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by Tyrant RAW novel - Chapter 255
255화. 내가 이 세계를 지켜야 해
‘지금!’
베론을 외치는 내 호명이 바로 작전 개시의 신호였다.
우웅-!
그와 동시에 심상치 않은 마력 파동이 주변을 한바탕 휩쓸었다.
에르마노 군 마법 군대의 마력과 미리 바닥에 그려두었던 마법진, 마지막으로 내가 사방에 심어둔 마도구가 전부 감응하여 더욱 강력한 장막을 끌어냈다.
대단위 마법의 전개.
마법이 시전되는 영역은 베론이 밟고 있는 땅을 포함했다.
둥.
뇌가 울릴 정도의 공명음. 마법 시전의 순간은 찰나였다.
범위에 포함되었음을 알고 베론이 속히 몸을 빼내려고 했지만 그보다 발동이 더 빨랐다.
촤라락-!
가닥가닥 솟아오른 마력의 창살이 저들끼리 얽히고설켰다. 종내에는 마치 감옥처럼 베론을 가두었다.
마력 감옥의 완성이었다.
“성공인가?”
오스카의 중얼거림이 들려왔지만 나는 베론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한 시도 경계를 늦출 수 없었다.
‘무슨 생각이지?’
등장하자마자 마력의 감옥에 갇힌 베론은 미동이 없었다. 다만 에르마노의 군대를 가만히 응시할 뿐이었다.
저항도 반격도 없었다.
점점 불안감이 커져만 갔다.
사활을 건 마법이지만, 고작 이 정도로 베론을 제압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아주 잠깐은 운신의 폭을 제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랬는데.
“미, 미친……!”
“저 마력 감옥을 뚫었다고?!”
……내 오판이었다.
고작 베론의 손짓 한 번에 마력 창살이 허무하게 흩어졌다. 안개처럼 흩어진 마력을 지나 베론이 유유히 걸어오기 시작했다.
만반의 준비를 했던 마법이 파훼되자 우리 군의 전의가 순식간에 상실되었다.
베론의 힘에 압도당한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저게 신의 힘.’
도무지 상대할 수 없을 듯한 현격한 힘의 차에 순간 눈앞이 아득해졌다.
이 세계의 모든 힘을 전부 흡수한 것도 아닌데도 이 정도로 강할 줄이야.
만약 저자가 에이단의 힘까지 취한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바닥을 구르는 창세목의 정수를 집어 든 베론이 따분한 듯 입매를 굳혔다.
“환영식이 거창하기만 하고 실속은 없군…….”
와작.
그의 손아귀에서 정수가 무력하게 부서졌다. 깨어진 정수에서 흘러나온 기운이 베론의 몸을 타고 흡수되었다.
그제야 나는 베론의 변한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과거에 에이단이 다시 잘랐다는 오른팔에는 새로운 팔이 붙어 있었다. 다만 특이한 점이 있다면 그 팔이 썩은 고목처럼 우둘투둘하다는 것이었다.
더불어 그의 피부 전체 또한 썩어들어가는 것처럼 까맣게 물들고 있었다.
에이단이 사용하는 기운과 똑같은 검은 기운을 풀풀 풍기고 있는 베론의 모습은 흉측했다.
정말이지.
거대화한 양이가 낮게 읊조렸다.
[저 자식. 육체가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지고 있어.]“그럼 시간을 끌면?”
[여기 있는 사람들을 다 죽이고 생명력을 취하겠지.]“그건 곤란해.”
시간을 끌어도 승산이 없다. 어쨌든 베론과 이 자리에서 결판을 봐야 한다는 뜻이었다.
‘큰일이야.’
사실 나는 은연중에 베론을 얕잡아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붙들어놓기만 하면 처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단 수 초 묶어놓지도 못했다. 계획의 첫 단추부터 완벽하게 어그러진 것이다.
그때였다.
“좋군, 좋아!!”
크하하하! 베론이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그 광포한 웃음에 에르마노 군은 물론 데블린의 군대까지 꼼짝도 하지 못하고 침묵했다.
이내 베론의 시선이 에르마노 군을 향했다.
정확히는, 선두에 선 나와 그 곁의 아빠를.
“밟아 죽이고 싶은 것들이 한데 모여 있다니!”
안광이 번뜩였다. 흡사 미치광이 같은 보라색 눈동자와 마주치자마자 소름이 쫙 끼쳤다.
그 위압감에 순간 몸을 움직이지 못할 정도였다.
베론이 우리를 향해 한 발짝 더 다가왔다. 오스카와 엔리케가 검을 고쳐 쥐며 그의 접근을 견제했다.
그러나 베론은 그들의 존재 따위는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 내 바로 옆의 아빠를 바라보았다. 바닥을 긁는 듯 낮은 음성이 아빠를 불렀다.
“에스테반 니스 에르마노.”
“네놈에게 내 이름을 허락한 기억은 없는데. 우리가 그렇게 친밀한 사이는 아니지 않나?”
날카롭게 받아치는 아빠의 말에 베론이 비죽 웃었다.
“친밀하지는 않지만, 누구보다 내밀한 사이지.”
베론이 한 손을 뻗었다. 썩은 고목 같던 바로 그 팔이었다.
“네놈이 자른 팔이, 밤마다 욱신거려서 수면초 없이는 잠을 청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말이야.”
“듣던 중 반가운 말이군. 아무렇지도 않았다면 서운할 뻔했어.”
베론의 웃음이 조금 더 진해졌다.
“예나 지금이나 그 지랄 맞은 성격은 여전해.”
놈이 한 발짝 더 다가왔다. 대치하고 있는 에르마노 전군이 각자 무기를 쥔 채 베론을 견제했다.
그사이에 흐르는 본능적인 두려움을 눈치챈 것인지 베론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네 졸개들이 화장실이 급한가 본데.”
“그렇다면야 한시라도 빨리 데블린을 손에 넣어야겠군.”
여전히 아빠는 베론에게 한 마디도 지지 않았다.
“물러나거라.”
내게 짧게 속삭인 아빠가 베론을 향해 달려나갔다.
“아빠!”
다급히 아빠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아빠를 붙잡을 수 없었다.
붙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아빠가 강하다고 한들 신의 힘을 취한 베론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쾅!
아빠의 선공이 위협적으로 들어갔지만, 베론은 여유롭게 검은 기운을 흩뿌려 검격을 흘렸다.
“걸음마 하는 아기 같은데.”
콰아앙!
“아니, 기어 다니는 건가?”
콰과광!
매 공격 하나하나가 전부 검기를 담은 위협적인 공격이었음에도 베론은 유유히 피하며 아빠를 조롱했다.
누가 봐도 가지고 노는 모양새였다.
“저 자식이……!”
“안 돼, 오스카.”
나는 튀어 나가려는 오스카를 붙잡은 채 우선 상황을 살폈다.
‘왜 아빠를 공격하지 않는 거지?’
베론은 아빠의 공격을 피하며 조롱할지언정 반격을 하지 않았다. 한 수 한 수에 실린 검기가 어마어마했기에 아빠는 빠르게 지쳐갔다.
점점 굳어지는 아빠의 표정을 보며 즐거워하는 듯했다.
“베론 아서 데블리카!”
아빠의 분노 섞인 외침에 베론이 끅끅대며 웃기 시작했다.
“그래. 바로 이 순간을 기다렸지. 미물을 바라보는 것처럼 나를 보던 네놈이, 이 나를 증오하게 될 때를!”
“개소리하지-.”
아빠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네놈의 연인을 죽인 건 바로 이 몸이다.”
베론의 그 말이 주는 충격 탓에.
아빠는 물론이고 나와 오스카를 포함한 모든 에르마노인들의 얼굴이 굳었다.
“……뭐?”
“시아나? 라고 했던가. 이름은 중요하지 않지. 어쨌든 그 여자를 죽이라고 사주했었는데.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군…….”
끔찍한 침묵 속에서 베론은 마치 독백하는 연극배우처럼, 잔뜩 격양된 채 말을 이어갔다.
“고통스럽게 죽어갔을 거다. 장기가 서서히 썩어가는 고통이었을 텐데 진통제도 먹지 못했을 테지? 그 여자는 아이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끅, 크큭. 이 몸이 특별히 개발해낸 극독이거든. 네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가장 끔찍하게 죽이기 위해서…….”
여운을 즐기기라도 하듯 베론이 옅게 웃으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리고 철저히 숨겨왔지.”
“…….”
“내 눈앞에서 절망하는 그 면상을 보기 위해서!”
번쩍! 눈 뜬 베론의 보라색 눈동자가 미친 듯 희번덕거렸다.
마침내 제 팔을 잘라낸 원수에게 복수를 성공한 베론의 눈빛이 광기로 번들거렸다.
나는 주먹을 꽉 쥐고, 이를 악물었다.
도발이다.
사실일지라도 넘어가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엄마가 우리 딸, 오래 지켜주지는 못하는구나.”
물기 어린 음성으로 다정하게 내 눈가를 쓸어주던 그 손길이 생각나서 도무지 참을 수 없었다.
저 버러지만도 못한 자식이…….
내 엄마를!
신성의 창을 세게 쥔 내 손등이 새하얗게 질렸다. 나는 씨근거리며 베론을 향해 경고했다.
“그 입 닥쳐.”
“아. 네년이 바로 그 여자의 딸이었지.”
“그 더러운 입으로 엄마에 대해 말하지 마.”
베론이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죽기 전 특별히 베푼 친절인데, 그렇게 매도할 줄이야. 가슴이 아프군. 진실을 모르고 죽고 싶었던 건가?”
“죽는 건 너겠지.”
“내가? 내가 죽는다면 에이단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건가? 폭주할 텐데. 나는 소유권의 내정자를 정하지 않았거든!”
소유권의 내정자를 정하지 않았다는 말을 굳이 내게 한 이유는 절대 에이단이 위험할 만한 일을 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일 터.
‘좋은 정보 고마워.’
놀랍게도 분노로 뜨거워졌던 머리가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아빠가 비틀거리면서 검을 고쳐 쥐었다.
“……진정하거라, 메이블. 이성을 되찾아.”
나보다 더 비통할 아빠가 침착하게 나를 타일렀다. 나는 짧게 심호흡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어느 때보다 이성적인 상태야.”
저 괴물 같은 베론을 상대로 끝까지 싸워보겠다는 각오를 되새길 만큼.
물러설 곳이 없으니까.
물러선다면 이 세계가 사라질 테니까.
나는 이 세계를 기필코 지켜야만 했다.
“공격하라!”
내 외침과 동시에 데블린 군대의 상공에 대단위 마법진이 생성되었다.
나는 곧바로 우리 군을 감싸는 신성 결계를 펼쳤다.
콰과과과광!! 콰앙!
협곡의 양옆, 궁병과 투석병, 그리고 마법사들이 합세해서 공세를 퍼부었다.
“으아아악!”
“결계를 펼쳐!”
갑작스러운 습격에 당황한 데블린 군이 하늘에서 날아든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시작했다.
뒤늦게 마법사들이 날아오는 공격을 막으려 결계를 펼쳤으나, 이미 마법사들의 전력이 절반 넘게 줄어버린 이후였다.
‘애초에 후방 집중 공격이었으니까.’
데블린 군에서 가장 성가신 전력인 마법사들을 우선 제거한다.
그게 두 번째 계획이었다.
“폐하! 부디 결계를!”
데블린 군의 사령관이 베론에게 달려오며 요청했다. 사령관으로서 타당한 요구였으나.
콰앙!
베론이 성의 없이 내저은 손짓 한 번에 그대로 바닥에 나가떨어진 후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술렁거림이 번져갔다.
“……어떻게 자기 부하를.”
그 무자비한 행태에 에르마노 군까지 경악했다.
베론에게 데블린 군대란 그저 한순간 이용하기 위한 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쓰레기 자식.”
나는 신성의 창을 고쳐 쥐었다.
반 정도는 신이 된 베론을 상대할 수 있는 건, 이 세계에 속하지 않는, 다른 세계의 존재인 나밖에 없었다.
‘에이단.’
그 순간 에이단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니, 그 이전에 덤덤히 운명을 감내하던 아데스의 얼굴이.
“그거 알아?”
“무엇을.”
“나는 당신을 꼭 구하고 말 거야.”
제멋대로 했던 그와 나의 약속을 지킬 때였다.
“베론!!!”
나는 정면으로 베론을 향해 돌진했다.
‘내가 이 세계를 지켜야 해.’
맞부딪힌 기운이 충돌하며 엄청난 충격이 몸에 전해졌다.
속이 뒤틀리고 사지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밀려들며 순간 눈앞이 멀 것처럼 새하얘졌다.
그러나 나는 이를 악물며 어떻게든 버텼다.
‘내 세계니까.’
울컥.
단 한 번 격돌했을 뿐인데, 입안 가득 비린 맛이 차올랐다.
내상이었다.
버티려고 애썼지만 베론의 기운에 밀려 주춤, 주춤 뒤로 떠밀렸다.
‘너무, 강해.’
공격조차 닿지 못한다면, 다음 계획을 실행할 수가 없는데.
“폐하!”
“메이블!”
나를 부르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듯 아득해져만 갔다. 이대로 정신을 잃는 것인가.
그리고 그때.
“폐하!”
들려선 안 될 음성이 들려왔다.
순간 정신이 든 나는 다시금 다리에 힘을 주고 버티며 신성력을 힘껏 끌어내었다.
파앗!
비등해진 힘이 상쇄되며 베론과 나는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제법인데.”
베론의 기껍지 않은 칭찬을 흘려들으며 한 발짝 뒤로 물러나 뒤를 흘긋 보았다.
순간 눈을 의심했다.
“어떻게…….”
미하엘이 그곳에 있었다.
“이단자를 척살하는 것이 아벨라르도의 의무니까.”
그 뒤로 순백의 성의를 걸친 아벨라르도의 성기사와 신관의 군대가 에르마노 군을 수호하듯 도열했다.
믿을 수 없는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우리 종족은 은혜를 잊지 않는다.]붉은 프로버와 처음 보는 희귀 마수의 떼가 그 옆에 있었다.
그리고 랑가르드의 제국기를 펄럭이는 대군과…….
도노반 공작까지.
에르마노 귀족들의 사병을 죄 끌고 온 듯 모르는 얼굴이 다수였다. 도노반 공작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제가 늦었습니다.”
“……늦지 않았습니다, 공.”
나는 줄곧 착각하고 있었다. 나의 세계니까 어떻게든 구해야 한다고.
하지만 내 세계가 아니었다.
함께 숨 쉬고 발 딛고 살아가는 이곳은.
‘우리의 세계야.’
우리의 세계였다.
바야흐로 지원군이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