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171
〈 171화 〉 광인, 그리고 악몽(1)
* * *
‘순조로이 진행되고 있다.’
특강을 시작한 지 사흘 차,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마나의 거래학 교수실.
나는 테이블에 다리를 올린 채 보고서를 한 장 한 장 넘기고 있었다. 스승님이 보신다면 기함을 지를 행동이긴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지금은 스승님이 안 계셨다.
“흥, 흐응.”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이 자세가 제일 편한 걸 어떡해.’
테이블에 다리를 올리고, 고개를 살짝 뒤로 젖힌 채 몸에서 힘을 뺀 자세.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을 자세지만, 경박하고 천박하단 이유로 부모, 혹은 연장자에게 잔소리를 듣고 그만두었을 자세다. 다만, 세상만사가 으레 그러하듯, 가장 천한 것에 진리가 깃드는 법이다.
‘가장 편한 자세야. 진리인 셈이지.’
마법사란 언제나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 존재.
나는 마법사로서의 의무를 다할 뿐이었다.
팔랑.
차례로 넘긴 보고서도 어느새 끝을 맞이한다.
나는 보고서의 마지막 장에 시선을 두었다. 남은 내용을 확인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흠.”
탁, 하고 보고서를 내려놓으며 내가 중얼거렸다.
“깔끔하네.”
추측, 가설 설정, 증명, 결론.
모든 과정이 매끄럽게 이어진다. 완벽했다. 흠잡을 데 없이 깔끔한 보고서였다.
“누가 차기 마탑주 아니랄까 봐.”
차기 마탑주, 레스티 엘레노아.
그녀가 올린 보고서는 썩 만족스러웠다. 이제 겨우 한 번의 수업을 했을 뿐인데도, 레스티는 얼추 감을 잡아가는 듯 싶었다.
‘머리가 좀 되는 애라니까.’
하나를 말해도 능히 열을 깨우치는 부류가 있다.
레스티가 딱 그 쪽이었다. 레스티가 아직 증명하지 않은, 다음 보고서에서 다룰 예정이라는 ‘추측’들을 보며 나는 미소 지었다.
“레스티 쪽은 걱정할 필요 없고···.”
남은 건 클로에 쪽인데.
나는 클로에가 오늘 이른 아침, 제출하고 간 과제를 흘겨봤다. 과제를 마치는 대로 제출하라고 말을 해뒀기에, 일단은 한만큼 제출한 것 같긴 한데···.
“···생각보다 빨리하네?”
그 분량이 제법 됐다.
내가 내준 건 일주일 치 분량의 과제다.
그리고, 삼일 정도가 남은 오늘 아침 클로에가 제출한 과제는··· 얼핏 봐도 8할 정도였다.
‘날림으로 한 것도 아닌 것 같고.’
색연필로 밑줄까지 좍좍 그어 가며 해온 과제다. 제출한 보고서도 레스티에 비하면 부족하긴 하지만, 이 정도면 그럭저럭 합격점을 줄 만했다.
“오···.”
나는 내심 감탄했다.
아무래도 내 예상은 빗나간 듯 싶었다. 흑탑주에게 주문을 배운지는 일 년이 좀 덜 됐다기에, 아예 기초부터 가르칠 생각이었다. 다만, 상황을 보아하니 그럴 필요는 없어 보였다.
‘이 정도면 바로바로 진도 나가도 될 것 같은데.’
가르쳐준 걸 곧장 활용하는 걸 보면 공부 머리도 제법 있는 듯싶었고.
“흠.”
나는 턱을 매만졌다.
첫 주 차라고 과제의 양을 좀 조절했긴 했다지만, 이 정도 속도라면 계획을 조금 앞당길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원래 차근차근 늘려갈 생각이었는데.’
한 번에 팍 늘렸다가, 적응하지 못하고 퍼지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단계를 밟으며 늘려갈 생각이었지만···.
“안 그래도 되려나···?”
다음 수업 때는 조금 더 늘려도 괜찮겠네.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용사 키우기 계획은 순조로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건 됐고.’
나는 고개를 돌려 시계를 바라봤다.
약속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슬슬 나가봐야겠네.’
탁탁.
책상에 늘어놓은 종잇장들을 모아, 책상에 두어 번 두들겨 각을 잡았다. 각 잡힌 종이 더미를 책상 한구석에 밀어 넣고선 나는 책상을 발바닥으로 쭉, 밀었다.
드르륵.
그렇게 의자를 뒤로 끌어 공간을 마련한 뒤, 나는 허리를 튕겨 자리에서 일어섰다. 모든 동작이 매끄럽게 이어진다. 가히 완벽이라 부를만한 움직임이었다.
“후.”
내가 짧게 숨을 뱉으며, 완벽한 동작에 내심 만족스레 웃음을 흘리고 있을 무렵이다.
“아주 묘기를 부리는구나, 묘기를 부려.”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흠칫, 어깨를 떨며 뒤를 돌아보니··· 스승님이 열린 문에 비스듬히 기대어 서 계셨다.
“어, 음···.”
“왜, 더 해보지 그러느냐. 아주 공중제비를 돌며 나오는 편이 멋있고 좋지 않겠느냐?”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아니, 하필이면 이 타이밍에 오실 게 뭐람.
“그, 어디서부터 보셨어요?”
“네가 테이블에 발을 올리고 고개를 좌우로 까딱일 때부터 보고 있었다.”
“아니, 말씀을 하시지···.”
“어디까지 하나 보려고 했다.”
스승님이 고개를 가로저으셨다.
후우, 짧게 한숨을 쉬시더니 스승님께서 내게 넌지시 질문을 던지셨다.
“어디 나가느냐?”
“마중 나가려구요.”
“그 이국에서 왔다는 마법사 말이냐?”
이국에서 아플리아를 방문하는 마법사.
광인, 켈르할름의 방문은 그렇게 포장돼 있었다. 그 진실을 아는 건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시기에 온다는 것 자체가, 안 그래도 조금 수상하긴 했다마는.”
스승님께서 이마를 짚으셨다.
“네가 직접 마중 나간다는 걸 보아하니, 정상적인 인물은 아니겠구나.”
“어··· 그게 그렇게 되나요?”
“네가 엮이는 일 중 열에 아홉은 사건이 일어나니 말이다. 뭐, 자세한 내막은 묻지 않으마. 다만, 내 하나 당부하건대···.”
스승님이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으셨다.
“라니아, 학기 초부터 시끄러워지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평화롭게, 소란스럽지 않게 지내거라. 부디 사고만 치지 말아달란 소리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아플리아를 요란스레 만들 생각은 없었으니까.
‘평화롭게는모르겠지만, 소란스럽지 않게. 조용히. 티 안 나게 처리하긴 할 거니까 뭐···.’
그게 거기서 거기 아니겠는가.
목격자가 없으면 조용히 처리한 거지 뭐.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다녀오너라.”
스승님을 지나쳐 교수실 밖으로 나선다.
주머니에서 마도구를 꺼내 보니, 마도구가 연신 깜빡거리고 있었다. 일찍이 칼트와 주고받은 마도구. 거기에는 약속 장소가 표시돼 있었다.
[삼십 분 뒤, 도착합니다.]광인(?人), 켈르할름.
그가 아플리아로 다가오고 있었다.
2.
‘때려치울까.’
추적자, 칼트는 요즘 들어 제 신세를 한탄하는 일이 많아졌다. 전장에서 은퇴하고 하운드(Hound)로서 활동하는 것 자체에 불만은 없다.
‘급여도 괜찮고, 처우도 좋고, 명예도 있고, 권력도 있고···.’
없는 게 없는 직종이다.
제 적성을 살릴 수 있으니 참으로 좋은 직장이다. 동료들은 자신을 ‘선배’라고 부르며, 한때나마 용사들과 함께 활동했던 자신을 존경한다.
‘직장 내 관계에도 문제없음.’
모든 게 좋다.
다만, 한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일이 많다!’
일이 많았다. 많아도 너무 많다.
아무리 생각해도 업무량에 문제가 있었다. 요즘 들어 사건이 연달아 터지는 느낌이다. 그중 태반이 ‘옛 선배’와 관련이 있긴 하지만··· 이번 업무는 아니었다.
왕성의 마도구 정지 사건.
전장과의 통신망의 붕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왕성의 모든 인력이 발로 뛰었다. 하운드를 비롯한 기사들이 전선까지 새로운 마도구를 퍼 나르고, 통신망을 정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또 하나의 사건이 터졌다.
여태껏 잠잠하던 초인 중 하나가, 수도의 방문 의사를 밝힌 것이다. 말이 방문 의사이지··· 그건 사실상 통보에 가깝다.
‘대부분의 초인은 말이 통하지 않으니까.’
초인(?人), 벽을 넘어선 이들.
그들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대가로,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만다. 잃어버림은 비틀림을 낳는다. 대부분의 초인은 정신적으로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잃어버림으로써 벽을 넘는 게 더 맞는 표현이긴 하지만···.’
아무튼 간, 초인들은 독선적인 존재다.
그들이 의사를 밝힌다는 건··· ‘내가 이렇게 할 테니, 방해 말고 길이나 터라.’ 하고 선언하는 것과도 같았다. 그리고, 그 선언에 반대 의견을 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정말로.
초인은 인간을 넘어선 존재다.
같은 초인, 혹은 용사 정도는 나서야 막을 수 있는 존재들이다. 그들의 심기를 거슬러 봐야 좋을 게 하나 없다는 건 왕가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어지간한 요구 사항은 들어주는 편이다. 그편이 싸게싸게 먹힐 테니까.
‘그래도, 이건 좀 위험하지 않나.’
칼트는 온 감각을 곤두세운 채, 자신의 등 뒤를 경계하고 있었다. 칼트의 뒤에는 그를 따라 걷고 있는 초인이 하나 있었다.
수도, 그것도 아플리아 아카데미.
그곳의 방문 의사를 밝힌 초인.
‘아플리아의 방문 자체는 문제가 없다.’
문제는, 그 선언을 한 초인의 존재다.
칼트는 잠시 뒤를 돌아본다. 자신이 안내를 맡은 초인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광인(?人), 켈르할름.
광기로 벽을 허물어트린 초인.
그 어떤 초인보다 주의해야 할 존재.
본래대로라면, 그는 왕도로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이번만큼은 허가가 떨어졌다. 칼트로선 작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허가를 내린 건가.’
폭탄을, 그것도 도시 하나는 통째로 날려버릴 수 있는 폭탄을 왕국의 중심지에 들여놓은 셈이다.
“후우···.”
칼트가 짧게 숨을 뱉으며 걸음을 멈췄다.
“곧 아플리아 쪽에서 안내하실 분이 오실 겁니다. 여기서 조금만 기다리시죠.”
“그런가.”
높낮이가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켈르할름이 답했다. 숲속의 한복판. 켈르할름은 나무에 기대지도, 그루터기에 앉지도 않은 채 자리에 서 있었다.
“······.”
칼트는 그루터기에 걸터앉아 말없이 켈르할름의 모습을 관찰했다.
‘광인, 켈르할름.’
전장에서 몇 번 마주친 적이 있는 초인이었다.
하지만, 칼트는 여전히 켈르할름이란 인물에 대해 알지 못했다.
‘겉보기에는 스물 중후반.’
자신의 또래로 보이는 인물이다.
그 외견은 20대의 청년이나, 그 실제나이는 칼트가 기억하기로 백삼십 살 정도였다. 그의 고향인 마학(??)의 학원도시, 아르티아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이 한 세기 정도 전의 일이었으니까.
소문으로 듣기를, 정령을 학살해 그 피로 수명을 연장했다고 하던가? 그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모종의 수단으로 수명을 늘렸음은 분명했다.
‘꺼림칙한 인물이다.’
칼트는 칼르할름을 그렇게 평가한다.
속내를 읽을 수가 없는 인물이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무슨 행동 원리를 따르는지도 알 수 없는 인물이다. 가장 알 수 없는 건 바로 그 눈동자다.
‘회색의 눈동자.’
한없이 서늘한 눈동자다.
속이 비어있는 것만 같은 눈동자.
무표정, 무심, 공허함. 그런 단어들이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인형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온 것 같군.”
그렇게 칼트가 경계를 풀지 않은 채, 켈르할름을 감시하고 있던 와중이다. 켈르할름이 팔을 들어 올렸다. 그가 손가락을 펴 어느 곳을 가리켰다.
“저 인물인가?”
칼트가 고개를 돌렸다.
숲의 맞은편에서 누군가 걸어오고 있었다. 거리가 제법 있지만, 먼 거리에서도 그 인물의 특징만큼은 시야에 훤히 들어온다.
잿빛 머리칼.
상징과도 같은 그것이 바람에 흔들린다. 일정한 보폭을 유지한 채 그녀가 칼트의 곁으로 다가왔다.
“수고했다, 칼트.”
툭툭, 잠깐 칼트의 어깨를 건드린 그녀가 칼트를 지나친다. 그녀의 걸음이 향하는 곳에는 숲의 한가운데에 선 켈르할름이 있었다.
턱.
그녀가 켈르할름의 앞에 멈추어 선다.
허리를 살짝 숙이곤 이리저리 켈르할름을 살펴본 그녀가, 엷은 미소를 흘리며 입을 열었다.
“껍질, 아직 안 깨졌네?”
“······.”
그 말에 켈르할름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가 처음으로 보인 유의미한 표정 변화였다.
“나를 아나?”
“잘 알지.”
광인이 질문하고, 잿빛 마법사가 답한다.
한 번의 물음과 한 번의 답이 오간다. 둘은 서로를 마주 바라본다. 푸른 눈동자와 회색의 눈동자가 한걸음의 거리를 두고 서로의 색(色)을 비춘다.
“켈르할름 벨 아르티아.”
그 이름을 부르며 라니아가 손을 뻗었다.
마치, 악수를 청하듯이.
“나는 라니아 반 트리아스. 널 안내할 사람이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