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o Hunting With My Clones RAW - Chapter (110)
Advertisements
[소장 정훈철]
스마트폰에 떠오른 이름은 육군훈련소장 정훈철의 이름이었다.
박무식에게 있어서 평소라면 손쉬운 밥이었겠지만, 지금만큼은 반갑지 않은 이름.
하지만, 박무식은 전화를 받았다.
“예, 소장님. 박무식입니다.”
-날세. 뉴스 보았네. 이번 사건, 흑표부대에서 저지른 거라지?
“…그렇습니다.”
-천하의 흑표부대가 그런 실수를 하다니. 쯧쯧. 흑표부대도 한물갔구만.
전화를 받기 전부터 정훈철의 의도가 느껴졌지만, 대놓고 비꼬고 나서는 정훈철을 보자 박무식은 화가 바짝 오르는 게 느껴졌다.
“아닙니다. 소장님. 한물가다니요. 그저 한 번의 실수였을 뿐입니다.”
-그래? 난 각성자들이 하도 대단하다고 자네가 얘기하길래 절대 지지 않는 줄 알았지 뭔가. 이렇게 보면 우리 ‘오합지졸’ 훈련병들도 좀 쓸만한 거 같구만. 그 대단한 흑표부대도 잡은 몬스터를 잡아냈으니 말이야. 안 그런가?
정확히는 정상우 혼자 잡아낸 거지만.
그래도 박무식은 정훈철의 말 속에서 자신이 예전에 육군훈련소에 4주라는 시간 동안 잠깐 머물다 가는 헌터 출신 훈련병들, 그들을 모아놓은 훈련소대를 보며 ‘오합지졸’이라고 비꼬았던 걸 꼬집는 거라고 짐작했다.
그리고 자신이 정훈철을 비꼬았던 일과, 에스카르고 건은 이미 벌어진 사실이었기에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하하. 농담이었네. 사실 이런 얘기를 하려고 전화한 건 아니고, 실은 자네가 이번 일을 벌여준 덕분에 국방부 장관님으로부터 표창을 받게 되었네. 그래서 고맙다고 인사차 연락을 드린 걸세.
만년 소장으로 전역을 앞둔 정훈철이 표창을?
만약 그렇다면 전역이 늦춰질지도 몰랐다.
아니, 아예 진급할 기회가 주어질 수도 있었다.
전역을 앞둔 이들만 거쳐 간다는 한직 중의 한직이라는 육군훈련소장에게 있어서 엄청난 기회가 찾아온 셈.
‘부럽다. 젠장.’
박무식은 너무 부러워서 배가 아팠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정훈철에게 축하 인사를 전했다.
“그러셨군요. 축하드립니다.”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군. 뭐 어쨌든 고맙네. 이만 끊겠네.
딸깍-
그렇게 끊어진 통화.
잠시 열이 뻗쳐 스마트폰을 집어 던질까 말까 진지하게 고민하던 박무식은 속으로 화를 삭였다.
그저 CP병에게 한 마디 물었을 뿐이었다.
“다들 집합했나?”
“아, 아직입니다.”
“이것들이 진짜….”
이제 박무식 대령, 그의 분노를 아랫사람들에게 쏟아낼 차례였다.
그렇게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비롯된 공포의 내리갈굼은 군부대 전체에 퍼져나갔다.
* * *
에스카르고 사건이 있고 난 뒤 상우네 집.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저녁 시간이었다.
방 바깥 부엌에서는 엄마가 요리를 하는지 맛있는 냄새가 가득했다.
원시 스킬로 주방의 상황을 대충 훑어본 상우는 옆에서 게임에 열중 중이던 우현의 팔을 톡톡 두드렸다.
“야, 밥 다됐나 보다. 밥 먹자.”
“밥? 아,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침대에서 쿠션을 베고 편안한 자세로 게임을 하던 두 사람은 주섬주섬 일어났다.
“읏차!”
호들갑을 떨며 일어나는 상우.
옆을 보자 우현이도 침대에서 내려왔다.
이제 여자란 게 알려져서 그럴까.
헐렁한 오버핏 반팔 티셔츠에 청바지를 걸쳐 꽤나 패션이 여성스러워진 우현이었다.
하지만, 옷이 오래됐는지 청바지는 해져 있었고, 군데군데 색이 바래있었다.
‘얘가 그러고 보니 옷도 잘 안 사는구나.’
맨날 청바지에 비슷비슷한 티셔츠, 그리고 트레이드마크인 군모만 쓰고 다녔다.
가장 최근에 산 옷이라고 해봤자, 박유나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맞췄던 그 여성용 정장이 다일 터.
‘군모는 아버지 유품이라 그랬고…. 옷이나 좀 사줄까. 좀 오반가.’
김우현은 독성술로 포션을 제조하면서, 포션을 상우에게 넘기는 대가로 꽤 많은 돈을 받은 상태였다.
즉, 보기보다 부자인 셈이다.
그런데 녀석은 돈을 모으는 족족 모은 건지, 아니면 어디다 쓰는 건지 티를 전혀 내질 않았다.
현재 상우의 게스트룸을 마치 자기 집인 것처럼 상주하다시피 하고는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JM에이전시 포션 제조용 작업실에서 숙식을 해결했었고.
‘자취방도 안 구했었던 거 같은데.’
물론 그건 개인사이기 때문에 물어보질 않아서 확신은 없었다.
그전까지는 그렇게까지 관심이 많지도 않았었기에.
그렇게 상념에 잠긴 상태로 상우는 우현과 함께 식탁에 앉았다.
저녁 메뉴는 평소처럼 매우 풍성했다.
“오, 이게 뭐야, 엄마?”
상우가 젓가락을 들며 물었다.
“코코뱅이라고, 프랑스식 닭고기 스튜야.”
“아하.”
상우는 국물이 가득한, 마치 닭고기로 만든 갈비찜처럼 생긴 그것을 한입 먹어보았다.
“냠냠… 와, 진짜 맛있어.”
“그치? 근데 아들 입맛 못 믿겠어. 군대 밥만 먹어서 다 맛있을 거 아냐.”
상우는 비밀로 했었지만, 결국 식구들은 모두 상우가 군대에 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에스카르고 사건으로 입대한 사실이 방송을 타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 놀랐던 것과는 달리 상우가 맨날 집에만 있고, 분신을 군대에 보내놓은 걸 알자, 가족들의 반응은 금세 심드렁해졌다.
“무슨 소리야, 엄마. 나 맨날 집밥 먹거든?”
“그래도 못 미더워. 우현아, 간 좀 봐줄래? 맛이 좀 어때? 괜찮아?”
“네. 맛있어요, 아줌마.”
“다행이다. 많이 먹어~”
“넵.”
자신이 한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는 게 기쁜지 상우의 엄마 이애숙 여사는 우현의 등을 두들겨주었다.
아직 이런 분위기가 어색한지 우현은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말없이 밥만 먹었다.
그리고 그때.
“엄마! 오늘 밥 뭐야?”
학교를 마치고 이제 막 돌아온 지우가 배가 고팠는지 식탁에 다가와 후다닥 앉았다.
그러고는 진수성찬을 보고는 신난 듯 젓가락을 놀리기 시작했다.
“오~ 닭고기다, 닭고기! 아싸.”
볼 한가득 고기를 욱여넣는 지우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상우.
지난번 새벽에 지우가 훼방을 놓은 뒤로 지우가 내심 짜증이 난 상태였다.
그래서 맛나게 먹는 지우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얄미워서 한마디 했다.
“너 닭고기 비계는 안 떼고 먹냐? 닭고기 비계로 찐 살은 안 빠진다던데.”
그 말에 신나게 오물거리던 지우가 입맛 버렸다는 듯 정색하며 고기조각을 내려놓았다.
“아씨, 야!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던데, 이상한 소리 할래?”
“아니, 뭐 그렇다고. 그냥 어디선가 들은 얘기라 해줬지. 맨날 기름진 것만 처.먹.는. 우리 동생 건강이 걱정돼서 말야.”
“요거 쪼금 먹는다고 살 안 찌거든요? 그리고 살 안 빠지면 맨날 치킨 처먹는 오빠는 벌써 비곗덩어리 돼야 하잖아. 말이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아니면 말고. 왜 화내고 그러냐. 꼭 찔리는 사람처럼.”
그렇게 밥상머리에서 티격태격대는 두 남매.
하지만 왜일까.
두 사람의 얘기를 조용히 들으며 밥을 먹고 있던 우현이 고기를 슬며시 내려놓았다.
그러곤 젓가락으로 용을 쓰며 닭 비계를 떼어내기 시작했다.
“응? 너 뭐하냐. 살찔까 봐 그래?”
“…아니, 비계가 몸에 안 좋다니까 떼고 먹으려고….”
우현이 상우와 지우가 쳐다보자 부끄러운지 소심하게 대답했다.
아직 지우와 그렇게 친하진 않았으니까.
“푸하하하. 언니, 그거 먹는다고 살 안 쪄요. 저거 다 오빠가 개소리하는 거예요.”
지우가 그런 우현이 웃긴지 깔깔거리며 웃어댔다.
“야, 오빠한테 뭐? 개애소리?”
“그른 말 한 적 읍그든여? 귀도 막혔나.”
시치미를 뚝 떼는 지우.
하지만, 지우는 상우의 밥이었다.
“야, 그 말 한 거 후회 안 하냐?”
“응, 안 해.”
“그래. 너 이제 용돈 없다.”
“오빠!”
지우가 볼을 푸들거리며 분노에 떨었다.
하지만 별수 없다는 듯 밥을 먹다 말고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털썩-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고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오라버니, 소녀에게 왜 이러시나요. 흑흑.”
“역겨우니까 그 말투 그만해라.”
“오빠!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응. 안 봐줘.”
“아아아앙~ 오빵~”
“우웨에엑…. 와, 진짜 개역겹다. 토할 거 같아, 정말로.”
장난을 치면서 고기를 먹던 상우가 진심으로 정색하면서 얘기했다.
“야! 여동생한테 역겹다니! 그게 오빠가 할 소리냐!”
“용돈 없다?”
“잘못했습니다. 오라버니….”
“오라버니?”
“…오빠. 아, 진짜 용돈 끊지 말아줘. 제바아알, 엉엉.”
그러게 식탁에서 갑자기 시작된 한 편의 신파극.
우현은 자주 본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밥만 먹었다.
그렇게 동생과 말장난하던(?) 상우는 문득 스치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그래 좋다. 용서해줄게.”
“진짜? 아싸!”
“대신.”
상우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의미심장한 어투에 지우의 침이 꿀꺽 넘어갔다.
그런 동생을 보며 상우는 메신저 스킬로 얘기했다.
-너 옷 좀 잘 알지?
“응? 나 엄청 잘 알지. 근데 왜 갑자기 말로 안 하고….”
-쉿. 조용히 하고. 아무튼 옷 잘 안다니까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줘야겠다.
그 말을 하며 상우는 힐끔 옆에 있는 우현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상우와 지우는 쳐다보지도 않은 채 오물오물 열심히 닭고기를 학살 중이었다.
* * *
육군부대 내에서 퍼져나간 내리갈굼의 물결.
오직 육군교육사령부만이 그 끔찍한 풍파를 비껴갈 수 있었다.
아니, 오히려 이전보다 분위기가 더 좋았다.
솔선수범하여 나선 정훈철 소장 덕분에 육군교육사령관이 국방부 장관에게 크게 칭찬을 받았기 때문이다.
국방부 장관은 언론에 ‘군인이 싼 똥, 군인이 치우다’라는 구실로 변명거리가 생겼기에 그나마 체면치레를 할 수 있었으니까 예뻐할 수밖에.
그렇게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비롯되어 육군교육사령관에게 베풀어진 칭찬은 정훈철 소장에게로 이어져 표창까지 받게 만들었고, 이는 이제 막 훈련소에 입소한 신병들, 그중에서도 상우에게도 이어졌다.
물론 상우는 골치 아팠지만 말이다.
지금도 상우는 육군훈련소장 정훈철이 불러서 개인면담을 하고 있었다.
“하하, 자네 정말 대단한 친구로군. 22살에 A급 헌터인 것도 모자라, 자기 주관도 확고하니 말일세. 대단하군, 대단해.”
“아닙니다. 그저 보통 사람일 뿐입니다.”
“이 시대에 보기 드문 건실한 청년이구만. 하하. 내, 자네가 정말 마음에 들었어. 앞으로 군 생활 며칠 남았는가.”
“이제 3주 정도 남았습니다.”
“그런가… 혹시 외출 나가고 싶지 않나?”
훈련병인데 외출을?
육군훈련소장 선심 쓰듯 외출을 줄 것처럼 얘기했다.
하지만, 지금 군대에 있는 건 상우의 분신.
따라서 딱히 휴가나 외출이 필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괜히 밖에 내돌리는 것보다는 군대 안에 박아두는 게 상우 입장에서는 관리하기가 쉽고 편했다.
“호의는 감사하지만 괜찮습니다.”
“그런가. 알겠네. 혹시라도 외출하고 싶으면 얘기하게.”
“예.”
이미 몇몇 사람들은 상우가 분신만 입대했다는 걸 눈치챘지만, 우리의 순진한(?) 육군훈련소장은 그 사실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어쨌든 상우를 챙겨주려는 호의와 편의를 거절한 상우는, 에스카르고 건으로 조촐한(?) 표창장 하나를 받은 채 사건을 일단락시켰다.
물론 그 이후 상우의 군 생활은 좀 바뀌게 되긴 하였지만.
원래는 온종일 이론 교육을 받으면서 졸 사람들은 졸고, 공부할 사람은 이론 내용 암기하는 일과를 매일 같이 보냈었는데 이제는 공훈처에서 나온 관계자들과 함께 육군 홍보용 광고물 제작을 위해 군복차림으로 사진을 찍는다든지 하는 모델 활동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초상권 따위는 군인 신분이었기에 없었다.
그래도 덕분에 지루한 이론 교육에서 탈피하여 모델로 활동해보는 신선한 경험을 하게 된 상우.
그러다 보니 군대에서의 시간은 훌쩍 지나가 버렸고, 어느새 다가온 퇴소 일자가 다가왔다.
거창하게 퇴소식을 거행했던 논산 육군훈련소 연병장.
그곳에는 입소식 때처럼 훈련병들의 가족들과 친구들이 잔뜩 와 있었다.
“창식아, 고생했다. 전역 축하한다.”
“웬 두부야. 내가 무슨 감옥 갔다 나오는 거냐.”
“아 그런가? 하하. 일단 사 온 거니까 먹어.”
전역하게 된 훈련병들과 지인들이 화기애애한 재회를 하는 사이.
‘나는 아무도 안 왔겠지.’
가족들에게도, 친구들에게도 별일 아니니까 오지 말라고 언질을 해둔 상태였다.
때문에 상우는 퇴소일 전날까지만 해도 자신을 찾아올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하며, 바로 아공간을 열어 집으로 이동하려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박무식에게 있어서 평소라면 손쉬운 밥이었겠지만, 지금만큼은 반갑지 않은 이름.
하지만, 박무식은 전화를 받았다.
“예, 소장님. 박무식입니다.”
-날세. 뉴스 보았네. 이번 사건, 흑표부대에서 저지른 거라지?
“…그렇습니다.”
-천하의 흑표부대가 그런 실수를 하다니. 쯧쯧. 흑표부대도 한물갔구만.
전화를 받기 전부터 정훈철의 의도가 느껴졌지만, 대놓고 비꼬고 나서는 정훈철을 보자 박무식은 화가 바짝 오르는 게 느껴졌다.
“아닙니다. 소장님. 한물가다니요. 그저 한 번의 실수였을 뿐입니다.”
-그래? 난 각성자들이 하도 대단하다고 자네가 얘기하길래 절대 지지 않는 줄 알았지 뭔가. 이렇게 보면 우리 ‘오합지졸’ 훈련병들도 좀 쓸만한 거 같구만. 그 대단한 흑표부대도 잡은 몬스터를 잡아냈으니 말이야. 안 그런가?
정확히는 정상우 혼자 잡아낸 거지만.
그래도 박무식은 정훈철의 말 속에서 자신이 예전에 육군훈련소에 4주라는 시간 동안 잠깐 머물다 가는 헌터 출신 훈련병들, 그들을 모아놓은 훈련소대를 보며 ‘오합지졸’이라고 비꼬았던 걸 꼬집는 거라고 짐작했다.
그리고 자신이 정훈철을 비꼬았던 일과, 에스카르고 건은 이미 벌어진 사실이었기에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하하. 농담이었네. 사실 이런 얘기를 하려고 전화한 건 아니고, 실은 자네가 이번 일을 벌여준 덕분에 국방부 장관님으로부터 표창을 받게 되었네. 그래서 고맙다고 인사차 연락을 드린 걸세.
만년 소장으로 전역을 앞둔 정훈철이 표창을?
만약 그렇다면 전역이 늦춰질지도 몰랐다.
아니, 아예 진급할 기회가 주어질 수도 있었다.
전역을 앞둔 이들만 거쳐 간다는 한직 중의 한직이라는 육군훈련소장에게 있어서 엄청난 기회가 찾아온 셈.
‘부럽다. 젠장.’
박무식은 너무 부러워서 배가 아팠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정훈철에게 축하 인사를 전했다.
“그러셨군요. 축하드립니다.”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군. 뭐 어쨌든 고맙네. 이만 끊겠네.
딸깍-
그렇게 끊어진 통화.
잠시 열이 뻗쳐 스마트폰을 집어 던질까 말까 진지하게 고민하던 박무식은 속으로 화를 삭였다.
그저 CP병에게 한 마디 물었을 뿐이었다.
“다들 집합했나?”
“아, 아직입니다.”
“이것들이 진짜….”
이제 박무식 대령, 그의 분노를 아랫사람들에게 쏟아낼 차례였다.
그렇게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비롯된 공포의 내리갈굼은 군부대 전체에 퍼져나갔다.
* * *
에스카르고 사건이 있고 난 뒤 상우네 집.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저녁 시간이었다.
방 바깥 부엌에서는 엄마가 요리를 하는지 맛있는 냄새가 가득했다.
원시 스킬로 주방의 상황을 대충 훑어본 상우는 옆에서 게임에 열중 중이던 우현의 팔을 톡톡 두드렸다.
“야, 밥 다됐나 보다. 밥 먹자.”
“밥? 아,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침대에서 쿠션을 베고 편안한 자세로 게임을 하던 두 사람은 주섬주섬 일어났다.
“읏차!”
호들갑을 떨며 일어나는 상우.
옆을 보자 우현이도 침대에서 내려왔다.
이제 여자란 게 알려져서 그럴까.
헐렁한 오버핏 반팔 티셔츠에 청바지를 걸쳐 꽤나 패션이 여성스러워진 우현이었다.
하지만, 옷이 오래됐는지 청바지는 해져 있었고, 군데군데 색이 바래있었다.
‘얘가 그러고 보니 옷도 잘 안 사는구나.’
맨날 청바지에 비슷비슷한 티셔츠, 그리고 트레이드마크인 군모만 쓰고 다녔다.
가장 최근에 산 옷이라고 해봤자, 박유나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맞췄던 그 여성용 정장이 다일 터.
‘군모는 아버지 유품이라 그랬고…. 옷이나 좀 사줄까. 좀 오반가.’
김우현은 독성술로 포션을 제조하면서, 포션을 상우에게 넘기는 대가로 꽤 많은 돈을 받은 상태였다.
즉, 보기보다 부자인 셈이다.
그런데 녀석은 돈을 모으는 족족 모은 건지, 아니면 어디다 쓰는 건지 티를 전혀 내질 않았다.
현재 상우의 게스트룸을 마치 자기 집인 것처럼 상주하다시피 하고는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JM에이전시 포션 제조용 작업실에서 숙식을 해결했었고.
‘자취방도 안 구했었던 거 같은데.’
물론 그건 개인사이기 때문에 물어보질 않아서 확신은 없었다.
그전까지는 그렇게까지 관심이 많지도 않았었기에.
그렇게 상념에 잠긴 상태로 상우는 우현과 함께 식탁에 앉았다.
저녁 메뉴는 평소처럼 매우 풍성했다.
“오, 이게 뭐야, 엄마?”
상우가 젓가락을 들며 물었다.
“코코뱅이라고, 프랑스식 닭고기 스튜야.”
“아하.”
상우는 국물이 가득한, 마치 닭고기로 만든 갈비찜처럼 생긴 그것을 한입 먹어보았다.
“냠냠… 와, 진짜 맛있어.”
“그치? 근데 아들 입맛 못 믿겠어. 군대 밥만 먹어서 다 맛있을 거 아냐.”
상우는 비밀로 했었지만, 결국 식구들은 모두 상우가 군대에 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에스카르고 사건으로 입대한 사실이 방송을 타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 놀랐던 것과는 달리 상우가 맨날 집에만 있고, 분신을 군대에 보내놓은 걸 알자, 가족들의 반응은 금세 심드렁해졌다.
“무슨 소리야, 엄마. 나 맨날 집밥 먹거든?”
“그래도 못 미더워. 우현아, 간 좀 봐줄래? 맛이 좀 어때? 괜찮아?”
“네. 맛있어요, 아줌마.”
“다행이다. 많이 먹어~”
“넵.”
자신이 한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는 게 기쁜지 상우의 엄마 이애숙 여사는 우현의 등을 두들겨주었다.
아직 이런 분위기가 어색한지 우현은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말없이 밥만 먹었다.
그리고 그때.
“엄마! 오늘 밥 뭐야?”
학교를 마치고 이제 막 돌아온 지우가 배가 고팠는지 식탁에 다가와 후다닥 앉았다.
그러고는 진수성찬을 보고는 신난 듯 젓가락을 놀리기 시작했다.
“오~ 닭고기다, 닭고기! 아싸.”
볼 한가득 고기를 욱여넣는 지우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상우.
지난번 새벽에 지우가 훼방을 놓은 뒤로 지우가 내심 짜증이 난 상태였다.
그래서 맛나게 먹는 지우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얄미워서 한마디 했다.
“너 닭고기 비계는 안 떼고 먹냐? 닭고기 비계로 찐 살은 안 빠진다던데.”
그 말에 신나게 오물거리던 지우가 입맛 버렸다는 듯 정색하며 고기조각을 내려놓았다.
“아씨, 야!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던데, 이상한 소리 할래?”
“아니, 뭐 그렇다고. 그냥 어디선가 들은 얘기라 해줬지. 맨날 기름진 것만 처.먹.는. 우리 동생 건강이 걱정돼서 말야.”
“요거 쪼금 먹는다고 살 안 찌거든요? 그리고 살 안 빠지면 맨날 치킨 처먹는 오빠는 벌써 비곗덩어리 돼야 하잖아. 말이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아니면 말고. 왜 화내고 그러냐. 꼭 찔리는 사람처럼.”
그렇게 밥상머리에서 티격태격대는 두 남매.
하지만 왜일까.
두 사람의 얘기를 조용히 들으며 밥을 먹고 있던 우현이 고기를 슬며시 내려놓았다.
그러곤 젓가락으로 용을 쓰며 닭 비계를 떼어내기 시작했다.
“응? 너 뭐하냐. 살찔까 봐 그래?”
“…아니, 비계가 몸에 안 좋다니까 떼고 먹으려고….”
우현이 상우와 지우가 쳐다보자 부끄러운지 소심하게 대답했다.
아직 지우와 그렇게 친하진 않았으니까.
“푸하하하. 언니, 그거 먹는다고 살 안 쪄요. 저거 다 오빠가 개소리하는 거예요.”
지우가 그런 우현이 웃긴지 깔깔거리며 웃어댔다.
“야, 오빠한테 뭐? 개애소리?”
“그른 말 한 적 읍그든여? 귀도 막혔나.”
시치미를 뚝 떼는 지우.
하지만, 지우는 상우의 밥이었다.
“야, 그 말 한 거 후회 안 하냐?”
“응, 안 해.”
“그래. 너 이제 용돈 없다.”
“오빠!”
지우가 볼을 푸들거리며 분노에 떨었다.
하지만 별수 없다는 듯 밥을 먹다 말고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털썩-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고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오라버니, 소녀에게 왜 이러시나요. 흑흑.”
“역겨우니까 그 말투 그만해라.”
“오빠!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응. 안 봐줘.”
“아아아앙~ 오빵~”
“우웨에엑…. 와, 진짜 개역겹다. 토할 거 같아, 정말로.”
장난을 치면서 고기를 먹던 상우가 진심으로 정색하면서 얘기했다.
“야! 여동생한테 역겹다니! 그게 오빠가 할 소리냐!”
“용돈 없다?”
“잘못했습니다. 오라버니….”
“오라버니?”
“…오빠. 아, 진짜 용돈 끊지 말아줘. 제바아알, 엉엉.”
그러게 식탁에서 갑자기 시작된 한 편의 신파극.
우현은 자주 본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밥만 먹었다.
그렇게 동생과 말장난하던(?) 상우는 문득 스치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그래 좋다. 용서해줄게.”
“진짜? 아싸!”
“대신.”
상우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의미심장한 어투에 지우의 침이 꿀꺽 넘어갔다.
그런 동생을 보며 상우는 메신저 스킬로 얘기했다.
-너 옷 좀 잘 알지?
“응? 나 엄청 잘 알지. 근데 왜 갑자기 말로 안 하고….”
-쉿. 조용히 하고. 아무튼 옷 잘 안다니까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줘야겠다.
그 말을 하며 상우는 힐끔 옆에 있는 우현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상우와 지우는 쳐다보지도 않은 채 오물오물 열심히 닭고기를 학살 중이었다.
* * *
육군부대 내에서 퍼져나간 내리갈굼의 물결.
오직 육군교육사령부만이 그 끔찍한 풍파를 비껴갈 수 있었다.
아니, 오히려 이전보다 분위기가 더 좋았다.
솔선수범하여 나선 정훈철 소장 덕분에 육군교육사령관이 국방부 장관에게 크게 칭찬을 받았기 때문이다.
국방부 장관은 언론에 ‘군인이 싼 똥, 군인이 치우다’라는 구실로 변명거리가 생겼기에 그나마 체면치레를 할 수 있었으니까 예뻐할 수밖에.
그렇게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비롯되어 육군교육사령관에게 베풀어진 칭찬은 정훈철 소장에게로 이어져 표창까지 받게 만들었고, 이는 이제 막 훈련소에 입소한 신병들, 그중에서도 상우에게도 이어졌다.
물론 상우는 골치 아팠지만 말이다.
지금도 상우는 육군훈련소장 정훈철이 불러서 개인면담을 하고 있었다.
“하하, 자네 정말 대단한 친구로군. 22살에 A급 헌터인 것도 모자라, 자기 주관도 확고하니 말일세. 대단하군, 대단해.”
“아닙니다. 그저 보통 사람일 뿐입니다.”
“이 시대에 보기 드문 건실한 청년이구만. 하하. 내, 자네가 정말 마음에 들었어. 앞으로 군 생활 며칠 남았는가.”
“이제 3주 정도 남았습니다.”
“그런가… 혹시 외출 나가고 싶지 않나?”
훈련병인데 외출을?
육군훈련소장 선심 쓰듯 외출을 줄 것처럼 얘기했다.
하지만, 지금 군대에 있는 건 상우의 분신.
따라서 딱히 휴가나 외출이 필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괜히 밖에 내돌리는 것보다는 군대 안에 박아두는 게 상우 입장에서는 관리하기가 쉽고 편했다.
“호의는 감사하지만 괜찮습니다.”
“그런가. 알겠네. 혹시라도 외출하고 싶으면 얘기하게.”
“예.”
이미 몇몇 사람들은 상우가 분신만 입대했다는 걸 눈치챘지만, 우리의 순진한(?) 육군훈련소장은 그 사실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어쨌든 상우를 챙겨주려는 호의와 편의를 거절한 상우는, 에스카르고 건으로 조촐한(?) 표창장 하나를 받은 채 사건을 일단락시켰다.
물론 그 이후 상우의 군 생활은 좀 바뀌게 되긴 하였지만.
원래는 온종일 이론 교육을 받으면서 졸 사람들은 졸고, 공부할 사람은 이론 내용 암기하는 일과를 매일 같이 보냈었는데 이제는 공훈처에서 나온 관계자들과 함께 육군 홍보용 광고물 제작을 위해 군복차림으로 사진을 찍는다든지 하는 모델 활동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초상권 따위는 군인 신분이었기에 없었다.
그래도 덕분에 지루한 이론 교육에서 탈피하여 모델로 활동해보는 신선한 경험을 하게 된 상우.
그러다 보니 군대에서의 시간은 훌쩍 지나가 버렸고, 어느새 다가온 퇴소 일자가 다가왔다.
거창하게 퇴소식을 거행했던 논산 육군훈련소 연병장.
그곳에는 입소식 때처럼 훈련병들의 가족들과 친구들이 잔뜩 와 있었다.
“창식아, 고생했다. 전역 축하한다.”
“웬 두부야. 내가 무슨 감옥 갔다 나오는 거냐.”
“아 그런가? 하하. 일단 사 온 거니까 먹어.”
전역하게 된 훈련병들과 지인들이 화기애애한 재회를 하는 사이.
‘나는 아무도 안 왔겠지.’
가족들에게도, 친구들에게도 별일 아니니까 오지 말라고 언질을 해둔 상태였다.
때문에 상우는 퇴소일 전날까지만 해도 자신을 찾아올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하며, 바로 아공간을 열어 집으로 이동하려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언제 설치한 건지 연병장 한쪽에 설치된 거대한 플래카드.
그리고.
“상우 오빠 저
다!
“꺅! 오빠!”
“상우 형! 여기 좀 봐주세요!”
“전역 축하드립니다!”
그곳에는 상우의 진짜 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