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170
〈 170화 〉 폭풍을 부르는 신입생(4)
* * *
종종 별은 인간에게 힘을 나눠주곤 한다.
누군가는 그것을 인간과 별이 나눈 계약이라 말했고, 또 누군가는 신이 내린 은총이라 표현했다.
나로서는 전자의 쪽에 더 힘을 실어주고 싶긴 하나··· 세간에선 대체로 후자 쪽의 가설을 지지하는 편이었다.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야.’
별과의 거래를 경험하지 못한 이들은, 대게 별을 신성시 여기곤 한다. 이 가설 또한 그런 가정하에 나온 것이겠지.
별은 신과 같다.
신이 내린 것이 곧 은총이고 축복이다.
대충 그런 식의 논리다. 나는 쓰게 웃으며 분필을 하나 집어 들었다. 사실 어떻게 쓰고, 어떻게 부르던 그건 아무 상관 없었다.
‘다룰 내용이 중요한 거지.’
나는 칠판 위에 분필을 미끄러트렸다. 파스스. 분필 가루가 칠판 아래로 떨어졌다. 칠판에 새긴 것은 지금부터 내가 다룰 내용이었다.
[별의 은총.]별에게 받은 재능.
[별(?)의 기본과 활용.]그것을 다루는 방법.
이것은 체계화되지 않은 분야였다.
별의 힘이란 게 원체 신비롭고, 감각의 영역에 닿아있을뿐더러··· 그 소유자도 극히 소수에 불과한 탓이었다.
‘한 줌에 불과한 별빛의 소유자.’
그리고, 그들마저 별빛의 운용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진 못했다. 그것은 본능의 영역이요, 깨달음의 영역이었다. 본능적인 깨달음을 언어로 바꿔 서술하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분필을 놓으며 중얼거렸다.
“이건, 나만이 할 수 있는 강의라는 거지.”
나는 언제나 별의 가까이에 있었다.
별에게 선택받은 용사와 함께했다.
별을 숭배하는 성녀와 함께했다.
그들이 깨달음을 얻을 적, 나 또한 같은 장소에 있었다. 나는 그들이 어떤 식으로 별을 다루는지 가장 가까이에서 보았다.
보았기에, 안다.
알기에, 나 또한 별을 다룰 수 있었다.
언젠가 수명을 바쳐 별빛을 영혼에 새긴 적이 있었다. 그때 새긴 별빛이야 이미 사라진 지 오래지만, 그때의 감각만큼은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기억하고 있는 감각.
본능적인 깨달음.
그것을 언어화(化)하는 건, 앞서 말했듯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마법사다. 마법사란 언제나 탐구하는 존재였다. 깨달음 하나 제대로 정리하지 못해서, 어디 마법사라 부를 수 있겠는가?
이건, 내 전문 분야였다.
탁.
분필을 내려놓으며 나는 뒤를 돌았다.
넓은 강의실에는 두 명의 학생만이 앉아 있었다.
“별의 은총···?”
별에게 선택받은 아이, 용사.
클로에.
“······.”
별의 맥락을 읽는 이, 와쳐(Watcher).
레스티 엘레노아.
“잘 들어.”
나는 그 둘을 향해 미소 지었다.
“이거, 어디 가서 못 듣는 거다.”
2.
[별의 은총.]클로에는 칠판에 적힌 글자를 바라보다, 살짝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자신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다른 학생이 하나 앉아 있었다.
‘···보랏빛 머리칼.’
연한 보랏빛의 머리칼.
어깨 자락까지 내려오는 가지런한 단발.
단아하고, 차가워 보이는 인상이다.
‘이름이 뭘까?’
함께 강의를 듣게 된 가운데, 클로에는 저 소녀의 이름이 궁금했다. 하지만 쉽사리 말을 걸지는 못했다. 보랏빛 머리칼의 소녀는 말을 걸기가 어려운 분위기를 두른 탓이다.
“클로에.”
“네, 넵. 라니아 교수님.”
다른 생각을 하던 와중,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클로에가 어깨를 짧게 떨었다.
“네 보호자, 그러니까 흑색 마탑주랑은 미리 이야기를 해두긴 했지만··· 일단은 말해둘게.”
“뭘 말씀이세요?”
“네 체질.”
라니아가 클로에를 바라봤다.
클로에는 눈을 깜빡였다.
“네가 차기 용사 후보라는 거, 여기 이 애도 알고 있어. 사실 숨기는 게 불가능했거든.”
라니아의 시선이 옆으로 옮겨간다.
그 시선이 멈춘 곳은 보랏빛 머리칼의 소녀다. 용사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숨을 헛삼킨 클로에는,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숨기는 게 불가능하다뇨?”
“보이니까.”
답한 건 라니아가 아니었다. 보랏빛 머리칼의 소녀가 자신의 눈가를 툭툭 건드렸다.
“나는 너처럼 별빛을 타고난 건 아니지만, 별과 관련된 것들을 보는 눈은 가지고 있어.”
머리칼과 닮은 자색의 눈동자.
그 동공을 감싼 백금색 빛의 고리.
그것을 보이며 소녀가 말을 이었다.
“내 눈에는, 네가 백금색 덩어리로 보여.”
“···그, 그런가요?”
“응.”
소녀가 무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화하기가 쉽지 않은 소녀였다. 클로에는 난색을 표하며 라니아를 바라봤다. 설명을 요구하는듯한 클로에의 시선에 라니아가 입을 열었다.
“이쪽은 레스티 엘레노아.”
“···네?”
클로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레스티 엘레노아, 그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혹시, 그··· 잿빛의 차기 마탑주···.”
라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클로에는 입을 살짝 벌린 채, 옆자리에 앉은 소녀를 흘겨봤다.
‘잿빛 마법사의 뒤를 잇는, 차기 마탑주.’
자기 또래의 소녀에 대한 소문은 들어본 적이 있었다.
‘대단한 사람이었구나.’
클로에가 속으로 감탄을 하고 있자니, 목을 가다듬은 라니아가 칠판을 손등으로 가볍게 툭, 하고 두들겼다.
“이쯤 되면 궁금할 만도 할 텐데.”
그녀가 말했다.
“둘을 왜 한 강의에 묶었는지, 궁금하지?”
어째서, 같은 특강을 받게 되었는가.
라니아는 그것에 대해 설명했다.
“너희 둘은 서로에게 교재가 될 거야.”
그녀가 팔을 쭉 뻗었다.
먼저 가리킨 것은 레스티였다.
“레스티, 너는 네 재능에 대해 어디까지 알지?”
“···핵심을 꿰뚫어 보는 눈이라고, 우선은 이해하고 있어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네.”
“···네?”
레스티가 눈을 깜빡였다.
라니아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네 눈은 핵심을 꿰뚫는 게 아니야. 아예 다른 시각에서 현상을 ‘보는’ 거야. 하지만, 단순히 보는 데서 그치지 않지.”
그녀가 레스티의 눈동자를 가리켰다.
“너는보는 것과 동시에 이해하지. ‘본다’와 ‘이해한다’가 너에겐 동어(??)인 셈이야.”
‘보는 것’과 ‘이해’ 사이에 간극이 없다.
본래 있어야 할 간극이, 네겐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며 라니아는 분필을 집어 들었다.
“시대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왔지.”
사각.
“누군가는 통찰안, 또 누군가는 탐구안, 또 누군가는 현안(??)이라 불렀지만··· 요컨대 핵심은 ‘본다는’ 거야.”
사각.
“그리고, 고룡의 마법사는 이렇게 표현했지.”
탁, 하고 라니아가 분필을 놓았다.
뒤를 돌며 그녀가 칠판에 적힌 글자를 가리켰다.
“별의 맥락을 읽는 이, 와쳐(Watcher).”
보는 존재, 와쳐(Watcher).
“너는 별과 관련된 모든 것을 ‘보고’ 동시에 ‘이해’해. 모든 주문에는 미약하게나마 별이 깃드니, 마법사에겐 둘도 없는 재능이지.”
주문, 회로, 천칭, 사역마···.
칠판에 차례로 항목을 열거하던 라니아가, 잠시 분필을 멈췄다. 멈춘 채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별 그 자체.”
그녀가 레스티가 아닌 클로에를 보았다.
“별빛의 찌꺼기에 불과한, 일반적인 주문이 아닌··· 순수한 형태의 별빛. 가공되지 않은 별빛 그 자체.”
그것을 몸에 지닌 소녀가 있다.
바로 이곳에.
“용사.”
레스티는 클로에를 본다.
클로에는 마른침을 삼켰다.
“레스티 네게 있어 이 아이는 가장 완벽한 예시인 셈이야. 예시를 보고 이해한다. 그리고, 이해한 것을 언어화(化)하여 분석한다···.”
“···마법사의 기본, 이네요.”
“그렇지.”
라니아가 미소 지었다.
“너는 오늘부터 이어질 반년간의 특강에서 별을 이해할 거야. 분석하게 되겠지. 그 과정에서 성장을 꾀할 수도 있을 거고.”
“확실히···.”
“그리고, 그 결과를 이 아이와 공유해주면 좋겠는데, 어때?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어야 하니까.”
레스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로선 좋은 일이었다. 별에 대한 이해는 곧 성장으로 이어질 게 분명하니까. 깨달음을 얻을 수만 있다면야, 분석한 자료의 공유 정도는 충분히 해 줄 수 있었다.
“그리고, 클로에.”
“네, 네엡.”
“너는 레스티가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학습하게 될 거야. 앞서 말했듯이, 서로가 서로에게 교재가 되는 셈이지.”
“음, 으음···.”
클로에는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표정이었다. 라니아는 어깨를 으쓱이며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뭐, 이렇게 말하긴 해도··· 이해하는 게 쉽지는 않을 거야. 백날 말해봐야 한번 보는 것만 못하니까. 보기 전까진 이해하기 어렵겠지.”
교탁에 허리를 기댄 채 그녀가 말했다.
“그러니까.”
두 소녀는 서로가 서로에게 교재가 된다.
그렇다면, 이 수업의 교수인 자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그 질문에 라니아는 답했다.
“나는 너희에게 보여줄 거야.”
언제나 그렇듯이, 예시를 보여줄 뿐이다.
“당장 내가 아는 것, 나만이 알려줄 수 있는 것. 나는 그것을 너희에게 보여줄 거야.”
짝, 하고 그녀가 박수를 쳤다.
“클로에.”
그녀가 나지막이 클로에의 이름을 불렀다.
클로에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나, 있는 대로 끌어내 봐.”
“···있는 대로요?”
“그냥, 할 수 있는 한 많이. 다루는 방법은 몰라도 방출하는 것만큼은 할 수 있을 거 아냐?”
“할 수 있긴 하지만요···.”
클로에가 머뭇거렸다.
그녀는 자신의 마나가 ‘어떤 식’으로 방출되는지 알고 있었다. 흑색 마탑주의 앞에서 해본 적이 있었으니까.
‘그 결과가 좋진 않았는데···.’
온갖 마도구가 고장이 났다.
흑색 마탑주가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었다. 자신보다 수십 살은 더 먹은 아저씨가 주저앉아 비명을 지르는 모습은··· 클로에의 머릿속에 썩 좋지 못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조금··· 아니, 많이 눈 아플 텐데요···?”
“괜찮으니까 해봐.”
“네, 그럼···.”
클로에가 짧게 심호흡했다.
숨을 크게 삼키고, 숨을 내뱉는다. 숨이 내뱉어지는 타이밍에 맞춰 클로에가 눈을 감았다.
화앗!
그리고, 별빛이 범람했다.
3.
별빛이 범람한다.
밀려드는 별빛의 물살이 강의실 안을 헤집었다.
마나를 읽지 못하는 이들의 눈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일 것이다. 마나를 조금이나마 볼 줄 아는 이들에겐, 온 구석이 백금색으로 빛날 것이다.
그리고, 레스티에겐.
마나의 맥락을 읽을 수 있는 레스티의 눈에는,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인다. 레스티는 넋을 잃고 방안에 퍼지는 별빛을 보았다.
찰랑.
별빛이 흐른다.
물결치듯이 일렁이며 흐른다. 하나의 소녀를 중심으로 퍼져나간 물길이 강의실의 구석구석으로 흐른다. 그것은, 가장 본질적인 형태였다.
‘···별빛, 은하수.’
백금색의 물줄기가 범람한다.
레스티는 무심코 손을 뻗었다. 흐르는 별빛에 손을 가져다 대 본다. 손가락의 틈새 사이사이로 별빛은 흘렀다.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았다.
‘이걸··· 이해해?’
머리가 아팠다.
압도적인 양의 정보가 머리로 흘러들어온다. 자신의 눈은 모든 것을 보고, 이해하나···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냐는 또 다른 문제다.
“···읏.”
머리가 정보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한정된 정보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레스티가 관자놀이를 짚으며 신음을 흘렸다.
“천천히 해.”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렸다.
레스티는 고개를 들었다. 눈을 감은 채, 별빛을 쏟아내는 소녀가 보였다. 그 맞은편에는 별빛의 한 가운데에 서 있는 인물이 있다.
“처음부터 다 받아들이려 하지마.”
그녀가 말했다.
“지금은, 일단 여기에 집중하는 게 좋겠네.”
그녀의 잿빛 머리칼이 흔들린다.
그녀가, 라니아가 손을 뻗었다. 흐르는 별빛에 손을 담근다.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별빛이 새어 나왔다. 거기까진 레스티와 같았다.
그러나, 그다음이 다르다.
“천천히.”
그녀가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러나, 확실하게.”
검지에 별빛이 휘감긴다.
“휘어잡아. 마나의 주도권을 잡듯이.”
손가락 마디 마디에 별빛이 감긴다.
물줄기는 사방으로 뻗어나가지만, 그 시작점은 라니아의 손가락에 감겨있다. 레스티는 그 의미를 이해한다.
‘···마나의 주도권.’
마치, 마나의 주도권을 쥐는 것과 같다.
“클로에.”
라니아가 클로에의 어깨를 건드렸다.
“눈 떠.”
클로에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녀는 눈앞에 선 라니아를 본다. 찬란히 뻗어나가는 별빛의 물줄기를 쥔 교수를 본다.
“잘 봐둬.”
라니아가 별빛을 감은 손을 움직인다.
먼저 검지를 까딱였다.
촤아아악!
뻗어나간 물줄기가 요동친다. 일정한 속도로 흐르던 별빛이 거세게 흐른다. 그리고, 흐름이 바뀌기 시작한다.
엄지, 중지, 소지, 약지.
차례로 손가락을 움직인다. 어느 것은 느리게, 어느 것은 빠르게. 그 움직임이 곧 물줄기의 움직임이다. 난잡하게 뻗쳐있던 물줄기가 재배치된다.
콱.
그녀가 주먹을 움켜쥔다.
그물을 끌듯이 잡아당긴다.
촤아아아아앗!
그녀의 손을 따라 물줄기가 움직인다. 사방으로 퍼져있던 물줄기가 한곳으로 모여든다.
“···아.”
클로에는 그 모든 것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본다.
그녀는 감탄을 내뱉는다.
여태껏, 클로에는 자신의 별빛을 다루는 방법을 모르고 있었다. 심장의 안에 별빛이 고여있음은 안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어떤 식으로 활용해야 할지는 알 수 없었다.
그 답이 눈앞에 있었다.
범람하던 별빛은 더는 요란스럽지 않다. 난잡하게 흐트러졌던 별빛이, 지금은 한 곳을 중심으로 가지런히 모여있다. 별빛이 눈앞의 교수를 휘감고 있다.
“휘어잡았으면.”
별빛의 주도권을 쥔 교수.
라니아 반 트리아스는 별빛을 쥔 손아귀를 움직인다. 휘감긴 물줄기를, 실타래와도 같은 그것에 남은 한 손을 집어넣는다.
“그다음은 마나를 다루는 것과 같아.”
갈고리 모양으로 구부린 검지로 별빛을 잡아당긴다. 원하는 물줄기를 뽑아낸다. 그녀는 제 손에 묶은 물줄기를 물감처럼 다뤘다. 손가락은 붓, 별빛은 물감이다.
그녀의 손가락이 움직인다.
별빛이 그 뒤를 따른다.
빈 강의실을 도화지 삼아 그림을 그린다.
“구부리고.”
별빛이 요동친다.
“펴고, 휘두르고, 꺾고, 다시 새기지.”
요동치며 유의미한 문양으로 변해간다.
마치 꽃이 피어나는 것만 같다. 별빛이 개화(?花)한다. 피어나는 별빛을 클로에는 제 두 눈동자에 아로새긴다.
···본래대로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용사의 별빛은 내부에 고여있다.
밖으로 나오지 않으니, 타인이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리도 없다.
그러나, 클로에는 마법사다.
그녀의 몸을 타고 흐르는 별빛은 주문의 형태로 응용하기에 최적화되어있다. 주문을 쓴다는 건, 곧 내부의 마나를 외부로 끌어냄을 의미한다.
“이렇게 하는 거야.”
그리고, 여기 한 마법사가 있다.
그녀는 별에게 축복받지 않았음에도, 별을 다루는 방법을 알고 있다. 수명을 소모해 얻은 깨달음을 그녀는 타인의 눈앞에 전시하고 있다.
생사의 경계에서 깨달은 것.
미래를 포기하며 손에 넣은 것.
그러나, 더는 닿을 수는 없게 된 것.
그녀는 그것을 차기 용사 후보의 앞에서 선보인다. 클로에는 넋을 놓은 채 그것을 바라본다. 아름답다. 한없이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휘어잡고, 엮고, 꼬고···.’
마치 실 놀이를 하는 것 같다.
너무나도 간단하게 선보이는 과정 속에서··· 클로에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무언가를 느낀다. 클로에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차라라락.
눈앞에 문양이 떠오른다.
라니아의 푸르른 눈동자와 클로에의 옥빛 눈동자가 백금색의 회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다. 클로에는 무심코 허리를 앞으로 숙였다. 얼굴을 조금 더 들이밀었다.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백금색의 회로.
그것이 완성되려는 순간이다.
파삭!
회로가 박살 나며 클로에의 내부로 별빛이 전부 되돌아왔다. 클로에는 켁, 하고 기침을 흘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흠.”
라니아가 제 턱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역시 주문을 쓰는 건 무리인가.”
“네, 네에?”
“주도권을 잡아도, 마나의 주인은 너니까.”
라니아는 아쉽다는 양,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평범한 마법사라면··· 주도권을 잡아서 내 맘대로 다룰 수 있겠지만, 네 건 아닌가 보네. 하긴, 괜히 용사는 아니라는 거지.”
그 해골 바가지한테는 천적이나 마찬가지인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라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
어느새 시간이 제법 흘러있었다.
클로에는 무언가에 홀린 듯 라니아를 바라봤다. 방금까지 눈앞에서 펼쳐졌던 광경들이··· 아직 클로에의 눈앞에 어른거리고 있었다.
‘방금, 그게 다 무슨···.’
막 꿈에서 깬 사람이, 꿈속의 풍경을 그려보듯이 클로에가 테이블 위에 손가락을 꼼지락대고 있던 순간이다.
탁.
클로에의 앞에 종이가 놓아졌다.
“그럼 오늘 과제.”
클로에가 고개를 들었다. 방긋, 미소 짓는 라니아 교수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방금 보여준 거, 여기에 전부 기록해서 오면 돼. 다음 주에 다시 보자.”
“···네?”
“책상에 손가락으로 꼼지락거릴 시간에, 연필 들고 여기에 그리란 소리지.”
“어, 어어···.”
“아, 그리고 이건 방금 내가 보여준 개념들을 정리해둔 건데··· 아, 이것도 있구나? 잠깐만.”
탁, 탁, 탁.
책상 위에 종이 더미가 쌓인다.
그 높이가 심상치 않다. 높게 쌓인 종이 더미가 클로에의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클로에의 동공이 파르르 떨렸다.
“이, 이게 다 뭐···에요?”
“뭐긴? 방금 말했잖아.”
뭘 당연한 걸 묻고 있니?
그렇게 말하듯 라니아가 짧게 답했다.
“과제.”
과제? 이게? 다?
클로에가 고개를 휙 돌렸다. 옆에 앉은 레스티를 보았다. 그녀는 별다른 대꾸 없이 똑같은 양의 종이를 정리해서 가방에 넣고 있었다.
“어, 어어···.”
이게 평균인가?
아플리아에선 이 정도가··· 평균 과제인 건가?
너무나도 태연한 레스티의 태도에, 클로에의 동공이 조금 더 흔들렸다. 그 시점에서 클로에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낀다. 그러나, 정확하게 무엇이,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별이 절망을 노래할 뿐이다.
그 노랫소리가 마치, ‘그러게, 내가 뭐랬니?’ 라고 속삭이는 듯 하다.
“히, 히에에엑···.”
클로에의 안색이 새하얘졌다.
애석하게도, 이제 막 특강의 첫 수업이 끝났을 뿐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