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Degree RAW novel - Chapter 161
161화. 회합
정신이 들었는지 종위랑도 송몽의 뒤를 이었다. 류정은 두 사람을 향해 미소를 짓더니 한립과 무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너희는 어떻게 하겠느냐. 원치 않거나 도리에 맞지 않다 여긴다면 강요하지 않으마.”
한립이 잠시 고민하는 동안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하던 무현이 이를 악물었다.
“사부님이 직접 허락하시지 않는 한 마음대로 금지령을 어길 순 없습니다. 사형이 반드시 황궁을 침입해야겠다면 전 참가하지 않겠습니다. 사부님의 허락을 구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가 들고 나온 이유는 무척 도리에 맞았다.
“어떻게 그리…….”
종위랑이 바로 무어라 쏘아붙이려 했으나 류정이 그녀를 말렸다.
“셋째 사제의 말도 일리가 있다. 우리가 하려는 일은 좋은 일을 하고도 화를 입을 수 있지. 거절한다 하여 책망할 일이 아니다.”
류정의 얼굴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럼 한 사제는 어쩔 거야? 설마 축기기 중기나 되어서 어떤 사형처럼 담이 콩알만 하진 않겠지?”
종 사저가 한립을 끌어들이려 유치한 도발을 해왔다. 물론 한립은 속으로 그녀를 비웃어 주었을 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가 바로 답하지 않고 잠시 고개를 숙이고 숙고에 들어갔다. 류 사형도 그를 재촉하지 않고 조용히 한쪽에서 그의 결정을 기다려 주었다.
“저도 함께 하겠습니다. 이 일을 벌인 것이 저라고 할 수 있는데 빠질 수야 없겠지요. 게다가 그 신비한 흑살교 교주란 자도 한번 만나보고 싶습니다.”
잠시 후 돌연 고개를 든 한립은 활짝 웃고 있었다.
한립의 결정을 들은 종위랑은 눈꼬리를 접으며 연신 그를 칭찬했고 류정도 조금 안심한 눈치였다. 그리고 송몽은 한립의 어깨를 퍽 아프게 내리쳤다.
“역시 내가 사람을 잘못 보지 않았지. 한 사제가 기개가 있어! 정말 네가 안 가겠다 했으면 절교할 뻔 했다고.”
말을 마친 송몽이 차가운 눈으로 무현을 쳐다보는 것을 보니 무현이 사형제들 사이에서 그리 평판이 좋지 못함을 알 수 있었다.
“그럼 전 다른 곳에 머물며 모두의 대사를 그르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일은 바로 사부님께 고할 것이니 부디 큰 벌을 받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무현은 바로 무표정한 얼굴로 방을 나서 법기를 타고 진가 저택을 떠나버렸다.
“여섯째 사형은 정말 말이 안 통한다니까요! 싸움을 앞두고 뒷걸음질을 치는 수사가 사형이라니!”
종위랑이 불만을 터뜨렸다.
“그만 하거라. 각자의 의지가 있는 것이니 강요할 수는 없다. 먼저 움직일수록 위험이 줄어들 것이니 어서 계획을 세워 움직여야겠다. 흑살교 교주의 대성이 앞당겨 질 수도 있으니까.”
“사형이 악당 소굴 터는 데는 도사이니 전 시키는 데로 하겠습니다. 어쨌든 다 싸우고 때려 부수는 일만 맡겨 주세요!”
“송 사제…….”
자신의 말에 송몽이 흥이 넘쳐 소리치니 류정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에 종위령의 눈이 다시 초승달이 되어 달콤한 웃음을 흘렸다.
금세 진지한 모습으로 돌아온 류정이 종위랑을 바라보았다.
“일곱째 사매는 휘맹 사백님 문하의 진 사매와 안면이 있으니 남오성으로 가 도움을 청하거라.”
“진 사매도 와 있대요? 저와 사이가 좋으니 분명 한달음에 달려와 줄 거예요!”
종오령은 자신만만했다. 그러나 진 사매란 단어가 등장하자 한립은 심장이 덜렁 내려앉았다.
‘설마 우연이겠지. 그 진 사매는 아닐 거야!’
그가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 귓가에 류정의 목소리가 울렸다.
“우리가 한 동안 진가 저택에 머물러야 할 듯하니 한 사제는 가주에게 연락을 취해 적절한 거처를 마련해 놓거라.”
셋째 사형의 말에 한립이 바로 응한 것은 당연했다.
“그럼 저는 무얼 합니까?”
송몽이 자기 차례가 올 때까지 참지 못하겠다는 듯 기대감을 가지고 물어왔다.
“내가 거리로 나가 흑살교의 동정을 살필 동안 진가 저택에 남아 적의 기습을 대비하면 된다. 한립은 얼굴이 노출 되었으니 당분간 나서기 어려울 것이다.”
“알겠습니다.”
송몽이 조금 풀이 죽어 답했다.
이어진 나날은 평소처럼 평안하기만 했다.
남오성(南烏城)으로 도움을 구하러 간 종위랑을 제외하고는 모두 거처에서 수련에 매진했다. 셋째 사형이 몇 차례 적의 동태를 살피러 나가긴 했으나 별다른 정보를 포착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마 흑살교 제자들이 철저히 몸을 낮추고 숨어있는 듯 했다.
무현은 월경성 객잔에 머물고 있었는데 이화원에게 서신을 넣은 듯 했으나 그 내용은 알 수 없었다. 그 후 번화가를 돌아다니며 유람하는 꼴이 진가 저택으로 돌아올 마음이 전혀 없는 것 같았다.
남오성은 정말 가까이 있어서 사흘째만에 종 사저가 사내 셋 여인 둘을 데리고 돌아왔다. 그 중 여인이 정말 진 사매, 진교천이란 사실이 한립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녀도 한립을 보고 조금 놀라는 눈치였으나 그것을 입 밖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진교천 입장에선 한립이 처음 보는 수사는 아니었으나 말 한 마디 섞은 적이 없는 사이였다.
다른 이들은 진교천의 동문으로 둘은 축기 중기, 하나는 축기 초기의 수준이었다. 모두 류정을 보고는 환담을 나누는 것을 보니 아는 사이인 듯 했다.
종위랑이 막내 사제인 한립을 소개하자 진교천을 제외한 세 사람이 놀라는 기색이었다. 진교천의 동문 사저 설홍이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한 사제는 듣던 대로 나이가 많지 않네요. 대치 지역에서 연달아 수십 명의 마도인 축기기 수사들을 처단한 일은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스무 후반의 아름다운 여인으로 한립의 명성에 탄복한 것 같았다. 설홍의 말에 류정과 종위랑이 오히려 더 놀랐다.
두 사람은 외부 임무를 수행하고 있어 칠대선파와 마도육종 간의 대전에 참여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한립이 공을 세운 일을 알고 있을 리 없었다.
셋째 사형이 악인을 처단하고 다녔다지만 그 중 축기기 수사는 두셋에 불과했고 매번 목숨을 건 일전 끝에 겨우 승기를 잡았었다.
그런데 한립이 축기기 수사 열댓 명을 죽였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들은 종전과는 다른 눈으로 한 사제를 보았다.
“넷째 사형은 알고 있었을 텐데 왜 미리 말해주지 않았어요!”
종위랑이 놀란 와중에도 무언가 떠올랐는지 혼자 실실 거리고 있던 송몽을 향해 따져 물었다.
“사매가 물어보질 않았잖아. 한 사제의 법력이 어느 정도냐 길래 설명해 주었고 그 일은 이미 알고 있다 여겼지.”
그가 장난스럽게 답했다. 그녀가 송몽을 노려보며 무어라 하려는데 류정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한 사제가 이런 능력이 있는 줄 몰랐구나. 그럼 흑살교 교주에 대해서도 어찌 할지 생각이 있을 테지?”
류정이 희소식에 기뻐할 때 한립은 오히려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설마 나 혼자 흑살교 교주를 맡으란 말은 아니겠지? ’
말도 안 되는 말이라 한립은 바로 머릿속에서 이와 같은 생각은 지워버렸다.
이어서 한립 등은 진 사매 일행을 위한 작은 연회를 열었다. 축기기까지 이르며 곡기를 끊고 수련에 임한 세월이 얼마나 긴 것인가! 일단 속세에 발을 들였으니 어느 정도 범인의 부귀영화를 향유하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었다.
식사를 마치고 하인을 불러 상을 물리자 본격적으로 흑살교에 대해 상의하기 시작했다.
류정이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 선언하자 진 사매 일행도 꺼리는 마음 없이 동참하기로 결정했다.
한립의 정보에 의하면 황궁 내엔 사대혈시를 제외하면, 각 지방에서 교단의 업무를 보는 단주들이 등장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러니 류정 등은 지금 모인 이들의 역량이 흑살교를 처리하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했고 하루 빨리 그들을 처리해 이상한 짓을 하지 못하도록 하자고 했다.
모두 그의 의견에 뜻을 모았고 진 사매 일행이 먼 길을 왔으므로 하루 정도 쉬고, 그 이튿날 밤 사악한 무리를 처단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한립은 그들의 모습을 비웃을 수밖에 없었다. 흑살교 교주가 흙으로 빚은 인형도 아니고 그리 쉽게 처리할 수 있을 리 없다 여긴 것이다.
그도 소왕야의 입에서 이후 결단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비밀을 알아내지 못했다면 이런 위험을 감수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그들이 피를 빨든 사람을 죽이든 자신과 무슨 상관이겠는가? 피해를 당한 가문이나 친우들에게 사실을 알려 복수를 하게 하면 할 도리는 다 하는 것이었다.
위험도 없고 별 다른 공을 들여도 되지 않을 때라면 그도 즐겁게 나서서 좋은 일을 할 것이지만 상대가 강하고 자신과 무관한 일이라면 목숨을 걸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여섯째 사형 무현이 이런 도리를 깨우치고 적당한 핑계를 대 위험을 피한 것은 현명한 일이었다. 한 순간의 객기로 혼백이 날아가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보다는 백배 옳았다.
한립은 영근의 자질이 너무 떨어져 결단의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다면 쉽게 포기할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이번에 흑살교 소굴로 쳐들어가는 것이 목숨을 최우선으로 하는 평소의 지론과 상반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는 시도였다.
또한 그는 특별히 위기의 순간 자신의 목숨을 부지할 필살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한립처럼 주도면밀한 인물이 이런 성가신 일에 끼어 들 까닭이 없었다.
* * *
밤이 깊자 몰래 방을 빠져 나온 한립이 다른 이들 몰래 황성으로 향했다.
그는 신풍주 위에서 흑룡처럼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는 황성의 대문을 비웃어주고는 거침없이 담을 넘었다.
그에게 황성에 발을 들여선 안 된다는 칠대문파의 금지령은 별다른 구속력이 없었다. 자신에게 이익이라면 그 명령에 따를 것이고 해가 된다면 그저 황당한 소리에 불과했다.
원래부터 고분고분한 사내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그는 이미 황성에서 백여 장 떨어진 상공에 위치해 있었다.
어둠을 틈타 도처를 살핀 그의 시선이 구석진 곳에 닿았다. 그의 몸이 번뜩이는가 싶더니 푸른 대나무가 빼곡히 자라난 어화원(御花園)으로 날아갔다.
죽림의 바로 위까지 당도한 그가 면밀히 곳곳을 살피고는 몸 안의 영기를 감추고 서서히 하강했다.
아무리 흑살교가 황실을 점거했다 해도 모든 구역을 감시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무명의 구결을 대성해 몸을 숨기는데 도가 튼 그가 쉽게 발견 될 리도 없었다.
게다가 소왕야에게 흑살교의 경계초소 위치를 알아두었기에 조금 변동이 있더라도 중요한 몇몇 곳을 지키기 위해 큰 변화를 주진 못했을 것이라 믿었다.
이곳은 황실에서 잊혀진 곳들 중 하나로 대나무의 가지가 상해 썩어있거나 가지치기를 거른 무성한 이파리들이 어지럽게 늘어져 있었다. 이곳을 둘러본 한립은 만족스러웠다.
그는 수결을 맺어 대나무 숲 전체에 방음 결계를 쳤고 저물대에서 제운소가 준 전도오행진 용 법기들을 꺼내 들었다.
“전도오행진이 있으면 흑살교 교주가 아무리 대단해도 실패할 리 없을 거야.”
손에 든 법기들을 가지고 어두운 죽림 속으로 들어간 한립이 두 시진이 지나서야 피곤한 기색으로 걸어 나왔다.
시간이 촉박해 일부분 밖에 완성하지 못했으나 이 정도면 충분할 듯 했다. 다시 주의를 살핀 그는 소리 없이 신풍주에 올라 빠져나왔다. 그가 홀로 황궁에 침입해 진법을 펼친 것은 너무 은밀하게 이루어져 어떤 이의 눈에도 띄지 않았다.
사대혈시는 교주의 분부에 따라 경계를 강화했으나 한립의 생각대로 교주가 폐관 수련 중인 부근만 치밀하게 초소를 설치했을 뿐 황궁의 다른 곳은 오히려 빈틈이 많았다. 이것도 한립의 침입이 이토록 쉬웠던 원인 중 하나였다.
진가 저택에 돌아와서도 아직은 해가 밝지 않았지만 한립은 침상에 앉아 운기행공을 하며 아침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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