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Degree RAW novel - Chapter 85
85화. 천궐보 봉악
구하고 말고를 떠나 일단 저자의 법력의 고하를 따져보아야 했다. 알지도 못하는 여인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걸고 싶진 않았던 것이다.
만일 그의 법력이 평범하면 거리낌 없이 나서 죽이고 미인을 구하는 영웅 놀이를 해보지만 법력이 뛰어나면 동문과 합공을 해 물리치는 것과 자신이라도 도망을 치는 것 중 에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만일을 대비해 저물대에서 금부자모인 법기와 방어 부적을 꺼내고 손에는 무명의 실을 칭칭 감아놓았다.
“헤헤. 뛰는 것도 못나구나! 황풍곡 여제자들은 다 이런가? 그렇게 오래 도망을 치더니 또 저런 못생긴 녀석에게 살려 달라 빌기나 하고. 설마 저 사내가 정인인 거야?”
그 하얀 인영이 드디어 얼굴이 드러나니 뜻밖에도 백의를 입은 묘령의 여인이었다.
얼굴은 예쁘장했으나 눈썹이 올라간 것이 성격이 강해 보였다. 말은 황삼의 여제자에게 하지만 살기등등한 눈빛은 거목 위를 향하고 있었다. 모습을 그러내지 않는 한립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십이 성 공법’
한립이 상대의 법력을 확인하고 한숨을 돌렸다. 그러나 또 다른 의문이 생겼다. 나무 아래 동문 여인도 십일 성 공법이었는데 어찌 이리 쫓긴단 말인가?
상대에게 특수한 수법이나 대단한 법기가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가 망설이자 백의여인이 코웃음을 치더니 바로 소매를 휘날리며 황의여인을 향해 백광을 분출했다.
“사형 살려주세요! 법기가 다 망가져서 막을 방법이 없어요!”
이미 대경실색한 여자 동문이 급히 도움을 청했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거목 위에서 금광 두 개가 뻗어 나와 백광을 자르며 격추시켰다.
한립이 손에 들고 있던 금부자모인(金蚨子母刃) 중 자(子) 인 두 개를 사용한 것이다. 여자 동문의 얼굴에 희색이 감돌며 겨우 안정된 모습을 보였다.
그가 나선 이유는 두 가지였다. 우선 백의여인이 두려운 상대가 아니라 판단해 충분히 상대해 볼 만한 여지가 있어서였고, 다음으로 이후의 여정에 도움이 될 조력자를 찾기 위해서였는데 적과 홀로 싸울 필요 없이 십이 성 공법의 동문이 함께 한다면 이후의 결투에 큰 힘이 될 것 같아서였다.
“드디어 나설 마음이 생겼나 보네요? 난 계속 귀머거리인 척 할 줄 알았죠.”
백의여인이 한립을 비꼬며 전혀 놀란 기색이 없었다. 그녀가 손을 뻗으니 거대한 화광이 거목을 향해 뻗어 나왔다.
‘퍼펑!’
화광과 거목의 윗부분이 충돌하자 순식간에 재가 되어 흩날렸다. 그러나 어디에도 그 위에 있던 사람의 흔적이 없자 백의여인도 잠시 당황했다.
“대단한 화구 부적을 소저가 아낌없이 쓰십니다.”
반절 밖에 안 남은 나무 뒤에서 돌연 한립의 신영이 나타났다.
“십일 성?”
백의여인은 그의 성취를 확인하고는 은은히 경시하는 기색을 드러냈다. 게다가 황풍곡 동문 여인도 긴장을 풀다가 다시 안절부절 하며 속으로 울상을 짓고 있었다.
‘우리 문파의 고수이길 바랐는데 나보다 법력이 낮은 햇병아리 사제였을 줄이야.’
“그냥 숨어 있었으면 마음씨 착한 내가 살려주었을지 모르는데. 일단 나섰으니 둘 다 같이 죽여주마!”
백의여인이 눈썹을 더 치켜세우며 음산하게 중얼거리자 예쁘장하던 얼굴이 고약하게 변했다. 한립은 그저 웃었다. 그는 손에 금인을 쥐고 그녀에게로 걸어갔다.
“멈추거라! 뭘 하려는 게냐!”
그녀가 영리하게도 바로 자신의 몸에 부적을 부딪쳐 방어 법술을 펼치니 광막이 펼쳐졌다. 한립이 다가선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니 정말 아쉬울 수밖엔 없었다.
원래 천궐보 제자를 죽일 때 썼던 투명 실을 사용할 생각이었다. 방금 나무 위에서 보니 백의여인이 어떤 방어술도 펼치지 않은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경계심이 많은 상대는 무언가 이상하다 싶자 바로 자신의 약점을 보강했다. 이에 한립은 하늘을 향해 탄식이라도 하고 싶어졌다. 정말 여인들은 사내들보다 신중했다. 이런 교묘한 수법이 안 된다면 전면전이었다. 방어술을 걸고 손에 쥔 모 인들과 함께 다시 여섯 개의 동일한 금인을 꺼내 상대에게 매섭게 날려 보냈다.
동문 여인도 한립의 법기가 남달라 보이자 포기했던 마음에 다시 용기가 솟았다. 그녀는 바로 부적을 꺼내 한 줄기 화염으로 변한 그것을 뿜어냈다.
백의여인은 냉소하더니 옥 같은 손을 들어 작은 거울을 쥐었다. 그녀가 거울을 비추니 청광이 분출해 금인과 화염에 달려들었고 곧 금인과 화염은 공중에서 꼼짝없이 돌며 땅에 떨어지지도 나아가지도 못했다. 마치 누군가가 설치한 금제에라도 걸린 모양이었다.
“사제 걱정 마. 저 법기는 한 번에 일정 지역의 것만 멈출 수 있고 매 번 반각의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효력을 잃으니까.”
동문 여인이 한립의 안색을 읽고 안위했다. 그 말에 막 마음을 놓으려는데 이어지는 말에 다시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도 저 악랄한 여자는 엄월종 어느 장로의 후인이라 아마 물려받은 기괴한 법기가 많을 거야. 그러니 조심해야 해. 사제!”
한립은 할 말을 잃었다.
‘그러니 동급인 십일 성 여제자가 그렇게 처참히 깨졌구나. 알고 보니 법기가 가득한 여인이라, 진작 알려 줬으면 당연히 안 내려왔지!’
한립은 크게 후회가 되었다. 십중팔구 또 목숨을 걸고 싸워야했다.
백의여인은 자신의 법기가 한립의 금인을 막아내자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어찌 도망을 안 가나 했더니 최고급 법기를 지니고 있었구나.”
그녀는 한립을 비웃었지만 손은 쉬지 않고 다시 손을 뒤집자 분홍색 수정구를 꺼내 구동하고는 자신의 머리 위에 올려두었다.
“안 돼. 사제, 저 수정구는 다른 이의 법기를 잠식하니 어서 막아야 해. 내 법기도 다 저것 때문에 망가진 거라고.”
동문 여인이 안색이 변해 급히 한립을 일깨웠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한립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손에 들고 있던 은색 갈고리를 여인의 수정구를 향해 던졌다.
갈고리가 은광을 발산하며 날아드니 백의여인이 입을 씰룩이며 열 손가락을 다 사용한 괴상한 수결을 맺어 머리 위의 수정구에 가져다 대었다.
법결을 흡수한 수정구에서 홍광이 찬란히 퍼지며 스스로 돌기 시작했다.
동시에 분홍색 액체들을 내뿜었는데 그 하나하나가 거대한 원구를 형성해 액체로 만든 분홍 구름의 모습이 되었다.
비록 크기는 얼마 크지 않았어도 여인의 머리를 덮을 정도는 되었다.
한립은 은색 갈고리를 함부로 분홍 액체에 접근시키기 보다는 그것을 조종해 그 밑의 백의여인을 노리게 했다. 동시에 또 다른 상품 법기인 청색 밧줄을 꺼내 조용히 법력을 불어넣었다. 밧줄이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은밀히 바닥을 미끄러져 나아갔다.
“질(疾)!”
백의여인이 수정구에 손을 가져다대자 액체 구름에서 바로 작은 덩어리가 떨어져 나와 그녀에게 날아드는 은광을 잡아먹었고 은광의 갈고리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 장면을 본 한립도 조급해져서 아예 갈고리는 놔둬 버리고 그 뒤를 이은 밧줄의 공격에 집중했다. 밧줄이 정말 은밀히 상대를 휘감아 보호막이 있음에도 그 위를 덮어버렸다. 그러니 법보가 아무리 많은 그녀라도 일순 당황해 어찌 할 바를 몰랐다.
바로 그때 한립이 재빨리 부보 금광전을 꺼내 들었다. 비록 저 청색 밧줄이 얼마나 견뎌줄지 확신이 서지 않았으나 그래도 모험을 해 저 여인이 벗어나기 전에 부보로 죽일 계획이었다.
동문 여인은 생김새는 평범했으나 머리는 나름 총명해서 강력한 법기나 부적이 없음에도 끊임없이 화구술이나 빙추술을 써 은 갈고리를 잠식한 액체 구름과 거울을 공격했다.
한립의 법기를 구출해내 승산을 높이길 바라는 것이다. 단, 아쉽게도 그런 공격은 마치 모기가 문 정도의 효과 밖에는 주지 못했다.
“흥, 겨우 상품 법기로 날 가둘 수 있을 줄 아느냐? 당장 네 어리석음을 깨닫게 해주마!”
아직 밧줄에 묶여 있음에도 백의여인이 오만하게 외쳤다. 이제 그런 오만한 말을 듣는 것도 지겨워 한립은 금광전에게 법력을 빼앗길 준비를 마쳤다. 그런데 백의여인 뒤편 숲에서 거대한 영기의 폭발이 발생했다.
한립도 어안이 벙벙해 무슨 일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눈을 찌르는 듯한 황망이 수풀을 지나 질주해 갔다. 그리고 한립의 밧줄, 여인의 보호막 심지어 백의여인까지 꿰뚫어 버리니 여인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시체가 되어 땅에 떨어져 내렸다.
놀라던 한립이 바로 땅을 박차려는데 한 발 늦어버렸다. 이미 남의인이 유성처럼 번쩍이며 나타나 여인의 시체 옆에 선 것이다.
그가 시신의 허리에서 저물대를 빼앗고는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빠져나가기에 늦은 듯해 한립은 우울했지만 그래도 살기 위해서 정신을 다잡고 새로 등장한 인물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했다.
그는 만면에 흉터가 가득한 중년이었고 눈은 가늘고 코는 매부리코였는데 기세가 흉흉해 보는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게다가 공법이 십삼 성 최고봉에 이른 자였기에 한립의 표정이 더욱 신중해졌다.
“봉악, 천궐보의 광인 봉악이구나!”
생각지 못하게 남의인이 입을 열기도 전에 황의여인이 공포에 질려 외쳤다. 표정을 보니 가장 무서운 요마(妖魔)를 마주한 것 같았고 방금 백의여인에게 추살되기 직전보다 그 두려움이 더 커 보였다.
“히히, 어린 계집이 본 어르신을 알아볼 줄은 몰랐구나. 얌전히 기다리면 어르신이 물건을 확인하고 너희를 처리해 주마!”
남의인이 힐끔 여인을 보더니 두 사람을 신경도 쓰지 않고 저물대 안을 열심히 뒤적거렸다.
한립은 그저 코를 긁적이며 그를 바라보았는데 눈빛이 좋지 않았다. 그가 어떤 인물인지는 몰랐으나 사제가 아무 일에나 대경실색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한립의 생각에는 적이 강할수록 냉정을 찾아야 했다. 그가 이미 곤경을 벗어난 법기들을 보곤 금인과 은 갈고리를 불러들였다.
금인은 다행히 괜찮아서 원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은 갈고리의 모습은 한립을 놀라게 했다.
은광이 번뜩이던 물건이 이미 녹이 슬고 날이 나가 고물이 됐으니 영기를 잃고 다시는 사용할 수 없을 것이 뻔했다.
그제야 황의여인이 말한 법기를 망가트린다는 의미를 이해했다. 수정구가 분출하는 액체는 악랄해서 어떤 법기라도 멀리할 만 했다.
그가 주의를 돌려 황의인 앞에 있는 눈부신 황광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특이한 형태의 자루가 달린 소도로 칼자루는 일촌 크기에 칼날은 세, 네 촌이었으며 투명하게 반짝이면서 그 눈부신 황광을 내뿜고 있었다. 백의여인을 단번에 죽인 바로 그 물건이었다.
한립이 소도를 보면서 점차 생각에 빠졌고 얼굴에는 먹구름이 드리웠다. 그래도 부보라는 두 글자가 계속 그의 머리를 맴돌았다.
소도의 위력, 광망화 된 겉모습 그리고 놀랄만한 영기의 폭발. 무엇을 보아도 저것은 금광전과 같이 법보의 위력을 봉인한 부보였다. 이 사실은 정말 그의 속을 쓰리게 만들었다.
그가 하늘을 바라보았지만 몇 시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원정 이튿날 아침이 밝았다는 것만은 확신했다.
지금 그는 자신의 모든 운을 다 써버려서 둘째 날 아침부터 이런 불운을 연속으로 만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본문의 사매가 나타나 억지로 자신을 방패막이 삼았고 그 다음에는 수많은 법기로 무장한 엄월종 여인이 나타나 하마터면 당할 뻔했다.
그런데 이제는 무슨 광인 봉악이란 자가 나타나 법력도 자신을 초월할뿐더러 부보까지 지니고 있었다. 그는 법기덩어리 여인보다 훨씬 어려운 상대이니 어찌 몸을 빼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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