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248
〈 248화 〉 별을 다룬다는 것(3)
* * *
클로에는 빠르게 성장했다.
애당초 흑색 마탑주 아래서 기초지식을 충분히 쌓아둔 상태였고, 아플리아 아카데미에서 머무르며 클로에는 제 기반을 충분히 다져 두었다.
남은 것은 저만의 탑을 쌓아가는 것.
그리고, 클로에는 이제 막 첫 벽돌을 내려둔 참이다. 자신만의 마도(??)에 한 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특강의 목적은 달성한 거나 마찬가지였지만···.
“방향을 다시 잡아봤어요.”
클로에는 그걸로 만족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날뛰는 마나를 잡기 위해선 회로에 변형을 가해야 한다, 그렇게 말씀하셨잖아요? 그래서 그 개념을 좀 바꿔서 활용해봤는데···.”
클로에가 내게 종이 하나를 내밀었다.
종이에는 회로 하나가 새겨져 있었다.
“기본 회로부터 바꿔볼 생각이에요. 제 마나의 특성과 겹치게끔··· 조금씩 수정해보려구요.”
“···회로를 변형하겠다고?”
“네. 라니아 교수님이 주신 ‘기초 주문의 극한’ 쪽 학습지를 요즘 복습하고 있거든요.”
클로에가 쑥스러워하며 제 머리칼을 긁적였다.
“거기에 나온 문장이랑 예시를 보다 보니, 이런 방법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일단은 기초 회로부터 고쳐보려구요.”
나는 말없이 클로에가 건넨 종이를 살펴봤다.
종이에는 회로를 어떤 식으로 변형할지, 그 방향성과 간략한 개요가 적혀 있었다.
그렇게 회로를 읽다 말고.
“···응?”
내가 눈을 몇 번 깜빡였다.
당연한 일이지만, 눈을 감았다 떠도 종이에 새겨진 건 변하지 않았다. 회로와 클로에를 번갈아 바라본 뒤 나는 클로에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클로에?”
“네, 라니아 교수님.”
“너 흑색 마탑주 님한테 ‘회로 개찬’ 파트를 강의받은 적 있니?”
“네? 아뇨, 배운 적은 없는 것 같아요.”
“···배운 적이 없다고?”
그럼 이건 뭔데.
내가 종이를 다시 살펴봤다. 미숙하고, 난잡하지만 클로에가 내민 종이에는··· 분명한 회로 개찬의 과정이 담겨져 있었다.
‘···3학년에나 가르칠 파트인데?’
학생중에 이게 가능한 건, 이미 관련 교육을 전부 받고 아카데미에 들어온 레스티 밖에 없었다.
‘그런데, 마학에 입문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애가 회로 개찬을 흉내 냈다고? 그것도 독학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어이가 없이 내가 다시 한번 클로에에게 물었다.
“그럼 이걸 어떻게 했는데?”
“어···.”
클로에가 머뭇거리다가 답했다.
“그게, 하니까 됐어요.”
그 대답을 듣는 순간 숨이 턱, 하고 막혔다.
말문이 막힌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나는 얼빠진 표정으로 클로에를 바라보다가, 힘겹게 입을 열어 답했다.
“그···으래. 잘하고 있네. 일단 하는 데까지 해서 가져와 봐. 그럼 같이 봐줄게.”
“네, 라니아 교수님!”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곤 클로에가 총총걸음으로 교수실을 빠져나왔다. 그 뒷모습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교수실 문이 닫히고 나서야 내가 고개를 돌렸다.
“그래.”
내가 고개를 돌린 곳에는 스승님이 앉아 계셨다.
학생들이 제출한, 산더미처럼 쌓인 과제들을 채점하다 말고 스승님이 나를 바라보셨다.
“이제야 내 맘을 알겠느냐, 라니아.”
“네, 네에?”
“내가 너를 키울 때, 딱 지금 너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거울이라도 봐 보는 게 어떻겠느냐.”
책상에 올려둔 거울을 봤다.
거울에 비춘 나는 대략 ‘도대체 뭐하는 놈이지?’ 와 같은, 어이없음과 황당함이 반반쯤 섞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제 내 맘을 알겠느냐.”
과연.
스승님께선 이런 기분이셨구나.
2.
십여년이 흘러서야 제자와 공감대가 형성됐다.
그 사실에 은근한 기쁨을 느끼며 로셀은 자리서 일어섰다. 그리곤 교수실 한구석에 놓아둔 주전자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커피에 한해서는 유난히도 까다로운 입맛을 지닌 제자를 위해 준비해둔 주전자와, 커피를 달이기 위한 각종 도구들.
그 앞에 선 채 로셀은 학사 내 카페를 운영하는 연금술사에게 받아온, 커피 달이는 레시피를 확인하며 도구들을 차례로 건드렸다.
달그락.
이제는 능숙해진 손놀림으로 커피를 달이며, 로셀은 문득 헛웃음을 흘렸다.
‘이러다 은퇴 후에는 카페라도 차리게 생겼군.’
내린 커피 한 잔은 제 손에, 남은 한 잔은 제자의 테이블에 올려둔다.
“그래서.”
커피를 홀짝이며 로셀이 입을 열었다.
“클로에란 저 아이, 네가 보기엔 어떤 것 같으냐?”
“솔직히 좀 놀랍긴 해요.”
“놀랍다?”
좀처럼 타인을 칭찬하는 법이 없는 라니아다. 그런 라니아의 입에서 튀어나온 ‘놀랍다’란 단어에 로셀이 흥미롭다는듯 눈을 가늘게 떴다.
“레스티나 라크, 벨노아에게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더냐. 그 아이들과 비슷한 수준이더냐?”
“그 애들도 뛰어나긴 한데··· 클로에, 저 아이는 방향이 좀 다른 느낌이에요.”
라니아가 제 턱을 매만졌다.
“학습 하는 게 빠르다? 이해가 빠르다? 솔직히 한 단어로 정리하긴 어려운데···.”
아, 하고 그녀가 짧게 탄식을 내뱉었다.
“사고방식 자체가 좀 다른 느낌이에요.”
로셀이 움찔, 하고 입가로 가져가던 커피잔을 멈춰 세웠다. 로셀은 눈을 게슴츠레 뜬 채 라니아를 흘겨봤다.
“···사고방식 자체가 다르다?”
“네. 이제 한걸음 내디뎠을 뿐인데, 벌써부터 한참 뒤에 있는 개념을 끌어오질 않나··· 가르친 적도 없는 걸 먼저 해오질 않나.”
어째, 낯설지가 않은 이야기다.
“보다 보면 신기하더라고요. 조금만 잘못 알려줘도 이상한 방향으로 확 수틀릴 것 같아서, 생각을 좀 많이 하게 되기도 하고요.”
“그, 라니아?”
“네? 스승님.”
로셀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라니아를 바라봤다.
“혹시 네 이야기를 하는 것이냐?”
“네? 아뇨? 클로에 이야길 하는 건데요.”
라니아가 눈을 깜빡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제자의 모습을 보며 로셀은 제 관자놀이를 짚었다. 머릿속에 옛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는데, 주로 라니아를 처음 들였을 때의 기억들이었다.
「···라니엘? 이번 주 안에 완성해보라는 회로가, 내가 기억하기에는 중급 회로 십육 종이었을 텐데. 이건 대체 무어냐?」
중급 회로를 가르쳤을 당시의 일이다.
「음, 그냥 이렇게 정리하면 더 깔끔하고, 위력도 더 올라갈 것 같아서요.」
「뭣?」
「보고 있는데 뭔가 아쉽더라고요. 완성이 안 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다 그리고 시간이 남아서 좀 더 깔끔하게 추려내 봤어요.」
중급 회로를 가르쳐 놨더니, 부족한 부분을 메꿔서 멋대로 상급 주문이 담긴 회로 16종을 만들어 놨던 제자의 모습.
「···어떻게?」
「예? 하니까 되던데요.」
「뭐라?」
멋대로 과정을 건너뛰고, 하나를 알려주면 어느샌가 저 멀리까지 달려가 버리는 활용력.
‘보고 있자면 웃음만 나오는 학습력이거늘···.’
정작 본인에겐 그런 자각이 없다는 듯, 물어보면 나오는 대답이라곤 ‘하니까 되던데요?’ 따위의 대답이었다.
「허어···.」
그때마다 로셀은 어이없다는 듯한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지금.
“아무튼 말이에요.”
로셀은 제 앞에 앉아있는 제자를 바라봤다.
“클로에 그 아이, 그러면서 한다는 ‘하니까 됐어요.’ 라니. 그냥 웃음만 나오더라구요. 자기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짓을 했는지 자각도 없는 것 같고.”
“···그러냐?”
“네. 말문이 턱, 막히더라니까요? 어이가 없어서 막 웃음이 나오고.”
아하하, 하고 웃음을 흘리며 라니아가 커피를 홀짝였다. 어이가 없는데도, 그게 또 썩 기분이 나쁘지는 않은 것 같은 표정이었다.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고민이 되네요.”
오히려 기대된다는 듯한 표정이다.
그런 라니아의 얼굴을 보며 로셀은 생각했다.
저놈이 꼭 저 같은 제자를 들였구나, 라고.
“그래, 뭐···.”
로셀이 커피를 홀짝이며 중얼거렸다.
“잘해 보아라.”
“네, 스승···.”
“가르치기는 몹시 까다롭고, 가르치다 보면 도대체 내가 뭘 가르치고 있는가, 하며 회의감도 들 것이고··· 그러다가도 잘못 가르치면 망가져 버리겠구나, 하는 긴장감도 들겠지.”
네, 스승님.
하고 답하려던 라니아는 입을 다문 채 로셀을 바라봤다. 로셀은 아련한 눈동자로 창밖을 바라보며 숨도 쉬지 않고 조언을 늘어놓았다.
“내가 괴물을 키우고 있구나. 이거 잘못하다간 훅 가겠구나. 내 반백 년의 마도가 이 녀석한테 죄다 빨리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 테지.”
“스승님, 저 아직 스물일곱···.”
“날마다 고민의 연속일 테지. 진도를 저렇게 빨리 빼는데 뭘 더 가르쳐야 하지? 인성? 인성을 가르쳐야 하나?”
···인성?
어째 조금 핀트가 다른 이야기를 하는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라니아는 잠자코 로셀의 말을 경청했다.
“그래도 뭐.”
커피잔이 차게 식은 뒤에야 로셀의 말은 끝이 났다. 차게 식은 커피로 목을 축인 로셀이 라니아를 바라보며 쓴웃음을 흘렸다.
“너라면 괜찮겠구나. 괴물이 괴물을 키우는 노릇이니까 말이다. 솔직히, 클로에 그 아이가 대단하다곤 하지만··· 너만큼은 아닐 테지.”
“···네?”
“너만 한 아이가 또 어딨겠느냐.”
로셀이 라니아의 머리를 툭툭 손등으로 두들겼다.
“너만한 마법사는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라니아가 눈을 깜빡였다.
로셀은 라니아의 이마에 딱밤을 먹였다.
“아무쪼록, 잘 키워 보거라. 내가 현자를 길러 냈으니, 너도 용사 한 명 정도는 길러 내야 할 것 아니더냐. 그래야 트리아스 가문의 이름이 살지.”
장난이 섞인 목소리였다.
라니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네, 스승님.”
용사‘한 명’이 아니겠지만요.
3.
특강은 순조로이 진행됐다.
클로에도, 아일라도, 라크도, 벨노아도 모두 꾸준한 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계획은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었으며···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라니아는 눈여겨봤던 학생들을 따로 불러, 특강의 성과를 잠시 확인해 보았다.
“학기 초와 비교하면 주술 위력이 많이 늘긴 했습니다. 반복된 훈련으로 체술이나, 육체 강화 정도도 많이 늘긴 했지만···.”
강의의 성과는 잘 나오고 있냐, 그렇게 묻는 라니아에게 벨노아가 머뭇거리며 답했다.
“···아직, 감을 잡진 못했습니다.”
그림자를 갑주의 형태로 두르는 것.
벨노아는 그쪽 계통으론 완전히 숙달한 상태였다. 한 달간 줄기차게 두들겨 패 본 결과, 라니아도 이 부분에 대해선 파악하고 있었다.
‘느는 건 활용이나 잡기술이었지.’
물론 그것도 충분히 중요하긴 하지만.
“다음 계통으로 못 넘어가겠다는 거지?”
벨노아의 문제는 이것이었다.
그림자 갑주 다음 단계에 존재하는 용의 주술.
그 계통의 존재는 깨달았지만, 어떤 식으로 사용해야 할지 아직 벨노아는 감을 잡지 못한 상태였다.
“예.”
벨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련 속에서 벨리알, 그분께선 그림자 용의 주술이 그림자 갑주의 다음 계통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좀처럼 감이 잡히질 않습니다.”
벨노아는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잡힐 듯, 잡히지 않습니다. 무언가 계기가 있어야 한다고 그분은 말씀하셨지만···.”
“쉽게 배울 수 있는 건 아니겠지.”
라니아가 벨노아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당장은 기반만 다진다고 생각해.”
당장 성과가 나오지 않아 괴로운 듯 보였지만, 라니아가 보기에 그건 괜한 걱정이었다.
‘···그 벨리알 조차, 그림자 용의 주술은 삼십 살에 다 돼서 배웠다고 말했는데. 뭘.’
그녀가 북부의 탑에서 보았던 기억들.
카르디에게 교차 검증을 한 결과 벨리알이 그림자 주술에 숙달한 건 삼십이 다 된 시점이라고 한다. 그 고대의 영웅조차 그만한 시간이 걸린 주술이다. 벨노아 정도면 충분히 빠른 편이었다.
‘완성했을 때 위력이 말도 안 되기도 하고.’
날갯짓 한 번으로 폭풍을 일으키고.
휘두르는 발톱은 하늘을 찢어발긴다.
기억 속에서 보았던 그림자 용의 주술은, 적당한 선만을 지킨다면 상성이 존재하지 않는 수준이었다.
“너무 조급해 하지 마. 다음 시련을 보기 전까지만 감을 잡으면 되는 거니까.”
“···예.”
고개를 끄덕이긴 하나, 벨노아는 썩 속이 시원한듯한 모습은 아니었다.
“도끼를 한 번 휘둘러 베지 못했던 나무를, 이제는 한 번에 벨 수 있습니다. 열 번 찍는 게 아니라 한 번만 찍어도 나무가 넘어갑니다.”
라크는 새하얀 치열이 드러나게 웃어 보였다.
“제 도끼는 한 번만 찍어도 거대한 소나무를 넘어트립니다. 저는 강해진 것입니다···.”
무척이나 만족스러워 보이는 모습이었다.
라크는 제 허리춤에 차고 있는 도끼를 사랑스럽다는 듯 매만지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북부로 돌아가면 ‘장작 패기 경주’의 1등은 따놓은 당상입니다.”
“그런 대회가 있어···?”
“전통 깊은 경주입니다.”
굉장히··· 독특한 문화로구나.
그리 중얼거리며 라니아는 라크의 상태를 점검했다. 지난 두 달간, 그리고 올 한해를 돌아봤을 때 라크는 확실히 성장을 이루었다.
‘육체적으로는 완성 돼 있었으니까.’
그것을 다룰 방법을 몰랐을 뿐이다.
그리고, 지난 일 년간 라크는 그것을 꾸준히 학습했다. 주문을 활용하는 방법, 제 육체를 제대로 다루는 방법···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벽까지 체감했지.’
검귀 드라카와의 조우.
그 순간 마주했던 벽과, 잠깐이나마 벽에 발을 디뎠던 경험이 라크에겐 있었다.
“너는 이대로만 가면 되겠다.”
라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성장 곡선이 가파르진 않지만, 라크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었다. 한계단 한계단 확실하게.
“근데 말야 라크.”
“예, 라니아 교수님.”
“아까 나무를 한 번만 찍으면 넘어간다는 거. 그거, 어디서 해본 거니?”
“예? 그거야 당연히···.”
라니아가 말없이 라크에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최근 학사를 통해 내려온 공지였다.
『근래 아플리아 뒷산, 그리고 하르메인 삼림에서 나무가 통째로 베어지는 참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베어낸 나무를 땔감용 장작처럼 가지런히 정리까지 해두었는데, 도대체 무슨 의도인지 파악이 어렵습니다. 범인 색출을 위한 협조를 요청···.』
“······.”
라크는 침묵했다.
“라크.”
툭툭, 라니아가 종이를 건드렸다.
라크는 식은땀을 흘렸다.
“조심하자.”
“···넵.”
사소한 문제가 있긴 하지만, 특강은 순조로이 진행되고 있었다.
벨노아와 라크의 경우, 당장은 기반을 다지는 느낌이 강했다. 주기적으로 찾아가 두들김으로써 라니아는 둘이 기반을 단단히 잡도록 도움을 주었다.
다른 둘의 경우에는, 오히려 라니아가 손댈 부분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별을 지휘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권능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도 파악하는 중이에요. 아직 알지 못한 게 많다는 느낌이네요.”
아일라는 제 권능에 관한 연구를.
“켈르할름 님께서 가르쳐주신 ‘사역마를 다루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고 있어요. 회로를 분열해서, 사역마에 이식··· 한 번에 통제할 수 있는 개체 수를 늘리는 방식인데···.”
레스티는 소환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었는데, 둘 모두 라니아의 손을 그렇게 필요로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당장은 일주일마다 가져오는 성과를 분석하고, 피드백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보였다.
‘아직 각잡고 가르쳐 주기에는 시기가 덜 되긴 했지. 그건 내후년쯤에나 가르칠 생각이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라니아 교수님!”
차기 용사 후보, 클로에.
“저, 드디어 성공했어요!”
지난 한 달간 가장 많은 변화를 겪은 학생을 하나 뽑으라면, 그건 단연코 클로에였다. 클로에의 성과를 떠올리며 라니아는 엷은 웃음을 흘렸다.
하나같이 키울 맛이 나는 애들이다.
그리고, 그건 눈여겨봤던 학생들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아플리아의 전반적인 수준은 꾸준히 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강의 템포도 전반적으로 올려봤는데 잘 따라오는 것 같고. 별다른 문제는 없네.’
과제량을 좀 늘려봤는데, 다들 군말 없이 잘 따라오는 것 같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다들 성장하고 있구나. 라니아는 교수로서의 보람을 느끼며 늘어져라 기지개를 켰다.
이대로만 가면 문제는 없으리라.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문제는 갑작스레 찾아오는 법이었다.
4.
이른 아침, 저택 앞으로 기사 한 명이 도착했다. 잠옷차림으로 문을 열고 나선 라니아는 저택을 방문한 기사를 보며 눈을 깜빡였다.
‘어디서 본듯한 얼굴인데.’
그것도, 조금 예전에.
기사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다 말고, 라니아가 짝하고 박수를 쳤다.
“격동의 록스!”
전장에서 마주친 적이 있는 기사였다.
라니아의 말에 록스는 눈을 깜빡였다.
“···절 아십니까?”
“잘 알지! 서부전선에서 산사태로 싹 쓸어버린 친구 아니야! 그 덕분에···.”
전장에서의 인연을 만난 탓에 흥분한 라니아의 목소리가 뒤로 갈수록 작아졌다. 마지막에 가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라니아가 덧붙였다.
“쉽게, 전황을 가져갈 수 있었다고··· 라니엘 오빠에게 들었어.”
“라니엘 님이 말이십니까?”
다행이도 록스는 뒷부분에 주목했다.
록스가 눈을 빛내며 라니아를 바라봤다.
“잿빛 마법사, 라니엘 님께서 누이분에게도 제 이야기를 들려주신 모양이군요. 이거 영광인걸요.”
“응, 대단했다고···.”
“하하. 이 악물고 라니엘 님이 머무르는 전장에 뛰어든 보람이 있군요. 현자께서 기억해주시는 걸 보면 제 노력이 헛되진 않은가 봅니다.”
멋쩍은듯 록스가 제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래서, 무슨 일로?”
“아, 라니아 님께 드려야 할 서신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이것과 관련된 정보는 무조건 직접 전해야 하는게 원칙이라.”
전장에 머무르고 있을 기사가, 왕도까지 찾아와 직접 정보를 전한다. 그것도 충분한 실력을 갖춘 기사가. 라니아는 전해질 정보가 평범하진 않음을 예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차기 용사 후보, 클로에의 담당 교육자 라니아 반 트리아스에게 전한다.”
록스가 목에 걸어둔 아티팩트를 손에 쥔 채, 기사단장의 말을 라니아에게 전했다.
“차기 용사 후보, 클로에의 시련이 결정됐다. 시련의 일자는 내년 봄.”
라니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록스는 마지막 말을 입에 담았다.
“지금으로부터 삼 개월 뒤에 치러진다.”
클로에의 시련 일자가 정해졌다.
라니아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빠른 일정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