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42
카일러가 그 말에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원래의 시나리오에서, 아스는 헤티만이 소중하므로 헤티와 둘이서 잠적하려 하고, 헤티의 곧고 바른 성품은 다른 인간들을 제물로 넘기는 것을 찬성하지 못한다.
그렇게 이 극은 비극으로 끝날 예정이었다.
하지만…카일러는 헤티의 성품은 충분히 고려했지만, 헤티의 ‘음악’은 고려하지 못했다.
아스도 헤티의 음악을 좋아하고 있음 또한.
[그렇다면, 아스는 어떻게 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까?]카일러는 신탁을 받는 심정으로 그에게 물었고, 정말로 유명은 답을 내놓았다.
[다른 인간들의 정보가 아닌, 헤티의 정보를 담은 눈을 넘겨야지요.] […?] [그녀는 헤티 ‘램’이잖아요.]희생’양’(sacrificial lamb).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제물로 삼은, 아스의 과감한 계획이 흘러나왔다.
219 촬영 도중에요?
그 날의 촬영은 무산되었다.
그리고 카일러와 유명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후반의 대본을 조정하기 시작했다.
[인류학자들은 소수민족을 관찰하기 위해서 그 부족과 몇 달씩 동고동락하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정작 그들에게 말을 걸거나 함께 어울려주는 부족민은, 그 부족의 주류가 아닌 소외된 사람이 많다는 걸 책에서 본 적이 있어요.] [아무래도 그렇겠네요. 기득권이라면 외지인에게 좀 더 폐쇄적으로 반응할 가능성이 크고, 비주류만큼 한가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래서 비주류가 제공하는 왜곡된 정보에 의존하다 보면, 연구 결과가 편향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더라구요.] [그렇겠네요. 그런데 그건 왜···?] [헤티도 비주류죠.]그 말에 카일러는 등골이 저릿했다.
그의 말 뜻을 알 듯 말 듯, 간질간질한 느낌이 든다.
[그렇다면···] [아스가 헤티의 정보만을 담은 눈을 넘겨준다면, 테르카는 그것이 평균적인 인간의 정보라고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요? 하지만 헤티는-] [표준에서 몹시 벗어나 있죠…!]카일러가 허겁지겁 대본에 무언가를 기록한다.
[그 정보가 아븨칸이 식민지에 기대하는 바와 다르다면···!] [그렇습니다. 어차피 그들은 여러 행성에 인류학자를 보내고, 그 중 한 곳을 식민지로 선정할 예정인 거니까요. 원래라면 인간은 미약의 좋은 재료가 되겠지만 헤티의 데이터값은-] [다르죠. 아븨칸이 원하는 쾌락의 미약에 헤티는 어울리지 않는 재료겠군요.] [네. 아스는 헤티의 음악을 들려줄 세계를 지켜주기 위해, 헤티를 제물로 바치는 겁니다. 성공한다면, 그 양은 통구이가 되지 않고, 살아서 초원을 뛰놀 수 있겠죠.] [그야말로 희생양…맞춘 것처럼 이름과도 딱 떨어지는군요!]유명이 싱긋 웃었다.
카일러의 얼굴이 다시 흥분으로 달아올라 있다.
선인처럼 맑고 깨끗한 이미지던 카일러는, 요즘 자주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모습은 훨씬 즐겁고 생기 넘쳐 보인다.
[그런데 한 가지가 마음에 걸리네요. ‘추가 연구’의 결과도 알아야 할 테고, 파견 보낸 학자를 방치하고 돌아갈 수도 없으니까 아븨칸에선 아스를 다시 회수하려고 할 텐데요.] [그건,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유명이 무언가를 속삭였고, 카일러의 표정이 다시 한 번 짜릿해졌다.
‘감독 타이틀을 내줘야 하나···’
유명은 연기만 신경쓰는 게 아니었다. 해당 장면의 구도, 감각적으로 연출할 방법, 클라이막스의 감정선까지 고려해서 의견을 내고 있었다.
‘저렇게 뛰어난 배우가 아니라면, 연출을 해보라고 진심으로 권하고 싶을 정도군.’
그렇게 수정 대본이 완성되었다.
*
[감독님, 안녕하세요!] [어서와요, 마일리.]마일리 필론.
카일러의 첫 상업영화이자 초히트작 의 주인공이 촬영장에 등장했다.
살짝 치켜 올라간 눈과 왼쪽 눈썹 아래에 콕 박힌 점. 그녀는 pin up girl(벽에 붙이는 미녀 사진의 모델)같은 느낌을 풍기는, 치명적이고 핫한 느낌의 미녀이다.
이지적이고 세련된 미녀인 나탈리와는 반대되는 인상.
하지만 필로소피아에서 카일러는, 그녀를 몸을 파는 여성에서 당대 최고의 철학자가 된 인물로 묘사하여 큰 충격을 주었다.
당시 무명배우였던 마일리 필론의 나이는 19세.
카일러는 그녀의 화려한 외모와 어린 나이에 가려져 있는 독특하고 깊이 있는 정신세계를 보았고, 그 두 가지를 결합하여 매력적인 캐릭터를 그려냈던 것이다.
[까메오 출연 승락해줘서 고마워요.] [아, 아니에요. 출연 목적에 감독님의 은혜를 갚을 목적은 30% 정도였으니까 감독님이 고마워하지 않으셔도 돼요.] [하하, 나머지는요?] [저한테 제안 들어온 작품이 하나 있는데, 상대역으로 섭외 중인 사람이 감독님 영화에 출연 중이라고 해서 구경왔어요. 그게 70%.]독특한 화법도 여전했다.
상대역으로 섭외 중인 사람이라···.데렉? 나탈리? 설마 유명일까?
[그런데, 마일리가 들어갈 씬은 아직 좀 남았는데…촬영 시간 변경된 거 연락 안 갔어요? ] [아뇨. 연락 받았는데 그냥 구경하러 일찍 왔어요.] [그래요. 편하게 있어요.]마일리는 스크립터가 앉아있는 곳으로 가서 바닥에 철푸덕 주저않았다.
뜻밖의 스타가 자신의 바로 곁에 주저앉자 스크립팅을 맡은 막내 작가가 화들짝 놀란다.
[안녕?] [허업…아…안녕하세요!] [싸인해 줄까요?] [네엡!!]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언행, 그로 인해 주변의 긴장을 순식간에 풀어놓는 수법은 그녀의 장기였다. 금세 막내 스탭의 호감을 얻은 마일리는, 주머니에서 사탕을 한 줌 꺼내어 그녀에게 쥐어주며 묻는다.
촬영장 생태계 가장 밑바닥의 막내 작가는, 가장 위층에 존재할 셀럽의 스스럼 없는 친한 척에 홀려 솔솔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주연 배우가 연기해보더니 감정선이 이게 아닌 것 같다고 해서, 감독님과 함께 대본을 수정했어요.] [촬영 도중에요??] [넵.]마일리는 꽤 놀랐다.
그는 헐리웃에서 아직 인지도 없는, 신인 격의 배우일 터이다. 그런 배우가 촬영을 끊고 대본에 이견을 제시했다고? 그걸 감독이 곱게 받아들일 리가···.
‘아니다 참, 카일러 감독님이지.’
그는 완전히 무명배우인 자신을 데리고 찍을 때도, 의견을 기탄없이 얘기해 달라고 했었으니까.
하지만 감독님은 그럴 수 있다고 쳐도…스탭들까지 거기에 불만이 없을 수 있을까?
기본적으로 스탭들은 촬영이 늘어지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게다가 신인 배우가 카일러만한 유명감독에게 이런저런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조금 나이든 스탭이라면 뒷목을 잡을만큼 어이없어할 일이다.
‘이 친구가 어려서 그런가?’
촬영장 막내라 뭘 모른다기엔 다른 스탭들의 표정도 너무 온화하다. 일반적으로 촬영이 밀렸을 때의 살벌한 분위기는 한 점도 보이지 않는다.
마일리는 ‘바뀌었다는 대본’, 그리고 스탭들을 이렇게 온순한 양으로 만든 ‘주연 배우’가 더욱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
[양쪽 눈에 정보를 분리한 것까진 변동사항 없으니까, 그 다음 컷부터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네- 감독님!]콘티에 따라 크레인의 위치가 조정되고, 조명과 반사판이 부지런히 자리를 잡는다.
사탕을 쪽쪽 빨면서 지켜보던 마일리 필론은, 프레임 안으로 들어오는 에르히를 보고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뭐야, 쟤도 배우인가···?’
그리고 ‘그’가 나타났다.
마일리도 열심히 보았던 캐스팅보트. 그의 분위기는 화면으로 볼 때보다 훨씬 위험해 보인다.
‘오올…분위기 좋은데···’
몇 가지 지시를 한 카일러가 감독석으로 돌아가고,
카메라가 돌기 시작했다.
[하하, 인간은 아직 미개하면서도 가끔 묘하게 창의적인 부분이 있으니까. 의태를 지속하다보니 내게도 조금 닮은 부분이 생겼나 보지.]직전 컷의 마지막 대사.
헤티의 정보와 나머지 다른 인간의 정보를 분리하려는 시도를 했고, 성공했다는 내용이 그의 입에서 뱉어진다.
그리고 새롭게 바뀐 내용이 등장했다.
[둘 중에 너의 정보를 줬어.] [내 정보만···?] [그들의 목적은, 인간의 감정을 추출해서 미약을 제조하려는 거거든.]아스는 헤티에게 아븨칸의 의도롤 설명한다.
그들이 인간을 한낱 재료로 보고 있다는 말에 헤티의 표정은 공포에 질린다.
[그런데 헤티, 너는 보통 인간과는 다른 인간이니까. 일종의 왜곡된 데이터를 제공한 셈이지.] [내가…그래? 나는 잘 모르겠는데···]자신의 정보에 인류의 존망이 달려 있다는 말에, 헤티는 어지러운 눈으로 되묻는다.
그런 그녀를 새기는 것처럼 눈에 담으며 아스는 쉽게 긍정한다.
[너는 그래. 너의 정보로는, 미약의 재료에 부적합 판정이 뜰 거야.] […만약에 아니면?] [그 때는 어쩔 수 없지. 이게 가장 확률 높은 도박이었어. 다른 쪽의 안구를 줬다면, 아마 거의 100% 지구가 아븨칸의 다음 식민지가 되었을 걸.]어쩔 수 없는 도박.
헤티는 그가 인류 전체를 도박에 건 것에 차라리 안도한다. 자신만 구하려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게 낫다고 생각하며.
하지만 떠오르는 한 가지 걱정.
[하지만, 네겐 ‘남은 연구’가 있다고 했잖아? 그들이 다시 너를 데리러 오는 것 아냐?]그 말에, 아스는 헤티를 쳐다본다.
한참동안, 더욱 깊어진 감정을 담아.
그 순간 헤티는 직감한다. 지금 그가 드러내는 감정은 ‘의태’가 아니라는 것을.
[아스 너 혹시···지금 표정이…] [헤티, 잠시만 여기 있어. 나 물 한 잔만 마시고 올게.] […응.]그는 부엌을 향한다.
그녀의 말대로, 언제 그들이 다시 데리러 올 지 모른다.
할 일이 있다.
혹시라도 지금도 이 집을 감시하고 있을지 모르는 그들이 방해하지 못하도록, 신속하고 정확하게 해내야 할 일.
자신이 손에 든 마지막 패. 그것까지 맞추어야 도박에서 이기기 위한 최상의 패가 맞추어진다.
헤티에겐 미안하지만···
그 다음 아스가 취한 동작에, 마일리는 숨을 흡 들이쉬었다.
푸욱-
그는 부엌에서 과도를 꺼내어, 단숨에 붕대를 씌우지 않은 남은 한 쪽 눈에 틀어박았다.
‘허업···!’
마일리가 눈을 질끈 감았다 뜨자, 착시는 현실로 돌아왔다.
그의 손은 칼을 쥔 모양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실제로 눈을 찌를 수는 없으니 나중에 후보정으로 칼을 삽입할 것인가 보다.
하지만, 칼을 빼들어 꽂아넣기까지의 한 치 오차없는 동작.
감지 않은 채 다가오는 칼날을 바라보는, 크게 흡뜬 눈.
말랑한 젤라틴질을 뚫고 지나갈 때, 헤티에게 소리를 들려주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근육을 일그러뜨리는 그의 표정과,
완전한 파괴를 위해 칼을 한바퀴 돌릴 때, 악문 입술에서 비치는 피까지.
‘……’
촬영장의 모두가 오싹함에 눈을 질끈 감았다.
결국 약하게 새어나간 그의 신음소리를 듣고, 헤티가 달려 나와 그 장면을 목격하곤 비명을 지른다.
[아스!!!] [쉬잇…괜찮아 헤티.] [괘…괜찮기는 이게…이게 무슨…흐어…흐어어어…병원, 병원에 가야···] [괜찮아, 쉬잇…나 잠시만···]고통스러운 표정의 아스가 숨을 몰아쉬고, 헤티는 손을 덜덜 떨며 어찌할 바를 몰라 한다.
[흐으…흡입기를 사용했을 때보단 조금 아프긴 하네…아븨칸인은 이 정도론 죽지 않으니까 걱정 마. 그리고 치료는 안 돼. 완전히 망가뜨려야 하거든…] [아스, 왜…왜…이런 짓을..흐윽.] [이게 내 마지막 패였어. 왜곡된 정보를 넘겨준 후 정상 정보는 파괴하는 것. 데이터가 남아있으면 결국 회수될 테니까. ]언제나 그 눈으로 모든 것을 관찰하고, 카피해 내던 남자는 이제 양 눈을 모두 잃었다.
[나 이제 장님이 되어 버렸는데, 이런 나라도 사랑해 줄 거야?] [아스…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얘기를···]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그가 던진 고백에, 그녀는 결국 엉엉 울음을 터뜨린다.
[왜…나를 위해 이렇게까지···] [네가 힘겹게 지켜 나가고 있는 가치를, 나도 함께 지켜주고 싶어졌어. 너는 내게 처음으로 이런 ‘감정’을 알게 해 준 인간이니까.] [……] [그리고 네 음악도, 그걸 들려줄 청중까지도.]아스가 깜깜한 세상 속에서, 웃는다.
[나는 네 소리도, 그걸 포기하지 않고 쫓아가는 너도 무척 좋아하니까.]때로 인간은 별 것 아닌 신념에 목숨을 던지기도 하고,
가질 수 없는 것에 생을 바치기도 하며,
타인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기도 한다.
아스가 헤티에게 배운 것은 인간의 감정 뿐 아니라, 어리석음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어리석음이,
인간을 아름답게 만들고, 생을 찬란하게 만드는 것이다.
*
마일리 필론은 얼어 붙은 상태였다.
옆에 앉아 있던 막내 스탭이, 이제 조금 친근하게 여겨지는 탑 여배우를 톡톡 건들며 자랑스럽게 말한다.
[굉장하죠?]‘굉장하다고? 그런 흔한 말로 치부할 레벨이 아니잖아!’
방송을 볼 때도, 충분히 굉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나니, 캐스팅보트에 나온 부분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저 배우…와…’
그녀는 저 배우를 마주보고 연기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 상상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런 그녀를 누군가가 툭- 친다.
[어이, 꼬맹이.] [어? 데렉! 저 이제 꼬맹이 아니거든요?]데렉과 마일리는 친분이 있는 사이다.
때도 데렉은 카일러의 촬영장에 종종 들락거렸고, 당시 19세이지만 재능이 다분하던 마일리 필론을 꼬맹이라 부르며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기도 했었다.
이제 스물 다섯의 ‘치명적’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여배우가 되었는데도, 그는 여전히 그녀를 꼬맹이라 부른다.
[이따 내 씬에 들어온다며?] [네. 주연 배우 연기 구경하러 왔는데, 와…100% 아니, 120%! 진짜 미친 거 아니에요? 무슨 연기를 저렇게 하지?]그 말에 데렉이 혀를 찬다.
[어디서 간을 보러 와. 저 배우 네가 간 볼 레벨이 아니거든?] [간 본 건 아닌데···] [시끄럽고, 이따 제대로 안 하면 혼난다. 얼마나 늘었나 볼 거야.] [흐엉…저 소중한 까메온데요.]데렉은 방금 유명의 연기를 본 소름을 가라앉히며, 테르카의 마지막 씬을 준비했다.
220 지버리시 훈련
테르카는 분석 장치를 확인한다.
아스의 한 쪽 안구가 꽂혀 있는 장치는 간이 분석기로, 내부에 위치한 의태 정보를 읽어서, 해당 종의 감정을 %로 분석한다.
분석결과:
긍지 45%
사랑 30%
자존감 20%
시기질투 2%
이기심 0.5%
좌절 0.1%….
결론: 미약 재료 매우 부적합.
테르카의 옆에 서 있는 보좌관은 마일리 필론이다. 그녀는 그와 같은 계열을 분장을 하고 있다. 발랄한 외모에 미래적인 분장이 잘 어울린다.
[흠…엉망이잖아? 이것들은 전혀 쓸모가 없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