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169
〈 169화 〉 폭풍을 부르는 신입생(3)
* * *
구월의 첫날이 밝았다. 대강당을 대관해 치루는 개학식은 수많은 학생의 시선을 받으며 막을 올린다. 사실, 그렇게 거창할 건 없는 행사였다.
신학기의 시작을 알릴 뿐인 행사.
그리고, 학생 대표가 선언을 할 뿐인 행사.
어디까지나 그런 단순한 행사일 뿐이지만··· 행사가 지닌 단순함에 비해 규모는 그리 조촐하지 않다.
“불편하신 점이 있다면···.”
“아, 금방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여기 7번 테이블에······.”
평소라면 중앙학관을 관리하고 있을 메이드들이 학생들 사이를 돌아다닌다. 온갖 만찬들이 차려진 대강당은 개학식이라기보단 귀족들의 사교회를 연상케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아플리아 아카데미는 명문이다. 학생 중에는 귀족 집안의 자제들이 다수 존재하며, 개중에는 그 고귀한 왕가에 속한 인물마저 있다. 아무리 작은 행사라 한들 일단 ‘행사’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면, 그 준비가 미흡해선 안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방학 동안 말야···.”
“하르펠 가(家)에서 개최한 무도회 봤어? 거기에 황금의 영애님이 참가하셔서···.”
사교회에 익숙한 학생들이 많다.
그들은 잔을 능숙히 손가락 사이에 걸친 채, 방학 동안 겪었던 일들에 대해 떠든다. 그렇게 자연스레 사교회에 녹아든 학생들이 있다면···.
“헤에···.”
그렇지 않은 학생 또한 있는 법이다.
“벨노아, 이거 뭐야? 이거 신기하게 생겼다.”
“나도 몰라. 먹어보던가.”
“먹는 거 맞아? 이렇게 예쁜데?”
“그럼 먹으라고 놔뒀지, 구경하라고 놔뒀게?”
“그건 그렇지만···.”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클로에는 집게를 손에 쥔다. 한입 크기로 먹기 좋게 잘라둔 디저트들은··· 뒷골목에서 살아온 클로에의 눈에는 일종의 예술품과도 같아 보인다.
‘디저트라 해봐야, 흑탑주 아저씨가 가끔 사 오는 케이크밖에 없었는데.’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된다. 애초에, 이렇게 한입 크기로 잘린 디저트들은 다 무어란 말인가? 꼭 다른 세상을 엿본 듯한 기분이다.
“흥, 흐응.”
클로에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디저트들을 접시에 한가득 담는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교회가 아닌, 마치 식사라도 하러 온 듯한 모습이다. 그 모습이 학생들의 시선을 끈다.
안 그래도 시선을 끄는 소녀다.
그녀에게 말을 붙이고 싶은 학생들이 꽤 있었지만, 벨노아가 옆을 지키고 있는 탓에··· 좀처럼 다가서질 못한다.
그때다.
“먼저 앉아 있어. 나도 올라가 봐야 할 것 같으니까.”
“응, 알았어!”
때마침 벨노아가 클로에의 곁을 떴다.
지난 학기의 수석이었던 벨노아 역시 전투 마학과의 대표로서 선언을 해야 하는 까닭이었다. 그렇게 벨노아가 자리를 뜬 순간이다.
탁탁탁.
발걸음 소리가 연달아 울린다.
클로에가 접시에 놓인 디저트를 바라보며 뭐부터 먹어볼까, 하고 행복한 고민을 하던 찰나다.
“저기, 있잖아?”
누군가 클로에에게 말을 걸어왔다.
클로에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곤, 짧게 숨을 헛삼켰다. 주변을 둘러싼 학생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대여섯 명의 여학생들이 클로에의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무, 무슨 일이세요?”
그 시선이 제법 부담스럽다.
클로에가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되묻자··· 여학생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짧게 친 단발, 활동적인 인상의 소녀였다.
“이름이··· 클로에라고 했었지?”
“네, 네에.”
“나는 샤를릿이야. 벨노아하고 같은 전투 마학과 소속인데··· 뭣 좀 물어봐도 될까?”
무엇을?
클로에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너, 저번에 결투장에서 말야.”
샤를릿이 목소리를 낮춘 채 물었다.
“라니아 교수님 옆에 앉았었지?”
“네? 네. 교수님 옆자리가 비어있길래···.”
“···왜 비어있는지는 생각 안 해봤어?”
“네?”
클로에가 눈을 깜빡였다.
“왜 비어있는지, 라뇨?”
“···저런.”
아무것도 모르는듯한 반응.
그 순진무구한 모습에 샤를릿을 비롯한 여학생들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의 눈에 클로에는 어린 양과도 같아 보인다.
“너,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아직 진실을 알지 못한 어린양.
마치 학기 초의 자신을 보는 듯하여, 샤를릿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자세를 살짝 낮췄다. 앉아 있는 클로에와 눈높이를 맞춘 채 샤를릿이 속삭이듯 말을 이었다.
“있잖아, 라니아 교수님은 말야···.”
겉과 속이 달라.
그 속에는 악몽이 꿈틀거리고 있어.
최대한 거리를 둬야 해.
어떤 말을 먼저 꺼내야 할까. 무슨 단어가 그 악마 같은 교수님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샤를릿이 말을 고르고 있던 찰나다.
“라니아 교수님은 마치···.”
“예, 말해보십시오.”
누군가 샤를릿의 어깨에 턱, 하고 손을 얹었다. 어깨에 얹힌 손의 무게는 가볍다. 너무나도 가벼워 아무것도 얹히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체감하는 무게란 언제나 상대적인 것이다. 샤를릿의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끽, 끼긱.
삐걱이는 소리를 내며 샤를릿이 고개를 돌렸다.
새하얗게 질린 안색으로 숨을 죽인 여학생들 사이에, 누군가 서 있었다.
“라,라니아 교수님?”
악몽이 서 있었다.
잿빛 머리칼을 늘어트리고, 푸르른 눈동자를 반개한 채··· 라니아가 무척이나 부드러운 목소리로 샤를릿에게 속삭였다.
“마치?”
그다음에 올 단어가 무엇이냐.
그러니까, 내가 뭐 이 새끼야.
목소리는 부드러우나··· 그 안에 담긴 말을 엿들은 듯 하여, 샤를릿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어, 어어···.”
샤를릿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린다.
머릿속에 가득한 부정적인 단어를 치러내고, 거짓 가득한 단어를 하나하나 짜 맞춰 입에 담았다.
“마치··· 훌륭한 교수의 귀감 같은 분이시라고, 그렇게 말을 하려고···.”
“그렇게 생각해주시다니 영광이군요.”
툭툭, 샤를릿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린 라니아가 만족스레 미소 지었다. 샤를릿이 식은땀을 흘리는 가운데, 라니아는 클로에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클로에 학생.”
“네, 라니아 교수님!”
라니아의 부름에 클로에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쓰는 라니아 교수님의 말투는 저렇구나. 신선하다··· 같은 생각을 하며 클로에는 라니아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개학식이 끝나면 108호 강의실로 오시면 될 것 같습니다. 차후 보강 수업에 앞서 간단한 소개를 드릴 예정이라서.”
“네, 교재도 가지고 올까요?”
“몸만 오시면 됩니다.”
의욕적인 클로에의 모습이 썩 마음에 든다는 듯, 라니아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조금 이따 봅시다.”
그 말을 남긴 채 그녀가 자리를 뜬다.
라니아가 자리를 뜸과 동시에 여학생들이 참았던 숨을 파, 하고 몰아쉰다. 그들은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아내며 멀어지는 라니아의 뒷모습을 흘겨봤다.
“···귀가 얼마나 좋으신 거야?”
“조심해. 듣고 있을···수도 있어.”
“아니, 교수님이 무슨 특수부대도 아니구···.”
“못 들었어? 그 하운드(Hound)도 맨손으로 때려잡는 분이시잖아. 진짜로 특수부대 출신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거 소문 아니었어?”
“진짜야. 놀랍게도.”
“···괜히 아플리아의 ···이겠어?”
그렇게 여학생들이 수군거리는 가운데, 클로에는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클로에는 조금 전 샤를릿이 입에 담았던 문장을 떠올린다.
‘훌륭한 교수의 귀감 같은 분.’
역시 좋은 교수님이시구나.
클로에가 해맑게 미소 지었다. 그 미소를 바라보는 샤를릿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
“···클로에.”
“네?”
“힘내.”
“네, 응원 감사해요!”
악몽에게 찍힌 소녀.
가련하기 짝이 없는 신입생.
머지않아 폭풍에 휘말릴 소녀를 바라보며 샤를릿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재앙이란, 닥쳐오는 걸 앎에도 도망칠 수 없기에 재앙인 것이다.
‘딱하게도.’
모두가 그런 시선으로 클로에를 바라보고 있지만, 정작 클로에는 무슨 디저트에 먼저 손을 댈지에 대해 고민하느라 바빴다.
‘다 맛있어 보인다!’
누가 뭐라든 클로에는 지금 행복했다.
2.
개학식이 한창인 가운데, 나는 학사 내를 걷고 있었다. 안내해둔 강의실에 먼저 가 있을 생각이었다.
‘딱히 얼굴을 비출 필요도 없고.’
어차피 다음 차례는 각 학과의 대표가 단상에 올라, 짧은 선언을 하는 게 고작이다. 그런 형식적인 행사에 별 관심이 없었기에 나는 일찍이 대강당에서 밖으로 나왔다.
“흠.”
나는 손안에 든 계획서를 흘겨봤다.
이번 학기에 들어온 신입생, 클로에를 위한 특강 커리큘럼이었다. 사실 클로에만을 위한 건 아니었지만··· 일단 강의의 주가 되는 건 클로에다.
특이 체질의 용사, 클로에.
별의 맥락을 읽는 이, 와쳐(Watcher).
둘을 한 번에 묶어서 키울 생각이었다.
서로 관련이 있는 재능이었으니까. 이번 학기부터 붙여서 가르치다 보면··· 2학년에 들어설 때쯤은 둘 다 유의미한 성장을 거둘 수 있겠지.
커리큘럼은 이미 짜 두었다.
남은 건 정해진 길을 따라 학생들을 키우는 일뿐이었다. 완벽하게 계획을 짠 만큼, 이 계획에 차질이 있어서는 안 됐다.
‘초인이 오든 말든, 수업은 해야지.’
제 1 왕자가 습격하는 건 알겠다.
제법 까다로운 상황에 처한 것도 알겠다.
하지만, 쉬고 있을 시간도··· 그것을 대비한답시고 강의를 뒤로 미룰 시간도 없다.
시간은 가장 소중한 재화다.
낭비할 생각은 없었다.
‘둘 다 한 번에 잡는다.’
수업과 아플리아의 수호.
그닥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나는 언제나 둘 이상의 업무를 동시에 처리해 왔으니까.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그럴 뿐이다.
턱.
그렇게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다.
내 시야에 누군가의 모습이 잡혔다.
“······.”
아플리아에 조성된 정원.
정원의 벤치에 앉아, 말없이 바닥을 보고 있는 소녀가 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그 정체를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특유의 백금발 머리칼이 눈에 띄는 탓이다.
“아일라 왕녀님?”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아일라가 어깨를 흠칫하고 떨었다.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백금발의 머리칼이 고개를 따라 찰랑였다.
“여기서 뭐 하고 계십···.”
입학식에 있어야 하실 분이, 여기에 왜?
그런 질문을 던지려다 말고 나는 입을 다물었다. 고개를 든 아일라 왕녀의 모습이 평소와는 달랐기 때문이었다.
“아, 라니아 교수님···.”
언제나 빛나던 금색의 눈동자는 칙칙하다.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었던 그녀의 입가에, 지금은 힘없는 미소가 걸려있다. 억지로 꾸며낸 게 뻔히 티가 나는 미소였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그.”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녀의 입 밖으로 말은 새어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한참을 머뭇거리다 이내 고개를 가로젓고선 힘없이 웃어 보였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조금 속이 안 좋아서 밖에서 쉬고 있었답니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날이 춥네요. 저도 이만 들어가 볼게요.”
아일라가 일어서자마자, 그 곁을 호위 기사가 따라붙었다. 평소라면 기사를 대동하지 않을 그녀다. 그런 그녀가 지금은 병적일 정도로 기사의 곁에 붙어 있었다. 그 모습이 내게는 낯설게만 느껴졌다.
상대를 거절하는듯한 모습.
무엇과도 엮이고 싶지 않은 듯한 모습.
평소와는 달라 보이는 아일라의 모습에, 나는 한동안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3.
「···무슨 일 있으십니까?」
도움을 청할 수 없었다.
말하고 싶었지만, 말할 수 없었다.
아일라는 제 입술을 꾸욱 깨물었다.
【그 무엇도 믿지 마라.】
【그 무엇과도 엮이지 마라.】
【신뢰는 배반을, 엮임은 불행을 낳는다.】
아일라는 석 줄의 문장을 곱씹는다.
침묵하는 별에게 몇 번이고 기도한 끝에 얻어낸 석 줄의 문장이다. 이 석 줄의 문장을 남긴 채 별은 완전히 침묵했다. 그 어떤 말도 들려주지 않았다.
불신(?), 단절(?).
그것이 별이 내린 예언이다.
“믿지 말고, 끊어내라.”
아일라는 그 말을 몇 번이고 곱씹었다.
그녀는 별이 남긴 문장을 신뢰한다.
별의 예언을 그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긴다.
‘···언제나 그래왔으니까.’
별은 언제나 아일라에게 살길을 알려주었다. 왕가의 권력투쟁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알려주었고, 독살의 위험에서 살려주었으며, 제 1 왕자의 시선에서 숨을 곳을 점지해주었다.
별은 언제나 정답을 알려주었다.
친구 없는 아일라에게 별은 친절한 친구였다. 믿을 자 하나 없는 왕성에서··· 별은 아일라의 든든한 아군이었다.
‘언제나, 언제나 그랬어.’
별이 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별이 있기에 버틸 수 있었다.
그런 별이 침묵한 가운데··· 아일라가 느끼는 감정은 공포였다. 세상이 모든 게 낯설게만 느껴졌다. 한 걸음 한 걸음을 걷는 것 조차 어려웠다.
‘···이렇게나.’
위험을 예감할 수 있었기에, 아일라는 언제나 여유롭게 다닐 수 있었다. 별이 경고하지 않는다면, 그곳은 안전하다는 뜻이었으니까.
‘이렇게나, 나는.’
별빛을 머금은 눈으로 모든 것의 본질을 꿰뚫어 보았기에, 아일라는 누구의 앞에서든 당당할 수 있었다. 정보의 우위는 자신감으로 이어졌으니까.
‘이렇게나 나는, 별에게 기대왔구나.’
별이 침묵하자 모든 게 흔들렸다.
속내를 읽을 수 없게 되자, 세상 모든 게 낯설게 보인다. 어제까지만 해도 인사를 나눴던 학생들조차 낯설게 비추어 보인다.
“······.”
아일라는 멍하니 바닥을 바라보았다.
【그 무엇도 믿지 마라.】
불신(?).
【그 무엇과도 엮이지 마라.】
단절(?).
【신뢰는 배반을, 엮임은 불행을 낳는다.】
그것이 살아남을 길이다.
‘그러니까.’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터놓지 말고.
그 누구도 신뢰하지 말고.
단지 홀로서 있는 것 만이 살아남을 길이다.
“그게, 뭐야.”
그녀는 별의 진의를 알 수 없었다.
아일라의 눈동자는 여전히 바닥을 향한다. 별의 진의를 알 수 없으니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조차 알 수 없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그 무엇과도 엮이지 마라.】
누군가의 말과 별의 예언이 머릿속을 맴돈다.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하는가.
아일라는 아직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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