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by Tyrant RAW novel - Chapter 238
238화. 우리 마스터, 목숨이 많으신가?
숨 막히는 삼자대면이 펼쳐졌다.
‘양이의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나…….’
장소는 유물을 한데 모아 둔 황실 보고. 인원은 양이와 나, 그리고 에이단이었다.
[이, 이상하네에? 몸 상태가 나빠서어 그런가아, 거대화가 안 되네에?]양이가 바들바들 떨며 내 품에 폭 안긴 채 고개를 묻어버렸다. 에이단 쪽으로는 꼬리도 휘두르지 않는 걸 보니 어지간히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그러게 양이 너, 평소에 에이단한테 잘하지 그랬어.’
매일같이 싸움을 걸더니 모든 것이 업보가 되어 돌아와 버린 상황.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네에.]양이가 딴청을 피우며 냥냥거리기 시작했다. 에이단과 대화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음, 둘 사이 문제는 알아서 하고.’
나는 천천히 걸어 쌓여 있는 유물 앞에 섰다. 종류는 아주 다양했다. 당시에 황실에서 사용하던 식기부터, 아빠가 내게 주었던 악타온 대제의 왕홀까지.
이번에 이블을 통해서 수급한 다섯 점의 유물까지 합쳐놓으니 양이 어마어마했다.
“양아. 이 정도면 될까?”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양이의 판정을 기다렸다. 내 품에서 고개를 빼꼼 내민 양이가 신중하게 유물들을 훑어보았다.
[와. 많이 모았네.]“그래? 이제 그만 모아도 되지?”
[아니!]“……뭐?”
[진짜 딱! 딱 하나만 더 있으면 될 것 같은데!]“으잉. 하나 더?”
이 정도면 될 줄 알았던 기대감이 푸시시 식어 버렸다. 어깨를 힘없이 늘어뜨리는 그때, 에이단이 상자 하나를 내게 건넸다.
“어제 낙찰받은 물건입니다.”
“아, 맞다. 에이단 경매장 갔었지!”
상자를 여니 적조의 조각상이 들어 있었다. 나는 슬쩍 품에 안긴 양이를 내려다보았다.
“양아. 어때?”
[으음. 수고했어. 이 정도면 될 것 같아!]드디어 양이의 허락이 떨어졌다.
‘이제 조건은 전부 충족했어.’
내 신성력에는 문제가 없었고, 유물도 충분히 모았다. 하지만 아직 모든 게 끝난 건 아니었다.
‘지금부터가 문제다……!’
가장 큰 관문 하나가 남아 있었으니까.
***
“-그러니까 잠깐 다녀올게.”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분위기가 싸하게 가라앉았다.
나는 옷자락을 꾹 쥔 채 오스카와 아빠의 표정을 조심스레 살폈다.
‘응! 역시 예상대로 반응이 좋지 않군!’
하하!
좋지 않은 수준을 넘어 분위기가 살벌하게 얼어붙었지만, 그런 사소한 문제는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굳은 표정의 아빠 대신 먼저 입을 연 것은 오스카였다.
“그게 무슨 소리야, 메이블.”
오스카가 못 알아들어서 되묻는 게 아닐 테지만, 나는 모른 척 다시 한번 더 말해주었다.
“과거로 가서 에이단이 금제로 속박되는 순간을 보고 올게.”
“갑자기 그걸 왜……. 아니, 그보다 메이블 너를 또다시 홀로 보내라고? 내가 피 말라 죽는 걸 기어코 보고 싶은 거야?”
정말로 오스카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그게 전부 나를 걱정하기 때문이란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
“악타온 대제 제위 당시 유물을 모은 것도 다 과거에 가기 위해서라고?”
“응.”
“……괜한 짓을 했네, 내가.”
오스카는 진심으로 내게 유물을 주었던 것을 후회하는 듯했다. 오스카의 진심을 짓밟은 것 같아서 내 기분도 덩달아 가라앉았다.
“미리 말 못 해서 미안해. 오스카가 준 회고록, 돌려줄게…….”
“사과할 일 아니야. 사과하지 마, 메이블. 그러니까 돌려줄 필요도 없어. 너한테 준 거잖아.”
한숨을 내쉰 오스카가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오스카는 심란한 목소리로 ‘이게 다 빌어먹을 사명 때문이니까. 신이란 작자는 대체 무슨 생각인지…….’ 하고 중얼거리다 고개를 들었다.
“갑자기 과거에는 왜 가겠다는 거야? 금제를 꼭 풀어야 하는 이유가 있어?”
오스카가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오스카의 지적은 예리했다. 예상하긴 했지만 막상 맞닥뜨리니 쉽게 입이 열리지 않았다.
‘에이단이 아데스라는 건 아직 밝힐 때가 아니야.’
아빠와 오스카를 믿지 않는 건 아니었다. 당연히 가족들은 에이단을 희생하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에이단의 죽음으로써 이 지지부진한 상황을 끝낼 수 있다는 사실은 명확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에이단에게는 무언의 압박으로 다가올 수 있었다.
나는 에이단이 또다시 자신을 버리는 선택을 하는 상황에 놓이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오스카와 아빠를 설득해야 했다. 나는 차분히 설명을 시작했다.
“얼마 전에 베론이 자기 보좌관 통해서 나한테 서신을 보냈었잖아.”
“그래. 메이블 네가 쓸모없는 정보라고 판단한 후 폐기하지 않았더냐.”
아빠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건 내가 전에 베론 연구실에서 봤던 고대의 기록이었어. 거기에 적혀 있더라고. 베론이 죽는다면, 에이단이 죽을 거라고.”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었다.
베론이 에이단의 소유권을 타인에게 안배하지 않고 죽게 된다면 에이단은 폭주하여 소멸하게 되니까.
오스카는 할 말을 잃은 듯 입을 벙긋거리더니 힘겹게 입술을 떼었다.
“확실해?”
“아마. 베론과 에이단을 잇고 있는 건 금제잖아. 그 금제만 풀면 베론을 죽일 수 있을 텐데, 고대의 기록에 그런 건 적혀 있지 않았어.”
내 설명에 비로소 두 사람은 지금 상황을 이해한 듯했다.
“베론의 목적은 세계의 생명력을 모두 자신이 흡수해서 신세계의 신이 되는 거야. 지금 흐름은 베론 쪽에 있고.”
상황은 그리 낙관적이지 못했다.
데블린은 여전히 고립되어 있었지만 베론은 백성들과 귀족들의 저항을 묵살하는 중이었다. 데블린 국내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는 중이었다.
더불어 여전히 대륙 곳곳에서는 재앙의 징조라 부르는 지진, 가뭄, 해일 등의 피해가 잇따랐다.
“금제를 풀고 나서, 베론을 치려고.”
지금까지 내가 전면전을 피했던 것은, 누군가는 피를 흘려야 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전쟁을 피할 수 없었다. 데블린을 치고 베론을 끌어내려 처단해야 했다.
그리고 그 전에, 에이단을 구해야만 했고.
“과거에 가면 방법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다른 수는 없어.”
“메이블, 그래도 나는, 네가…….”
오스카가 혼란스러운 얼굴로 내 손을 붙잡았다. 갈급하게 붙잡는 그 손에 애타는 오스카의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윽고 아빠가 진중한 눈으로 나를 고요히 주시했다.
“메이블.”
“응, 아빠.”
“왜 숨긴 것이냐?”
딱히 질책하는 어조는 아니었다. 하지만 줄곧 가족들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던 내게는 더없이 두려운 물음이었다.
“아무도 몰랐으면 했어.”
“또 혼자 감당하려고.”
이번에는 질책이 맞았다.
변명할 수도 없어서 입을 꾹 다물자 아빠가 나를 불렀다.
“메이블.”
“응.”
“시간의 흐름은? 이곳과 동일하고?”
나는 아빠의 뜻밖의 질문에 의아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양이 말로는 차이 없을 거라고 했어.”
“돌아오는 방법은?”
“과거로 갈 때랑 마찬가지로, 내 힘으로 시공간을 비틀어서 돌아오면 돼.”
“만일 위급한 상황에 메이블 네 신성력이 모자라기라도 하여 돌아올 수 없게 된다면?”
“그 신성력은 남겨둘 거야.”
그 이후로도 아빠의 질문은 쭉 이어졌다. 주로 위험한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의 내 대처법에 대한 거였다.
잠깐의 침묵 후 아빠가 입을 열었다.
“다녀오거라.”
그 말에 가장 놀란 것은 내가 아닌 오스카였다.
“부황! 어째서 말리지 않습니까!”
“메이블의 선택이다.”
“너무 위험합니다. 어떻게 혼자 과거로 보낸다는 말씀입니까.”
오스카의 격렬한 반대에 아빠가 더없이 진지한 얼굴로 오스카를 호명했다.
“오스카.”
“예, 부황.”
“메이블은 누군가에게 지켜져야만 움직일 수 있는 존재더냐?”
그 물음에 오스카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나도 모르게 바보처럼 ‘하하’ 웃자 오스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윽고 오스카가 대답했다.
“……아닙니다.”
‘바보처럼 웃었는데 왜 아니라고 대답하지?’
오스카의 대답에 나 홀로 머쓱해진 가운데, 부자의 진지한 대화가 이어졌다.
“메이블은 강하다. 그러니 제 한 몸 구제하는 것은 어렵지 않아.”
“알고 있습니다.”
“일국의 황제로서 내린 결정을 반대할 권리는 우리에게 없다. 그저 믿고 따를 뿐이야.”
“부황의 말씀이 옳습니다…….”
결국 아빠의 설득에 오스카마저 반대를 꺾었다.
얼떨결에 아빠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버렸다.
아빠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로지 메이블 네 귀환만을 상정한 채, 준비하고 있으마.”
오스카에게 그랬던 것처럼, 아빠가 큰 손으로 내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렸다.
“기다리고만 있기에는 시간이 너무 더디게 갈 듯하니.”
다정하게 웃고 있는 아빠의 얼굴은 어쩐지 쓸쓸해 보였다.
***
과거로 떠나는 건 나 혼자뿐이다. 다른 누구에게 의지하지 못하고 오로지 내 힘만으로 다녀와야 했다.
‘자신 있어.’
여차하면 다시 돌아오면 되니까 무서울 건 없었다.
500년 전 과거에는 당연히 나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또한 나를 적대하는 베론도 없다.
나를 지켜줄 신분이 없다는 것만 제외하면, 위험 요소는 그리 많지 않았다.
불시에 벌어졌다는 영지전이나 화적떼, 혹은 질병이나 전염병 정도일 터.
‘전염병이야 뀨가 내 속에 잠들어 있으니까 상관없고.’
나는 곧바로 과거로 떠나기 위한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맨몸으로 가는 것은 무모하니까 각종 마도구는 필수였다.
이블 상단을 통해 이것저것 주문 넣은 물건들이 막 황성에 도착했다. 상단 쪽으로 통신을 연결하자 프란츠가 응답했다.
[폐하께서 분부하신 것들 다 황성으로 보냈습니다. 더 필요할 것 같은 물건들도 추가로 보냈으니 한번 확인해보십시오.]“고마워, 스승님. 그런데 케이시는?”
[동쪽 해안 지부에 갔습니다. 해일로 피해가 심각하다고 합니다. 상단주는 금방 돌아올 거라고 하네요.]“혹시 지원이 필요하면 말해. 사비라도 털어서 줄 테니까.”
[상단주가 들으면 기뻐하겠습니다. 전해드리겠습니다.]통신이 끊기자마자 거센 눈바람 소리에 발코니 문이 덜컹덜컹, 크게 흔들렸다.
심상치 않은 날씨에 창밖을 내다보던 나는 침대 위에서 몸을 둥그렇게 말고 누워 있는 양이를 돌아보았다.
“갑자기 날이 추워진 건 왜일까?”
그러자 양이가 에이단이 대기하고 있을 문밖을 흘끔거리며 소심하게 대답했다.
[에이단 니임, 크흠! 이 아데스 님이라는 걸 자각한 영향 아닐까? 딱 그때부터 날씨가 원래대로 돌아왔잖아.]“그러고 보니까 그렇네.”
정말 딱 그 시점부터 따뜻하던 날씨가 되돌아왔다. 원래 자연의 섭리대로.
***
황실 보고.
과거로 갈 모든 준비를 끝낸 나는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금방 오거라, 메이블.”
“응, 아빠.”
아빠를 와락 부둥켜안자 아빠가 옅은 한숨을 내쉬며 내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기다리고 있을게. 매일 메이블 너만 기다릴 거니까, 빨리 돌아와야 해.”
오스카는 먼저 다가와 나를 끌어안았다. 밤새 잠을 못 이루었는지 오스카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오스카가 밥 잘 먹고 잠 잘 잔다고 약속하면!”
“메이블 너는 왜 그렇게 식사에 집착하는 거야……. 알겠어.”
다음으로 케이시, 프란츠, 양이, 엔리케까지 인사를 끝마쳤다.
마지막으로 에이단에게 손을 흔들어준 나는 유물 앞에 섰다.
“그럼 다녀올게.”
양이에게 들었던 대로 내 힘을 천천히 끌어냈다. 끌어낸 힘은 고스란히 유물들에 스며들었다.
이윽고 유물들은 빠르게 부식되기 시작했다. 마치 유물들의 시간만 흐르는 것처럼.
잠시 후 모든 것이 사라진 자리에 균열이 일더니 일렁거리는 검은 입구가 생겨났다.
나는 일렁이는 입구 앞에 섰다. 더 검은 것이 없을 정도로 순도 짙은 암흑이 나를 반겼다.
‘나밖에 못 해.’
‘할 수 있어.’
‘하나도 안 무서워.’
연거푸 다짐하며 한 발짝 바닥에서 발을 떼는 그 순간-.
“……!”
누군가 뒤에서 나를 끌어안았다.
익숙한 품, 익숙한 향. 단번에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에이단.”
그와 동시에 내 등 뒤가 소란스러워졌다.
“저, 저 자식이……!”
“우리 마스터, 목숨이…… 많으신가?”
“에이단 아세라드!”
차례로 아빠와 케이시, 오스카의 외침이 들려왔다.
짠 듯한 반응에 어쩐지 긴장이 풀려서 나는 으하하 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