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271
〈 271화 〉 성기사가 신을 안 믿음(1)
* * *
갈라할은 결코 강한 용사가 아니다.
카일은 물론이고, 성의(??)를 통해 카일 이전의 최강의 용사라 불렸던 ‘절단의 베르제르’를 불러낸 데스텔보다도 갈라할은 약하다.
‘수명을 소모했을 때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갈라할은 초인보다 살짝 아래에 위치한 강함을 지니고 있었다. 다만, 이 경우에는 갈라할에게 억울한 부분이 없잖아 있었다.
“네가 초인보다 아래라고 평가 받는 건, 비교 대상이 안 좋은 것도 한몫하긴 하지.”
“그렇습니까?”
“비교 대상이 켈르할름, 드라카, 쿤텔 아저씨··· 그런 라인이었으니까 뭐.”
광인, 켈르할름.
검귀, 드라카.
검의 협곡의 마지막 계승자, 쿤텔.
갈라할의 비교 대상이 된 초인들은 그런 인물들이었다. 당연하게도 그 세 명과 같은 초인이 흔할 리가 없다. 그들은 초인으로서 적게는 수십 년, 많게는 백 년을 넘게 살아온 인물들이니까.
‘죽음의 칼을 상대로 버텨낸 쿤텔 아저씨는 말 할 것도 없고···.’
켈르할름은 위자드의 천적과 같은 스케발을 상대로, 위자드의 방식으로 일격을 먹인 전적이 있다.
‘드라카는···.’
십년쯤 전, 육체가 전성기였을 시절의 드라카는 쿤텔 아저씨와의 정면 승부에서 무승부를 기록하기까지 했다. 몸을 혹사시켜 망가진 말년에는 그때만큼의 날카로움은 없었다곤 하지만···.
어찌 됐든 인성과 별개로 그 실력만큼은 초인 중 최상위권에 올라가 있음은 분명했다.
“우리 세대의 초인들 수준이 유난히도 높아. 쿤텔 아저씨는 역대 초인 중 거의 최강 수준이었고.”
고대까지 내려가서 계산한다면야, 최강의 초인이자 용사인 인물이 하나 존재하긴 하지만··· 그 인물을 논외로 둔다면 쿤텔 아저씨는 가히 최강이라 불릴만한 검사였다.
고대를 제외한 시대를 둘러보자면, 초인의 수준이 이렇게까지 높았던 시대도 달리 없다는 뜻이다.
“이제 막 초인이 됐거나, 초인이 된 지 십 년도 안된 애들을 상대로 싸우면··· 네가 이길걸?”
“저를 높게 평가하시는군요.”
“과대평가 하는 게 아니야. 초인이 됐다 해봐야 결국 성장 한계가 뚫리고··· 육체 능력이 조금 올라갈 뿐이니까. 그 뒤가 중요한 거겠지.”
내가 짧게 숨을 뱉었다.
지금부터 뱉을 말이 본론이었으니까.
“그러니, 성배를 써서 누군갈 초인으로 만든다고 해도 네 자리를 완전히 대체하긴 힘들 거야. 그건 알아둬라.”
무력적인 측면에서도, 상징적인 측면에서도 갈라할의 자리를 대체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클로에가 용사가 되고 나서야 그 가능성이 보이겠지.
“···그렇습니까.”
갈라할이 쓰게 웃었다.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조금 더 전장에 있고 싶어지는군요. 은퇴 시기를 늦춰달라고 기사단장님께 부탁해 볼까요? 하다못해 일 년이라도···.”
“관둬라.”
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인켈 아저씨는 한 번 결정한 건 하는 사람이야. 그리고, 나도 네가 은퇴하는 게 좋을 거 같고.”
눈을 가늘게 뜬 내가 갈라할에게 쏘아붙였다.
“남아있으면 넌 보나 마나 수명을 갈아버릴 테니까.”
“부정할 수는 없군요.”
“하여간···.”
내가 한숨을 내쉬었다.
갈라할은 미련이 남은 눈치였다. 자신의 빈자리가 유난히도 걱정이 되는듯싶었다.
“하다가 안 되면 나도 나설 생각이 있으니까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진 마라.”
“···예?”
“애들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나도 전장에 다시 나설 생각은 있어. 아직까진 내 손이 많이 필요해서 아플리아에 머무르고 있는 거고.”
앞으로 일에서 이 년.
아이들이 본격적으로 실전에 나서기 시작한다면, 그때부터는 나도 전장으로 향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라니엘, 당신도 남은 시간이···.”
“걱정 마라. 너보단 조금 더 많으니까. 뭐, 우울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내가 짝, 하고 박수를 쳤다.
“그래서, 궁금한 건 달리 없어?”
“궁금한 것··· 말입니까?”
“뭐, 내가 은퇴 후에 뭘 했냐 라던가··· 아플리아에서 키우고 있는 제자들 이야기라던가. 그런 거. 뭐든지 물어봐도 좋아.”
내 말에 갈라할이 턱을 매만졌다.
“음, 사실 하나 있긴 합니다.”
내가 말해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갈라할은 머뭇거리며 내 눈치를 살폈다. 이걸 물어봐도 될지 감이 잘 안 잡힌다는 표정이었다.
“사실 말입니다.”
“응.”
“맨 처음에 물어봐야 했긴 합니다만, 분위기가 분위기다 보니 뒤로 미룬 질문이 있습니다.”
“그래?”
“정말 뭐든지 물어봐도 됩니까?”
“물어보라니까?”
도대체 뭘 물어보려고 이렇게 사족을 붙이는 건가.
“그으···.”
“응. 뭔데?”
내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를 때쯤, 갈라할이 손을 뻗어 나를 가리켰다.
“그 몸은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아.
‘이런 시팔···.’
왜 안 물어보나 했다.
나는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려 눈가를 쓸어내렸다.
“여기에는 말이다···.”
내가 한숨을 내쉬듯 말했다.
“여기에는 정말 많은 사정이 있다···.”
한문장으로 퉁 치고 넘어가고 싶었지만, 갈라할의 미묘한 표정을 보아하니··· 쉽게 넘어가긴 어려워 보였다. 나는 한동안 갈라할에게 구구절절 사연을 털어놓아야만 했다.
2.
“과연, 그렇게 된 것이었군요.”
설명을 들은 갈라할이 고개를 끄덕였다.
라니엘은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성별과 육체의 변화에 대해 남에게 설명하는 건 철면피를 깐다 해도 부끄러운 일이었으므로.
‘뭘 저렇게 진지하게 들어.’
하물며, 상대가 농담이라곤 모르는 진지한 성격의 옛 동료라면 더더욱. 이야기하는 도중 갈라할은 종종 질문을 던졌는데, 하나같이 답하기 곤란한 것들 투성이었다.
그리고, 질문은 이야기가 끝나도 끊이질 않는다.
끝날 기미가 도무지 보이질 않는다.
“고생이 많으셨겠군요. 몸에 적응하는 건 어렵지 않으십니까? 그, 저는 잘 모르는 고충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그 예시가 쓸데없이 현실적이다.
참다못한 라니엘이 빽 소리를 지르며 손을 뻗어 갈라할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만. 그만 물어봐···!”
상대가 워낙에 진지하다 보니, 라니엘 또한 진지하게 답해야 했는데··· 썩 할만한 짓이 아니었다. 그녀로선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고민이었으니까.
걱정하는건 알겠는데, 그 정도가 과하다.
“걱정해서 묻는 건 알겠는데, 그만 물어봐. 나도 생각해본 적 없는 고민을 네가 왜 하는 거냐···?”
“친구가 대뜸 그런 모습으로 나타났는데, 걱정이 안 되는 게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그으··· 알겠으니까, 그만 물어봐.”
“당신이 그렇다면야 뭐···.”
그렇게 이야기가 일단락된 이후, 갈라할과 라니엘은 기사단장이 머무르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미리 하인켈 아저씨한테는 말해놨어. 성배를 받아왔고, 후보에게 써볼 생각이라고.”
“후보 말입니까?”
“어. 벽을 본 인물 중에서··· 그나마 정신적으로 멀쩡한 애들을 추렸다더라.”
그 수가 많지는 않다.
라니엘이 듣기로는 세 명이 넘지 않는다고 했다. 벽을 마주하고 미쳐버리거나, 육체가 망가진 이들이 태반이었으니까.
“솔직히 말하면, 초인이 나올 거란 기대는 안 한다.”
성배(??).
기적의 성유물이라곤 하나, 라니엘은 이것이 마냥 간편한 도구가 아니란 것을 알고 있다. 벽을 마주한 인물을 성배에 집어넣는다고 초인이 뿅 하고 튀어나오는 게 아니니까.
‘칼트조차 그만한 시련을 건너야 했다.’
재앙을 세 번이나 마주하고도 살아남았으며, 끝내 재앙에게 유의미한 피해를 줬던 칼트는 초인에 가장 근접해 있는 인물이었다.
이미 벽은 마주했으며, 벽을 넘어서기까지 한걸음만이 남은 상태였다. 성배가 아니었더라도 초인에 오를 수 있는 인물이란 소리다.
그런 칼트조차 성배의 시련을 통과하는 데는 네 번에 가까운 기회를 써야 했다.
“이 성배의 시련이란 게 쉽지는 않거든.”
“용사의 시련과 비슷한 겁니까?”
“본질적으론 비슷해. 하지만, 설명만 들어보면 그것보다 어려운 것 같기도 하고.”
“과연···.”
갈라할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카테론 고성에 후보가 모여들고 있다고 하셨지요?”
“그렇지. 세명 뿐이라니까··· 너나 내가 알고 있는 놈도 올 수도 있겠네.”
“그럴 확률이 높을 거라 생각합니다.”
벽을 보았다는 건 결국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인물임을 의미한다. 전장에서 이름을 날렸을 테니 일면식이 있는 사람이 올 확률이 높았다.
그런 가벼운 생각으로 라니엘은 후보들이 모여있을 카테론 고성으로 향했고···.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그곳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을 마주하게 된다.
“당신이 올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당신 말고 또 누가 오겠어요? 그 동정 마법사가 왔어도 상황이 꽤 재밌을 것 같지만···!”
창녀 같은 분홍빛의 머리칼.
이끼가 잔뜩 낀 강가의 돌을 연상 캐 하는, 탁하디탁한 녹빛의 눈동자. 초대의 대현자께서 이르기를, 근본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천박한 인물.
성녀, 사라.
제 눈앞에서 자신만만하게 웃고 있는 성녀를 마주한 라니엘의 표정이 순식간에 썩어들어갔다. 라니엘의 곁에 서 있던 갈라할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라, 라니아. 진정하···.”
황급히 갈라할이 라니엘을 붙잡으려는 순간이다.
갈라할이 라니엘의 어깨를 붙잡는 것보다, 라니엘이 손을 뻗는 게 조금 더 빨랐다.
“자, 오늘만큼은 다른··· 꺄아아아아아악!”
라니엘이 사라의 머리칼을 쥐어뜯었다.
3.
“볼일이 있어서 온 거 거든요??! 저라고 이곳에 오고 싶었는 줄 알아요? 진짜, 누가 동정 마법사의 제자 아니랄까 봐 손부터 나가고 보는 꼬라지 하곤···!”
사라가 툴툴거리며 헝클어진 제 머리칼을 빗질했다. 그 모습을 부릅뜬 눈으로 지켜보는 라니엘의 이마에는 핏줄이 도드라져 있었다.
“그럼 왜 왔는데?”
“그 성배, 이번에 사용한다면서요? 그러니까 당연히 델로힘 교단에서 감시하려고 왔죠. 그거 성물이잖아요? 그것도 고대의 성유물!”
사라가 제 가슴팍을 건드렸다.
굴곡진 로브에는 델로힘 교단을 상징하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델로힘 교단에선 성유물을 관리하고, 감독할 권리와 의무가 있어요. 그리고, 고대의 성유물이라면 당연히 저 정도 되는 인물이 직접 감독해야 하고요.”
“니가 뭔데?”
“몰라서 물어요?”
라니엘의 질문에 사라가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델로힘께 축복받았으며, 오직 델로힘만을 사랑하기로 맹세한 델로힘 교단의 성녀이지요.”
그런것 치곤 밤이면 밤마다 카일에게 사랑을 속삭이던데, 창녀 같은 새끼야.
목구멍까지 차오른 욕설을 씹어 삼키며, 라니엘은 기사단장을 흘겨봤다.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이었다. 기사단장은 살벌한 분위기에 식은땀을 흘리며 라니엘에게 서류를 건넸다.
“단순히 감독만을 위해 온건 아닐세. 오늘 이곳으로 방문하는 후보 중, 델로힘 교단에서 배출해낸 인물이 하나 있기 때문이지.”
라니엘이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델로힘 교단에서 후보가 있다고요?”
중요한 전장마다 몸을 사리고, 정작 위험할 땐 신만을 부르짖는 겁쟁이 새끼들 중에··· 벽을 본 후보가 있다고?
라니엘로선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서류를 받아든 채 라니엘은 황급히 그 내용을 살폈다. 세 명의 후보생이 있었고, 기사단장이 언급한 후보는 첫 번째 장에 소개되어 있었다.
불사(死), 카리옷.
그 이름을 확인한 라니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카리옷이란 이름이 적힌 서류를 가리키며 라니엘이 말했다.
“이 아저씨, 델로힘 교단에 배교자로 낙인 찍힌 성기사 아니에요?”
불사의 카리옷.
본래 카리옷에게 붙은건 불사라는 이명이 아니다.
라니엘이 기억하는 한 그 중년의 기사에게 붙은 건 ‘모독’이라는 이명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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