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100
100
변호인 강태훈 100화
범현이와 술 한잔하기 위해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인근의 포장마차로 들어왔다.
먼저 기다리고 있던 범현이 씨익 웃으며 담배 연기를 뿜었다.
“왔냐?”
“이기적인 새끼.”
“왜?”
그는 태연하게 고개를 갸웃했다.
“꼭 술도 지네 회사 근처에서 마시재요.”
“임마, 네가 좀 이해해라. 지금 시간이 몇 시냐.”
“열 한 시네.”
“나 지금까지 일했다. 집에 들어가긴 뭐하고 너하고 한잔하고 사무실에서 자려고.”
“어이구. 그럼 난 또 대리 불러서 집 가라고?”
“꼬우면 여기서 자고 출근하든가.”
“됐수다. 받아라.”
태훈은 고개를 저으며 범현의 잔에 가득 채워줬다. 사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범현이 얼마나 힘들고 피곤할지 대충 감이 온다.
이범현은 무척 꼼꼼한 성격이었다. 작은 티끌 하나도 넘기지 않는 녀석이었다. 또 검찰청에 일이 오죽 많겠는가.
사건은 매일 같이 터지지. 녀석의 성격은 꼼꼼하지 범현은 거의 매일 10시 11시나 퇴근한다.
공무원의 가장 큰 장점이 칼퇴근이라는데, 범현에게 그런 것은 없었다.
한 잔 두 잔 술이 들어가는데, 자신들도 모르게 꽤나 마셨다.
과거의 추억을 안주 삼아, 앞으로를 안주 삼아 그렇게 한잔 두잔 넉 잔 마시다 보니 소주 일곱 병이 동이 났다.
범현은 오늘따라 조금 빨리 취했다.
한 손엔 담배를 쥔 그는 다른 손으로 얼굴을 비볐다.
“푸하, 힘들다. 태훈아 사는 게.”
“누군 쉽냐?”
“큭, 우리도 그냥 남들처럼 살까, 태훈아?”
“남들처럼? 어떻게?”
범현의 장난스러운 목소리에 태훈은 픽 웃었다.
“요것도 받아먹고. 일 처리도 편하게 위에서 하라는 대로 하고. 나중에 나 나이 먹으면 검사 때려치우고 법무법인 하나 차려서 돈이나 긁어모으고, 멋들어지는 벤츠나 타면서.”
“그럴래. 정말?”
“아니.”
태훈의 되물음에 범현이 고개를 저었다. 사람은 타고난 게 있기 마련이다. 물론 태훈의 경우 한 번 데인 경우인지라 이렇게 변했지만, 범현은 그렇게 태어났다.
정의로운 아버지 밑에서, 누구보다 정의로운 검사가 되었다.
오히려 그런 삶을 버린다면 더욱 고통스러워지고 힘들어질 것이다.
탱
다시 잔이 부딪쳤다.
또 한 잔 들이켠다.
“우리 누나 보고 싶다.”
“……그래?”
나지막이 중얼거리듯 뱉어내는 그 목소리는 울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태훈은 범현을 보았다.
당장 눈에 맺힌 이슬이 떨어질 것 같았다.
친구의 약한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기에 잔에 시선을 둔다.
“만약 우리 누나 살아 있었다면 지금쯤 결혼해서 남편도 있을 테고 애도 낳았겠지? 난 그럼 삼촌이네? 푸하하…… 누나 보고 싶어. 그 녀석들 잡아야 하는데…….”
탁!
소주잔이 거칠게 테이블에 떨어졌다.
범현이 얼마나 힘들지 짐작된다.
범인 두 사람은 현재 공소시효가 만료된 상황이었다. 잡는다고 해도 법으로 어떻게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넌 할 수 있어, 임마.”
“그래, 고맙다.”
태훈은 그의 잔에 소주를 가득 따라줬다.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건 옆에서 소주 한 잔 따라주고 격려해 주는 것. 이게 진짜 친구가 아니겠는가.
“참 요즘 기태 좀 이상하더라. 얼마 전에 법정에서 한 번 봤는데.”
“그래? 난 잘 모르겠던데.”
태훈은 쓰게 웃었다. 범현도 기태의 변화를 느껴가는 듯싶었다.
“하긴, 걔도 이제 서른다섯 되 가는데. 지가 알아서 하겄지. 우리 처지도 처지인데 뭐.”
요즘 기태와 범현 태훈 세 사람의 만남이 뜸했다. 물론 태훈은 얼마 전 술집에서 그렇게 대판 목소리를 높였던 일이 있었지만, 굳이 말하진 않았다.
술을 한껏 들이켠 두 사람이 곧 함께 기어들어 간 곳은 범현의 사무실이었다.
태훈도 범현의 울적한 기분에 좀 많이 마셨기 때문인지 사무실로 들어가고 봤다.
그리고 곧 적막한 사무실에서 두 사람이 함께 잠에 빠져들었다.
* * *
“이것들을 죽여야 하나 말아야 하나.”
도혜는 혹시나 싶어서 온 범현의 사무실에서 보이는 모습에 눈살을 찌푸리며 혀를 끌끌 찼다.
어제저녁 태훈과 연락이 잘 되다가 갑자기 뚝 끊기자 오만가지 걱정이 밀려왔다.
그런 것 있지 않은가.
술 먹고 룸살롱이라도 간 건 아닐까.
여자를 만나고 있는 건 아닐까.
그 때문에 전화를 여러 번 하면서 걱정에 잠도 잘 이루지 못했는데, 와보니 둘 다 여기에서 이 꼴로 잠들었다.
시간은 일곱 시 반이었다.
태훈의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착!
“으으음…… 뭐야.”
“뭐긴 네 여자 친구다.”
“내 여자 친구는 지금 집에…… 응?”
태훈은 반쯤 감긴 눈으로 자신의 엉덩이를 때린 사람을 확인했다가 화들짝 몸을 일으켰다.
정말 자신의 여자 친구였다.
“여긴 어쩐 일로?”
“어쩐 일로? 내가 어제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
도혜가 팔을 휙 뒤로 젖혔다. 태훈이 깨갱 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이거 여자 친구 없는 사람 서러워서 살겠나. 아침부터 왜 이렇게 시끄러워.”
범현도 소리에 깬 것인지 몸을 일으켰다. 머리는 까치집을 한 그는 앉자마자 담배를 물었다.
“사무실에서 담배 피우는 꼴하곤. 쯔쯔.”
도혜가 혀를 찼다.
“시간이? 휴. 다행이다.”
태훈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직 이른 아침이었다. 도혜는 여섯 시 반에 눈 뜨자마자 태훈의 집에 갔다가 없는 듯하자 바로 이곳으로 온 것이었다.
“잘못했어, 안 했어.”
“잘못했습니다.”
“다음부턴 그러지 마.”
“네.”
“사무실에서 연애 하는 꼴하곤. 쯔쯔.”
도혜에게 복수하듯 범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도혜가 노려보자 그는 헛기침을 했다.
“해장이나 하러 갈까 태훈아?”
“좋지.”
“씻고들 나와 빨리.”
“네에.”
두 사람이 함께 화장실로 향했다.
* * *
계란반숙을 콩나물국밥 안에 살살 푼 후에 김 가루를 뿌린 후 한 수저 뜨자 얹혔던 것이 싸아- 하고 내려가는 기분이다.
“이 맛에 해장국을 먹지.”
“암.”
태훈과 범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겁지겁 먹던 중 범현의 휴대폰이 울렸다.
“네. 이 형사님. 예. 윤재중이 그 사람 수사 잘하셨습니까?”
윤재중 이름이 나오자 태훈의 고개가 자신도 모르게 절로 돌아갔다.
“혐의를 부인한다고요. 예. 일단은 알겠습니다. 저희 검찰 쪽에 한 번 출두해달라고 전화 넣어주세요. 끊습니다.”
윤재중에 관련한 수사라니 태훈으로서는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윤재중이라는 사람 변호사 아냐?”
“응, 맞아. 알아?”
범현은 대수롭지 않게 콩나물국밥을 떠먹었다.
“저번에 한 번 지나가다 봤지. 왜 무슨 사건인데.”
“경찰 쪽 수사결과는 현재까지는 윤재중 그 사람의 아내가 독극물을 마시고 자살시도를 했다, 이고 윤재중 그 사람도 무고하다고 주장하고 있긴 한데…….”
범현은 입가를 쓰윽 닦으며 씨익 웃었다.
“태훈이 너 형님 감 잘 알잖아? 내가 봤을 때 이거 살인미수사건이거든? 아니다. 어쩌면 곧 살인사건일 수도 있겠다.”
“살인사건일 수도?”
“지금 아내가 당장 오늘내일하는 상황이야. 언제 숨넘어갈지 몰라. 죽게 되면 살인사건이 되어버리는 거지.”
태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들은 윤재중의 현재의 아내는 상당한 재력가였다.
강남에만 세워놓은 건물이 있을 정도였다.
기존에는 헤어 디자이너 출신이었는데, 작게 시작한 가게가 점차 커지기 시작하면서 대박을 터뜨린 케이스인 것으로 들었다.
범현은 밥을 먹으면서 발견된 유언장과 관련해서 혹은 자신이 살인미수사건이라고 추측하는 이유 등을 설명했다.
확실히 경찰 쪽의 의견도 맞았다.
“죄책감 크게 느꼈겠지. 단란한 가정 자신이 바람 핀 것 때문에 무너지게 생겼으니까. 또 남편의 빚이 생각난 거야. 자신이 죽으면 자식들 걱정이 크게 되니까 유언장을 쓰고 자살.”
도혜는 여자인 만큼 여성의 입장으로 말했다.
“그렇지. 그리고 내 말처럼 생각하면 도박 빚이 있었던 윤재중은 아내가 유언장을 쓰게 하고 독극물을 먹게 해서 재산을 자신이 상속받고. 아내는 죽게 하는 그런 시나리오도 나올 수 있지.”
태훈은 턱을 어루만졌다.
“결정적으로 아직은 심증이네.”
“그렇지 안타깝게도 아직은 심증이지. 그러니까 파봐야지 혹시 모르니까. 수사도 더 해보고. 만약 여기에서 하나라도 의심 갈 만한 게 나오기라도 하면 그대로 구속영장 발부해서 캐보면 술술 불겠지.”
태훈은 이를 쑤시는 그를 보며 쓰게 웃었다. 윤재중이 아내를 정말 살해하였을까?
아무래도 그냥 지나갈 수 있었지만, 과거의 인연이 있었기 때문에 많은 생각이 스치게 만든다.
현재는 윤재중이 죽이려고 한 것인지, 정말 스스로 여인이 자살을 시도한 것인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태훈은 내심 후자를 바랬다.
“너, 형 감 믿지?”
그런데 범현이 꼭 이럴 때 나타나는 감이라는 게 기가 막혔기 때문에 괜히 전자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더불어서 아내가 그 정도의 재력가였고 바람을 핀 것이었다면 자신이 죽을 필요까지 있었을까 싶을 정도였다.
* * *
윤재중이 범현의 사무실로 출두했다. 출두한 윤재중의 얼굴은 슬픔으로 가득 찼다.
아내가 그런 일을 당했기에 정말 참을 수 없다는 모습이었다.
“왜 이렇게 경찰도 검찰도 믿어주지 않는 겁니까? 예? 정말 미치겠는 건 저라고요! 검사님. 아내가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누구보다 가슴이 찢어지는 사람은 나란 말입니다.”
그는 자신의 가슴을 두들기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렇지만 범현은 거침없이 조서를 두들겨 나갔다.
“사건 시각에 정확히 어디 계셨습니까.”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저희 법무법인 부하 직원하고 술 한잔하고 있었습니다.”
“사실입니까?”
“CCTV 자료 확인해 보시면 되지 않습니까.”
윤재중은 당당하게 말했다. 그랬다. 범현이 확인한 CCTV 화면에서는 윤재중이 주장한 대로 그는 그 시각에 자신이 운영하는 법무법인 인근의 술집에서 동료와 함께 술을 마신 것이 포착된 상황이었다.
“아내가 불륜을 저지르다 걸렸다는데, 그것 때문에 화가 나서 살해한 것 아닙니까?”
“검사님…….”
“어서 대답하세요.”
“이건 공권력 남용입니다. 그리고 검사님은 무죄 추정의 원칙을 벗어난 말씀으로 심증만으로 저를 강압 수사하고 계시는 겁니다.”
변호사답게 윤재중은 그 슬픔을 걷어내고 으르렁거렸다.
“그럼 묵비권을 행사하시지 그러십니까?”
“그러겠습니다.”
범현은 머리가 복잡해졌다. 오히려 묵비권을 행사하면 자신은 오늘 허탕을 치게 될 것이었다.
확실히 윤재중이 주장하는 것처럼 오히려 윤재중은 아무런 혐의가 없다는 것에 물증이 컸다.
범현은 심증으로 몰아붙이는 것에 반면, 윤재중은 물증을 크게 제시하고 있었다.
자필로 쓴 유언장.
범행 시각의 CCTV 자료 화면.
혹여라도 진실을 가리기 위한 공방을 위해 재판으로 간다고 해도 ‘무죄’에 크게 유리한 것이었다.
지이잉!
지이잉!
범현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그는 발신자를 확인했다.
태훈이었다.
“나 지금 조서 쓰는 중이니까. 이따가 통화하자.”
– 나 놓고 온 게 있어서 사무실 앞에 왔는데, 들어가도 되냐?
범현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이렇게 불쑥 찾아올 녀석이 아닌데, 오늘 왜 그런단 말인가. 가뜩이나 이 앞의 윤재중 때문에 골치 아픈 상황이었다.
“강태훈 변호사 아시죠?”
“저번에 한 번 뵌 적은 있습니다.”
태훈의 이름이 나오자 윤재중은 고개를 갸웃했다.
“잠시 뭣 좀 가지러 왔다는데 들어오라고 하겠습니다.”
“그러시죠.”
재중도 크게 상관은 없다는 모습이었다.
“들어와.”
곧 문이 열리고 태훈이 들어왔다. 들어온 태훈은 슬쩍 소파로 가더니 그곳에 지갑을 놓은 후 다시 집듯 했다.
“지갑이 여기 있었네.”
“아까는 없었는데?”
“여기 사이에 껴 있구만 뭘.”
범현의 예리한 말에 태훈은 능청스럽게 말했다.
“어? 이거 윤 변호사님. 아니세요?”
“아, 네.”
윤재중은 누구를 달가워할 만한 분위기가 아니라는 듯 작게 고개만 끄덕였다.
태훈은 슬쩍 시계를 보았다.
점심시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여기 있다가 같이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
“왜 안 하던 짓을 하냐, 넌.”
“그냥.”
태훈은 멋쩍게 웃었다. 윤재중이 눈살을 찌푸렸다. 범현이 흘끗 윤재중을 보았다.
“둘이 한 번 본 적 있으니. 괜찮죠?”
“예.”
윤재중이 태훈에게 ‘나 취조 중이니까 나가!’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는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태훈이 굳이 이곳에 온 이유는 분명히 있었다.
윤재중은 자신이 그래도 수년간 함께 일했던 파트너였다.
그가 거짓을 말할 때 어떤 안 좋은 습관이 있는지 불안할 때 어떤 행동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자신이 검사는 아니었지만 확인하고 싶었다.
정말 과거의 자신의 파트너가 아내를 살해한 파렴치한 이인지, 아니면 자신의 친구 범현이가 잘못 짚은 것인지 말이다.
“자, 그럼 다시 시작합니다. 태훈이 넌 저기 앉아 있어.”
“그래.”
태훈은 몸을 일으켜 소파에 앉았다.
일부러 범현과 재중이 잘 보이는 위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