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6
그들은 200원짜리 자판기 커피를 뽑아들고 연영과 건물 앞의 벤치에 앉았다.
류신이 담배 한 대를 빼물었다.
“지난 주 창천 오디션이었죠. 어떻게 됐어요?”
“아, 캐스팅됐어요. 오늘부터 연습 들어가요.”
“주연?”
“아뇨.”
“그럼 조연?”
“…아뇨.”
영문을 모르겠지만, 유명이 아니라고 대답할 때마다 류신의 얼굴이 구겨져갔다.
“그럼?”
“좀 비중있는 단역?.”
“아니, 이것들이 눈깔이 썩었나!”
갑자기 터진 험한 욕설에 유명이 당황했다. 이 형이 왜 이래…
“하여간 창천 새끼들 개판이야. 나를 연기로 이긴 배우한테 단역을 줘? 또 그놈의 학번 경력 타령이죠? 개새끼들.”
순정만화같이 생겨서 평소엔 나긋나긋 말하는 인간이 화가 나니까 입이 엄청 걸었다.
뭐 연극판에 오래 있은 인간치고 성격 유순한 인간이 없긴 하지만···
“전 괜찮아요. 처음이기도 하고 받은 배역도 재밌을 거 같구요.”
“차라리 창천 까고 오디우스로 올래요?”
유명은 또 지난 번 그 얘기인가 싶어 얼굴을 굳혔다.
“저 배우 지망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알아요. 보고도 모르면 내가 병신이지. 그 날은 미안했어요. 대본 보고 내가 좀 흥분해서 실례를 했네요.”
“그만큼 대본이 좋았다는 칭찬으로 받아들일게요.”
“물론. 연기도 못지 않고. 진짜 오디우스 생각 없어요? 온다면 내 자리를 걸고 입단시킬 생각인데.”
-얘 입단 받을래, 내가 때려칠까.
그렇게 말하는 류신을 상상해보니 너무 리얼해서 소름이 쭈뼛한다.
“아…저…그게···”
“우리 봄공연 캐스팅 이미 끝난 거 때문에 그래요? 오디우스엔 ‘야너나와’ 제도도 있어요.”
“야 너 나와요?”
“네. 캐스팅 후에도 쟤보다 저 배역 더 잘할 수 있겠다 싶으면 배틀 요청이 가능해요. 이기면 그 배역 먹는 거에요.”
엄청 사바나 같은 세계다···
“좋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미 받은 배역이고 재밌을 거 같아서요.”
“…전투적인 성격인 줄 알았더니, 의외로 평화주의자?”
“일부러 분란을 만들 필요는 없죠.”
류신이 다 피운 담배를 비벼끄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래요. 돌아가는 길을 선호한다면 취향은 존중해야지.
참고로 이번 오디우스 공연 주연은 접니다. 서로 열심히 하죠.”
“네. 저희 단막극 준비도요.”
류신은 고개를 끄덕이고 사라졌다.
*
오후 6시. 창천 첫 연습.
유명은 공복인 채로 연습실로 향했다. 이른 저녁을 먹고 모이라고 했지만, 전생의 경험으로 사준한이 얼마나 굴리는지 알고 있었다.
연습은 체력단련부터 시작했다.
2인씩 조를 지어 시행하는 스트레칭, 한 명이라도 마지막 숫자를 세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무한 피티체조. 체력의 바닥을 시험하는 버피 테스트.
결국 한 명이 우웁-하며 화장실로 달려갔다. 뭔가 먹고 온 모양이다.
유명은 다행히 먹은 게 없어 게워낼 것은 없었다.
“벌써 이게 뭐에요. 우리 땐 이거 다섯 배는 뺑뺑이 돌고도 멀쩡했는데, 응?”
조연출이 생글생글 웃으며 갈궈댄다.
말도 안되는 내용에 분통이 터진다한들, 반박할 수 있는 배우는 없었다.
반항은 더 빡센 연습으로 돌아올 뿐이니까.
“목마르죠?”
“네에-”
“안 마른가보네, 대답이 안들리는데?”
“네!!!!”
더러운 강의실 바닥은 신경도 쓰이지 않는듯 땀범벅으로 대자로 벌렁 드러누운 배우들이 남은 기운을 끌어모아 소리를 질렀다.
준한이 가까이 있는 한 명에게 다가갔다.
“30초간 발성 성공하면 물 줍니다. 시~작!”
“아아아아–ㄱ”
“탈락.”
폐가 터질듯이 숨을 몰아쉬는 사람에게 물을 미끼로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고 있다.
첫 번째 희생자는 4초만에 실패하고 멀어져가는 물을 보며 허우적거렸다.
“시~작!”
“아아아아아–ㅅ”
결국 2번째 턴이 되어서야 한 명이 겨우 성공해서 물을 받아마셨고, 모두가 물을 마신 건 4번째 턴을 돈 후였다.
체력단련이 끝나고 받은 5분의 쉬는시간에 다들 뻗은 채로 중얼거렸다.
“악마야…”
“지옥에서 온 게 분명해···”
힘들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다.
2시간의 공연동안 끊임없이 말하고 움직이는 것은 상상 이상의 체력을 소모시키기 때문.
쉬는시간이 끝나고, 다시 연습장 중앙에 모인 배우들을 앞에 두고
사준한은 칠판에 한 개의 단어를 썼다.
“연기라는 것은 결국 감정의 표현입니다. 희노애락, 이라고 불리는 감정들을 얼마나 다양하고 디테일하게 표현해내냐가 연기의 풍부함을 결정하죠.
오늘 연기 수업에서는 그 중 기쁨을 다뤄보겠습니다.
단순한 기쁨이 아닌, 각각 다른 종류의 기쁨들을 표현해보죠.”
준한은 배우들의 면면을 쳐다보았다.
그들은 곧 감정에 대한 자신의 표현력이 얼마나 획일적이고 단순했던지 알게 될 것이다.
그 첫 번째 타자는···
“신유명. 앞으로.”
준한이 앞날을 기대하고 있는, 재능 넘치는 ‘초보’ 배우였다.
유명은 벌떡 일어나 앞쪽으로 걸어나갔다.
돌아서니 강의실 바닥에 둘러앉아 자신을 올려다보는 스무 명 가량의 배우들이 보였다.
준한이 부연 설명을 했다.
“첫눈이 오는 기쁨과 내가 응원하는 스포츠팀이 경기를 이겼을 때의 기쁨.
이름은 같은 기쁨이라도 감정의 종류나 밀도는 다르겠죠.
앞에 선 배우는 내가 손뼉을 한 번 칠때마다 기쁨의 감정을 바꿔봅니다. 다들 본인이 몇 가지나 연기할 수 있는지 세어보도록.”
이영숙 역의 배수현은 한숨을 포옥 쉬었다.
‘저 오빠, 첫 날부터 잡네, 잡아. 하필 처음 배우하는 애를…저러다 도망가면 어떡하려고.’
본인이 첫 연극을 시작하고 저 과제를 받았을때가 기억난다.
머리 속으로 생각하던 것과 달리 감정을 다양하게 표현해 내는 것은 정말 어려웠다. 세 가지 정도 기쁨의 종류를 연기한 후엔 ‘다 똑같다’라고 엄청 갈굼을 당했었다.
‘너무 멘탈 나가지 않아야 할텐데···’
캐스팅 때의 활약을 보고 유명에게 조금 팬심이 생긴 그녀는 두 손을 모아쥐고 유명의 상태를 관찰했다.
‘멀쩡…해 보이네??’
실제로 별로 당황하지 않은 유명은 잠시 생각하더니 조연출에게 물었다.
“언어 사용 가능한가요?”
“언어? 뭐 일부러 소리를 참을 필요는 없죠.”
준한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대답했다. 우와! 앗싸! 같은 감탄사를 떠올리면서.
하지만 유명이 입 밖으로 낸 건,
‘대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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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321 배역의 힘
“언어 사용 가능한가요?”
“언어? 뭐 일부러 소리를 참을 필요는 없죠.”
준한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대답했다. 우와! 앗싸! 같은 감탄사를 떠올리면서.
하지만 유명이 입 밖으로 낸 건,
‘대사’였다.
*
“사랑해.”
순식간에 감정이 들어간 배우의 얼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