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Degree RAW novel - Chapter 140
140화. 신여음
“아, 그것이 오늘 아가씨와 제가 부근의…….”
소녀가 한립이 돌연 물어오자 당황하면서도 상황을 설명했다. 알고 보니 소녀가 말하는 아가씨는 이틀 전 소녀와 함께 영차를 만드는 찻잎이 떨어져 부근의 벽운산(碧云山)이란 곳으로 재료를 구하러 갔다가 우연히 한 무리의 연기기 수사들과 마주쳤고 무언가 이상한 낌새에 바로 산을 내려오려 했다.
그런데 불행이도 그 중 하나가 여인이 진법사라는 것을 알고 그녀를 데려다가 진법에 관한 심득을 얻어내자고 했다.
하지만 그들이 서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이 여인은 소녀를 데리고 왔던 길을 되돌아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바로 연기기 수사들이 따라왔고 점점 거리가 좁혀져 따라잡힐 위기에 처하자 어쩔 수 없이 지니고 있던 진법 법기를 이용해 수풀 속에 숨고는 소녀를 제운소에게 보낸 것이다. 이야기를 듣던 한립은 소녀 말대로 겨우 연기기 수사 예닐곱이라면 문제가 없겠다 여겨 소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소저가 길을 안내해주시죠. 지금 바로 가봐야겠습니다.”
말을 마친 한립은 제운소의 감동어린 눈빛을 받으며 하얀 나룻배를 꺼냈다.
“법기가 좀 작기만 속도가 빠르니 모두 타시죠. 사람을 구하는 일이니 서두릅시다!”
그는 몸을 번뜩이며 나룻배의 앞부분에 선 후 고개를 돌려 다른 이들을 쳐다보았다. 그제야 제운소와 어린 여인이 나룻배로 올라타는데 함께 동행 하려던 다관 주인을 제운소가 제지했다.
“임 아저씨는 수행이 낮아 위험하니 여기서 기다리시죠. 사람을 구해 곧 바로 돌아오겠습니다.”
다관 주인은 함께 가고 싶었으나 제운소가 자신을 생각해 그리 말한 것을 알았기에 거부하지 못했다.
신풍주의 속도가 매우 빨라 한립과 제운소는 얼마 지나지 않아 여인이 갇혀 있는 수풀의 상공에 도착했다.
연기기 수사들은 결계를 포위한 채 맹공을 펼치고 있었고 그곳을 덮고 있던 푸른 막은 위태롭게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제운소가 그 상황을 보곤 눈이 새빨갛게 변해 당장 뛰어내리려 했으나 한립이 그를 막았다.
“서두르지 말게. 상당히 좋은 법기를 지닌 것으로 보아 수도 가문 사람들인 듯 하네. 저들이 이미 저 소저가 진법사인 걸 알았다면 지금 쫓아내 봐야 다시 찾아올 것이 뻔해. 내가 깨끗하게 해결하는 것이 어떻겠나?”
저 무뢰한들이 이후에도 다시 여인을 괴롭힐 거란 소리에 제운소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슬쩍 웃은 한립은 아직도 상황 파악을 못하고 날뛰는 수도자들을 향해 서늘한 시선을 던졌다.
곧이어 한립이 두 손을 들자마자 검은빛과 여섯 개의 금빛이 쏘아져 나갔다. 그 빛들이 연기기 수사들을 휘감자 그들은 방어구를 형성하기도 전에 공포에 질린 눈빛을 머금고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졌다. 순식간에 그들이 죽은 것이다.
뒤에 있던 제운소와 소녀는 이 장면을 보고는 멍한 표정으로 굳어버렸다.
연기기 수사가 축기에 성공한 수사에게 상대가 안 될 것은 알았으나 저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사살할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다.
저들 중에는 십일성에 달한 이도 있었지만 말 그대로 속수무책이었다. 한립은 그들의 시선을 모른 척하고 법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자 신풍주가 바닥에 닿기도 전에 제운소가 뛰어 내려갔다.
“음아! 음아, 괜찮아? 적들은 모두 죽었으니까 안심하고 나와!”
제운소가 허둥지둥 달려가 소리치는 것을 보니 한립은 자연히 웃음이 지어졌다. 자신이 남녀 관계에 박식하다 할 순 없으나, 제운소가 진법에 정통한 여인에게 벗 이상의 감정을 품고 있는 것은 너무 명명백백해 보였다.
그리고 그 뒤로 여인의 하녀 역시 그쪽을 향해 서둘러 달려갔다. 잠시 수풀 밖에서 제운소와 소녀가 남색 의복을 입은 여인을 데려고 나왔다.
한립은 다가오는 그녀를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평범한 체구에 아기자기한 코를 가진 여인의 맑은 눈이 한립과 마주치자 그녀가 미소를 지었다. 그것으로 보아 제운소가 한립의 신분을 이미 말해 준 듯 했다.
사실 여인의 용모는 그다지 특별하지 않았고 그녀의 하녀에 비해서도 좀 모자랐다. 하지만 우아하고 여유 있는 표정, 품격 있는 행동거지가 맑은 눈과 어우러지니 다른 모자란 점을 다 채우고도 남음이었다.
누가 보더라도 평범한 여인으로 보기보다는 묘한 매력이 있는 여인이었다.
그러나 한립은 그녀를 살펴보고는 조금 머리가 아파왔다.
“소녀 신여음, 사제의 구명지은에 감사드립니다!”
남색 의복의 여인은 거침없이 한립 앞에 서서 매력적인 자태로 예를 올렸다. 말투도 시원시원한데다 더 없이 똑 소리가 났다.
“신 소저, 별 일 아니었으니 그리 예를 차리실 것 없습니다. 일단은 서둘러 돌아가 이야기를 나누지요. 저들의 일행이 부근에 있다면 일이 커질 수도 있습니다.”
손을 저으며 예의를 차린 한립은 어서 돌아가자는 뜻을 비추었다. 옆에서 듣던 제운소도 한립의 말에 걱정이 되었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 그러는 것이 좋겠습니다! 음아, 이곳은 아직 위험하니 어서 돌아가자.”
신여음을 발견한 순간부터 제운소의 눈이 한시도 그녀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신여음 역시 제운소의 태도에 약간 얼굴이 달아올라 있었다.
“그러자. 그런데 저 시체들은…….”
“제가 모두 태워버릴 것이니 걱정 마세요.”
바닥에 누워있는 시신들을 흘끗 보며 무어라 말을 덧붙이려는 신여음에게 한립이 나서 대답했다.
그리곤 바로 화구를 쏘아 보내 재로 만들어 버리니 바닥에는 저물대들만 덩그러니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일이 익숙한 그의 모습에 여인은 가슴이 약간 서늘해졌으나 개의치 않고 바로 제운소와의 대화를 이어갔다.
“저물대들은 제겐 별 필요가 없으니, 소저가 필요하다면 챙기시지요. 어차피 흔적을 남겨두어서는 안 되니까요.”
한립이 입을 연 상대는 신여음 옆에 서 있는 소녀였다.
“정말이십니까?”
소녀는 너무 뜻밖의 일이라 자신도 모르게 다시 되물었다. 한립이 가볍게 웃으며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자 바로 감사를 표하고는 저물대를 주우러 달려갔다. 저물대에 좋은 물건들이 가득할 것이 분명했다.
신여음은 그 광경에 약간 멈칫했지만 다시 예의 바르게 한립에게 감사를 표하고는 제운소를 따라 신풍주에 올랐다.
저물대를 다 모으고 소녀까지 돌아오자 한립의 영력을 빨아들인 신풍주가 바람처럼 하늘을 날랐다.
돌아가는 길에 신여음은 한립과 제운소에게 정식으로 감사를 표하고 싶다며 자신의 거처로 가자고 했다.
제운소야 마음에 품고 있는 여인이 집에 가자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고 한립도 부탁할 일이 있었으니 당연히 반대하지 않았다.
그렇게 신풍주가 방향을 틀어 서북쪽 방향으로 날아갔다. 몇 시간 후 신여음의 안내에 따라 도착한 곳은 별 볼일 없는 작은 산이었다.
도처에 옅은 안개가 끼여 있는 것을 제외하면 어디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낮은 산이었다.
그러나 능력 있는 진법사가 사는 곳인데 십중팔구는 대단한 결계가 쳐있을 테지만 한립은 진법에 문외한이라 어떤 이상한 점도 찾지 못했다.
모두가 도착한 곳은 산허리쯤의 대나무로 지은 집이었다. 신여음은 일단 한립과 제운소를 방으로 안내하고 소녀와 함께 의복을 갈아입으러 사라졌다.
산에서 쫓고 쫓기며 고생을 했으니 깔끔한 것을 선호하는 여인이라면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대나무 의자에 앉은 제운소는 시도 때도 없이 방문을 쳐다보며 오매불망 여인만 기다렸다. 한립이 웃는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서야 얼굴이 붉어진 제운소가 연신 사과를 했다.
“나비가 꽃을 쫓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나? 제 수사가 미안해 할 게 무엇이겠어.”
탁자 위에 있는 상등품 영차로 목을 적시며 한립이 웃고 있었다.
“선배님! 그것이 아니라…… 저 그게…….”
말을 할수록 말문이 막히는 모양이었다. 그때 소녀가 방문을 열어 제운소를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그리고 신여음 역시 하얀 연꽃을 보는 듯한 우아한 분위기를 풍기며 나타났다.
“한 선배님과 제 형이 저를 구해주신 일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이 차를 술 삼아 한 잔씩 올릴 테니 마음을 받아주십시오.”
신여음이 소녀의 손에 들린 차를 건네며 말하자 한립은 몰래 쓴웃음을 지었다.
‘쯧, 보답할 것을 분명히 하면서도 이상한 소리는 못하게 하려고 저러는 구나.’
그러나 흠모하는 이가 올리는 차를 받은 제운소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단숨에 찻잔을 꺾어 마셨고 한동안 바보 같은 웃음소리도 끊이지 않았다. 그런 아이 같은 모습에 신여음은 골치가 아파왔지만 조용히 고개를 돌려 한립과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의 신분이나 내력에 대해 알아내고자 함이었다. 어쨌든 축기기 수사라면 어떤 가문이나 문파에 소속되어 있을 확률이 높았다.
이를 눈치 챈 한립이 그녀가 원하는 정보를 간단히 내줄 리 없었기 때문에 둘의 대화는 줄곧 변두리를 돌고 있었다.
한참을 이야기하고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나도 얻지 못하자 신여음은 조금 답답해졌고 한립을 향한 경계심도 커졌다.
“한 선배님, 아까 말씀 드린 대로 제가 지닌 어떤 진법 법기라도 상관없으니 여음이만 살려주신다면 모두 내드리겠습니다. 제가 지금 몇 가지는 보여드릴 수 있는데 살펴보시겠습니까?”
겨우 신여음의 얼굴에서 눈을 뗀 제운소가 한립이 기뻐할 만한 소리를 꺼내놓았다.
마침 한립이 원하는 바를 이야기 할 기회를 마련해 준 것이다. 신여음은 제운소의 말에 무척이나 감동한 듯 했다.
물론 그 눈빛을 받은 제운소의 바보 같은 웃음이 다시 시작된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진법 법기는 급하지 않은데…… 다른 일로 신 수사의 도움이 필요하네. 이 일만 해결해 준다면 어떤 보답도 바라지 않을 것이며 내가 지닌 800년 된 영초를 주어 병이 낫는 것을 도와주지.”
”정말 영초를 나눠주신다고요?”
갑작스런 이야기에 듣고 있던 두 사람이 깜짝 놀랐다. 제운소는 이미 신여음이 나은 것처럼 기뻐 날뛰고 싶은 심정이었다.
신여음 역시 지겨운 병마에서 완전히 벗어날 기회였으니 무척 기뻤으나 웬일인지 그녀의 얼굴에 갈등이 스쳐지나갔다.
“선배님 어떤 일로 후배의 도움이 필요하신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도의를 저버리거나 양심에 가책이 생길 만한 일이 아니면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녀가 맑은 눈으로 한립을 직시하는데 어떤 요구가 나올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런 신중한 태도에 한립이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 긴장할 것 없네. 그저 진법에 연관된 물건을 수리해주면 되는 일이니. 그것만 원래 모습으로 복원해 준다면 영초는 자연히 신 수사의 것이야.”
한립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했다. 아직도 반신반의 하는 표정이었으나 일단은 한 시름을 놓은 신여음이 입을 열었다.
“진법 관련 물품을 수리하는 일이라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음이 사형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담담한 표정을 유지하면 그녀가 돌연 환하게 웃음을 짓자 한립도 잠시 멍해졌고 그녀에게 이미 푹 빠져있던 제운소는 더욱 정신을 못 차렸다.
그녀가 한립의 멍한 표정을 발견하고는 홍조를 띠자 더욱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신 수사가 진법에 정통한 것은 알고 있으나 이 물건을 고칠 수 있을지는 나도 확신할 수 없네. 게다가 원본이 이곳과 멀리 떨어져 있고 도저히 옮길 수 없는 성격의 것이라 도안을 보고 고칠 수 있는 지 확인해 줘야겠어.”
그가 저물대에서 옥으로 만든 서책을 건네자 신여음도 궁금하다는 듯 바로 의식을 불어넣었다. 서책 안의 내용을 확인하고는 그녀는 깜짝 놀랐다.
“고대전송진!”
그녀가 순식간에 고대전송진의 정체를 파악하자 한립도 걱정이 조금은 줄었다. 그것이 정말 고대전송진인 것은 확실해 졌으니 그녀가 고칠 수 있을지 없을 지가 관건이었다.
그는 신여음의 표정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제발 난처한 기색이 떠오르지 않기를 바랐다. 제운소 역시 고대전송진이란 말에 놀라 만면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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