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o Hunting With My Clones RAW - Chapter (9)
첫 사냥 (1)
어두침침한 동굴. 그곳에는 몇몇 남자들이 방독면과 헤드랜턴을 쓴 채로 열심히 해머질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 돋보이는 한 남자. 그는 커다란 해머를 들고 기계적으로 무언가를 내리치고 있었다.
팍! 팍! 팍!
몇 번의 해머질 끝에 꿈틀거리며 움직이던 무색에 가까운 액체 덩어리가 팍 터졌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기운을 방출하며 산산이 흩어지는 슬라임의 체액.
체액 일부분은 해머를 내리치는 남자의 옷자락에 달라붙었다.
치이익- 소리와 함께 눌러붙는 체액. 다행히 보호복인지 옷에 구멍이 뚫리는 일 없이 살짝 마모되는 정도에 그쳤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슬라임이 죽으면서 피어오른 매캐한 가스가 있었던 것. 그 독가스는 동굴의 텁텁한 공기를 더욱 탁하게 만들었다.
허나 그 독가스로는 남자의 방독면을 뚫을 수는 없었는지,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산산이 터진 슬라임의 체액을 향해 왼손에 든 금속 호스를 들이밀었다.
슈슈슉-
흡입소리와 함께 금속호스를 통해 빨려 들어가는 슬라임의 체액. 흡입된 체액은 남자가 등에 멘 거대한 저장통에 차곡차곡 쌓였다.
남자는 그 행동을 계속 반복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슬라임 저장통이 꽉 차자 남자는 동굴 밖으로 나섰다. 동굴 출입구에 다다라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포탈을 통과하자, 순식간에 남자가 있던 장소가 동굴에서 콘크리트 건물로 바뀌었다.
건물은 빛나는 포탈을 둘러싼 경비소였다.
출입구에서 경계를 서고 있던 군인들이 남자를 발견하고는 총구를 겨누며 경계태세를 갖췄다.
“움직이지 마. 신원을 밝혀라.”
“F급 헌터 정상우입니다.”
“정상우 헌터랍니다.”
경계병의 보고에 잠시 명부를 확인하던 부사관이 “통과” 사인을 보냈다.
경계를 푸는 군인들.
상우, 아니 1호는 군인들의 안내를 따라 이동하여 간단한 스캔까지 마쳤다. 그리고 그가 군인들을 지나치자 경계를 서고 있던 한 군인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또 정상우 헌터야? 지치지도 않나.”
“그러게 말야. 인기도 없는 던전에서 열심히네.”
“저 독가스 방독면으로도 다 안걸러진다며? 말려야 하는 거 아냐?”
“냅둬. 알아서 하겠지.”
경비소 출입 명단에는 신원만 등록될 뿐, 어떤 스킬을 보유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때문에 상우가 분신술을 가지고 있는지 몰라서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그런 수근거림을 뒤로하고 1호는 경비소 한쪽에 보관함으로 갔다.
익숙한 듯 보관함의 잠금 비밀번호를 열자, 차곡차곡 쌓여있는 저장통이 보였다.
1호는 자신이 메고 있던 저장통을 보관함에 넣고 새로운 저장통을 짊어졌다.
그리고는 다시 포탈로 향하는 1호.
그가 다시 던전 출입구로 다가오자 경계를 하던 군인들이 한숨을 쉰다.
“헌터님. 거의 20시간째 슬라임 채집했는데 슬슬 돌아가시는 게 어떠신가요?”
한 군인의 말에 1호가 잠시 군인을 쳐다본다.
“사냥 너무 오래하시면 가스 때문에 안좋은데···. 보호복 많이 상했는데 좀 쉬시고 내일 하세요. 헌터님.”
군인의 만류에도 1호는 출입허가를 재촉하는 듯 가만히 기다릴 뿐이었다.
결국 허가를 내준 경비소장.
1호는 자신의 앞을 막은 바리케이드가 치워지자 익숙한 듯 포탈을 향해 들어갔다.
‘아니, 졸리지도 않나 이 인간은.’
경비소장을 비롯한 경계병들은 모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는 표정이었다.
허나, 그때까지 그들은 몰랐다.
20시간 째였던 1호의 사냥이 48시간이 넘게 이어질 줄은.
* * *
남대문 시장 뒷골목의 한 허름한 가게.
강준모는 가게의 주인과 함께 조용히 저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12kg]
“정확히 12킬로구만. 저장통 무게가 2킬로고. 어디 보자··· 슬라임 체액이 현 시세가 1킬로당 1만 9천원이니까, 한 통에 19만원이구만.”
그런 통들이 주변에 8통이 있었다.
“8통이니까 모두 합해서 152만원이네.”
“에이 고 사장님, 저희가 거래한 게 몇 년인데 야박하게 그러십니까. 그러지 마시고 155로 쳐주시죠.”
“아니 강 사장, 내가 뭐 남는 게 있다고 그런가.”
“그러면 저 옆 가게 갑니다?”
“··· 거 참. 알았네. 155 주지. 거 사람이 약았어.”
그렇게 강준모는 슬라임 체액을 155만원에 팔았다. 이중 20%인 31만원이 강준모의 몫이었다.
그는 저장통을 싣고 온 8톤 트럭 용달 기사에게 5만원을 건넸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또 불러주세요.”
“예 연락드릴게요.”
그에게 남은 돈은 26만원. 이는 이틀 동안 벌어들인 수익이었다.
‘도봉산 슬라임 던전 경비소의 대형 보관함 대여료가 50만원이었던가···. 당장 대형으로 바꿔야겠군.’
이틀 전, 강준모는 정상우를 도봉산에 위치한 슬라임 던전 사냥터에 데려다줬었다.
가기 전에 자신이 아는 업체에서 간단한 기본 장비들을 대여했고, 가는 내내 정상우에게 슬라임 사냥 매뉴얼을 숙지시켰다.
사실 슬라임 사냥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기에 교육은 말로 충분했다.
다만 문제는 독가스.
“최대 6시간입니다. 그 정도만 사냥하고 나오시구요. 더 하고 싶으시면 한두 시간 정도 휴식하시고 다시 들어가시면 되겠습니다. 방독면이나 보호복 이상 있으신 거 같으면 그 즉시 빠져나오시구요. 슬라임 저장통은 여기 소형 보관함 대여해서 보관해놨으니까 여기서 교체하시면 되세요.”
“네 알겠습니다.”
“사냥 모두 마무리 되면 연락주세요.”
그렇게 사냥을 맡기고 산을 내려온 강준모. 그리고 다른 헌터들 영입과 관리를 위해 바쁘게 하루를 보냈다. 정상우의 존재는 까마득히 잊은 채.
그러다 이틀이 지나고 나서야 정상우에게서 연락이 왔다.
보관함에 저장통이 꽉 차서 사냥이 마무리 되었고, 저장통을 회수해야 할 거 같다고.
‘이틀 만에 저장통을 다 채웠다고? 말도 안돼.’
슬라임의 질긴 생명력과 작은 몸집을 생각하면 하루에 저장통 1통을 채우기도 버겁다. 그런데 소형보관함에 있던 저장통 8통을 다 채우다니, 강준모는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직접 던전을 방문해 경비소 보관함을 열어보고서야 그 사실을 믿게 되었다.
‘정상우 헌터의 보유 스킬이 분신술이랬나?’
슬라임 체액으로 가득한 저장통들을 보면서 강준모는 자신이 잘못 판단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분신술 스킬에 대해 여타 다른 사람들처럼 선입견을 지니고 있었다.
분신이 환영일 거라고 착각했던 것.
‘분신이 환영이 아니라면 말이 된다. 분신이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고··· 분신과 함께 슬라임 사냥을 한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많은 양의 슬라임 체액을 채집할 수는 없을 테니까.
아무튼 이번 일로 강준모는 이번에 계약한 F급 헌터 정상우와 계약하게 된 일이 생각보다 큰 행운이었음을 깨달았다.
이 정도 슬라임 사냥 속도라면 보호복, 방독면 등 장비 대여 비용을 제외하고도 큰 수익을 가져다줄 테니까.
‘만약 물리력을 가진 분신을 소환하는 헌터라면··· 단순한 F급 헌터가 아니야. 성장 잠재력이 어마어마하다. 집중 케어를 해줘야겠어. 그리고 스킬에 대해 자세히 확인해봐야겠다.’
스킬만 봐서는 F급을 넘어 E급··· 그 이상도 바라볼 가능성이 있으니까.
그런 희망을 품으면서 강준모는 정상우에게 수익금 안내 문자를 발송했다.
* * *
[잔액: 7,032,100원]
헌터로서 사냥을 시작한지 약 일주일. 상우의 통장에는 무려 7백만원의 통장 잔고가 찍혀있었다. 이미 등록금을 내서 350만원이 빠져나갔음에도 그러했다.
‘흐흐, 나 이러다가 금방 부자 되겠는데?’
스마트폰으로 통장잔고를 보면서 상우는 실실 쪼갰다.
옆에서 문제를 풀고 있던 장하연이 그게 신경 쓰이는지 상우를 쳐다봤다.
“쌤 뭐 봐요?”
“아, 그냥. 별거 아냐.”
“야한 거 봤죠?”
“아니거든? 사람을 뭘로 보고. 문제 다 풀었어?”
“다 풀었거든요? 화내는 거 보니까 맞네.”
“흠흠··· 푼 거 봐봐.”
상우는 스마트폰을 끄고는 애써 주의를 돌리며 하연의 문제지를 채점했다.
언어영역 모의고사 기출문제였는데, 총 10문제 중에 하연이 맞춘 답은 6개.
“저번엔 4개더니 이번엔 6개나 맞췄네. 거봐. 하면 된다니까.”
“사실 제가 머리를 안써서 그렇지 좀 똑똑해요.”
격려해주려고 한 상우의 빈말에 낯부끄러운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하연. 상우가 어이가 없다는 듯 그녀를 쳐다봤다.
“쯧쯧. 그 좋은 머리 진즉에 써서 부모님 속 좀 썩이지 말지. 공부 안하고 뭐했어.”
“헌터 되려고 했죠···.”
“헌터? 너 각성했어?”
“네. 능력도 있어요.”
하연이 한 손을 펼쳤다. 그러자 그 손위로 마력의 구체가 형성되었다.
“봐요. 멋지죠?”
“와 진짜네. 이게 무슨 능력이야?”
“스킬 이름은 에너지볼이에요. 마력의 구체를 만드는 건데 던져서 공격할 수 있어요.”
“보기만 해도 좋은 능력 같은데? 근데 왜 헌터 안했어.”
“저도 그러려고 자격증도 따놨는데, 사냥터 혼자 가기 무서워서요···.”
상우는 그제야 하연이 아직 미성년자임을 깨달았다.
“너 시험만 잘봐. 그럼 내가 사냥터 데려가줄게.”
“정말요?”
“그래 내가 아는 사냥터 있거든. 거긴 안전하고 쉬워서 꽤 괜찮아.”
“알았어요. 그럼 약속해요.”
하연이 상우에게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상우는 피식 웃고는 자신도 새끼손가락을 내밀어 마주 걸고는 엄지를 꽉 맞댔다.
“이걸로 약속한 거예요. 나중에 딴 소리하기 없기!”
“알았어. 알았어. 넌 이대로만 하자. 그러면 경국대 갈 수 있어.”
“알았어요. 쌤만 믿을게요.”
상우와 하연은 서로 마주보며 웃었다.
* * *
그렇게 이주일의 시간이 지났다.
오늘은 경국대 개강날.
상우는 오랜만에 경국대 캠퍼스를 밟았다.
1교시 수업인 전공과목 강의실로 가는 길이었는데, 곳곳에서 알고 지내던 1학년 후배들을 마주쳤는데도 아무도 그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
2학년인 상우는 자괴감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권위가 없는 선배였구나.’
그렇게 한참 궁시렁대는 사이, 강의실에 도착했다.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익숙한 얼굴.
절친 김경도였다.
이번 학기는 경도와 수강신청을 같이 했기에 그와 수업시간이 완전히 같았다.
상우는 경도의 옆자리에 가서 앉았다.
“상어 하이.”
“그려 반갑다.”
그러자 주변 학생들이 웅성웅성거린다.
“뭐야, 상우 선배였어?”
“저 오빠가?”
“상우 형 뚱뚱했잖아.”
친하게 지내던 1학년 후배들이 그제야 상우에게 우르르 다가왔다.
“상우 형, 안녕하세요. 몰라보고 인사를 못드렸네요.”
“아냐 괜찮아. 잘 지냈냐?”
“이야, 형. 방학 때 다이어트 빡세게 했네요. 어디서 운동한 거예요?”
“아니, 뭐 집에서 좀···.”
“키도 좀 큰 거 같은데.”
“맞아. 형 저랑 키 비슷했잖아요.”
순식간에 상우의 주변이 시끌벅적해졌다.
사실 175cm였던 상우의 키는 분신을 얻고 난 뒤로 3cm 가량 큰 상태였다.
21살의 나이였지만, 아직 성장판이 닫히지 않았는지 꾸준한 운동으로 자극받은 신체가 성장하고 있었던 것.
1호의 활약으로 체중 감량에 성공한 상태인데 키까지 커버리니 상우는 슬슬 훤칠한 비율을 자랑하고 있었다.
물론, 아직까지는 좀 군살이 있었지만.
“이야, 이제 옷빨 좀 받는다?”
권찬우가 상우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상우의 동기이자 마당발인 그는 놀기 좋아하는 학생 중 하나였다.
“찬우쓰 오랜만이다. 옷이야 뭐.”
“이렇게 컴공과 에이스가 한 명 더 늘었구만. 좋았어. 넌 다음 미팅 선발선수다.”
“미팅?”
“야 권찬우, 나는 안해주냐.”
“넌 여친 있잖아. 상우야 너 이번 주 금요일에 시간 비워놔라. 내가 방송학과 애들로 미팅 잡아올게.”
“아니, 난 됐는데.”
그렇게 개강 첫날부터 상우는 친구들로부터 시달렸다.
물론 인기인이 된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 * *
한편 그 시각.
도봉산 슬라임 던전.
어두컴컴한 동굴 속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