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247
〈 247화 〉 별을 다룬다는 것(2)
* * *
일획(一?)의 회로에 마나를 담는 것.
마학자가 아닌, 마법사로 불리기 위해 건너야 하는 첫 번째 과정. 단순히 이론에 탁월할 뿐만 아니라 이론을 현실로 옮겨올 힘이 있음을 증명하는 과정.
재능있는 아이들은 열 살이 채 되기도 전에 회로에 마나를 불어넣는 법을 배운다. 제 마나를 통제하여, 주문을 사용하는 법을 학습한다.
기초.
그야말로 기초라 불리는 과정이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마도(??)에 첫걸음을 내딛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을 가볍게 한걸음 내디뎌, 가볍게 앞으로 나아가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읏···!”
한걸음 조차 내딛기 어려운 아이 또한, 분명 존재하는 법이다.
파직!
별빛의 마나를 견디지 못한 회로가 이리저리 요동친다. 휘어지고 휘어진 끝에 기어코 뚝, 절반으로 부러져버린 회로에서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또 실패했다.’
클로에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하나의 획에 마나를 담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 클로에의 마나는 제멋대로 요동치는 물길과도 같았다. 한군데에 머무르지 않으며, 억지로 틀어막아 봤자 새어나오는 물길.
허공에 새겨진 일획(一?).
물길이 흐르고, 담겨야 할 통로.
그곳에 물을 담아내야 하는데, 도저히 감이 잡히질 않았다. 담으면 새어나오고, 새어나오는 곳을 억지로 틀어막으면 길이 부러지고 만다.
“다시.”
벌써 부러진 회로가 열댓 개에 이른다.
라니아는 말없이 허공에 손을 휘둘러 새로운 회로를 그릴 뿐이다. 클로에는 슬쩍 시선을 돌려 제 옆을 바라봤다.
사락.
그곳에는 제 4 왕녀, 아일라가 있다.
그녀는 말없이 지휘봉을 휘둘러 사방으로 흩어지려는 클로에의 마나를 붙잡아 둔다. 그러므로, 클로에는 낭비 없이 몇 번이고 도전할 수 있었다.
빙글.
아일라는 제 지휘봉으로 가볍게 원을 그렸다.
지휘봉 끝을 따라 마나가 자유로이 출렁였다. 어느 정도 감을 잡은 모습이었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겠는 자신과는 달리.
클로에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왕녀님께서 도와주시고 계셔.’
마나를 다루기 쉽게 만들어주는 것.
날뛰는 마나의 흐름을 최소한으로 통제해 주는 것. 아일라가 해주고 있는 것은 그런 일이었다.
확실히, 많은 도움이 된다.
평소보다 마나가 잘 흘러나온다.
흘러나온 마나는 쉽게 흩어지지 않으며, 자신의 손길을 따라 어느정도 움직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결국 거기까지다.
‘결정적인 건 내가 해야 해.’
마나를 회로에 담는 것은, 마나를 활용해 주문을 만들어내는 것은··· 클로에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소환(Summon).」
아니, 아니었다.
그 일을 해낸 이를 클로에는 이미 알고 있다.
클로에는 어둠 속에서 자신의 별빛을 다뤘던 레스티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일라의 도움이 있다곤 하나, 그녀는 그것을 해냈다.
소환된 사역마들에게 깃들었던 별빛.
주문보다는 단순한 부여에 가까웠으나, 별빛을 두른 사역마들이 진군하는 모습은 아직도 클로에의 뇌리에 깊게 각인돼 있다.
할 수 있을까.
잿빛의 차기 마탑주라 불리는, 그런 재능있는 마법사조차 힘겨이 해낸 일을··· 자신이 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으읏.”
파삭, 하고 또다시 선이 쪼개진다.
여전히 감은 잡히질 않는다.
클로에의 고개가 조금 더 아래를 향했다.
그 순간이다.
“클로에.”
라니아가 입을 연다.
줄곧 침묵하던 그녀가 입을 열어 클로에의 이름을 부른다. 클로에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라니아를 바라봤다.
“쉽게 안되는 게 당연한 거야. 마법을 배운지 일년이 채 안됐으니 어려운 게 당연해. 그러니, 어깨 펴고, 고개 들고···.”
부드러운 목소리.
“같이 해보자.”
그러나, 놓아주진 않겠다는 듯··· 라니아는 클로에의 이마를 툭, 하고 건드렸다.
“처음부터 다시.”
2.
잿빛 마법사, 라니엘 반 트리아스.
경지에 오른 마법사.
마법사들은 내면에 저마다 하나씩 탑을 만들어 놓는 법이다. 라니엘 또한 마찬가지다. 그녀는 자신이 쌓아올린 탑을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쓸 수 있는 건 전부 쓴다.
막히면, 다른 방법을 찾는다.
그런 신념하에 조립된 탑은 깔끔하지 않다. 벽돌은 이리저리 튀어나와 있으며, 벽돌과 벽돌 사이에 아무렇게나 꽂아넣은 돌조각이 산더미다.
라니엘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속 쓰리게도 근본이 없다는 표현이 가장 걸맞으리라.
원소 주문, 주문 각인, 타격계 주문, 속박 주문, 마나 발화, 마나 연소, 육체 강화···.
수많고 수많은 체계를 마구잡이로 섞어 만들어낸 탑이다.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그렇기에 그녀가 쌓아올린 탑은 견고하다.
덧대고 덧대어 보강해낸 탑.
몇 번이고 다시 쌓아올린 탑.
경험과 경험을 쌓아 올려 만든 탑.
그 탑의 중심에 박힌 벽돌을 라니엘은 꺼내본다. 그것은 탑의 핵심과도 같다. 자신이 쌓아왔던 모든 마학의 결실이 이 한 조각에 맺혀있다.
쓸 수 있는 모든 걸 쓰고.
쌓아올린 모든 걸 한데 엮어 만들어낸 회로.
‘그늘을 통제하기 위한 회로.’
별을 다루기 위한 회로.
그것이 새겨진 벽돌 조각은 라니엘이 건너온 수많은 전장이 굳어져 만들어진 것이다. 경험 위에 새겨넣은 회로를 떠올리며 라니엘은 눈을 떴다.
“단순히 담는다고 생각하지 마.”
그녀는 말한다.
“세간에선 마나는 물이고, 회로는 물을 담는 그릇이자 물이 흐를 통로라고 표현하기도 해. 맞는 표현이긴 하지만, 당장은 그런 말들은 다 잊어.”
잊어버리라고.
“결국에는 다른 누군가 비유한 언어일 뿐이야. 네게는 네게 맞는 방법이 있고, 그건 다른 누군가 만들어 줄 수 있는 게 아니야. 네가 찾아내야 하는 거지.”
전부 다 잊고.
“처음부터. 네가 깨달은 것만을 가지고, 오직 네가 이해한 것만을 가지고··· 다시 해보자.”
처음부터 다시 해보자고.
“너는 네 마나를 어떻게 이해하니?”
“별빛이라고 생각해요. 통제되지 않는, 제멋대로 흐르기만 하는 물길 같은···.”
“그래, 물길 같은 형태를 띠고 있네.”
라니엘이 고개를 끄덕인다.
“또 다른 건?”
“한곳에 있으려고 하지 않아요. 계속 흐르려고 하는 것 같아요.”
“통제되지 않고, 흐르려고 한다. 그래 좋아.”
그녀가 다시 눈앞에 한줄기의 선을 긋는다.
“해봐.”
클로에는 조금 전과 같은 방식으로 회로에 마나를 채운다. 여타 마법사들이 하는 것처럼 마나를 회로에 들이 부었다.
파삭.
당연하게도, 회로가 깨진다.
라니엘은 다시 회로를 그린다.
“잊고, 다시. 다른 마법사들이 하는 걸 따라 하려 하지 마. 오직 네 머리로 생각하고, 네가 될 것 같은 방식으로.”
“···제 방식이요?”
“너는 누구하고도 닮지 않았으니까.”
그녀가 말했다.
“누구랑도 닮지 않았고, 누구도 가지지 못한 걸 가지고 있어. 그런데 왜 남들이 쌓아올린 방식에 네가 맞추려 들어?”
라니엘은 스스로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그건 참고할 뿐이야. 그게 정답이 될 수는 없어. 네게 맞는 방법은 따로 있는 거니까.”
라니엘 또한 마찬가지였다.
남들이 쌓아올린 것에 매몰되지 않고, 그 어느 것도 쉽사리 확신하지 않은 채 그녀는 자신만의 탑을 쌓아올렸다.
“네 마나의 특징을 떠올려.”
자신만이 가진 것.
“네 특기를, 네가 잘할 수 있는 것을 떠올려.”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것.
라니엘이 자신의 탑을 쌓으며 몇 번이고 떠올렸던 것들이다. 달리 말해, 그녀가 지금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은 전부 그녀의 경험이다.
가장 좋은 가르침은 경험이다.
경험에서 오는 깨달음.
몸으로 부딪치며 체득(??)한 것들. 한두 줄의 줄글과 몇 마디의 말과 달리··· 그런 식의 가르침은 쉽게 잊히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
그러니, 누군가의 스승이 된다는 건.
「스승이라 해도 별것 없다, 라니엘.」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건.
「나는 네게 내 방식을 이야기하는 것뿐이다. 네가 어떤 식으로 길을 걸어왔는지, 나는 어떤 식으로 살아왔는지. 그것을 이야기할 뿐이야.」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 속에서 너는 멋대로 깨달음을 얻겠지. 너만의 방식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러니, 생각이 흐르는 대로 해보아라. 나는 옆에서 보조할 뿐이다.」
제 스승의 말을 떠올리며, 라니엘은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겪었던 일을, 숱한 전장의 경험 속에서 깨달았던 것들을.
“보여줄게.”
그리고, 경험을 꼭 말로만 풀라는 법은 없다.
마법사들은 회로를 그리는 이들이다.
그들이 그리는 회로에는 버릇이 담기는 법이며, 회로를 연구하는 상아탑의 학자들은 회로만 보아도 그 마법사가 살아온 가닥을 읽을 수 있다고 말한다.
사락.
허공은 도화지요, 라니엘이 흩뿌리는 마나는 물감이다. 그녀는 자신이 걸어온 마도(??)를 어린 마법사 앞에 전시한다.
“아···.”
클로에는 숨을 쉬는 것도 잊은 채 라니엘의 마나가 그리는 것을 바라본다. 그것은 하나의 마법사가 걸어온 길이다.
푸른 마나가 요동친다.
요동치던 마나가 틱, 티딕하고 튀어 오른다.
‘···잿빛?’
마나가 변질한다.
푸른 마나가 잿빛으로 뒤바뀐다.
변질한 마나는 완전히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다.
통상의 마나와도 다르며, 클로에의 별빛 마나와도 다른 성질이다. 마치 불똥처럼 튀어 오르는 잿빛 마나는 그 어떤 회로에도 담기지 않을 것만 같다.
통제되지 않는다.
그 점에서 클로에의 마나와 공통점을 가진다.
그리고, 라니엘은 튀어 오르는 잿빛 마나를 기어코 회로에 담아내는 데 성공한다. 클로에는 두 눈을 크게 뜬 채 그 모습을 지켜봤다.
틱, 티디딕!
마나가 담긴 회로 자체가 요동친다.
당장에라도 끊어질 것 같다.
그러나, 어느 순간 회로가 변하기 시작한다.
화륵.
불길이 치솟는다. 불길의 형상을 띄는 회로는 그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것이다. 회로는 정적이고, 언제나 안정화된 상태로 있어야 한다는 상식을 깨트린 모습이다.
‘하지만···.’
불길의 형상을 띌지언정 회로는 완성됐다.
마나가 흐르고 주문이 발현된다.
그 과정은 너무나도 매끄럽다.
“···어떻게?”
“말했잖아. 얽매이지 말라고.”
라니엘이 손을 휘적인다.
가볍게 쿨럭, 하고 마른기침을 한 그녀가 테이블에 기대어 섰다.
“마나가 안정적이면 상관없어. 그냥 담으면 되는거니까. 하지만, 마나가 불안정해서 회로에 담기지 않는다면.”
그녀가 미소 지었다.
“다른 곳에서 맞추면 되는 거 아닌가?”
“······.”
클로에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말없이 제 앞에 떠오른 일직선의 회로를 바라본다. 그리곤,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다르게.’
알고있던 것을 전부 버린다.
‘내가 할 수 있는, 내 방식.’
자신의 마나의 성질을 되새기며, 클로에는 가볍게 손가락을 휘둘렀다. 요동치던 물줄기가 클로에의 손가락을 따라 하나의 선을 긋는다.
백금색의 물줄기.
흐르는 특성을 가진 이상, 물줄기는 회로에 담긴 채 가만히 있질 않는다. 그러니 클로에도 방법을 바꾼다. 회로에 마나를 가둬두지 않는다.
관통시킨다.
계속해서 흐르게 내버려 둔다.
회로의 시작점에서, 회로의 끝을 이루는 점으로 마나가 통과한다. 그 상태로 클로에는 손을 콱, 하고 움켜쥐었다.
몇배의 마나가 들었지만.
안정적이지는 않지만.
기초 주문, 점화(Ignite).
한순간이지만 획에 새겨진 주문이 발현된다. 아주 작은 순간 동안 섬광처럼 불길이 번뜩였다.
“그래.”
라니엘이 미소 지었다.
“그런 식으로 하는 거야.”
클로에는 한순간이지만 가능성을 보았다.
남은 것은 실낱같은 가능성을 붙잡는 일이다.
“마나의 성질을 이해한 건 좋아. 하지만, 이래서야 낭비만 가득할 뿐이지. 선 형태가 아닌 회로에는 쓰는 게 힘들 거고··· 그럼 어떻게 해야겠니?”
“···교수님은 어떻게 하셨나요?”
“말했잖아. 나는 회로를 변형시켰지.”
대화를 주고받는다.
“불똥처럼 튀어 오른다. 계속해서 요동친다. 그걸 가둬두려면, 그냥 회로도 같이 움직이면 된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심장에도 그런식으로 새겼고.”
계속해서 회로가 움직인다.
요동치고, 비틀리고, 그럼에도 순환한다.
“나는 그렇게 만들었지. 나중에 가서 통제 자체도 성공하긴 했는데··· 그건 네가 칠판에 새겨진 저 회로를 완성해야겠지?”
“···그렇네요.”
“그러니까 우선은 회로를 바꾸는 식으로 저기까지 가보는 거야. 목적지가 분명하고, 방향성도 이해했으면, 해볼 만 하지 않겠어?”
경험을 이야기하고, 경험을 듣는다.
한동안 둘은 이야기를 계속했고, 클로에는 계속해서 새로운 방식을 시도한다.
실패한다.
실패가 쌓이고 쌓인다.
같은 시도를 해본 마법사가 조언하고, 어린 마법사는 조언을 자신의 것에 맞춰 변형한다. 미숙하지만 확실하게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다.
실패 속에서 가능성은 보인다.
라니엘의 눈에도, 옆에서 둘을 보조하던 아일라의 눈에도, 클로에의 눈에도 가능성은 보인다.
“조금만 더 해볼게요.”
클로에의 녹빛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 백금색의 별 무리가 맺혔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것을 보며··· 라니엘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럴 거 같더라니.”
그녀는 중얼거렸다.
“얘도 괴물이네.”
스스로는 그렇게 여기는 것 같지 않지만.
라니엘이 보기에, 클로에 또한 충분히 괴물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