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249
〈 249화 〉 가장 용사다운 용사(1)
* * *
격동의 록스.
아플리아 아카데미 졸업생 출신의 기사.
높은 충성심과 뛰어난 작전 수행능력, 그리고 인망 모두를 인정받은 록스는 현재 하인켈의 직속 정보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록스는 날것 그대로의 정보를 받는다.
다른 기사들에게 전달되는 한번 걸러진 정보가 아닌··· 날것 그대로의 정보. 이를테면, 제 앞에 앉아있는 소녀의 정체에 관한 것 또한 마찬가지다.
“흐음.”
록스는 맞은 편의 소녀를 흘겨봤다.
잿빛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록스가 전달한 관련 서류를 읽고 있는 소녀, 라니아 반 트리아스.
그녀의 신분에 관한 극비 정보를 록스는 기사단장에게 직접 전달받은 바가 있었다.
「잿빛 마법사, 라니엘.」
「라니아라는 그 아가씨, 라니엘 그 친구가 키워둔 아이라고 하더군. 은퇴하기 전부터 꾸준히 준비했다는 것 같아.」
잿빛 마법사, 라니엘 반 트리아스.
「부족함이 없게 대하게.」
「라니엘, 그 친구가 아끼는 아이일 테니까.」
그 위대한 마법사의 총애를 한몸에 받는 소녀.
이는 기사단 중에서도 극히 소수만이 알고 있는 정보였으며, 극비로 취급되는 정보였다.
‘비범한 구석이 있는 인물일터다.’
무려 그 잿빛 마법사의 선택을 받은 소녀니까.
마도 기사들이 으레 그렇듯, 록스 또한 라니엘에게 과하다 싶을 정도의 존경심을 지니고 있었다.
“궁금하신 부분이 있다면 얼마든지 질문 주셔도 괜찮습니다. 차기 용사 후보생의 담당 교육자인 라니아 님께선 관련 정보를 열람하실 권한을 가지고 계시니 말입니다.”
록스의 안내에 라니아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 보였다. 무척이나 부드러운 미소였는데, 잠시 넋 놓고 그녀를 바라보던 록스가 제 눈을 몇 번 깜빡였다.
‘확실히, 전혀 닮지 않았네.’
소문으로만 들었을 때는 잿빛 마법사와 닮은 아가씨라 생각했는데, 실제로 마주하니 록스가 머릿속으로 그리던 이미지와는 정반대였다.
‘날카롭고, 카리스마 넘치며 서늘하기까지 했던 잿빛 마법사님과는 전혀 다른 인상이다.’
부드럽고, 온화하며 욕 한마디 입에 담지 않을 것만 같은 순해 보이는 인상이다.
‘그러고 보니, 아플리아의 교수라고 하셨던가.’
학생들에게도 저리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하나하나 친절하게 가르쳐 줄 것이 분명했다. 자신이 아플리아에 재학 중일 때도 저런 교수님이 있었다면, 매일 같이 웃으며 등교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군, 아쉬워.
로셀 반 트리아스의 밑에서 지옥 같은 학사생활을 견뎌내야 했던 록스다. 록스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록스가 착각을 키워가는 한편.
‘쓰읍, 지랄 맞네.’
라니아는 미간을 좁힌 채 관련 서류를 훑어보고 있었다. 입 밖으로 쌍욕이 튀어나오려는 걸 힘겨이 인내하며 라니아는 관자놀이를 짚었다.
시련 일자가 예상보다 훨씬 빠르다.
이렇게 되면 계획을 확 틀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라니아는 괜스레 짜증을 느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찾아가서 캐물을 필요가 있겠네.’
아무런 이유 없이 시련 일자가 앞당겨 졌을 리가 없다. 무언가 이유가 있을 테고, 멱살을 쥐고 흔들면 관련된 정보를 토해낼 사람이··· 라니아의 근처에는 딱 한 명 있었다.
칼트.
녀석이라면 뭔갈 알고 있으리라.
2.
짹짹
창가에 앉은 참새들이 지저귄다. 중천에 걸린 햇빛이 살짝 열린 창문을 통해 새어 들어오고, 초겨울로 접어들어 서늘한 바람이 방안으로 밀려든다.
낮이다.
해가 중천에 뜬 낮이다.
집무실에 앉은 칼트는 문득 자신이 마지막으로 집에 들렸던 게 언제인지를 떠올려봤다. 기억이 가물가물한 게 하루 이틀 전 일이 아닌듯싶었다.
“오우.”
칼트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조직 개편 이후 곱절로 늘어난 업무에 시달리는 중인 칼트는 몇 잔째일지 모를 커피를 입안에 털어 넣었다.
“선배님. 저 초인이 됐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런데, 어째 초인이 되며 향상된 육체 능력을··· 전부 야근을 소화해내는데 쓰고 있는 기분입니다.”
“뭐, 쿤텔 아저씨도 말 했잖냐.”
소파에 드러누운 채 라니아가 말했다.
“초인이라 해 봐야, 결국에 인간이라고. 인간다운 방식으로 초인의 능력을 살리고 있는 것 같네.”
“이런 게··· 초인? 이딴 게··· 초인?”
내가 바랬던 미래가 야근?
이런 건 초인이 아니야, 라고 육성으로 외치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참으며 칼트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말입니다.”
칼트는 집무실 구석에 늘어져 있는 라니아를 바라봤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물어볼 게 있어서.”
“짐작은 가는군요. 저도 며칠 전에 전달받아서.”
아마도, 차기 용사 후보가 치러야 할 시련에 관한 이야기겠지. 칼트가 깃 펜을 내려놓았다.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됐다는 신호였다.
“읏챠.”
소파에서 몸을 튕겨 일어난 라니아가 칼트의 앞으로 다가왔다.
“칼트.”
“예, 선배님.”
“차기 용사 후보, 클로에. 내가 키우고 있는 그 애 말이야. 시련 일정이 좀 빨리 잡히지 않았냐?”
에상보다 빨리 잡힌 시련의 일정.
그것이 라니아가 칼트를 찾아온 이유였다.
칼트는 잠깐 숨을 가다듬은 뒤, 질문에 답했다.
“···원래 용사 후보들은 빠르면 2년이면 시련을 치지 않습니까. 오히려 느린 편이죠. 그 아이가 용사 후보로 발견된 게 벌써 삼 년 전이니까요.”
“분명히 시간을 들여 키우겠다고 그랬잖아.”
그랬었죠.
그리 중얼거리며 칼트가 한숨을 내쉬었다.
“계획이 바뀌었다고 하더군요.”
“···뭐?”
“예. 클로에, 그 아이를 시련에 통과시켜 견습 용사로 활용해야 할 필요가 있단 모양입니다. 물론, 견습이 된 이후에도 아플리아에 머무르는 건 상관없지만···.”
잠깐의뜸을 들인 후 칼트가 말을 이었다.
“···특수한 상황에 배치 가능할 정도로 만들어라. 그런 지침이 내려왔습니다. 그것도, 기사단장 하인켈 님께서 직접요.”
“하인켈 아저씨가 그랬다고?”
“놀랍게도, 그렇습니다.”
라니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가 기억하는 하인켈은 인격자이며, 그 어떤 용사도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전장에 올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해 주는 편이었다.
‘그래서,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하인켈이 그런 선택을 내렸다면, 이유는 하나뿐이리라. 라니아가 조심스레 질문했다.
“···전장이 많이 힘든 거냐?”
“힘들긴 하지만, 균형은 아직 간신히 유지되고 있단 모양입니다. 검귀 드라카의 운용이 자유로워진 것도 한몫하고 있고요. 다만···.”
칼트가 말끝을 흐렸다.
“뭔데.”
“그게, 아직은 극비사항이긴 합니다만··· 곧 용사 한 분이 은퇴하십니다. 그래서 균형이 흔들릴 거란 예측이 나오고 있고요.”
용사의 은퇴.
본래는 불가능하지만, 수백 년의 역사 속에서 몇 번 정도 용사의 은퇴가 인정된 사례가 있었다. 주로 큰 부상을 입어 전장에서 물러서는 경우였다.
라니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혹시 큰 부상을 입어서?”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런데도 은퇴를 결정했다?
당장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매일 같이 때려치우겠단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비굴의 데스텔이었다.
“비굴의 데스텔? 걔 드디어 은퇴하냐?”
“아뇨. 붙은 이명대로 이곳저곳에서 날로 먹고 계시다 보니, 아직 은퇴는 멀었지 않나 싶습니다.”
라니아가 조금 더 눈을 가늘게 떴다.
비굴의 데스텔이 아니다.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뿐이었다. 라니아의 목소리가 대번에 낮아졌다.
“카일이 은퇴를 해?”
서늘한 목소리다.
한순간 낮아진 온도에 칼트가 숨을 헛삼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카일 님도 아니십니다.”
“뭐야. 그럼 없는데.”
“왜 없습니까. 한분 남아있잖아요.”
“에이.”
라니아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갈라할이 무슨 은퇴를 해. 걘 그럴 놈 아니야. 은퇴하라고 억지로 떠밀어도 ‘아직 책임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하고 고개를 가로저을 놈인데.”
“그분께서 은퇴하시는 게 맞습니다.”
멈칫.
그럴일 없다며, 농담하지 말라며 손을 휘젓던 라니아가 딱딱하게 굳었다. 말없이 칼트를 바라보던 라니아가 작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진짜?”
“예. 정말로요.”
“아니, 갈라할이 은퇴를··· 해? 그 갈라할이?”
“예. 성창의 갈라할 님께서 은퇴하십니다.”
몇 번의 깜빡임.
몇 초 정도의 침묵.
“미친.”
직후 라니아가 한마디를 툭 하고 내뱉었다.
도저히 믿기질 않는다는 듯한 눈치였다.
3.
마계와 인접한 동부의 최전선.
해가 뜨지않아 언제나 밤인 그곳의 땅은 굳을 날이 없다. 매일같이 마수의 피가, 인간의 피가 땅에 스며들기를 반복한다. 땅 아래 인간의 시체가 가라앉고, 그 위로 마수들의 시체가 스러진다.
그렇게진창이 된 땅을 불태우고.
그 위에서 다시 마수들과 싸우고.
끝없이 죽음과 다만 죽음이 이어지는 그곳에서 기사들은 제 역할을 다한다.
기사는 지키는 자이며, 인류를 수호하는 이다.
자신의 사명을 가슴에 품은 채 기사들은 매일같이 다가오는 죽음에 저항한다. 이를테면··· 전선의 한구석에 서 있는 이 기사들 또한 마찬가지다.
“······.”
동부 최전선, 로텐단.
로텐단의 땅을 밟고 서 있는 기사들은 바닥을 바라본다. 그곳에는 널브러진 건 조금 전까지만 해도 등을 맞대고 싸우던 동료들의 시체다.
부러진 칼날.
주인 잃은 검.
바닥에 널브러진 팔과 다리.
시체는 어딘가 훼손되어 있었으며, 그것은 무언가에 물어뜯기거나··· 쥐어짜인 흔적과도 같다. 살아남은 기사들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린다.
으적.
고개를 들어 올려 앞을 바라보노라면.
으적, 까득, 까드득.
그곳에는 거대한 괴물이 서 있다.
흉측한 마수의 아래로는 수많은 시체가 쌓여있다. 핏물이 끊임없이 흐른다.
철퍽.
동포의 피로 또다시 바닥이 얼룩진다.
마수의 손아귀가 간신히 살아 바닥을 기어 다니던 기사 하나를 주워든다. 움켜쥐어 터뜨린다. 그것은 식(?)을 위한 행위가 아니다.
“크, 커억. 커헙···.”
단순히 가지고 놀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또 하나의 기사가 삶의 종지부를 찍는다. 그것을 바라보는 기사들의 눈은 공허하다.
「특 1 종 마수, 시체 수확자.」
시체 수확자는 배교자가 만들어낸 마수다. 일찍이 전장에 몇 번이고 모습을 드러냈던 저 마수에 관한 정보를 기사들은 알고 있었다.
질긴 피부와 까마득한 재생력.
맨손으로 성벽을 박살 내는 근력.
배교자가 만들어낸 마수들이 으레 그렇듯, 저 마수는 일반적인 마수와는 그 격이 다르다. 배교자가 재앙이라 불리듯이, 그녀가 만들어낸 마수 또한 재해와도 같은 것이다.
막을 수 없다.
더 많은 기사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원은 오지 않는다.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이 자리에 서 있는 것 뿐이다.
‘시체 수확자’는 일정량 이상의 기사를 학살하고 나면, 그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바닥에 널브러진 기사들의 시체를 수거해 마경으로 돌아가곤 한다.
때에 따라서 토벌하기도 하나.
여의치 않을 때는 버림 말을 사용하곤 한다.
그래, 버림 말.
지원군은 오지 않을 것이며, 자신들은 이곳에서 죽으리라. 이런 날이 언젠간 오리라 각오하고 있었으므로 기사들은 스스로의 죽음을 받아들인다.
으적.
간신히버티고 있을 인근 전선으로 저 마수가 향하지 않도록, 이 자리에서 ‘시체 수확자’의 시선을 잡아끈다.
후둑, 후두두둑.
그것이 자신들의 역할이며.
그것이 최선의 판단이리라.
철퍽.
최선의 판단일 테지만.
“컥, 커헙.”
피를 토해내고,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죽어가는 동료들을 보고 있노라면··· 아무리 굳건히 심지를 세웠다 한들, 흔들리기 마련인 것이다.
두렵다.
두려우나 도망칠 순 없다.
‘나는 기사다.’
기사란 구하는 이다.
누군가를 지키는 자다.
지키기 위한 선택을 하기에 기사인 것이다.
‘하지만.’
죽음의 순간 그들은 의문을 품는다.
지키는 자들을 지키는 건 누구인가.
자신들을 구해줄 이는 달리 없는가.
그 의문이 커지고.
“으, 으으으···.”
두려움에 집어삼켜져 그들이 기사가 아닌, 한낱 인간으로서 비명을 지르려는 순간이다.
콰릉!
한줄기의 섬선이 전장에 내리꽂힌다.
시체 수확자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서고, 그리하여 만들어진 몇 걸음 남짓의 공간에 누군가 바로 선다.
피어올랐던 흙먼지가 걷힌다.
흙먼지 사이로 찬란한 별빛이 떠오른다.
후웅, 하고 백금색 창이 흙먼지를 걷어내며 창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낸다.
“용사, 갈라할.”
그가 자신의 이름을 입에 담는다.
살아남은 기사들의 앞으로, 그 누구보다 앞에 선 그가 창을 고쳐 쥐며 말한다.
“가세하겠습니다.”
지키는 이들을 지키는 건 누구인가.
기사들이 최후에 품었던 의문에 답하듯이, 갈라할이 쥔 성창(??)이 백금색으로 빛났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