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138
〈 138화 〉 과거, 그보다 더 먼 과거(1)
* * *
“···쿠락트 산맥에 오른다고?”
에랴흘이 눈을 깜빡였다. 그가 당황했다.
에랴흘의 주변에 서 있던 전사들 또한 숨을 헛삼켰다. 대공이 당황하는 일은 드물었다. 드문 일이 일어날 때는, 무언가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네, 사흘 뒤에 오르려고요.”
에랴흘의 시선이 눈앞의 소녀에게 향했다.
소녀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꼭 동네 뒷산이라도 오르겠다고 말하는듯한 목소리다. 그리고, 쿠락트 산맥은 동네 뒷산에 비견될만한 것이 아니었다. 절대로.
“교수, 쿠락트가 어떤 곳인진 알고 있나?”
“북부에서 가장 험준한 산들이 모인 산맥이라고 들었어요.”
“그래, 거기에 ‘지난 수백 년간 쿠락트의 중턱을 넘어본 이가 없다’는 문장을 추가하면 좋겠군. 그것이 무슨 뜻인지 모르나?”
에랴흘이 눈을 가늘게 떴다.
“쿠락트를 오르는 건 자살 행위다.”
직설적인 말이었으나, 에랴흘이 생각하기에 그것 이상으로 적절한 표현은 달리 없었다.
“전사들은 도전을 즐긴다. 때로는 무모함을 무릅쓰고, 제 목숨을 걸며 도전을 하지. 하지만, 쿠락트에 오르는 건 도전이 될 수 없어.”
단순한 자살 행위에 불과하다.
“쿠락트를 감싼 눈보라는 단순히 ‘거세다’라는 표현으론 부족하지. 성역의 눈보라를 보았나? 쿠락트는 그보다 더 심하다, 교수.”
죽을 것을 알고 들어가는 것이다.
쿠락트에 오른다는 것은 그런 의미였다.
“무모하다. 나로선 그대를 말릴 수밖에 없군.”
“그런가요.”
에랴흘의 경고에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경고를 듣기는 하되, 받아들이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래도 오를 생각인가.”
“올라야 할 이유가 있어서요.”
“이유가 무엇이지?”
“말씀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
여전히 그 목소리는 담담하다.
소녀의 입가에서 매끄럽게 흘러나오는 목소리를 들으며, 에랴흘은 눈을 가늘게 떴다.
에랴흘은 많은 인간을 봐 왔다.
숱한 인간들을 봐 왔으므로, 눈앞의 소녀가 어째서 저런 태도를 취하는지···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이미 결정을 내렸군.’
소녀의 푸른 눈동자는 무겁다.
담담하되, 가볍지는 않은 목소리다. 그것은, 이미 결심을 다진 이가 보이는 태도였다.
‘별다른 말을 해도 소용은··· 없겠지.’
결정을 쉬이 번복하는 이가 있다면, 그렇지 않은 이도 분명 존재한다. 그리고 눈앞의 소녀는 명백히 후자에 속하는 이였다.
“···후우.”
에랴흘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말을 해도 쿠락트를 오를 작정이로군.”
“결정했으니까요.”
“그래, 그곳에 뭐가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에랴흘이 천천히 팔을 들어 올렸다.
그가 검지를 뻗어 무언가를 가리켰다.
“이것 하나만은 명심해라, 교수.”
그가 가리킨 것은 라니아의 눈동자다.
라니아의 푸른 눈동자를 가리키며 에랴흘이 말했다.
“무엇을 보던 당황하지 마라. 다만 받아들여라. 쿠락트는 그런 곳이니까.”
그게 무슨 소리인가.
라니아는 그런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그녀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새겨듣겠습니다.”
2.
결정을 내린 일에 관해서, 나는 제법 행동이 빠른 편이었다. 쿠락트에 오르기로 결정을 내린 지 사흘, 나는 그 사흘을 꽤 바쁘게 보냈다.
“오늘은 여기까지.”
사흘간 나는 라크를 가르쳤다.
해가 중천에 뜰 즈음에 출발해, 해가 질 때까지 라크의 곁에서 훈련을 도왔다. 라크는 내 가르침을 빠르게 받아들였다.
“이렇게, 하는, 겁니까?”
“그래. 우선 숨통을 트고, 그다음에 전신으로 옮겨. 한 번에 하려 하지 말고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면 돼.”
라크는 우직하게 가르침을 받았다.
언제나 라크는 그랬다. 쉬운 길은 모른다. 효율 좋은 방법도 모른다. 그저 우직하게 가르친 것을 받아들일 뿐이었다.
‘어찌 보면 무식한 거지만···.’
라크는 조금 달랐다.
라크는 뭐든지 받아들이는 게 빨랐다. 무언가를 거부하는 법이 없었다. 그렇기에, 라크는 내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와보자. 괜찮겠어?”
“음, 조금 더 가도 될 것 같습니다.”
처음 훈련했을 때보다 스무 걸음 앞.
거세지는 눈보라 속에서 라크는 최대 두 시간 남짓을 버텼다. 기절하기보다는 탈진해서 쓰러지는 일이 더 많아졌다. 라크가 정신을 잃는 일은 세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줄어들었다.
“잘했어.”
사흘간 라크는 충분한 성과를 얻었다.
감은 잡은 듯 하니, 남은 건 라크 스스로 해볼 일이었다. 라크와 훈련을 마치고 돌아가는 사흘째의 저녁, 나는 라크에게 나지막이 경고했다.
“검귀를 조심해.”
“···드라카 경 말씀이십니까?”
검귀를 조심하라는 이야기였다.
이는 내 직감이었다. 명확한 증거 없이 심증만으로 때려 맞춘 추측이었으나··· 내 직감은 그럭저럭 잘 맞는 편이었다.
“눈이 이상해.”
“눈이 이상하다뇨?”
“원래, 검귀는 그렇게 눈을 뜨고 다니지 않아. 시뻘겋게 충혈된 눈동자는 언제나 배교자만을 쫓아. 증오로 가득 찬 눈이지. 그런데··· 북부에서 본 검귀는 뭔가 달랐어.”
그렇다, 조금 달랐다.
“광인의 눈이 아니야.”
나는 라크에게 경고했다.
“뭔가, 목적이 있는 눈이야. 그게 무엇인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정상적인 수단을 쓰진 않겠지. 그러니까, 주의해.”
어지간한 건 내가 해결하면 그만이지만, 나는 당분간 자리를 비워야 했다. 그래서 라크에게 경고를 남긴 것이다. 혹시 모를 일이었으니까.
“으음··· 알겠습니다.”
라크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 표정이 바뀔 일이 일어나지 않음을 바라며··· 백야성에 돌아온 나는 설산에 오를 준비를 마쳤다.
그렇게 출발 당일의 아침이 밝았다.
“후우.”
나는 짧게 숨을 뱉으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고개를 들면,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높게 솟은 설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마저도 빙산의 일각(一?)에 불과하다.
시야에 잡히는 것은 절반뿐.
가장 높은 봉우리는 눈보라에 휘감겨 볼 수조차 없다. 그리고, 내 목적지가 바로 그곳이었다. 쿠락트의 정상, 새하얀 폭풍에 휘감겨 있는 곳.
‘그곳에 답이 있을 테니까.’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3.
쿠락트 산맥.
그곳에 대한 소문은 셀 수 없이 많다.
귀신이 나온다. 눈폭풍은 시간의 흐름조차 꼬아버린다. 몰아치는 폭풍 속에 괴물이 산다. 이전 세대의 불굴(?)이라 불리는 용사조차 굴하게 만든 시련이 존재한다 등등.
개중에는 마냥 뜬소문인 것도 있었고, 약간의 사실이 섞인 소문도 있었다. 그러는 반면, 소문이 된 사실 또한 분명히 존재한다.
「쿠락트의 안에선 시간의 흐름이 꼬인다.」
본래 소문이었으나, 과거 그곳을 오른 용사의 입을 통해 발음됨으로써 사실이 된 소문.
「나는 쿠락트에서 열흘을 보냈다. 그러나, 바깥에선 고작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더군.」
불굴은 그렇게 말했다.
초췌해진 불굴은 시선을 내리며 중얼거렸다.
「다시는, 다시는 오르고 싶지 않은 곳이다.」
“그렇게까지 말할 게 있나.”
그 일화를 떠올리며 라니엘은 중얼거렸다.
그녀는 눈 폭풍을 헤치며 산을 오르고 있었다. 그녀가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끈적하게 늘어진 핏물이 설산에 찍혔다.
‘마냥 뜬소문은 아니긴 하네.’
라니엘이 가볍게 손을 털었다.
장갑 위로 얼어서 굳어버린 핏물을 뜯어내며, 라니엘이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흠.”
괴수들이 바닥에 설산에 파묻혀 있었다.
어느 것은 목이 뽑히고, 또 어느 것은 허리가 절반으로 접힌 채로. 제법 전위적인 풍경이었다.
괴수가 있긴 했다.
바깥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종(?)의 마수였으나, 그래봐야 단일종이였다.
‘미친년이 만들어내는 마수에 비하면 뭐···.’
배교자가 찍어내던 마수들.
각 마수의 장점만을 모아 합성해둔 마수들을 숱하게 상대해온 라니엘의 입장에서··· 설산의 괴수들은 그닥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추운 것 같지도 않고.”
눈보라는 피부를 감싼 마나를 뚫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직까진 이전 세대의 용사인 불굴이 두려워할 만한 것을 찾지 못했다.
‘길 찾기가 어렵긴 하겠네.’
눈보라가 시야를 가린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발이 푹푹 빠진다. 앞이 제대로 보이질 않으니 발밑을 주의하면서 걸어야 한다.
‘이게 없다면 고생 좀 했겠어.’
라니엘은 손에 든 것을 보았다.
배교자의 팔이다. 들고 있기 무척이나 꺼림칙하긴 했지만··· 이 팔에서 흘러나오는 이질적인 마나가 방향을 정확하게 가르쳐 주었다.
‘마치, 만들어진 길이라도 있는 것처럼.’
따악.
걷다 말고 라니엘은 손가락을 튕겼다.
한순간에 완성된 주문이 눈밭 위를 지졌다. 불길이 한참을 눈을 녹이고 나서야 바닥이 드러났다.
“···진짜네.”
눈이 녹고 드러난 바닥.
그곳은 맨바닥이 아니었다. 작은 타일들이 깔려 있었다. 라니엘은 고개를 들었다. 이어진 타일들은 절벽을 가리키고 있었다.
깎아 지른 듯한 절벽.
그 절벽을 노려보며, 라니엘이 양팔을 쭉 뻗었다. 그녀가 팔뚝에 스톡(Stock)된 주문을 해방한다. 잿빛 마나가 사슬의 형태로 뭉쳐졌다.
사슬(Chain).
사출된 사슬이 절벽에 꽂힌다.
가볍게 발을 구른 라니엘이 사슬을 잡아당기며 도약했다. 턱, 하고 절벽의 뛰어나온 곳을 밟으며 한 번 더 도약한다.
탁!
절벽 위로 그녀가 미끄러지듯 착지했다. 눈송이가 흩날렸다. 눈밭 위로 그녀의 발자국이 길게 찍혔다. 절벽 위에 착지한 라니엘이 잠시 걸음을 멈췄다.
“······.”
그녀가 눈을 가늘게 떴다.
마나의 흐름이 뒤바꼈다. 마나에 민감한 라니엘이기에 눈치챌 수 있는 것이었다.
‘···섞였다.’
무언가 대기 중의 마나를 뒤섞고 있다.
라니엘은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봤다. 절벽을 넘기 전까지만 해도 중천에 떠 있던 해가 어느새 산의 너머로 저물고 있었다. 노을이 진다.
「쿠락트의 안에선 시간의 흐름이 꼬인다.」
그 문장이 무얼 의미하는지 얼추 알 것 같았다.
“후우.”
라니엘이 짧게 숨을 뱉고 걸음을 마저 옮기려는 순간이다. 라니엘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느껴지는 인기척은 없었으나, 누군가 그곳에 서 있었다.
“···불굴?”
불굴(?)이라 불린 용사.
카일 바로 이전 세대에 활동했던 용사이며, 지금은 죽은 지 오래인 용사였다.
‘저 사람이 왜 여기에?’
그 얼굴을 본 적은 없다.
그러나 숱한 기록으로 보았기에, 라니엘은 그를 한눈에 알아봤다. 귀신이라도 보는 기분이었다.
“당신이 왜···.”
딱, 따닥.
라니엘이 말을 붙이려 해봤으나, 돌아오는 반응은 없었다. 불굴은 이를 딱딱 맞부딪치며 몸을 부르르 떨고 있다. 무언가 이상했다. 라니엘은 눈을 가늘게 떴다.
대체 어디로 가란 말이냐! 예언, 그놈의 예언을 할 거라면 좀 더 제대로···!
바로 곁에 서 있으나, 자신은 안중에도 없는 모습이었다. 마치 혼잣말을 뱉는듯한 모습이다.
‘뭔가, 이상해.’
라니엘은 불굴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잡히지 않았다. 라니엘의 손은 불굴을 쓱 통과할 뿐이었다. 그제야 라니엘은 깨달았다.
“···하.”
그녀가 헛웃음을 흘렸다.
‘마나의 흐름이 꼬인다는 거, 시간이 뒤틀린다는 거··· 그리고, 귀신이 나온다는 거.’
뜬소문들 사이에 진실이 있었다.
뜬소문은 마냥 헛소문이 아니었다. 라니엘은 설산을 방황하는 불굴의 환영을 보며 중얼거렸다.
“···잔상이 남은 거네.”
이유는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설산의 뒤섞인 마나가, 과거에 이곳을 지나간 이들의 잔상을 붙들어 놓고 있었다.
흐, 흐억!
라니엘이 주변을 둘러봤다.
설산을 방황하는 이는 불굴 하나뿐이 아니었다. 무언가에 쫓기는 이도, 피투성이가 된 채 설산을 걷는 이들도, 눈 폭풍에 삼켜지는 이도 있었다.
그 모두가 과거의 일이다.
눈을 가늘게 뜨고 보았으나 그들에게서 마나는 읽히지 않았다. 잔상으로 남은 것들이었다.
‘흐릿하다.’
마나 감응력이 높은 라니엘에게 조차 흐릿하게 보이는 잔상이다. 어지간한 이들에겐 뭉쳐진 마나의 덩어리로 보일 게 분명했다.
‘그래서 귀신인가.’
쿠락트 산맥에서 귀신을 보았다. 그 소문의 정체가 이것이었다.
라니엘이 눈을 감았다. 눈동자에 마나를 집중한 채 그녀가 다시 눈을 떴다. 눈을 다시 떴을 때는, 모든 게 선명했다.
턱.
걸음을 옮긴다.
배교자의 팔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걸음은 조금씩 빨라졌다. 라니엘은 그 고대의 엘프가 무엇을 바라고, 자신을 이곳으로 보냈는지 알 것 같았다.
탁.
라니엘의 걸음이 멈췄다.
여전히 눈보라는 몰아쳤다. 그러나, 몰아치는 눈보라 속에서도 가려지지 않는 것이 있었다.
“그래서.”
라니엘이 시선을 옮겼다.
배교자의 팔이 가리키는 곳으로.
“이곳으로 오라 한 거냐.”
쭉 이어진 길.
기이한 마나가 가리키는 길.
그 길을 이미 걷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지금보다 과거에, 그보다 더 먼 과거에 이 길을 걸었을 남자가 그곳에 있었다.
“카르디.”
카르디.
그렇게 자신을 소개한 고대의 엘프.
······.
그가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우연인지, 아니면 정말로 라니엘의 목소리를 들은 건진 알 수 없었다. 다만, 라니엘이 알고 있는 카르디와는 그 모습이 조금 달랐다.
언제나 보던 은발이 아니다.
은발이라기보단 잿빛에 가까운 머리칼이다.
그런가.
머리칼의 색은 다르나, 누런 짐승의 눈동자는 어느 때와 같다. 마치 꿰뚫어 보는듯한 눈동자로 그가 라니엘을 보았다.
나를 쫓아온 거냐.
아니, 보다 정확히는 라니엘이 아니었다.
라니엘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누군가의 환영이 떠 있었다.
스케발.
라니엘이 잘 알고 있는 존재.
고대 리치 스케발의 환영이 그곳에 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