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RAW novel - Chapter 198
198화. 요수의 내단
한립은 작은 잡화점에 들어가 필요한 물건을 대부분 구했지만 나머지 희귀한 물건은 아직 구하지 못해 여러 상점을 더 돌아볼 생각이었다.
그는 다양한 점포들을 구경하며 길을 거닐었다. 사실 약방이나 공법이 적힌 경전 등도 항상 부족했기 때문에 새로운 약방문 한두 개만 더 구해도 좋을 것 같았다.
여려 점포를 돌던 한립은 놀람을 금치 못했다.
곡혼을 점포 밖에 세워두고 들어간 단약방에서 축기 수사가 이용할 만한 약방문을 구할 수 있겠는지 묻자 주인이 수십 장을 내놓았던 것이다. 그가 너무 이상해서 자세히 살피고는 더욱 할 말을 잃었다.
이 약방문들은 약재가 아니라 여러 등급 요수의 내단을 주재료로 한 것들이었다. 특히 귀한 것은 육, 칠급에 달하는 요수의 내단이 있어야 했다.
물론 수백 년 자란 영초도 필요하긴 했으나 그저 약성을 북돋는 보조 작용을 할 뿐 그 종류를 바꾸어 아무 영초나 써도 될 정도였다. 그러니 약방을 손에 쥐고도 한립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는 낮은 가격에 약방 여러 장을 사서 점포를 나섰다. 그러나 잠시 후, 다른 약재상을 찾은 그는 어디에서나 비슷한 물건들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들린 점포에서 한립이 조심스레 요수의 내단을 쓰지 않는 약방은 없냐고 묻자 점주는 해괴한 질문을 다 듣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고계 약방에 요수의 내단이 쓰이지 않으면 그럼 무엇으로 만든단 말이요?”
한립은 그제야 영초를 주재료로 하는 약방을 찾겠다는 마음을 접었다. 난성해 선사들은 천남 지방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약방을 발전시켜 온 것이 틀림없었다.
잘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다.
끝없는 바다에 수많은 요수들이 살고 있어 아무리 잡아도 멸종이 되지 않으니 천남 지방과는 다르게 고대의 약방문이 그대로 전수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던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한립은 구입한 약방 중 축기단이라 불리는 단약의 약방을 자세히 보았다.
단약은 천남 지방의 약방과 거의 흡사했으며 혈금시련에 가서 겨우 구해온 주재료만이 오급 요수의 내단으로 대체되어 있었다.
한립은 깊은 생각에 빠져 들었다.
잠시 후 생각을 마친 한립은 다시 점포를 돌며 공법에 관련된 것을 알아보았다.
이번엔 별 다른 이상이 없었다. 각 점포에서 판매하는 공법이나 오행법술 류가 천남 지방의 것과 거의 일치했던 것이다.
조금 다른 점은 물 속성의 법술이 굉장히 발달해서 일부는 한립이 들어보지도 못한 새로운 법술이었다.
한립은 물 속성 법술을 둘러보려다가 단약에 관련된 을 사버렸다.
이 서책에 아까 여섯 개 전각에서 들은 강진단(降塵丹)에 대한 서술이 있어서였다.
물건을 살만큼 산 한립은 다시 곡혼을 데리고 성을 빠져 나왔다. 결계 구역을 벗어난 그들은 신풍주를 타고 고가가 위치한 방향으로 질주했다.
반나절이 조금 못되어 한립은 저 멀리 익숙한 풍경이 가까워지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바로 고가로 들이닥칠 마음은 없는지 살짝 방향을 틀어 자신의 옛 거처로 향했다.
통나무집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으나 떠난 지 오래 되어 훨씬 낡아있었다. 세월의 흐름에 탄식한 한립은 조용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음?
놀랍게도 상상했던 먼지투성이의 방이 아니라 누군가가 다녀가기라도 한 듯 깔끔한 모습이었다. 게다가 탁자 한쪽에는 남색의 꽃까지 꽂혀 있는 것이 관리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한립은 코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고 선생이 신경을 많이 쓰네.”
그는 더 지제하지 않고 곡혼을 거처에 두고 고가가 있는 산 아래로 천천히 내려갔다.
한립이 바로 법기를 타고 고가의 담을 넘지 않은 것은 고 선생에게 예의를 차리는 마음에서였다.
그가 대문으로 다가서자 그곳을 지키던 두 명의 거한 중 하나가 물어왔다.
“무슨 일로 고가를 방문해 주셨습니까?”
“가주에게 한 씨 성을 가진 사람이 찾아 왔다 전하게.”
“가주께선 지금 외부인을 만나지… 음? 한 씨 성이라면…… 설마 한 선사님이십니까?”
거한은 단칼에 거절하려다가 다시 한 번 한립을 훑어보았다.
“날 아는가?”
“정말 한 선사님이시군요! 조금만 기다려 주십쇼. 바로 가주께 고하겠습니다.”
그는 재빨리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농장 안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가장 선두에 서있는 노인은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한립을 향해 예를 올렸다.
“한 선사님 드디어 오셨군요! 정말 오래 기다렸습니다.”
노인이 고개를 숙이니 그 뒤에 있는 이들은 당연히 더 깊이 예를 취했다. 한립이 노인을 살펴보니 당시 중년이던 고 선생이 백발의 노인으로 변해 있었다.
“잘 지냈는가, 고 선생.”
고 선생의 공손한 안내를 받으며 그들은 거대한 장원으로 들어섰다.
방 안으로 들어가자 고 선생은 한립이 입을 열기도 전에 준비한 거대한 영석 주머니를 한립에게 받쳤다. 그리곤 집안의 어린 자식들을 열정적으로 소개하기 시작했다.
한립이 그의 뜻을 모를 리 없었다. 고 선생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믿을 만한 선사가 후손들을 좀 챙겨주었으면 하는 마음인 것이다.
담담히 웃은 한립은 옛 정을 보아 그의 뜻대로 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고 선생은 감동해 당장 한립을 위한 연회를 베풀겠다 했으나 한립은 곧바로 거절했다.
한립은 고 선생과 짧은 안부를 나누고는 산에 있던 곡혼을 불러들여 법기를 타고 인근의 마을로 날아갔다.
그는 마을의 객잔에서 방을 빌린 후 바로 이란 서책을 들고 밤새워 연구했다.
* * *
다음날 드디어 난성해의 각종 단약에 대해 대체적으로 이해하게 된 그는 특히 강진단에 대해서라면 거의 외울 지경이었다.
서책에 따르면 강진단의 제련에는 다양한 요수의 내단이 필요로 할 뿐 아니라 귀한 영초도 필수적이라 무척 진귀한 단약이 분명했다.
결단을 도와주는 효과는 그리 크지 않았으나 그 작은 가능성만으로도 결단을 코앞에 둔 선사에게는 보물이나 다름없는 단약이었다.
결단 확률을 백분의 일만 높여 준다 해도 포기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단약의 진가를 알면 알수록 이렇게 좋은 보상을 주는 일이 상대의 말처럼 안전하게 진법이나 지탱하는 것은 아닐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만일 제안을 수락한다면 큰 위험과 맞닥뜨리게 될 것이고 어떤 곤란한 일을 겪게 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한립도 결단을 앞둔 수사로서 강진단이 욕심나지 않을 리 없었다. 물론 살단을 앞둔 곡혼도 마찬가지였다.
객잔에서 한참 머리를 굴려보던 한립은 결국엔 모험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사실 자신과 곡혼 모두 축기 후기의 수사이니 위험한 상황이 닥쳐도 생명을 보호할 능력은 되리라 판단한 것이다.
게다가 여섯 전각의 세력이 상당해 보이니 좋은 관계를 맺어 놓으면 이후 난성해에서의 생활에 이점이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모든 결정을 내리기 전에 여섯 전각의 소문을 좀 들어보기로 했다. 일이 끝난뒤 사례를 못 하겠다 버티면 난감하지 않은가?
그는 다시 괴성으로 향했다.
* * *
약 15일 뒤에 거대한 선박이 괴성도 항구를 출발했다. 곧이어 하얀 색과 푸른색 빛이 하늘을 날아 선박으로 떨어져 내렸다.
빛이 사라지자 갑판 위에는 세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체구가 엄청나지만 추하게 생긴 사내와 턱수염이 난 중년인 그리고 평범한 인상의 청년이었다.
선박에서 눈망울이 큰 중년인이 달려 나와 공손히 예를 취했다.
“환영합니다 선사님들! 저는 배의 선장인 락정이라 합니다. 다른 분들은 이미 모여계시니 제가 안전하게 요수가 출몰하는 지역으로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세 사람은 당연히 한립과 곡혼 그리고 백수루의 점주인 조록이었다.
“곡 선사, 그럼 조심하시고 전 먼저 가보겠습니다.”
조록은 곡혼에게 예의를 차리고는 먼저 날아서 돌아가 버렸다.
“거처를 마련해 두었으니 안으로 드시죠.”
한립은 배를 둘러보다 곡혼과 함께 배 안으로 들어갔고 락정 선장이 뒤를 쫓았다.
안으로 들어선 한립은 눈앞의 상황에 조금 놀랐다. 그가 상상하던 협소한 통로가 아니라 십여 장은 될 법한 대청이 바로 나타났던 것이다.
대청 중앙에는 기다란 협탁과 열댓 개의 의자가 있어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인기척을 듣고는 고개를 돌려 두 사람을 훑어봤는데 주요 관심사는 곡혼인 듯 했다.
곡혼의 몸이 흐릿해 지더니 한립의 앞을 막아서며 무표정하게 말했다.
“저는 곡혼이라 하고 이 아이는 제 사질인 한립입니다. 다른 선사 분들은 어찌 불러드려야 할지요.”
“이번 항해에 함께 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는 여섯 전각의 풍삼낭으로 여러분과 함께 진법을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마흔 살쯤 되어 보이는 중년 부인이 조용히 일어나 말했다. 풍 부인은 아주 아름답다 말할 수는 없었으나 나이에 비해 고운 얼굴이었다.
“저도 반갑습니다, 풍 선사.”
곡혼은 낮은 목소리로 답하고는 한립을 데리고 협탁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한립의 눈에 낯선 인물들이 들어왔다.
문사차림의 중년인, 스무 살 정도의 고운 여인, 회백색 눈을 가진 노인, 온몸이 검붉게 빛나는 청년 그리고 방금 자신을 풍삼낭이라 칭한 부인까지 모두 다섯이었다.
고운 여인은 겨우 축기 초기 수사였으나 옆의 문사차림의 중년인과 친밀해 보이는 것이 반려인 것 같았다. 한립이 눈으로 상황을 살피는데 풍 부인이 소개를 시작했다.
“마침 잘 오셨습니다. 모두 모여 육둔수파대진(六遁水波大陣)을 연구 중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우선 다른 선사들을 소개해 드리죠.”
풍삼낭은 사람과 교류하는데 능통해 보였다. 몇 마디 하기도 전에 이미 친숙해진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두 분은 미성도(尾星島) 도주이신 첨태 선배님의 제자 모 선사와 그 반려 설 선사이시고요.”
그녀는 중년 문사와 여인을 가리켰다. 그러나 중년 문사가 싸늘한 눈으로 한립을 쳐다보더니 그녀의 말을 끊었다.
“곡혼? 괴성도 수사라면 알만큼 아는데 어찌 들어본 적이 없지?”
중년 문사는 곡혼이 눈에 거슬렸던지 처음부터 말투에 예의가 없었다. 곡혼도 감정 없는 목소리로 반격했다.
“원래 괴성도 수사가 아니라 이곳에 거주하는 한 사질을 보러 온 것이라 그렇소. 나도 당신 이름을 들어본 적 없는데 당연히 당신도 내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겠지.”
중년 문사가 짜증이 났는지 얼굴을 굳히고 더 무어라 하려는데 풍 부인이 눈치 있게 말을 이었다.
“들어보지 못하셨다니 제가 소개를 해드려야지요. 이 분은 금별도(金鱉島)에서 은거하고 계신 청산자 선사이신데 나무 속성 계열의 법술은 축기기 수사 중에서 따라 올 사람이 없습니다. 이쪽 엄 선사님은 암화체(暗火體)에 능해 엄청난 양기의 진화를 자유자재로 다루시는 분이고요.”
“청 선사와 엄 선사를 뵙습니다.”
곡혼은 노인과 청년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표했다. 두 사람 모두 중년 문사처럼 축기 후기였으나 한립이 느끼기에 문사보다 법력이 강한 듯 했다.
“곡 선사 반갑네.”
“엄 모가 곡 선사를 뵙습니다.”
두 사람 모두 호의적으로 인사를 받았다. 그 모습에 중년 문사는 더욱 심기가 불편해진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풍삼낭이 돌연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다.
“거처로 돌아가 쉬어야겠으니, 진법에 관해선 다음에 이야기 합시다.”
말을 꺼내기 무섭게 소맷자락을 휘날리며 대청을 나가버리니 여인도 미안한 기색으로 다른 이들에게 눈인사를 하고는 그를 따라갔다.
엄 씨 청년의 몸에서 검붉은 빛이 번뜩이더니 화를 표출했다.
“흥! 겨우 도주를 사부로 두었다고 어지간히 유세를 부리는군요.”
노인과 풍 부인도 미미하게 안색이 변했으나 노인의 얼굴은 바로 무표정하게 돌아왔고 풍 부인도 억지로 미소를 띠었다. 아무래도 중년인에 대해 언급하고 싶지 않아하는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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