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ektu Sword Zone Central Expedition Punishment RAW novel - Chapter 107
107화 천하제일 남궁세가? 2.
삼족오.
다리 셋 달린 까마귀.
중원에선 수와 당을 궤멸시킨 고구려의 상징.
고구려와 수당의 전쟁이 끝난 지 거의 700년이나 흐른 지금까지도 잊히기는커녕.
중원의 뇌리에 여전히 명징하게 자리 잡고 있는 굴욕의 문양.
“중원에서 삼족오는 금기요. 근데 그걸 옷에 문양으로 박아? 굳이 그런 도발을 할 이유는 또 뭐요?”
“재밌을 거 같아서.”
“진짜 미친 게요?”
석다물이 대답 대신 미소로 화답했다.
석다물의 미소로 보아 말릴 수 없을 듯싶었다.
“문주, 태장장로, 장로, 대주, 각주, 단주, 원주, 조장, 대원 뭐 이 정도면 될 라나?”
“쥐구멍만한 신흥문파에 뭐가 그리 많소?”
“언제 규모가 커질지 모르잖아요. 일단 옷부터 만들어 두자는 건데.”
“미리 만들어 둘 필요가 뭐가 있어? 일단 있는 사람들 옷부터. 헌데 백하루를 키울 거라면서 백두문 복색은 또 왜?”
“필요하니까.”
“알겠소. 문주의 명이니 따라야지. 허나 이거 하난 명심하셔야 할게요. 모난 돌이 정 맞고. 그 문양 때문에 괜한 시비가 생길 수도 있다는 거.”
석다물이 또 한 번 빙긋 웃어 보이고는 말했다.
“빨리. 최대한 빨리. 곧 또 움직여야 하니까.”
“어딜 또?”
“옷 다 만들어지면 얘기합시다. 아니 지금 애들을 각자 본가로 보낼 거야. 걔들 돌아오면 얘기합시다.”
“갔다 오는데 한 달은 족히 걸릴 텐데? 그동안 뭐하고?”
“무인이 할 게 수련밖에 더 있나?”
아무리 장난기 넘치고 가끔 아니 자주 실없어 보이는 석다물이라도 삼족오 때문에 시비가 걸릴 수도 있다는 걸 모를 리 없었다.
분명 뭔가 생각이 있어 이런 말을 하겠지 하는 생각에 유화가 군말 없이 침모(針母)들을 불렀다.
유화가 침모들을 불러 석다물이 지정해 준 백두문의 복색대로 옷을 만들 것을 지시를 끝내자.
이번엔 석다물이 각 세가의 기재들을 각각 은밀하게 유화의 내실로 불렀다.
제일 먼저 영문도 모르고 방으로 들어온 남궁가의 외척 남매인 추단영과 추벽상이 방으로 들어왔다.
부름을 받고 들어오긴 했으나 아직은 어딘지 어색한 두 사람이 석다물과 눈을 맞추지 못하고 바닥을 봤다.
석다물이 뚫어져라 그런 그들을 응시했다.
“너희들의 가문으로 돌아가거라.”
돌아가라는 석다물의 말에 추단영과 추벽상이 서로 눈을 한 번 맞추고는 대답했다.
“문주의 말씀이 무슨 말인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문주님의 뜻대로 되진 않을 것입니다.”
“내 말이 무슨 말이고 내 뜻이 어떤 건지 좀 알려 주겠나?”
“저희를 내치려 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저희는 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아닌데?”
“아니라구요?”
“한 번 들어나 보자구 대체 왜 그런 생각을 한 건지.”
추단영과 추벽상이 서로를 마주 보며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는 서로 고개를 끄떡였다.
서로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는 행위.
이건 흔하게 표현되는 일종의 결심을 타인에게 드러내는 일종의 신호였다.
보통 알고 있는 모든 걸 전부 털어놓고자 할 때 쓰이는 표현이기도 했다.
추단영과 추벽상이 서로를 보고 끄덕인 건 그러기로 한 것에 대한 합의한 듯 보였다.
“예상하신 대로 저희는 저희 집안으로부터 몇 가지 임무를 받고 왔습니다.”
“알아. 아무리 맹주의 부탁이라도 가문의 최상위 인재를 그냥 내줄 리가 없지. 그래서 뭐? 나 죽이래?”
추벽상이 당황하며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그저 정보를 빼오라 했습니다.”
“어떤 정보? 내 정보? 아니면 무림맹의 정보도 같이?”
추단영이 무슨 말을 하려는 지 말하기 전에 깊은 심호흡을 한 번 더했다.
이런 경우는 둘 중 하나.
말해선 안 될 말을 내뱉으려는 게 아니라면 많은 사람이 알고 있지만 쉽게 입으로 정리해 내뱉을 수 없는 말을 하려는 순간이라는 의미.
이런 순간에는 말을 받는 사람이 어찌 받느냐에 따라 말로 옮겨지는 정보의 급이 달라진다.
석다물이 빙긋 웃으며 물었다.
“심호흡에 뜸 들이는 꼴을 보니 뭐 진주하 얘기야?”
진주하라는 말에 추단영이 발끈하며 소리를 질렀다.
“아니라니까 왜 자꾸 그러십니까? 여기서 진주하가 왜 나옵니까?”
“아님 말지 왜 소리는 지르고 그래? 그리구 진주하 얘기 지금 처음 나온 거잖아.”
“전에 야전 수련할 때 한 번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걸 아직도 기억한단 말이야? 알았어. 알았어. 얘기해 봐.”
석다물의 장난 덕에 한결 긴장이 풀어진 두 사람이 말을 시작했다.
“아시겠지만 무림맹이란 곳은 독립적인 조직이 아니라 무림에서 내로라하는 각 문파, 세가의 연합체 성격입니다. 그런 탓에 실권도 없고 이렇다 할 권한도 없는 유명무실한 집단이었다 들었습니다.”
“알아.”
“맹주란 직위 역시 그랬구요. 각 문파에서 배분 좀 되는 무림의 어른이 돌아가면서 한 번씩 맡는 그저 명예직이었지요.”
“그것도 알지.”
“그러다 마교와의 대전 이후에 각 문파와 세가가 자신들의 권한을 능가하는 권능을 무림맹에 들어 바쳤고 무림맹은 그 이후 무림에서 가장 강한 집단이 되었고 구파와 세가들을 발아래 두게 되었습니다.”
이미 원각에게서도 연위작에게서도 들은 얘기였고 딱히 새로울 건 없는 얘기였다.
“그리고 지금 각 세가들이 예전처럼 돌아가고 싶어 한다?”
“예.”
석다물이 모두 아는 이야기들뿐이니 뭔가 정보가 될만한 새로운 얘기를 꺼내 보라는 듯 추단영과 추벽상에게 추궁하듯 물었다.
“그 얘기를 지금 왜 하는 건데?”
“지금 무림맹에 파견된 각 문파와 세가의 원로나 인재들은 인질이기도 하면서 각 문파의 세작이기도 합니다.”
“알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림맹과 각 문파나 세가 사이에는 여전히 알력과 암투가 존재합니다. 서로의 힘을 줄이기 위해 혹은 자신의 힘을 키우기 위해.”
“그것도 알아.”
“지금까지 무림맹에서 각 문파나 세가가 통제할 수 없는 조직은 단 네 곳뿐이었습니다.”
“그건 모르던 거였네. 계속.”
“군사부와 비연대, 낙안대, 신검대. 소위 맹주의 직할대라 불리는. 이곳들은 맹주가 직접 키워내고 만들어 낸 곳이라. 실체를 알 수도 통제력을 행사할 수도 없는 조직이지요.”
“그래?”
이번엔 추벽상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심호흡을 했다.
“그런데 백두문이라는 정체불명 문파가 생긴 겁니다.”
“아하! 그래서 거길 알아보라 그랬다는 거야? 진짜 60년 전 백두문의 전인이 맞는지. 대체 무슨 꿍꿍이로 다시 무림에 출두한 건지 등등?”
“예.”
“너희들 뭔가 솔직해 보인다? 그 얘길 왜 하는 건데?”
“어차피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숨겨봐야 득 될 것도 없고.”
“알았으니까 가서 그건 너희들 보고 듣고 느낀 대로 가서 보고하고. 필요하면 원하는 자료를 달라는 대로 줄 테니까. 아! 제일 중요한 게 왜 다시 무림에 나왔는지 그 꿍꿍이를 알아가는 거겠구나. 그렇지?”
“그뿐만이 아니라….”
그뿐만이 아니라는 말에 석다물이 얼굴을 찌푸렸다.
“뭐? 암살이라도 하래?”
“그건 아닙니다. 문주의 신임을 얻으라 했습니다.”
“오호 이중첩자?”
“예.”
“그럼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외워라.”
“예.”
“뭐가 그렇게 바라는 게 많아? 주면 주는 대로 처먹고 때리면 때리는 대로 처맞는 게 강자에 대한 미덕 아니야?”
“예?”
“지금 이 말은 가서 너희 가주한테 그대로 전해.”
“예.”
“아 그리고 녹옥불장. 자반죽간, 자하신검, 아미는 뭐였더라? 반지였나? 염주였나? 그러구 보니 화산도 헷갈리네. 자하신검이었는지 매화검령이었는지. 아! 검령이었군. 자하신검은 화산장문이 나하고 시비 붙을 때 들고 왔으니 아니겠군.”
마치 중얼거리는 듯한 석다물의 말에 추단영이 놀란 듯 되물었다.
“그것들은 도난당했다던 물건들이 아닙니까?”“맞아. 이 말도 가서 전해. 곱게 돌려줘서 고맙긴 한데 이유는 알아야겠다고.”
“예?”
“그러니 곧 내가 방문하겠다고. 나한테 무림맹주에게서 전권을 위임받은 맹주패가 있다고. 그걸 들고 가겠다고.”
“왜요?”
“왜요라니? 지금까지 뭐 들은 거야? 바로 출발해. 이건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 맹주와 내 생각이 일치한 거니까 가서 잘 전해. 가주님 기분 상하지 않게.”
추단영과 추벽상의 표정이 동시에 어리둥절해졌다.
‘너희 가주가 보물들을 훔쳐낸 배후다. 맹주의 권한을 위임받은 나 석다물이 그걸 조사하러 직접 가겠다.’
석다물의 말을 새겨보자면 그건 곧 이런 의미였으니.
그래 놓고 가주님 기분 상하지 않게 잘 전해라?
이게 사실이라면 아무리 위세를 사해에 떨치고 있는 남궁세가라 해도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
그냥 순순히 무림 공적의 되는 수밖에.
그뿐인가?
무림맹에서 도난당한 마병들과 난데없이 출현했다는 광혈시마의 전인이라는 자와도 엮일 수 있다.
더군다나 광혈시마의 전인이란 자는 이미 죽고 없다.
그건 광혈시마의 전인이라는 자와 무관하다는 걸 확인할 방법이나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냥 누군가 권한 있는 자가 엮으면 엮는 대로 엮일 수밖에 없는 최악의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묻지 않고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알겠다 대답하는 추단영과 추벽상을 보며 석다물이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말했다.
“너희가 가문에 애정이 없구나. 이 상황이면 뭔가 두둔을 하든 핑계를 대든 해야 하는 거 같은데.”
“남궁가는 저희 가문이 아닙니다.”
“그 말은 이중첩자로서 임무를 원활하게 수행하려는 의도야?”
“반반입니다.”
“알았다. 다녀와라.”
“예.”
남궁가의 추단영과 추벽상이 나가자 이번엔 제갈가의 제갈연미와 주하랑을 불렀다.
제갈가의 아이들과 남궁가의 아이들하고 했던 거의 비슷한 얘기를 나누고는 제갈가로 돌려보냈고.
다음엔 당가의 당연정과 당영걸을 불러 거의 같은 얘기를 나누고 당가로 돌려보냈다.
이런 식으로 모든 세가의 아이들을 각각 따로 불러 같은 얘기를 했지만,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남궁가의 추단영이나 추벽상, 황보가의 황보주희나 황보연처럼 묻지도 않은 말을 술술 내뱉는 사람도 있었고.
제갈가나 당가 악가, 연가, 언가처럼 극구 부인하며 대들기까지 하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팽가나 모용가, 조가처럼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정말 재미있는 일이 생겼다는 듯 가서 가주께 물어보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각 세가의 기재들에게 모두 같은 명을 내리고 본가로 돌려보내는 일을 끝내자 가만히 지켜보던 유화가 물었다.
“설마 녹옥불장을 훔쳐낸 게 무림의 내로라하는 세가에서 저지른 일이라 생각하는 거요?”
“알아보잖아. 지금. 제 발 저린 놈이 먼저 나서겠지.”
“수라마륜은? 흑시마갑은? 광명수라도는? 다시 나타난 광혈시마는?”
“그건 별개인 것 같은데? 우연히 겹쳐진 사건이라고나 할까?”
“말이 되는 소릴 하슈. 우연히 넘어졌는데 배 밑에 아미의 제자가 깔려 있었다는 말이랑 뭐가 달라?”
“아 그건 진짜라니까. 넘어졌는데 진짜 구정이가 있었다니까.”
“지랄한다. 아무튼. 어느 정도나 확실한 정보요?”
“원각이 해 준 말이야. 보아하니 원각이랑 연위작, 당군악이 뭔가 비밀 조직하나 돌리고 있는 거 같고 거기서 나온 정보라면 믿어 볼만하지.”
“그 정보의 진위를 확인할 임무를 문주한테 맡긴 거요?”
“아마도?”
“그래서 또 바보같이 그걸 덥석 물고 하겠다 한게요?”
“지금까지 뭐 들은 겁니까? 아까부터 다 설명 했구만. 이젠 나이가 드니까 기억까지 깜빡깜빡하십니까?”
“닥치시고.”
유화가 짜증 난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고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