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first day of my life in living alone, a portal opened RAW novel - Chapter 96
96. 은혜
깍지를 낀 양손. 오른쪽 검지가 자꾸만 왼쪽 손등을 긁었다. 초조함이 묻어나는 듯했다. 최소 고민을 하고 있음은 분명해 보였다.
깍지 낀 손의 주인은 JMT 글로벌의 대표인 조민택.
차원문 관련 사업에 손을 댄 지 벌써 십여 년. 남의 회사에서 굴렀던 기간까지 생각하면 경력 20년 이상.
차원문 관련 경매에는 초창기부터 참여했으니, 나름대로 전문 분야가 확실했다.
조민택은 어디를 가든 스스로를 베테랑이라고 자신 있게 소개를 늘어놨다. 그리고 고객들을 항상 만족시켜왔다.
단순히 좋은 값으로 거래를 해서, 원하는 물건을 잘 구한다고 해서 모든 고객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옵션이 필요했다. 각각 고객마다 필요로 하는 옵션.
조민택은 다양한 옵션들마저 언제나 충족시켰다.
토일의 경우 정직하면서도 좋은 값의 거래가 기본이었고, 좋은 일에도 함께 참여했다. 선한 영향력을 널리 퍼트렸고, 어디서도 구하지 못하는 좋은 물건들이 공급되니 시장 자체도 활성화됐다.
예를 들어 슈퍼허니포켓.
허니포켓 중에서 맛이고 영양이고 으뜸이긴 했지만, 일반 허니포켓하고 비교했을 때 영양성분이 곱절로 뛰어난 수준은 아니었다.
다르게 말하면 슈퍼허니포켓까지는 아니어도, 허니포켓으로 어느 정도 만족을 느끼는 것도 가능했다.
어디까지나 슈퍼허니포켓을 맛보지 못한 사람 한정이지만.
슈퍼허니포켓의 유행은 허니포켓의 유행까지 이끌었고, 덕분에 허니포켓 농가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허니포켓을 즐긴 사람들의 컨디션이 좋아졌다는 후기에 건강한 유행이 번졌다.
‘참 훌륭한 사람이야.’
조민택에게 토일이 그냥 고객이 아닌 지는 오래됐다. 거래를 텄을 초반부터 이미 비즈니스 파트너처럼 여겼다. 그리고 지금은 인간적으로 존경했다.
‘덕분에 나도 더 좋은 일도 하고.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인 줄 알았으면 진작했을 텐데.’
아이러니하게도 토일을 따라 선행을 하고 나서 좋은 일들이 많이 생겼다.
세상에 카르마가 있듯이, 그 반대도 있다고 생각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언젠가 꼭 돌아오기 마련이야.’
조민택이 토일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하는 것 중 하나는 비밀 유지.
휴도는 브랜드명이자 산지. 하지만 실제로 어디에 존재하는지는 비밀. 토일이 대표라는 것도 역시 비밀이다.
조민택은 이 비밀 유지를 단순히 입을 다무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자신이 퍼트리지 않더라도, 누군가 휴도에 대해 캐낼 수도 있는 일.
조민택은 무슨 일이 있어도 토일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할 심산이었다.
‘그게 내가 은혜를 갚는 길이다. 김 대표님이 아니었으면 JMT 글로벌이 이렇게 빨리 성장할 수도 없었어.’
하지만 조민택은 어디까지나 중개업자에 가까운 입장.
지금까지 뛰어난 수완으로 많은 위기들을 극복했지만, 부족한 점이 있었다.
무력.
무력을 활용할 일이 없었으니, 그 요소가 약한 것은 당연한 일.
경호 등을 위해 기본은 갖추고 있지만,
문제는 현재 휴도를 추적하는 이들이 전부 헌터로 파악된다는 것.
개중에는 등록도 되지 않은 각성자들이 포함되는 것으로 보였다.
헌터로 등록해서 손해를 볼 일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설령 후에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헌터인 것이 유리한 점이 많을 정도.
헌터로 등록이 돼 있다고 더 쉽게 추적될 정도라면 어차피 잡힐 운명.
“대충 파보니까 차원문 현장에 자주 얼씬대는 것 같더라고요.”
조민택은 양손 깍지를 낀 채 한숨을 내쉬고는 고성우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처음부터 헌터로 등록도 하지 않고, 활발히 활동을 한다, 사실 그림은 뻔해 보입니다.”
평소였다면 어떻게 처리할지 난감한 상황.
하지만 지금은 압도적인 무력이 눈앞에 있었기에 조민택은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단지 고민되는 부분은 하나.
“김 대표님한테 말씀드려야 할까요?”
고성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그냥 저희끼리 해결하죠. 어차피 뻔한 놈들인데. 보니까 조금 파보면 구린 구석도 많을 것 같고. 토일이 신경 쓰이게 할 필요는 없죠.”
마치 점심 메뉴는 짜장면으로 하자는 정도의 말투. 그 정도로 당연하고 편한 일을 얘기하는 듯했다.
조민택은 강한 신뢰감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 * *
좋다.
해는 모습을 숨긴 지 오래지만, 나는 여전히 선베드 위에 늘어져 있었다.
예전에 나는 얼마나 부지런했는지를 하루 동안 누운 횟수를 두고 판단하기도 했다.
나는 하루에 딱 한 번만 누웠다.
잘 때를 제외하고는 절대 눕지 않았다.
누우면 늘어지게 되고, 게을러진다고 믿었다.
더 나아가서는 앉는 횟수마저 줄였다.
식사마저도 서서 해결했다.
효과는 있었다.
서 있는 만큼 더 일을 했다.
몸에 쑤시는 곳이 늘어날수록 통장의 잔고도 늘어났다.
때로는 편협한 생각에 젖어 살기도 했다.
편하게 쉬는 사람들을 볼 때면 속으로 손가락질을 하며 우월감을 느꼈다.
‘저렇게 게으른 사람들은 잘못 살고 있는 거다’, ‘내가 옳다’고.
딱히 일을 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고, 오히려 나보다 더 열심히 일하다가 쉴 때는 제대로 쉬는 사람들이었을 수도 있는데.
몸은 편히 쉬고 있어도 머릿속으로는 치열하게 일을 할 수도 있는 것이고.
우물 안의 개구리는 우물 안 세상밖에 모른다고, 사람이 확실히 자기 세계에만 빠지면 결국 매너리즘으로 이어지는 듯하다.
조금 아쉬움은 있지만, 부끄럽고 수치스럽지는 않다. 그런 시절도 있었고, 그것들이 쌓여서 지금의 내가 됐으니까.
휴도에서 마냥 늘어져 있지만은 못하다.
지율이가 아무리 똑똑하고, 손이 안 가는 아이라고 해도, 그래도 육아는 육아다.
무룩이, 곰곰이, 삐삐도 은근히 챙겨야 한다. 가끔은 싹이도 내 손을 필요로 하고.
이제는 일을 열심히 할 때는 하고, 여유를 즐길 수 있을 때는 즐긴다.
가끔은 지금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불어터진 라면처럼 푹 퍼져 있다.
이 평화로움이 좋다.
아이들과 식사할 때면 매번 기도를 하듯 지금의 감사함을 표현한다.
이 은혜를 어디에 어떻게 갚을지 고민하다가, 요즘은 세상 전체에 갚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나는 무조건적으로 나누고 베풀며 사랑이 넘치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
애초에 개인주의적인 면이 강하기에 혼자 살 생각으로 섬에 들어왔고.
나와 가족들의 행복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할 뿐이다.
“뭐 하고 있냥…?”
무룩이가 옆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갑자기 왜?”
“그냥 묻는다냥.”
“별일이네.”
“나는 휴도의 대장이다냥. 항상 모두를 살핀다옹.”
“그래?”
내가 피식 웃자 무룩이가 발끈했다.
“비웃는 거냥?”
“아니야, 좋아서 그래. 좋아서.”
“그러냥?”
“애들은?”
“안에서 놀고 있다냥.”
“뭐 하는데?”
“회색 고양이가 갈색 쥐를 잡으러 다니는 만화를 본다냐옹. 그런데 자꾸 고양이가 바보처럼 당하기만 해서 보기가 싫다냥.”
내가 어렸을 때도 고전이었던 만화인데, 그걸 아이들이 보고 있다고 하니까 기분이 묘했다.
“그래? 그거 재밌는 건데.”
“재미가 없지는 않다냥.”
“근데?”
“고양이가 당하는 게 싫다냥.”
나는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당하는 것 같아도 결국 둘이 친구인 거잖아.”
무룩이는 깜짝 놀랐는지 고개를 홱 돌려 나를 쳐다봤다. 눈은 크게 뜨고 입은 살짝 벌어진 게 진짜로 충격적이었나 보다.
“진냐냐냥, 진짜냥?”
“그럼. 내가 거짓말을 왜 해.”
“근데 왜 자꾸 서로 못 괴롭혀서 안달이냥?”
“만화잖아.”
“만화는 거짓말도 하고 가짜가 나오는 거냥?”
무룩이에게는 꾸며낸 이야기의 개념이 조금 어려웠던 듯했다.
“그렇지. 그냥 재미만 있으면 되는 거니까.”
“어렵다냥. 인간들은 이상한 걸 참 잘 만든다냥.”
나는 말없이 무룩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느새 하늘은 먹물을 머금은 듯이 어두워졌고, 노른자 같은 달 그리고 그 새끼들처럼 별들이 흩뿌려진 걸 올려다봤다.
“빠아아아아아!”
지율이가 힘차게 뛰어나왔다.
“뭐 하고 있어?”
“달님이랑 별님 보고 있어.”
“나도 볼래!”
지율이는 내 위로 올라오더니 그대로 누웠다.
순간적으로 숨이 턱 막혔지만, 강인해진 신체 덕분에 괜찮았다.
싹이가 만든 선베드도 톤 단위를 견딜 정도로 튼튼했고.
“고옴?”
“삐삐이?”
곰곰이와 삐삐도 따라나왔다.
“곰곰아, 삐삐야. 같이 달님이랑 별님 보자.”
“고옴.”
“삐삐.”
문득 삐삐가 원래 달토끼인 게 떠올랐다.
“달에는 절구방아를 찧는 토끼가 산다는 말이 있어. 달토끼라고도 하지만, 원래는 옥토끼라고 하지.”
내가 운을 떼자 모두 관심을 보였다.
“달토끼는 삐삐인데?”
지율이가 말하자 삐삐는 빠르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삐삐삐삐삐삐.”
“옥토끼는 뭐야?”
나는 씩 웃었다.
“사실 아빠도 잘 몰라.”
“에엥?”
“삐이?”
“고옴?”
“냥?”
나는 팔짱을 끼고 달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저기 달을 보면 무늬가 마치 토끼처럼 보이잖아? 토끼가 몸을 굽히고 절구방아를 찧는 것처럼. 그래서 달토끼라고 하는데, 그전에는 옥토끼라 불렀대. 일단 색이 하얘서, 흰 토끼 대신 옥토끼라 불렀다는 얘기도 있고. 정확한 이유는 아무도 몰라.”
얘기를 듣던 지율이가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말했다.
“삐삐한테 물어보면 되잖아.”
“응?”
“삐삐가 달토끼니까.”
지율이는 삐삐를 바라보며 물었다.
“삐삐야, 왜 달토끼랑 옥토끼야?”
삐삐는 귀를 구부리며 곤란하다는 듯한 목소리를 냈다.
“삐삐, 삐삐삐삐삐삐삐.”
나는 하하 웃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삐삐 같은 아이들을 달토끼라 부르는 것도 사람들이 정한 거라서, 삐삐도 그것까지는 모를 거야.”
“아! 사람들이 이름을 붙여줘서?”
“그렇지.”
“그렇구나.”
달을 올려다보던 무룩이가 말했다.
“나는 달보다 해가 좋다냥.”
지율이는 엄청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왜애애애애애?”
“나는 따뜻한 게 좋다냥.”
무룩이는 밤기온을 살피듯 수염을 움찔거리더니 말했다.
“슬슬 날이 추워지는 게 싫다냥.”
조만간 아이들이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보금자리도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 *
같은 시각 강척항.
컨테이너들이 쌓여 있는 곳이었다.
“저, 정말 제가 이렇게 같이 가도 되는 겁니까?”
조민택은 왼손에 전기충격기를, 오른손에 가스총을 쥐고는 물었다.
“걱정 말라니까요.”
고성우가 피식 웃으며 손을 저었다.
“이, 일단 지원요청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걱정하는 게 당연했다.
휴도를 추적하는 일당이 생각 이상으로 큰 조직이었다.
컨테이너 사이사이에 숨어서 확인한 인원만 대략 스물.
외국인들도 몇몇 섞여 있는 게 보였다.
“저 안쪽 본부 인원까지 생각하면 서른… 어쩌면 마흔이 될지도 모릅니다. 아마 안쪽의 대가리는 더 셀 테고요.”
조민택도 마력 감지는 어느 정도 가능했다.
“선생님께서 강하신 건 알고 있지만, 너무 많습니다.”
능력의 상성에 따라 다르지만, 소수가 다수를 이기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세계에서 알아주는 능력자가 별볼일 없는 양아치 패거리에게 죽임을 당한 허무한 일도 있을 정도.
‘기습을 하는 입장이니 그런 식으로 당하지는 않을 테지만, 아무리 실력 차이가 나도 수십 명은 말도 안 된다. 그전에 마력이 동날 거야. 더군다나 아까 몇몇은 꽤나 실력자였어. 1대1로는 손쉽게 제압이 가능하더라도 수가 많아지면 얘기가 달라. 그 정도 실력자들은 세네 명만 돼도 힘들다.’
조민택이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는데 고성우가 걸음을 뗐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요.”
“네? 잠시, 잠시만요. 기다리세요.”
“오해하지 마세요, 저 조 대표님 좋아하거든요? 근데 기본은 장사꾼이잖아요?”
“그… 렇죠?”
“이런 일은 장사가 아니에요. 머릿속으로 계산기 두드린다고 딱 떨어지게 나오지 않습니다.”
“그, 그럼요? 그럼 어떻게 해야 됩니까?”
고성우는 씩 웃어 보였다.
“감으로 하는 거죠. 해봐야 알아요. 직접 해봐야.”
“그럼 저 인원들을 상대로 괜찮다는 건가요?”
“그것도 해봐야 알죠.”
“예?”
“뭐, 죽지만 않으면 좋겠는데.”
“네?”
고성우는 씩 웃으면서 말했다.
“쟤들요. 쟤들 중에 사망자는 안 나왔으면 좋겠는데.”
귀촌 첫날 차원문이 생겼다 9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