠지만.
‘쌀은 불려뒀고, 베이컨이랑 양파랑 마늘이랑…….’
요리가 즐거웠다. 시작부터 끝까지 즐거운 일이었다. 특히 지율이와 다른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볼 때가 제일 행복했다.
‘그나저나 오늘따라 소란스럽네.’
토일은 네모집을 힐끗 보고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식사 준비에 한창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냥…….’
같은 시각, 네모집 안에서는 지율이와 곰곰이, 삐삐가 쫑알거렸다. 가운데서 소나기를 맞듯이 얘기를 듣고 있는 무룩이는 가까스로 정신줄을 잡았다. 제멋대로 움직이는 듯했던 동공도 원위치로 돌아왔다.
‘대체 뭘 어떻게 하라는 거냥…….’
지금까지 무룩이는 받아주는 입장이 아니었다. 그런 경험을 못했다. 문제가 생기면 힘으로 해결하면 됐다.
‘나는 대장이다냥…….’
잠시 어지러워하던 무룩이가 목소리를 높였다.
“싸, 싸울 테냥……!?”
지율이, 곰곰이, 삐삐의 목소리가 멈췄다.
잠깐의 적막.
“베어엉…….”
“삐이이…….”
곰곰이와 삐삐는 그 어느 때보다 시무룩한 모습이었고, 이에 무룩이는 당황했다.
‘왜들 저러는 거냥? 어째서 나보다 눈썹이 내려가는 거냥?’
반대로 지율이는 조금 놀랐지만, 오히려 표정이 밝아지고 있었다.
“뭐, 뭐냥……?”
조금 전까지 울 것만 같았던 지율이의 표정이 밝아지니 무룩이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안 싸울 거야!”
“냥?”
“나는 무룩이랑 절대! 절대절대 싸울 일 없어!”
지율이는 곰곰이와 삐삐를 와락 끌어안았다.
“너희하고도 싸울 수 없어! 미안해!”
그러고는 속마음을 털어놨다.
“너희가 미워서 그랬던 게 아니야. 서운했던 거는 싹이가 노력했으니까, 그래서 다 같이 예쁘게 봤으면 좋겠는데 그런 거 같지가 않아서, 그래서 그랬어.”
지율이는 왠지 모르게 다시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입술에 힘을 꾹 주고 삼켰다.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산타 할아버지가 우는 아이에게는 선물을 안 주신대.’
마음속으로 흥얼거리는 노래.
“히힛.”
노래를 부르다 보니 기분이 좋아진 지율이는 볼살이 올라가도록 미소를 지었다.
“애옭?”
다시 한 번 혼란에 빠진 무룩이는 약간의 두려움을 느꼈다.
‘역시 보통 녀석이 아니다냥……. 내 자리를 넘볼 수 있는 유일한 녀석일지도 모르겠다옹.’
묘하게 지율이를 라이벌로 인식한 무룩이였다.
토일은 서열 3위, 곰곰이는 4위, 삐삐는 5위, 밖에서 사는 싹이는 6위로 생각하고 있었다.
마음을 다잡은 지율이는 무룩이와 곰곰이, 삐삐를 꼭 끌어안았다.
“내가 미안해! 내 마음만 있는 게 아니라, 너희들 마음도 있는 건데!”
“고옴, 고옴, 고오오옴.”
“삐삐삐삐삐삐삐.”
지율이는 활짝 웃으며 아이들을 더 꼭 끌어안았다.
“그랬구나. 그냥 조금 달랐던 거구나.”
그 와중에 벽 틈에서 지켜보고 있던 싹이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천천히 사라졌다.
‘내가 나설 필요는 없겠구나.’
아이들이 다투는 것 같아서 걱정되었던 싹이였다.
* * *
오늘의 메뉴는 베이컨 크림 리조또.
쌀은 충분히 불어 있는 상태.
달군 궁중팬에 베이컨을 먼저 볶다가 물기를 뺀 불린 쌀도 넣는다.
치이이이익!
어디서 배운 것도 아닌데, 요리도 하다 보면 확실히 는다. 웍질을 하자 쌀과 베이컨이 뒤섞여 튀어오른다.
촤촤촤촤촤촤촤촥!
쌀이 반투명해지면 잘게 썰어둔 야채들을 넣는다. 야채는 취향껏 넣으면 되지만, 양파와 마늘, 버섯 정도만 넣으면 충분하다.
물을 적당히 넣고 다시 볶는다. 사실 끓이는 것에 가깝다. 처음부터 익히지 않은 쌀로 요리를 하기에 필요한 과정이다.
생각보다 수분이 빨리 날아간다. 한 번 더 물을 붓는다. 재료 양에 따라 한두 국자 정도 부으면 적당하다. 모자라면 조금 추가하면 되지만, 넘치면 수습이 어려우니 자신 없으면 조금씩 진행한다.
또다시 수분이 없어지면 거의 다 왔다. 원래는 우유를 넣지만, 나는 오늘 밀크본 열매를 준비했다.
사실 이걸 위해서 메뉴로 리조또를 골랐다. 살면서 리조또라는 걸 먹어본 적도 없었다. 굳이 먹어보지 않아도 대충 상상은 가는 맛이긴 했지만.
밀크본 열매 하나를 다 넣었다.
“오…….”
엄청나게 고소한 풍미가 바로 확 올라왔다.
파마산 치즈가루와 소금, 후추로 간을 한다.
적당히 볶아주다가 마지막에 불을 끈 상태에서 뚜껑을 덮고 약 5분 정도 뜸을 들인다.
뚜껑으로 덮어도 가려지지 않는 고소한 향이 퍼진다.
“고오오옴!?”
곰곰이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음?”
네모집 2층에 창문이 생겼다. 나뭇가지로 이루어진 창틀에 재료가 뭔지 모를 창도 있었다. 투명한 막이 유리를 대신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싹이가 알아서 했겠지?”
휴도의 가족들 모두 완전히 신뢰할 수 있다 보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돼서 좋다.
“왜 그래 곰곰아?”
“고오오오옴!”
크림 리조또 냄새를 맡고 그러는 듯했다.
“이제 다 됐어. 다 같이 내려와.”
“고옴!”
곰곰이는 다급히 몸을 돌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곰곰곰곰곰곰곰곰! 곰곰곰!”
금세 모두들 나와서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테이블 앞에 자리를 잡은 모두 유난히 얼굴이 밝았다. 평소보다 미소를 잔뜩 머금고 있는 게 뭔가 이상했다. 원래도 잘 웃기는 했지만, 무슨 일이 있었떤 것 같았다.
“음……?”
내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고 의문 섞인 목소리를 내자 지율이는 새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더 활짝 웃어 보였다. 그리고 무룩이와 곰곰이, 삐삐를 슥 쳐다봤다.
곰곰이와 삐삐도 나를 향해 묘하게 웃어 보였다.
반대로 무룩이는 왠지 모르게 피곤한 듯했지만, 표정이 나쁘지는 않았다.
아이들끼리도 무슨 일이 있을 수 있겠지 싶어서 굳이 묻지 않고, 베이컨 크림 리조또를 덜기 시작했다.
지율이, 무룩이, 곰곰이와 다르게 삐삐는 따로 준비해줬다.
“삐삐는 이거.”
밀크본 열매를 따뜻하게 데운 것을 그릇에 담아서 냈다.
“삐삐삐!”
삐삐는 마음에 드는지 냄새를 맡고는 양팔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자, 먹어볼까?”
내가 말하자 지율이가 숟가락을 쥔 채 손뼉을 쳤다.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는 것이었다. 삐삐도 지율이를 따라 손을 모았다.
“고, 고옴.”
곰곰이도 얼른 앞발을 모았다.
나도 천천히 손을 모으며 무룩이를 힐끗 봤다.
“냐, 냥…?”
무룩이도 눈치를 살피다가 앞발을 가운데 모았다. 녀석은 모으고 있는 게 힘든지 자꾸만 모은 앞발이 아래로 떨어졌다.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를 되새기며 감사한 마음을 품었다.
종종 돌아가신 이모할머니를 떠올랐다. 휴도를 물려받지 못했더라면 지금의 만남도, 행복도 없었을 테니까.
눈을 뜨자 다들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 기다렸어? 미안해.”
지율이는 고개를 크게 가로저었다.
“괜찮아!”
“고옴!”
“삐삐삐!”
“냥.”
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손짓을 했다.
“먹어봐. 많이 뜨겁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조심하고.”
“잘 먹겠습니다아아아!”
“고오오오옴!”
“삐삐이이!”
“냥.”
지율이는 리조또를 크게 한 술 떠서 입에 넣더니 만족스러운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음! 이 맛이야!”
어디서 배운 건지, 아니면 그냥 우연인지. 옛날 티비 광고 멘트와 똑같아서 웃음이 나왔다.
“이 맛이야?”
“응! 굉장해!”
“많이 먹어. 모자라면 더 있어.”
“응! 아빠도 많이 먹어!”
지율이는 리조또에 숟가락을 푹 찔러넣으며 말했다.
“나는 크리스마스에 선물받을 거야.”
“그래? 갑자기 왜?”
“산타 할아버지하고 약속을 지켰거든.”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응? 산타 할아버지를 만났었어?”
“아니? 본 적 없어.”
“근데 갑자기 왜?”
“그런 게 있어.”
“비밀이야?”
“딱히 비밀은 아니야.”
“그런데?”
지율이가 잠시 망설이는데 핑크빛 혀로 리조또를 먹던 무룩이가 고개를 들었다.
“잠시 대치했다냥.”
“어?”
“서열 정리가 필요했다옹.”
무룩이는 지율이를 한 번 쳐다보고는 말했다.
“보통이 아니지만, 아직 내 자리를 넘보기는 이르다냥.”
갑자기 무슨 소리인지 정확히 이해는 어려웠다.
“싸우기라도 한 거야?”
나의 물음에 지율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절대 싸울 일은 없어.”
소란스러워도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직접 보지를 못했으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했다.
아이들에게서는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다는 말을 이제야 완벽히 이해한 느낌이다.
예전에는 사고가 날까봐, 안전을 위해서만 아이들에게서 눈을 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안전을 위해서가 최우선이겠지만, 아이와의 모든 순간을 기억하고 싶은 탓이었다.
찰나의 순간도 놓치지 않고 눈에 담고 머릿속에 간직하고 싶은 마음.
보통 육아는 전쟁이라는데, 내게는 행복하기만 했다.
“맛있군.”
곁에서 울린 목소리.
싹이였다.
어느새 옆에 나타나서 나무 숟가락으로 내 크림 리조또를 떠먹고 있었다.
“뭐, 뭐야? 갑자기?”
“향이 좋았다.”
싹이는 나와 눈을 마주치면서 크림 리조또를 한 술 더 먹었다.
“새거 줄게, 왜 먹던 걸 먹고 있어.”
“깨끗하다.”
“뭐… 그래, 많이 먹어.”
“맛있구나.”
“괜찮지?”
나는 괜히 베이컨이 신경 쓰였다.
“육식도 잘하네?”
그전에도 동물성 식품도 정원에 뿌린 적이야 많았다. 하지만 정원 자체에서 퇴비처럼 만들어 흡수를 하는 것과 사람 형태의 싹이가 직접 입으로 먹는 것은 느낌이 달랐다.
“물론이다. 전부 좋은 영양소다.”
싹이는 리조또가 마음에 들었는지 순식간에 한 그릇을 싹 비웠다.
“싹아, 많이 먹어!”
“너도 많이 먹거라.”
나는 피식 웃으면서 리조또를 더 뜨기 위해 일어났다.
* * *
늦은 오후.
“아하하하핫!”
“고오오옴!”
“삐삐삐!”
“애오오옭!”
지율이, 무룩이, 곰곰이, 삐삐는 덩굴을 타면서 놀고 있었다. 아무 곳으로나 몸을 던져도 덩굴이 낚아채서 다시 위로 올렸다. 네모집 지붕에 앉아 있는 싹이가 놀아주고 있었다.
덕분에 나는 설거지를 마친 다음 잠시 여유를 즐겼다.
선베드에 눕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고성우의 전화였다.
“여보세요?”
―어, 나다.
“무슨 시골에 계신 할머니처럼 말하네.”
―시끄럽고, 뭐 하냐?
“아까 밥 먹고 쉬고 있어. 왜?”
―그냥.
“심심하냐?”
고성우가 코웃음을 쳤다.
―내가 심심할 틈이 어딨어? 바빠 죽겠는데.
“바쁜데 왜 전화했어?”
―그냥 안부 물어보려고.
“조만간 시간 되면 휴도 한 번 들러.”
―내가 그냥 갈 수 있나?
“못 오지. 너 배 없잖아?”
―그렇지, 배 없지. 비행기나 헬기로 갈 수 있나?
내가 눈썹을 찡그리고 물었다.
“비행기나 헬기가 있어?”
―그건 아니지.
“이상한 소리를 해 자꾸. 내가 강척으로 마중 나가야지.”
―그래, 조만간 한 번 초대해 줘.
“그래, 맛있는 거 먹자.”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싱겁기는.”
내가 중얼거리자 덩굴을 타고 있던 지율이가 질문을 쏟아냈다.
“싱거워? 뭐가 싱거워? 아빠 혼자 뭐 먹었어?”
“아니, 성우 삼촌.”
“성우 삼촌 싱거워?”
“그런 편이지.”
“그럼 아빠는 짭짤해?”
“안 그래!”
“아니야?”
“응.”
“그럼 달아?”
“달지도 않지.”
그렇게 한참 동안 지율이와 만담을 하듯 얘기를 나눴다.
* * *
같은 시각.
토일과의 전화를 마친 고성우가 고개를 들었다.
앞에는 조금 불안한 눈빛을 하는 조민택이 앉아서 눈치를 살폈다.
“김 대표님은 뭐라고 하시나요?”
“일단 접근은 쉽지 않다고 하네요.”
“어떻게 하실 겁니까?”
“더 알아봐야죠. 허락받지 않은 놈들이 휴도에 들어가게 둘 수는 없으니까요.”
귀촌 첫날 차원문이 생겼다 96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