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Degree RAW novel - Chapter 199
199화. 영리수
풍 부인의 권유에 자리에 앉은 곡혼이 입을 열었고 한립은 그 뒤에 가만히 서서 이야기를 경청했다.
“여섯 명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설마 설 선사란 여인도 그 중 하나인 것입니까.”
그의 의문에 풍 부인이 나서 해명했다.
“화명도(化鳴島)의 두 선사란 분이 따로 계시나 공법 수련의 중요한 단계라 며칠 동안 방을 나서지 않고 게십니다.”
곡혼이 고개를 끄덕이며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풍삼낭은 곡혼에게 관심이 많은지 수시로 화제와 관련 없는 것들을 물어와 한립을 곤혹스럽게 했다. 그녀가 어떤 의도로 이런 것을 물어오는 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육둔수파대진에 대해 잘 아냐는 질문에는 명쾌히 아니라고 답할 수 있었다. 노인과 청년도 동일한 답을 내놓자 그녀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알고 보니 그녀는 찾아보기 힘든 진법사였던 것이다.
* * *
중년 문사는 다른 사람들과 사이가 좋아 보이지 않았으나 이튿날에는 다시 대청에 나타났다. 풍 부인에게 진법을 유지하며 주의해야 할 사항을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여섯 전각이 그들을 청한 이유가 진법에 있었으니 알아두어야 했다.
사나흘 후 다른 선사도 폐관수련을 마치고 드디어 얼굴을 드러냈다. 그는 키가 7척은 될 법한 장한으로 누런 얼굴이 흉악스러웠으나 말하는 것은 호쾌한 것이 다른 이들과도 잘 지냈다.
이렇게 한립 등은 풍 부인의 설명을 들으며 수시로 선박을 멈추고 해역으로 나가 육둔수파대진을 펼치는 연습을 했다. 손발을 맞춰두어야 실전에서 한 번에 요수를 잡을 터였다.
이렇게 되니 선박도 속도를 낼 수가 없었는데 풍 부인은 항상 웃는 얼굴로 그들을 대하며 전혀 독촉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들이 진법의 여러 가지 변화에 충분히 익숙해지자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전속력으로 목적지로 향했다.
한 달 후에야 이름 모를 작은 무인도에 선박이 닻을 내렸고 풍 부인의 안내에 따라 선사들이 배에서 내렸다.
그들이 무인도에 발을 딛자마자 저 멀리 하늘에서 눈을 찌를 듯한 금광이 날아왔다.
빛이 사라진 자리에는 얼굴이 금빛으로 빛나는 노인이 무표정하게 그들을 보고 있었다.
그는 법력의 파동이 전혀 느껴 지지 않아 법력이 없는 범부 같기도 하고, 엄청난 법력의 소유자 같기도 해 한립을 놀라게 했다.
마 부인이 바로 나서서 노인에게 예를 취하는데 공손하기 이를 데 없었다.
“마삼남이 묘 장로님을 뵙습니다.”
사람들은 결단기 수사인 노인의 신분을 깨닫고 앞다투어 예를 취했다.
노인이 느긋이 물었다.
“그리 예의 차릴 것들 없다. 마삼낭, 적시에 인원을 모아오다니 이번에 일 처리를 잘했구나. 진법은 충분히 숙달 시켰겠지? 고약한 요수라 계획에 차질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야.”
“장로님, 걱정 마십시오! 모두 육둔수파전에 숙달되었느니 요수는 문제없이 처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묘 장로란 노인이 나머지를 훑어보더니 한결 온화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모두 우리 여섯 전각을 위해 와주었으니 이번 일만 성사된다면 합당한 사례를 할 것이다.”
“걱정 마십쇼 선배님, 반드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대놓고 아첨하는 중년 문사의 기색에 다른 이들의 표정이 미미하게 변했으나 그저 그의 말에 동의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묘 장로가 그들의 반응에 만족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진법은 이미 다른 이들을 시켜 설치해 놓았으니 너희는 유지만 해주면 된다. 고 장로가 인근 해역에서 요수를 쫓고 있으니 내가 합류해 이쪽으로 유인할 것이야. 아마 내일 아침이면 진법 쪽으로 당도할 테니 그때 실력 발휘를 하고 지금은 일단 휴식을 취하거라.”
말을 마친 그는 다시 금빛으로 변해 사라졌다.
풍 부인이 진지한 얼굴로 모두를 돌아보았다.
“모두 묘 장로님 말씀대로 휴식을 취하고 내일의 일전을 대비하도록 하시지요.”
이 제안에 반대할 이는 없었기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지금껏 거의 입을 열지 않던 청산자 노인이 돌연 그녀를 향해 물었다.
“풍 선자, 오는 내내 어떤 요수를 상대할 것인지 물었으나 설명해 주지 않았지. 내일이면 맞닥뜨리게 될 터이니 이제는 알려줘야 하지 않겠소?”
노인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풍삼낭에게 모였다.
사실 다들 이상하게 생각했었다. 육급 요수가 흉악하고 희귀하다지만 이렇게 많은 인력과 재화를 들여 잡을 만한 것인지는 의문이었다.
풍 부인은 그 말에 쓴웃음을 지으며 바다를 보고 섰다.
“제가 말씀 드리지 않은 것이 아니라 섬에 당도하기 전까지는 기밀을 유지하라는 상부의 명을 받아 부득이하게 그리 하였습니다. 그러나 모두 여기까지 와주셨으니 당연히 알려드려야겠지요. 이번에 저희 전각이 상대하려는 요수는 영리수(嬰鯉獸)입니다.”
영리수라는 말에 청산자 노인은 물론이고 모두의 안색이 변했다. 한립은 이런 표정 변화를 놓치지 않고 영리수가 무엇인지는 모르나 평범한 요수가 아님을 직감했다.
청산자 노인이 중얼거렸다.
“어쩐지 그렇게 조심을 하더라니 영리수라면 그럴 만 하구나. 다른 세력이 알았다간 한바탕 피바람이 불 것이니.”
노인의 낮은 목소리를 들은 한립은 가슴이 서늘해졌다.
그 중 중년 문사는 완전히 구겨진 얼굴로 벌써 풍삼남을 향해 따지고 있었다.
“영리수라면 말이 육급이지 실제론 칠급에 상당하는 요수가 아닌가? 그런데도 육급 요수라 속여 나를 청하다니 여섯 전각이 하는 일이 사기나 다름없구나!”
그는 정말 화가 났는지 도리에 어긋난다 외치고 있었다. 다른 이들도 중년인만큼은 아니나 모두 불만스런 기색이었다. 다만 그들은 세력이 없는 산수라 여섯 전각에 밉보일 수 없어 입을 다물고 있었다.
여섯 전각을 깎아 내리는 언사에 풍 부인도 처음으로 안색을 굳히더니 거침없이 반박했다.
“모 선사님 그리 말씀할 수는 없지요. 저희 전각이 언제 선사님들을 속였단 말입니까? 영리수가 대단하다고는 하나 육급 요수를 칠급이라 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또한 본 각이 강진단이라는 귀한 포상을 약속할 때는 그에 상응하는 위험이 기다리고 있으리란 것을 모르시겠습니까? 평범한 육급 요수였다면 외부 인사를 모집할 일도 없었겠지요.”
하나하나 이치에 맞게 따지는 풍 부인의 말에 중년 문사도 할 말을 잃고 입을 다물었다.
한립은 속으로 나마 조소했다. 겉으로 보기엔 다 맞는 말이었지만 속은 기분이 드는 것은 당연했다. 다른 이들도 한립처럼 그리 유쾌한 표정은 아니었다.
그러나 잠시 후 풍 부인은 다시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모두에게 말했다.
“당연히 본 각이 영리수에 대해 말씀 드리지 않은 이유는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가 가장 큽니다. 그래서 제가 미리 상부의 허락을 받기를 이번 일만 성사된다면 강진단 외에도 비밀을 지켜주시는 대가로 영석 천 개씩을 드리기로 결정했지요. 어찌 이제 만족하십니까?”
그녀의 말에 청산자 노인의 얼굴이 풀리더니 분분히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중년 문사는 아직도 불만인 듯 했으나 반려 여인이 귀에 무어라 속삭이자 안색이 변해 침묵을 지켰다.
이후 사람들은 무인도에 흩어져 각자 연공을 하거나 휴식을 취했다.
한립과 곡혼은 해변에서 가까운 거대한 암석을 찾아 마주 보고 가부좌를 틀었다. 곡혼은 한립의 조종에 따라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고 한립도 눈을 감고는 천천히 몸을 정비했다.
그러나 겨우 일다경 후 한립의 눈썹이 꿈틀 하더니 두 눈을 번쩍 뜨고 거세게 파도가 치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왠지 모르게 갑자기 마음이 불안해지며 무언가 큰일이 날 것만 같은 직감을 느낀 것이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잠시 고민을 하던 한립이 민망한 웃음을 흘렸다.
아무래도 그가 너무 긴장을 한 듯싶었다. 아무리 그의 직감이 뛰어나다 해도 결단기 수사 둘에 강력한 진법까지 보조하는 상황에서 육급 요수 한 마리를 잡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었다.
눈치를 보니 비범한 요수인 것은 확실할 것이나 요수는 요수였다. 아무리 강해도 비슷한 수준의 선사에게 승산이 있기 마련이었다.
스스로를 달랜 한립은 억지로 다시 운공에 집중하려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마음이 심란한 것이 도저히 안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런…….
한립은 한숨을 내쉬며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켰다. 보아하니 무언가 대비하지 않고서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을 듯 했다.
한립은 사방을 둘러보더니 의식을 퍼뜨렸다. 다행히 주변에 다른 수사들은 없었다.
손이 빠르게 저물대를 스치자 열댓 개의 진법 깃발과 대여섯 개의 진법 원반이 나왔다. 바로 벽수청갑진(碧水靑甲陣) 이라는 결계를 치는데 이용되는 한벌의 진법 법기들이었다.
지체하지 않고 곡혼을 부른 그는 그들이 앉아 있던 암석을 중심으로 수십 장 범위에 깃발과 원반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곡혼이 진법을 설치하며 바삐 움직이는 뒷모습을 바라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한립은 입가를 끌어 올리며 자조적으로 중얼거렸다.
“살기 위해 바둥거리는 습관은 버릴 수가 없나 보다.”
* * *
이튿날 날이 밝기도 전에 풍삼남에 의해 소집된 이들은 모두 무인도에서 십여 리 떨어진 해역으로 날아갔다.
동시에 천리 밖에서 금빛과 갈색빛이 무인도 방향으로 질주해 오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 바로 뒤 해수면에 직경이 백장은 될 법한 하얀 파도가 엄청난 속도로 쫓아왔다.
기이하게도 아이 울음소리가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너무 처량해서 듣는 사람의 마음이 섬뜩할 정도였다.
“묘 장로, 비검전서(飛劍傳書)를 이용하지. 저들도 준비가 되었을 테니.”
질주하던 갈색 빛에서 우렁찬 외침이 들렸다.
“그럽시다.”
금빛 중앙의 묘 장로가 바로 응답한 후 갈색 빛 안으로 뛰어들더니 동시에 한 줄기 금빛을 쏘아 보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하얀 물보라가 자극이라도 받았던지 울음소리는 더욱 날카로워졌고 점차 천둥소리처럼 커지기 시작했다.
“이런, 저 흉악한 놈이 또 수강신뢰(水罡神雷)를 쓰려나 봅니다. 더 빨리 가야 합니다.”
갈색 빛 속에서 묘 장로의 조급한 음성이 들렸다. 그는 수강신뢰란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묘 장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 장로가 속도를 높여 물보라와의 거리를 벌렸다.
“걱정 말게, 내 혼원발(混元鉢)의 속도가 뒤지지 않을 것이니!”
그러나 하얀 물보라는 더욱 천둥과 같은 아기 울음소리를 내며 속도를 더 높였다. 놀랍게도 그것이 수면에 그리는 하얀 궤적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 * *
곡혼 등은 자신이 맡은 진법의 출구에 서서 남색 깃발을 쥐고 있었다. 깃발은 길이가 두 장이나 됐으나 남색 빛을 찬란히 뿜는 것이 눈이 부셨다.
여섯 명의 축기 후기 수사들은 모두 신중한 얼굴로 서로 백여 장의 거리를 둔 채 법기에 타고 하늘에 떠있었는데 반원형의 주머니 같은 형상을 이루었다.
한립은 곡혼의 등 뒤에 서서 상황을 지켜보았고 어린 여인도 중년인 옆에서 걱정 가득한 기색으로 서있었다.
잠시 후 금빛이 하늘을 꿰뚫고 나타나 풍삼낭의 손에 떨어지니 모두의 이목이 집중됐다. 그녀는 무슨 소식을 전해들은 듯 다시 금빛을 보내주고는 소리쳤다.
“영리수가 곧 도착하니 모두 조심하세요! 일단 요수가 진법 안에 들어오면 바로 진법의 문을 봉쇄해야 합니다.”
한립은 조금 긴장돼 금빛이 돌아가는 방향을 시선으로 쫓았다. 다른 이들도 신경이 곤두서서는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우르르 쾅쾅쾅쾅”
얼마 지나지 않아 천둥소리처럼 엄청난 소리가 들리며 무언가 점점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결국엔 금빛과 갈색 빛이 번개를 잡아탄 듯 쏘아져 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고 그 뒤를 하얀 물보라 같은 것이 뒤쫓고 있었다.
저게 영리수?
한립은 거대한 물보라 안을 확인할 수 없어 그 안에 숨어있는 요수가 얼마나 흉악한지 상상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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