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Degree RAW novel - Chapter 86
86화. 악명
광인이란 자가 마음씨가 고와 우리 두 사람을 놓아줄 거란 기대는 전혀 없었다. 그저 최선을 다해 때려잡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봉악이 저물대를 모두 살핀 듯했다. 고개를 드는 얼굴이 희색만연인 것이 보물이 상당히 많았던 것 같았다.
그가 흉악한 웃음을 지으며 한립에게 무어라 하려다가 땅에 떨어져 있는 거울과 수정구에 시선이 닿았다. 그러자 바로 탐욕스런 눈빛을 빛내며 손을 뻗어 두 법기를 끌어당기려 했다.
안타깝게도 막 법기들이 떠오른 순간 작은 화구가 날아들어 법기들의 움직임을 차단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비슷한 화구를 만들어 그것들을 없앤 봉악의 얼굴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일그러졌다.
그 화구는 한립이 만들어낸 것으로, 방금 거울과 수정구의 위력을 체감했는데 적이 될 상대에게 넘겨줄 수가 없었다. 이를 지켜보던 황의여인은 너무 놀라 비명이라도 지를 기세였다.
봉악이 찬찬히 한립을 보더니 만면의 흉터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꿈틀거리는 지렁이 같아서 보는 이를 두렵게 할 만한 인상이었다.
“어찌 죽고 싶으냐! 한칼에 갈라주랴 아니면 화구로 구워주랴?”
황의여인은 몸을 부르르 떨며 얼굴이 하얘졌는데 두려움을 감출 수가 없어 보였다.
“그냥 네가 죽었으면 좋겠는데?”
한립이 미소를 지으며 답하는데 그 웃음이 무척 자연스럽고 밝았다.
봉악의 추한 몰골이 더없이 구겨졌다. 그는 상대가 자신을 비웃으리라곤 생각도 못하다가 완전히 열을 받았다.
그가 축기엔 아직 성공하지 못했지만 몇 가지 쓸 만한 법기와 잔인한 손속으로 이미 각 문파 저급제자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았다.
그가 원한을 갚으려 다른 수도자를 암실에 가두고 삼일 밤낮을 고문한 후 죽였다는 잔인한 기록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니 보통 다른 제자들은 본인을 만나는 것은 물론이고 이야기만 들어도 안색이 변하며 그들 두려워했다.
이런 악명에 일찍이 못마땅하게 여기는 수사들도 있었다. 그러나 교활한 그는 저계 제자들에겐 횡포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일단 자신보다 수준이 높은 이가 등장하면 도망을 가거나 숨어버렸다.
그러나 봉악이 경중을 아는 자라 배경이 있는 인물이나 그런 이들의 지인은 또 건드리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봉악은 칠대문파에서 더욱 악명이 자자해졌다.
이게 그를 더 방자하게 만들어 점점 유아독존에 제멋대로인 오만한 인간이 되어갔다. 이름난 몇 명의 제자 외에는 저급제자라면 아예 사람 취급을 않게 되었다.
그런데 오늘 겨우 십일 성인 애송이가 감히 자기를 죽이겠다 하니 어찌 화가 치솟지 않겠는가!
“죽고 싶으냐!”
성질이 급한 그니 다시 무어라 할 것도 없이 그의 소도가 황색 무지개가 되어 한립의 머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의 머리를 쪼갤 심산인 듯했다.
하지만 그렇게 둘 한립이 아니었다. 그가 손을 드니 흑색의 작은 방패가 뻗어나가 황망을 막아냈다.
소도의 황망과 방패 위면의 흑광이 마주치니 귀에 거슬리는 마찰음을 만들어냈다.
비록 황망이 우세를 보이며 흑광을 약간 밀어냈지만 방패의 위력도 전혀 줄지 않고 여전히 당당히 막아서고 있었다.
이렇게 황망은 방패를 뚫고 들어올 길이 없었다. 이 광경에 봉악은 의외라는 듯 눈을 치켜떴고 한립은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그가 비천순을 가지고 상대의 부보에 대항한 것은 상당한 위험이 따르는 일이었다.
부보의 위력이 한립이 판단한 것보다 위였다면 벌써 시체가 되어 땅바닥을 구르고 있을 터였다.
육가와 겨루던 날 겨우 최고급 법기인 청교기가 자신의 비검 부보와 반나절을 대등하게 겨루었으니 봉악의 소도도 아무리 위력이 세다 해도 비천순이 얼마간은 막아내 줄 것이라 판단했다. 이런 분석을 통해 한립이 위험을 감수하고 시도를 했던 것이다.
잠시 동안은 걱정이 없어지자 바로 금광전 부보를 손에 쥐고 구동할 준비를 했다. 일격에 상대를 눌러 죽여야 했다. 그가 영기를 불어넣으며 법술을 펼치기도 전에 봉악의 함성이 들려왔다.
“이 년이 어딜 도망가려고!”
이어서 그의 몸이 번뜩이는가 싶더니 울창한 수풀의 다른 쪽에서 한 사람을 막아섰다.
슬금슬금 내빼던 이는 뜻밖에도 황의여인이었다. 아무리 봐도 승산은 없어 보이고 봉악이 무섭게 나오자 두려움에 떨던 여인이 한립과 봉악이 겨루는 틈을 타 사라지려 한 것이다.
한립은 벌써 그런 여인의 낌새를 알아채고 속이 부글거렸지만 어차피 공포에 떨며 전혀 도움도 안 될 거라면 가든 말든 그녀가 결정할 문제였다.
다만 그녀가 먼저 배신을 한 것이니 그녀가 어디로 도망가든 관여도 않고 다신 어떤 도움도 주지 않을 작정이었다.
이젠 그녀가 알아서 자생자멸하면 되었다. 한립이야 그녀를 그냥 무시 한다지만 이미 화가 뻗친 봉악은 그리 녹록한 사람이 아니었다.
이미 한립의 도발로 둘을 살려둘 생각이 없었는데 그녀가 도망을 치니 놔둘 수 없어 급한 김에 직접 몸을 날려 그녀를 막아섰다.
여인은 너무 놀라 마치 범인처럼 법술을 펼치는 것도 잊고 온 힘을 다해 내달렸다.
이를 한심하게 보던 봉악이 또다시 얼굴을 꿈틀거리더니 괴이한 움직임으로 그녀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전혀 주저함 없이 황광이 뿜어져 나오는 손을 들어 그녀의 가슴을 뚫고 등 뒤로 뻗었다. 이제 그 황색의 거대한 손은 그녀의 피로 흠뻑 적셔지고 말았다.
황의여인의 시체가 바닥에 쓰러지며 두 눈을 번쩍 뜨고 있는 것이 아마 임종 전에 막무가내로 한립의 곁을 떠나 도망친 것을 후회했을 지도 몰랐다.
이미 상대가 변변찮은 법기나 부적도 없음을 알고 있었던 봉악은 여인을 죽이고 붉어진 손가락을 핥았다. 그리곤 한립을 향해 흉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보호장막 안에 있긴 했지만 한립의 얼굴이 약간 창백해 보였다. 봉악은 그가 비명을 지르진 않았지만 자신의 모습에 지금쯤 안절부절 못하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이전의 적들은 대부분 간단히 물리칠 수 있었거나 자신의 악명에 먼저 몸을 숙였다. 그와 맞선 이들은 그의 손에서 죽는 이만 못한 꼴을 당했으니 모두가 그들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 패배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봉악은 슬그머니 웃으며 다시 번쩍거리는 움직임으로 한립과 마주보고 섰다. 한립의 안색은 안 좋았다. 하지만 그것은 상대의 피비린내 나는 손속 때문이 아니라 그의 번개 같은 신법이 골치 아파서였다.
지난번에 금광전 부보를 사용하며 느낀 것인데 위력은 비검 부보를 초월하는 녀석이 실전에선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금광전의 위력은 대단해서 그것에 공격당하면 저급 제자 중에선 살아남을 이가 없었다.
아무리 많은 법보와 보호법술로 몸을 보호해도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약점 또한 분명했다. 일단 시전자의 몸에서 다량의 법력을 흡수해야 겨우 구동할 수 있었고 그 속도나 민첩성은 정말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만일 적이 묶여 있거나 어디 갇혀있는 상황이라면 이 부보는 적을 단번에 죽일 최적의 무기였다. 하지만 그냥 멀쩡히 있는 적을 죽이는 것은 꿈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였다.
상대가 법력을 모두 소진 하지 않았다면 속도를 높이는 보조법술 몇 가지로도 손쉽게 금광전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광전은 비검 부보나 봉악의 소도 부보처럼 공격형 법보의 위력을 봉인 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저 순전히 강대한 힘을 발휘하는 공구나 다름없었다. 아마 천궐보 고인이 금제를 뚫을 때 사용했던 법보도 비슷한 종류일 것이다.
이제 봉악을 가둘만한 법기나 부적이 없으니 한립은 여러 개의 금인을 이용해 적을 잠시 붙잡아두고 금광전을 이용해 기습을 할 계획이었다. 그렇게 하면 조금은 성공할 가능성이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봉악의 신법을 보니 이 모든 것이 망상에 불과했다는 것이 확연해졌다.
라연보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신법이니 그가 마음만 먹으면 그깟 금인으로는 잠시도 그를 묶어 둘 수 없었다. 한립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설마 그도 나 같은 강호 출신인 건가? ’
* * *
봉악의 쾌속과 같은 신법이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걸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금광전 부보는 잠시 넣어두고 다시 수중의 주모부자인의 모(母) 인을 쏘아 보냈다.
그러자 다른 자(子)인 들이 벌떼처럼 쫓으며 각각이 내는 빛이 무지개 색을 이루었다.
이 기세 등등한 도인(刀刃)들이 봉악을 숫자로 압도할지는 알 수 없었다.
상대가 황망을 거두어 이것들을 막는다면 아주 좋을 것이다. 그래도 승패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될 확률은 희박했는데 상대의 엄청난 악명에는 어느 정도 실력이 뒷받침되기 마련이었다.
이번 공격은 상대의 실력을 떠보기 위한 것이라 해도 틀리지 않았다. 역시 한립의 예상대로 금인들이 날아드는 데도 봉악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키득거리며 막 꺼내든 법보에 법력을 주입하니 우산형 법기였다.
‘퍼버버벅!’
봉악은 우산을 날리거나 하지 않고 여유로운 태도로 여덟 개의 금광 앞에 펼치니 둥근 황색의 광구가 형성되며 바로 그의 전신을 가려주었다.
곧 금인 들이 이 광구에 부딪쳤지만 충돌의 반동에 의해 튕겨나가 버렸다. 놀랍게도 그 우산형 법기도 최고급으로 위력으로 보아 분명 한립의 비천순 이상이었다.
한립은 안색이 바뀌었고 봉악은 다시 그 흉악한 웃음소리를 내며 득의양양해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황라산(黃罗傘)을 얻은 후 저계 수도자의 법술에 상처를 입은 적이 없었다.
거기다 한립의 놀란 얼굴을 보니 더없이 통쾌하기도 했다. 황라산은 봉악에게 소도 부보 보다 중요한 것이었다.
어쨌든 부보는 몇 번 쓰면 폐물이 되는데 황라산은 언제든 자신의 목숨을 지켜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한숨을 내쉰 한립이 수결을 맺고 구결을 외자 금인들이 전부 회수 되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봉악이 예상한 대로 방어력이나 법위는 비천순이 황라산을 못 따르겠지만 민첩한 움직임과 영성(靈性)만큼은 어느 방어성 법기보다 위에 있다 자신했다. 그래서 황망이 괴이한 움직임으로 한립의 주위를 돌아도 번번이 방패에 막히자 봉악은 저 방패를 부수지 않고는 한립을 공격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씩씩거린 봉악은 소도의 황망을 이용해 조금씩 방패를 손상시키는 길을 택했다.
어쨌든 방패의 흑광도 많이 상해 남은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은 것 같았다. 동시에 한립도 이렇게는 승기를 잡을 수 없겠다 판단해 이를 악물고 속이 쓰린 결정을 내렸다. 금인을 다시 저물대에 넣고는 청색의 호리병을 꺼내 들어 높게 받쳐 들었다. 그러자 그 중간에서 여덟 개의 흑색 원구가 분출돼 봉악을 향해 날아갔다.
그것을 지켜보던 봉악이 그의 행동에 어리둥절해 했다. 그 호리병은 정말 평범한 법기로 저계 수선자라면 다들 그것이 가격 대비 좋은 법기라는 것을 알아 많이들 사용하곤 했다.
그 용기는 호리병이기도 했고 항아리인 경우도 있었지만 그곳에서 분출하는 원구들은 하나같이 ‘혼원주(混元珠)’라 불렸다. 다만 혼원주의 위력은 최고급 법기에 비한다면 너무 보잘것없어서 잘 봐줘도 중품 법기 정도밖에는 안되었다.
그러나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봉악은 의혹이 생겼다. 그는 원구가 가까이 다가오기 전에 손으로 횡으로 저어 빙모술(氷矛術) 부적을 쥐었다. 부적은 바로 수정과 같은 얼음 창으로 변해 그것들을 맞이했다.
‘펑!’
경쾌한 소리와 함께 얼음 창이 연달아 세, 네 개의 원구를 부숴버렸다. 그와 동시에 눈꽃같은 얼음 알갱이들이 공중에 흩날리자 선녀가 뿌린 꽃처럼 아름다운 모습을 자아냈다.
그걸 확인한 봉악도 안심하고 주의력을 한립에게로 돌렸다. 마침 그는 거대한 청색 깃발을 쥐고 있었는데 그곳에 수놓아진 푸른 교룡의 이빨과 발톱이 당장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처럼 생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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