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168
〈 168화 〉 폭풍을 부르는 신입생(2)
* * *
“그럼 다음에 봬요!”
“그래, 조심히 들어가고.”
클로에는 교재를 받아들고 떠났다.
교무실에 혼자 남은 나는 다시 편지를 손에 들었다. 시간은 어느새 저녁에 가까워진다. 새어 들어오는 노을 사이로 나는 편지를 읽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다.」
제 1 왕녀, 르뤼엘.
그녀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다. 내가 그녀와 안면을 튼 지는 고작 몇 개월밖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몇 개월, 일 년도 채 안 되는 시간.
그것은 누군가를 이해하기엔 턱없이 모자란 시간이다. 십 년을 넘게 알고 지낸 카르디를 이해한 것도 최근의 일이었지 않은가.
그러니, 나는 르뤼엘이란 인물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저 그녀가 내게 속삭인 신념을 통해, 그녀가 어떤 인물인지 대강 파악할 뿐이다.
‘제대로 알지는 못하지.’
그래도, 내가 르뤼엘 왕녀에 대해 한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게 있다면.
「그러니, 교수.」
「어쩌면, 이것은 본녀의 추측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녀는 가정을 쉽사리 입에 담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
내가 눈을 가늘게 떴다.
르뤼엘 왕녀는 언제나 확신을 가지고 도도하게 행동하던 사람이다. 그런 그녀가 ‘확실하지 않다’라고, ‘이것은 추측이다.’ 라고··· 편지에 문장을 써 내렸다.
실언(??)을 할 수는 있다.
입 밖으로 뱉어지는 모든 말을 통제하기는 불가능하므로, 사람은 실언을 한다. 하지만 이것은 편지였다. 한 글자 한 글자를 고뇌하며 적었을 편지.
편지에 적힌 문장이 낯설다.
확신이 아닌 추측을 문장으로 옮길 만큼, 그 상황이 급박하다는 뜻일까. 아직은 알 수 없었다. 나는 계속해서 편지를 읽었다.
「내 오라비는 음흉한 남자다. 속을 알 수 없는 인물이다.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그가 제 모습을 드러내는 법이 없다는 점이다. 암약(??)이란 단어가 참으로 어울리는 인물이다.
나는 그 속을 엿보아야만 했다.
오라비가 내게 간자를 심은 것처럼, 나 또한 오라비의 수(手)와 족(足)이 되는 것들 사이에 간자를 심어 두었다. 그대가 날뛴 덕분에 심을 수 있던 것들이다. 감사함을 표하지.
물론, 내 오라비는 철저한 인물이다.
누군가에게 쉽게 신뢰를 주지 않기에, 심어 둔 간자들이 물어오는 정보 또한 변변찮은 게 고작이었으나··· 대부분의 일은 사소한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법이지.
[거슬린다.]간자들은 버리고, 찢어진 것들 사이에서 정보를 물어왔다. 나는 그것들을 모았다. 모으고 정리한 끝에 나는 한가지 문장을 잇는 데 성공했다.
[아플리아 아카데미는 거슬린다.]내가 발견한 건 한 줄의 문장이다.
그 뒤로 이어질 문장도, 앞에 왔을 문장도 알지 못한다. 그저 거슬린다. 이 하나의 단어에서 나는 많은 추측을 한다.
인재들이 거슬린다는 것인가.
아카데미 그 자체가 거슬린다는 것인가.
혹은, 아일라가 거슬린다는 것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다. 내가 문장의 진의를 헤아리는 와중, 사건들이 연달아 발생했다.
왕실의 모든 마도구가 정지했다.
통신망이 일시적으로 마비되었다.
혼란을 틈타 오라비의 세력이 움직인다.
그리고 앞서 말했던 인물이 움직였다.
광인, 켈르할름이 왕도로 향한다. 그가 아플리아 아카데미로 방문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혼란스러움이 가중된다. 마치 노렸다는 듯 사건이 차례로 터지기 시작한다.
···어쩌면 우연일지도 모른다.
우연히 모든 마도구가 정지했고.
우연히 혼란 속에 켈르할름이 움직였고.
아주 우연히, 내 오라비가 아플리아 아카데미를 거슬려 하는 도중 켈르할름이 아카데미의 방문 의사를 밝혔을지도 모른다.
모든 게 다만 우연이어서, 이 모든 게 나의 망상 가득한 추측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최악의 가능성을 가정한다.」
“그렇기에, 추측이고 가정인가.”
나는 턱을 괸 채 중얼거렸다.
참으로 그녀다운 편지였다. 편지에서 보이는 르뤼엘 왕녀의 모습에 나는 쓰게 웃었다.
“이 정도면 확신해도 될 텐데.”
그녀에겐 반드시 신중에 신중을 가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겠지. 그녀에게 있어 ‘제 1 왕자’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나는 알 수 없다.
그저, 이 편지에서 추측하기를.
일전에 보았던 그녀의 모습에서 느끼기를.
‘많이 시달렸나 보네.’
르뤼엘 왕녀에게 있어 제 1왕자란, 악몽과도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할 뿐이었다.
결국에, 상황을 요약해보면 이렇다.
「그러니, 주의해라.」
제 1 왕자가 아플리아를 노리고 있다.
왕성에 혼란을 일으키고, 통신망을 헤집어 놓으면서까지 ‘무언가’를 저지르려 한다.
「나는 나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겠다. 혼란이 바깥으로 새어 나가는 것을 막겠다. 통신망을 복구하고, 상황을 바로잡을 이들과의 연락을 꾀하겠다.」
무슨 수단을 쓸지는 모른다.
어떤 방향에서 덮쳐올지도 모른다.
그가 부릴 수 있는 패에, 단순한 병력이 아닌 초인이라 불리는 존재마저 끼어있다.
「또다시, 그대에게 부탁하는 모양이 됐군.」
그것을.
「혼란스러운 상황에 그대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는 사실에, 나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편지를 쓰는 지금도··· 조금 어이가 없을 지경이군.」
나는 홀로서 막아야 한다.
「부탁하겠다.」
「본녀가 혼란을 수습할 동안 버텨다오.」
즉.
‘아플리아를 수호하라.’
그것이 지금 내게 주어진 임무였다.
사실 임무랄 것도 없었다. 내가 짧게 숨을 뱉었다. 편지를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나는 중얼거렸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인데.”
나는 편지지의 끄트머리에 새겨진 문양을 본다.
금화 가루가 묻은 핏빛의 장미.
뜻하는 바는, 흘린 피에 마땅한 대가를.
“마땅한 대가를, 이라.”
문장으로 보상을 적는 것이 아닌, 하나의 문양을 새김으로써 그녀는 답을 대신했다.
‘하여간.’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품에서 편지지를 꺼냈다. 르뤼엘 왕녀와 연결된 마도구였다. 지금은 제대로 발동하진 않지만··· 혼란을 수습한다면 그녀가 즉시 펼쳐볼 게 분명한 편지지.
“음.”
그 위에 나는 답장을 적었다.
길게 적을 필요는 없었다.
까짓거 해보죠, 뭐.
사흘의 호위 임무를 받았을 때와 같은 대답.
그것을 새긴 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여간, 조용할 날이 없네.”
개학을 이틀 앞둔 8월의 마지막 주.
저물어가는 해를 바라보며 나는 생각한다.
학기 초부터 시끄러워지겠구나, 라고.
2.
아일라는 혼란스럽다.
개학을 하루 앞두고, 그녀는 제 이마를 짚은 채 툭, 툭 테이블을 건드리고 있었다. 머릿속이 좀처럼 정리가 되질 않는 탓이다.
“···방심했어.”
새어 나온 말은 자책이다.
아일라는 스스로에게 한심함을 느낀다. 개학을 앞두고 만남을 쌓을 생각에 들 떠 있던 자신을 책망한다. 아일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아플리아로 도망쳐 오면 괜찮을 줄 알았다.
자신은 왕위를 계승할 생각이 없다고, 일찌감치 권력 투쟁에서 몸을 뺐다. 그렇기에, 오라버니의 관심을 돌릴 수 있었다.
없는 사람 취급.
거슬리지 않을 존재.
그렇게 자신을 숨겼다. 숨김으로써 살아남을 방법을 궁리했다. 왕성에서는 언제나 긴장을 하며 살아왔다. 매 순간 매 순간이 선택의 연속이었다.
“아플리아.”
그러나, 아플리아에 온 순간 긴장이 풀리고 말았다. 방심하고 말았다. 왕성에서 멀어지니 오라버니가 자신에게 ‘신경 쓰지 않을 것’이라고 멋대로 단정 짓고 말았다.
[제 1 왕자가 아플리아를 노리고 있다.]언니에게 받은 그 한 줄의 문장이, 아일라의 숨통을 옭아맸다. 백금색의 머리칼이 테이블 위로 흐트러졌다. 물결치듯 퍼지는 머리칼을 아일라는 공허한 눈동자로 바라봤다.
언제나 그렇다.
제 1 왕자는, 오라버니는 자신을 내버려 두 질 않는다. 무엇이 그리도 마음에 들지 않는 걸까. 아일라에게 제 1 왕자는 공포의 상징이었다.
「그 눈.」
어렸을 적 봤던 제 1 왕자.
이제 막 스텔라로서의 재능을 각성했을 때, 보았던 제 1 왕자의 모습을 아일라는 떠올린다.
「그 눈으로 나를 보지 마라.」
모든 인간에겐 빛이 있다.
가지각색으로인간들은 빛난다. 그러나, 그 남자만큼은 아니었다. 그 사람은 빛이 나지 않았다.
「내 앞에선 고개를 숙여라. 절대로 고개를 들지 마라. 가증스러운 빛을 새긴 그 눈동자를 파버리기 전에.」
어둠이었다.
인간의 탈을 뒤집어쓴 무언가다.
그러나, 아일라는 그것을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못했다. 온갖 곳에 제 1 왕자의 눈과 귀가 달려있었으니까. 왕자의 험담을 늘어놓다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 이들을 보았다. 아주 많이.
그중에는 언니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아일라는 침묵으로서 살아남는 길을 선택했다. 비굴해도 좋았다. 살아남고 싶었으니까.
‘오라버니는, 노린 것은 뭐든지 이루어.’
누군가가 거슬리면 그게 누가 됐던 죽인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다면 치운다.
정한 것은 반드시 이루어냈다.
그런 인물이 아플리아를 노린다. 아플리아에 다니고 있는 자신을 표적으로 삼았다. 화살촉이 자신을 겨누고 있다는 사실에, 아일라의 온 신경은 한계까지 예민해진 상태였다.
“···왜.”
목소리가 갈라졌다.
“다 포기했는데, 왜.”
이렇게까지 자신을 집어삼키려 드는가.
아일라는 숨을 삼켰다. 입 밖으로 새어 나오려는 약한 소리를 참아냈다. 왕녀란, 언제나 완벽하게 있어야 하는 존재였으니까.
‘약함을 보여선 안 돼.’
그녀는 숨을 삼키고 고개를 들었다.
얼굴에 가면을 쓴다. 언제나와 같은 미소를 가장한 채, 그녀는 다가올 위기를 계산한다.
어느 방향에서 어떻게 올지 모른다.
그러니, 긴장해야 한다.
긴장을 풀어선 안 된다.
그 누구도 자신을 지켜줄 수 없다. 스스로의 몸은, 스스로가 지켜내야 한다. 다행히도 자신에겐 몸을 지킬 수단이 있었다. 아일라는 눈을 감고 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별은 언제나 답을 주었으니까.’
예언(??).
다가올 위기에서 별은 언제나 아일라가 살길을 알려주었다. 이번에도 분명 그럴 것이다. 아일라는 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
귀를, 기울였다.
【■■■】
기울이고 또 기울였다.
【■■■】
그러나, 들리지 않는다.
“···왜?”
별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일라가 감았던 눈을 떴다.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의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새하얀 잠옷이 땀에 젖었다. 피부에 달라붙는다.
“왜, 들리지 않아?”
별에게 사랑받는 아이.
사랑받아 왔기에, 별을 신뢰했던 소녀.
“왜···?”
신뢰가 깊은 만큼 배신은 무겁다.
별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자 소녀는 공포를 느낀다. 언제나 자신의 곁에서 길동무가 되어주었던 예언자가 침묵하자, 소녀는 고독함을 느낀다.
공포와 고독.
소녀의 눈동자가 어느 때보다 거세게 흔들렸다.
3.
얼마 전 치러졌던 결투의 열기가 아직 식지 않은 가운데, 아플리아는 개학을 맞이했다. 9월에 들어선 공기는 슬슬 서늘함을 품는다. 개학식이 열리는 대강당으로 학생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벨노아, 벨노아 저기 봐봐···!”
“한눈팔지 말고 따라오기나 해.”
클로에는 개학과 동시에 운영을 시작한 각종 시설을 가리키며 방방 뛰어댔다. 벨노아는 한숨을 쉬며 클로에의 팔을 질질 끌고 강당으로 향했다.
“와하···!”
벨노아에게 끌려가면서도 클로에는 감탄사를 멈추지 않는다. 그녀로선 기대하고 또 기대하던 아플리아의 개학식이다. 그녀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그러고 보니, 개학식에서 학생 대표선언은 그 분께서 하신다고 하셨지?’
학사 공지에서 본 적이 있다.
학생 대표선언은 보통 각 학과 수석이 하는 게 보통이었지만··· 이번 연도는 조금 달랐다. 재적 중인 학생 중, 특별한 인물이 하나 껴있는 까닭이었다.
제 4 왕녀, 아일라.
학생의 대표선언은 그녀가 하게 된다.
아무리 모두가 한 명의 마법사로서 공평히 취급받는 아플리아라고 한들, 왕녀가 속한 집단의 대표선언을 왕녀가 아닌 다른 인물이 할 수는 없는 노릇일테니.
“있잖아, 벨노아.”
“왜.”
“왕녀님은 어떤 분이셔?”
그 덕에 클로에의 기대감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무려 왕녀님이시다. 이 땅에서 가장 고귀한 혈통을 타고난 인물.
“음···.”
자신을 바라보는 클로에의 기대어린 눈동자에, 벨노아는 난색을 표했다. 아일라 왕녀가 어떤 사람이냐니? 사실 벨노아도 잘 몰랐다.
‘이야기를 나눈 적이 별로 없는데.’
학기 초에 대표선언을 같이했을 뿐이다. 벨노아는 그나마 아일라 왕녀의 첫인상을 떠올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당한 사람.”
“당당?”
“여유가 있고,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
벨노아는 자신이 느낀 그대로 말했다.
그가 기억하는 왕녀는 그런 느낌이었다. 언제나 여유롭고, 언제나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는듯한 사람이었다.
“그냥, 보면 알 거야.”
그리 말하며 벨노아는 대강당을 가리켰다.
단상에 선 왕녀의 모습을 본다면, 단번에 이해가 갈 것이다. 대중을 휘어잡는 포스가 있는 분이긴 하니까.
“응, 기대된다.”
클로에가 환히 미소 지었다.
기대감을 품은 채 그녀는 대강당에 발을 들이민다. 그러나, 그 기대감이 충족되는 일은 없었다.
그날 아일라는 단상에 서지 않았다.
제 4 왕녀 아일라는 개학식에 불참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