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Degree RAW novel - Chapter 160
160화. 원군
철라는 지체 없이 오늘 겪은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자는 축기기 수사로 공법이 특이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뜻밖에도 꼭두각시 같은 기관 요수를 조종했는데 위력이 상당하여…….”
대머리 거한은 상세히 한립과의 대결을 풀어놓았다. 그러자 이야기가 끝나고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자가 조종한다는 꼭두각시는 아마 천죽교(千竹敎)의 괴뢰술(傀儡術)이겠구나. 일전에 천죽교로 보이는 자들이 원무국(元武國) 국경에서 발견 된 적이 있으니 그들 중 하나일지도. 네가 요수로 변한 후 적시에 물러선 것은 현명한 판단이었다.”
“아닙니다. 사실 상대가 부보를 꺼내 들었을 때만해도 요수로 변한 제가 이기지 못할 것이 없다 생각했습니다. 다만 일단 요수로 화하면 제 몸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없어 부딪쳐 보지도 못하고 물러선 것입니다.”
“철라, 네가 이전에 부보를 상대로 무사했던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부보의 위력은 천차만별이라 심지어 같은 법보에서 제련된 부보라 해도 그 위력이 동일하지 않다. 네 설명에 따라 판단하건데 그자의 부보는 아무리 살요로 변신한 너라 해도 감당할 만한 것이 아니야. 목마(木魔)로 변한 청문이라면 또 모르겠다만.”
흑살교 교주는 온화하게 그를 다그쳤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그자를 어찌 처리하실 생각이 십니까? 상대가 칠대선파 제자도 아니라면 사대혈시가 동시에 나서서 교주님의 수련을 위해 그자를 받치겠습니다!”
의욕이 넘치는 목소리를 보니 거한은 한립에게 받은 수모를 갚아주고 싶은 듯했다.
“됐다. 천죽교인이란 것은 추측일 뿐이며 다른 배경이 있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지금은 중요한 시점이니 괜히 강적을 불러들일 순 없지. 월경성 내의 모든 교도들도 황궁을 수호하는데 전념하라 일러두었으니 모든 것은 내가 공법을 대성하고 나서 다시 이야기한다!
어차피 축기기 수사를 제물로 쓰지 않아도 몇 달이 지연될 뿐, 그때가 되면 결단기 수사가 아니고서는 본교를 어찌할 자가 없을 것이야.”
항상 담담하던 교주도 말끝에 이르러서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역시 한립의 예상과 맞아 떨어지는 결론이었다.
“공법의 대성을 앞두신 것을 감축 드립니다! 속하 바로 교도를 집결해 궁중의 경비를 강화하겠습니다.”
“그래, 그리 처리하거라.”
흑살교 교주는 이후 말이 없었고 대머리 사내는 공손히 뒷걸음으로 물러나 그곳을 벗어났다.
* * *
새로 얻은 정보를 포함한 서신을 다시 보낸 지도 열흘이 넘게 흘렀다.
이 기간 동안 흑살교와 한립은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 숨어 몸을 사리기 바빴다.
흑살교인들은 먼저 한립 등을 찾으려 월경을 수색하고 다니지 않았고 한립도 감히 궁궐을 침입하지 않았으니 마치 이들 사이에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은 것 같았다.
게다가 곧 모습을 드러낼 것 같던 마도인들도 소식이 없자 한립은 일단 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가장 최악은 흑살교와 마도인들이 연합해 진가를 공격하는 것이었는데 그런 상황은 되지 않은 것이다.
한립이 생각하기에 이화원이 따로 사람을 보내오기까진 열흘은 걸릴 것이다. 그렇기에 조급해 하지 않고 수련에만 매진했다. 진언 역시 한립의 뜻에 따라 출타를 삼가고 저택 내에 머무르니 말년에 타의로 가족의 단란함을 즐겼다.
그러나 오늘 아침, 침상에서 연공을 하던 한립의 두 눈이 번쩍 떠지며 싸늘한 한기를 뿜어내는 일이 발생했다
“어느 수사 분이신지 모르나 정체를 드러내시지요!”
냉랭한 목소리가 떨어지기 무섭게 그의 저물대로 손이 움직이며 하얀 방패와 화운부(火云符)가 등장했다. 찰나의 순간 이미 적을 맞을 준비를 마친 것이다.
이렇게 한립이 긴장한 이유는 문 밖에서 축기기 수사 넷이 늘어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기를 감추는 술법을 썼다지만 무명의 구결을 익힌 한립의 감각을 피할 수는 없었다.
‘설마 흑살교의 사대혈시(四大血侍)? ’
이 불길한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 순간 당장 이곳을 떠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몽산사우나 진가 사람들이 자신의 목숨보다 중할 리 없었다.
심란한 와중에 그가 예상한 법기나 도술 공격이 아니라 청량한 웃음소리가 전해져 왔다.
“하하, 제가 막내 사제가 알아차릴 거라 말했지요? 한 사제는 벌써 축기기 중기의 경지에 이렀으니 어찌 속일 수 있겠습니까.”
익숙한 목소리에 한립이 소리쳤다.
“송 사형이십니까! 사제가 사형을 뵙습니다!”
한립의 대답 소리에 반가움이 가득한 것은 당연했다.
“역시 단박에 알아맞히는군!”
역시 거침없이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는 넷째 사형 송몽이었다.
그 뒤로 사내 둘과 여인 하나가 따랐는데 정색을 하고 있는 잘생긴 사내 하나를 제외하면 나머지 둘은 웃음을 띠고 한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중 품위 있는 자태의 사내가 미소를 띠고 말을 걸어왔다.
“여덟째에 대해선 사부님께 들은 바가 많다. 나와 칠 사저와는 이제껏 인연이 없다가 이제야 얼굴을 보는구나. 그 사이에 이렇게 빨리 축기 중기에 이르렀다니 놀라울 뿐이다.”
그 말에 사내와 나란이 서있던 고운 여인이 입을 가리고 웃고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한립을 살펴보았다.
그 둘을 자세히 본 한립이 서둘러 침상에서 내려와 예를 갖추었다.
“셋째 사형과 일곱째 사저시군요. 그간 명성은 익히 들어왔으나 기회가 안 돼 인사를 올리지 못 했습니다. 사형께선 벌써 축기기 중기에 이르신지 오래이니 저 정도의 수행이야 말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한립이 공손히 대답하며 셋째 사형에게 썩 나쁘지 않은 첫인상을 남겼다.
한립은 바로 고개를 돌려 잘생긴 사내에게도 예를 올렸다.
“여섯째 사형도 와주셨군요. 사제의 일로 여러 사형들을 귀찮게 해드립니다.”
공손한 태도에도 무현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는 아직도 동훤아와의 일 때문에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립은 웃음을 유지하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지 않았다.
무현은 냉랭한 표정을 유지하면서도 속으로 놀라고 있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한립을 보았을 때만해도 축기기 초기에 불과했는데 그 짧은 기간 동안 중기에 이른 것이다. 줄곧 축기 초기를 배회하며 성취가 없는 무현으로서는 놀랍고도 부러울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모두 안으로 드시지요. 차를 대접하겠습니다.”
“차는 급할 것 없고 일단 흑살교에 어떤 고수들이 득실거리는 지나 말해 봐. 나도 축기기 수사들과 치열한 일전을 벌이고 싶은데 사부님 곁에선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고!
사부님이 허락만 해주셨다면 여덟째 사제처럼 마도인들을 무찌르고 또 깨달음을 얻어 성취가 있었을 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송몽은 다들 방에 들어와 앉기도 전에 손발이 근질거려 참을 수 없다는 듯 상대의 실력을 물어왔다. 넷째 사형은 평소엔 차분하기 이를 데 없었는데 싸움 이야기만 나오면 사람이 바뀌었다.
“허튼 소리 말거라! 서로 죽고 죽이면 성취가 오른다고 누가 그러더냐. 가장 중요한 것은 수행이다. 한 사제도 평소 고된 수련을 거쳐 지금의 수준에 이른 것일 테야.”
셋째 사형이 송몽의 말이 황당무계 하다는 듯 꾸짖었다. 이를 듣고 있던 한립은 조금 놀랐다.
따끔하게 혼내는 말에 송몽의 성격대로라면 대들고 나설 것이라 여긴 탓이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송몽은 바보 같은 웃음을 흘리며 조용히 셋째의 훈계를 받아 들였다.
셋째 사형이 고개를 돌려 한립을 바라보았다.
“출발 전 사부님께 대략의 상황은 들었지만, 그간 변화가 있을 터이니 한 사제가 자세히 설명을 해주어야겠다.”
“맞아, 나도 너무 궁금해. 그 사악한 교주는 누군데 감히 수사들을 납치해 간 거야, 담도 크지!”
일곱째 사저 종위랑은 맨들맨들한 둥근 얼굴에 웃을 때 보조개가 파여 꽤 귀여웠다.
그러나 보기완 달리 종 사저는 이름난 천재로 고작 열여섯에 축기에 성공해 축기 중기까지도 이를 날도 머지않은 촉망 받는 수사였다. 당연히 이화원 부부가 지극히 아끼는 제자 중 하나라 할 수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하며 한립은 한숨을 내쉬었다.
“흑살교 교인들이 잡아간 수사들의 대다수는 제물로 받쳐져 그들의 수행을 높이는데 쓰이고 일부는 강제로 외부 제자가 됩니다. 수년간 세력을 넓혀 교인 중 축기기 수사도 적지 않으니 당연히 담이 커질 밖에요.”
“제물? 그건 다른 수도자의 피를 이용해 성취를 높이는 사악한 공법이 아니냐!”
정색을 하고 있던 무현도 뜻밖의 정보에 관심이 생긴 듯했다. 송몽 등 다른 이들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정말 그런 피비린내 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게냐?”
류정의 고상한 얼굴이 서슬 퍼렇게 변하며 급격히 살기가 감돌았다. 그 변화에 한립은 순간 흠칫했다.
셋째 사형이 이화원 문하에서 가장 강한 제자는 아니나 불의를 참지 못하고 악인을 증오해서 손속이 잔인하기로 유명하다 더니 정말인 듯 했다. 그의 손에 죽어나간 수도자가 셀 수 없다니 무공바보인 송몽도 그를 깍듯이 모시는 것 아니겠는가?
“예 그러합니다.”
“한 사제, 그간 겪은 바를 상세히 들려주게.”
류 사형의 얼굴이 진중하기 이를 데 없었다.
“처음 제가 진가의 가주와 형왕부 연회에…….”
당연히 숨겨야 할 내용은 생략하면서 형왕부에 갔던 일부터 천천히 설명해 나갔다.
그러나 셋째 사형은 호락호락한 이가 아니었다. 그는 몇 번이나 말을 끊고 상세히 내막을 캐물어 몇 번이나 한립의 등에 식은땀을 맺게 했다.
처음으로 거짓말이 어렵게 느껴진 순간이었다. 류정의 물음에 그가 답하는 동안 옆에서 듣고 있던 세 명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겨우 흑살교 같은 작은 집단에 축기에 성공한 혈시란 것들이 넷이나 되었고 그와 비슷한 수준의 단주들과 실력을 알 수 없는 교주까지 있다니 그들만의 힘으론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상대의 소굴이 놀랍게도 월경성의 황궁이라니, 그곳은 칠대문파 제자들이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류 사형, 아무래도 사부님께 소식을 전해 사람을 더 보내 주십사 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힘으론 흑살교 교주를 잡기 어려울 듯 합니다.”
무현이 머뭇거리며 의견을 전했다.
그는 칠대선파의 불문율을 어기고 황실을 침범하고 싶지도 않았고 승리에 자신도 없었던 것이다.
“어찌 여섯째가 두려운 게냐?”
류정은 무현의 말을 듣자마자 눈썹을 치켜 올렸다.
“그게 아니라, 한 사제의 말에 따르면 당분간은 달아나지 않을 듯 하니 사부님의 의견을 구하는 것이 더 합당하리라 보아서 그럽니다.”
당연히 사형제들 앞에서 나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는 무현이 변명했다.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사부님께서 날 따로 불러 분부하시길 월경성 부근 남오성(南烏城)에 휘명 사백님의 제자들이 임무를 나와 있으니 어려움이 있으면 그들을 찾아가 보라 하셨다. 사부님과 휘명 사백님의 친분이 있으니 그들이 도움을 거절하진 않을 테지.
또한 함부로 황궁을 침범해 문파의 뜻을 거스른다 하더라도 이미 황궁이 혼탁한 세력에 점령된 것을 보고도 어찌 수수방관 하겠느냐! 만일 문책이 따른다면 내가 책임질 것이니 다들 명을 따르면 될 것이야.”
류정의 서릿발 같은 명이 떨어졌다.
일순 침묵이 흐르며 서로의 안색을 살피는데 칠 사저 종위랑의 혼미한 눈빛을 보니 셋째 사형에게 빠진 지 오래된 된 듯 했다.
“그럽시다! 셋째 사형이 그리 말씀하신다면 사제인 제가 이런 잔치에 빠질 수 없지요. 함께 싸우겠습니다.”
송몽은 류 사형의 말이 자극을 받았던지 아주 호쾌하게 소리쳤다.
“저도 절대 사형을 혼자 보내지 않아요. 함께 황성을 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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