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284
〈 284화 〉 용사, 갈라할(3)
* * *
배교자, 글레투스는 제 앞을 바라본다.
죽어야 할 이가 살아있다.
몇십 번을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인간이 눈을 부릅뜬 채 자신을 향해 달려들고 있다. 그 몸은 당연하게도 만신창이다.
뜯어져 나간 한쪽 팔.
멀어버린 한쪽 눈.
부러져 절뚝거리는 다리.
셀수없이 피를 게워낸 그 얼굴은 이제 창백하다 못해 새하얗기까지 하다.
수많은 시체를 보아온 배교자다.
한때 사제로서 수많은 사람을 치료했던 성녀다.
그런 그녀가 보기에,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저 인간은 이미 죽어있다. 죽음에 발을 담근 채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죽음에서 멀어지려는 것이 아니다.’
이대로는 죽지 못하기에.
이루어야 할 것이 있기에.
그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다가오는 죽음에 저항하는 모습은 추해지기 마련이나, 그 누구도 감히 저 모습을 보고도 추하다고 말할 수는 없으리라. 피를 흩뿌리며 달려드는 인간의 모습은 섬뜩하며, 또한 숭고하다.
용사, 갈라할.
그 이름을 배교자는 곱씹는다.
수백 년 만에 나타난, 용사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인간의 이름을 배교자는 기억한다.
‘아아, 이 어찌나···.’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인가.
제 삶을 불태우는 인간은, 타인을 위해 제 삶을 내거는 이의 모습은 이다지도 찬란할 수 있는가.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구원이다.
성녀, 글레리아 벨 아르미아스.
더렵혀진 성녀는 찬란한 광채에 시선을 빼앗긴다. 자신 또한 바랐고, 이제는 바랄 수 없게 된 광채에 글레리아는 눈물을 흘린다.
서걱.
피를 게워낼 때마다, 육체의 일부가 떨어져 나갈 때마다 갈라할은 가속한다. 그 걸음은 더욱 빨라지며, 휘두르는 창날은 더욱 날카로워진다. 배교자는 갈라할에게서 옛 동료의 모습을 보았다.
벨 수 없는 것을 베기 위해서.
닿지 않는 것에 닿기 위해서.
제 모든 걸 걸었던 최초의 용사는, 제 몸의 절반이 뜯어져 나가는 그 순간까지 검을 휘둘렀다. 오른손잡이였던 그가 오른손을 잃고, 왼손으로 휘두른 최후의 일격은 끝내 왕의 육신을 베어냈다.
지금, 과거의 역사가 재현된다.
찬란한 빛이 점멸한다.
일대를 후려친 빛이 사그라들었을 때, 배교자의 앞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후두둑, 떨어지는 마수의 시체 사이로 갈라할이 창날을 내지른다.
닿지 않으리라 생각했거늘, 기어코 닿는다.
그녀를 지키는 마수들은 전부 사라졌으며, 그녀가 만들어낸 걸작은 지금 수복 중에 있다. 더이상 배교자의 수중에 남은 마수는 없다. 수천, 수만에 이르는 마수를 갈라할은 전부 베어냈다.
‘끝이구나.’
자신은 패배했다.
그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배교자는 코앞까지 다가온 창날을 바라보며 탄식한다. 인간은 승리했으며 자신은 패배했다. 그러니, 저 창에 찔러서 죽는 것이 순리에 맞는 일이리라.
배교자 자신 또한 그리되길 바란다.
찬란한 광채를 지닌 인간.
제 옛 동료를 닮은 인간. 그런 인간에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배교자의 오랜 바람 중 하나이니.
【■■을 ■■■■.】
허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늘은 배교자에게 죽음을 허락하지 않는다.
신은 그녀가 살아서 고통받기를 바란다.
영원토록 그녀의 영혼이 비명 지르기를 바란다. 그것은 계약의 대가요, 그녀가 치러야 할 업이다. 신께서 그리 바라니, 과연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나, 별은 배교자가 죽기를 바란다.
두 신의 의견이 충돌하는 가운데, 배교자가 모시는 신께선 선택하신다. 신께선 자신의 가장 강력한 전사를 이곳에 보낸다.
“■■■■, ■■.”
배교자의 입이 저절로 열린다.
그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언어를 별과 그늘은 엿듣는다. 그늘이 배교자를 대신해 대가를 지불한다.
쩌억.
허공이 찢어지고, 공기의 흐름이 뒤바뀐다.
죽음이 온다.
죽어서도 죽지 못한 심판자가 온다.
가장 찬란했던 인간이 온다.
이제는 영락해버린 최초의 검성이 온다.
끼긱, 끼기긱.
공간이 비틀리며 팔이 튀어나오려는 순간이다.
번쩍, 하고 배교자의 뒤에서 섬광이 터졌다. 느려진 시간 속에서 배교자는 뒤를 돌아보지 못한다. 그러나, 보지 않더라도 이 섬광의 정체를 배교자는 알고 있다.
과거 자신이 사용했던 기적.
별의 축복이 별에게 빚어진 영혼과 공명할 때 나타나는 가장 강력한 기적. 그 기적을 사용하는 이는 누구인가? 볼 필요도 없다.
겁에 질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리라 여긴 소녀.
그 소녀가 피를 토하며 섬광을 터뜨리고 있었다.
2.
클로에는 갈라할을 본다.
재앙앞에 숨을 쉬는 것조차 어려워서, 떨고 있는 자신과 달리··· 재앙에게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영웅이 그곳에 있다.
“쿨럭, 커흑.”
클로에는 자신이 동경했던 인물이, 피를 게워내며 죽어가는 모습을 본다. 죽어가면서도 제 몸을 불사르는 최후를 목격한다.
그 죽음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바로 자신에게 있다.
그 사실이 클로에는 고통스럽다.
자신보다 뛰어난 이가, 자신을 살리기 위해 희생한다. 이 상황에 클로에의 귓가에 맴도는 것은 일찍이 어느 용사가 들려주었던 말이다.
「용사란, 누군가의 핏물을 받아먹고 사는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 말의 뜻을 이젠 알겠다.
그때 데스텔이 지었던 고통스러운 표정의 의미를, 클로에는 지금에 와서야 이해했다. 고통스럽다. 정말로. 클로에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무력한 자신이 싫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기에, 누군가의 핏물을 삼켜야 하는 자신이 싫다. 과거부터 그랬다. 피투성이가 된 채 자신을 구해내던 벨노아의 모습이 클로에의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때와 달라진 건 없다, 아무것도.
무력한 자신을 미워하며 클로에는 천천히 팔을 들어 올린다. 재앙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보며, 영웅에게 감화된 소녀는 떨리는 손을 뻗는다.
도움이 되기 위해서.
무언가라도 하기 위해서.
【······.】
그 순간이다.
【···바라니?】
누군가 클로에의 귀에 속삭였다.
별의 목소리 같으나, 무미건조한 별의 목소리와는 다른 부드러운 인간의 목소리다. 그 목소리는 자신의 목소리와 닮아있다.
【그럼, 나를 따라 하렴.】
누군가 클로에의 팔을 붙잡는다.
그녀의 손을 감싼 채 움직인다. 그리하여 움직인 클로에의 손가락이 그리는 것은, 최초의 회로다. 수만 년 전 만들어졌던 시원(??)의 회로.
일찍이 별을 인도한 최초의 인도자가, 땅에 드리운 그림자를 불사 질렀던 기적.
그 기적이 지금 클로에의 손을 통해 펼쳐진다.
회로에서 별빛이 터져 나온다. 그것은 클로에가 알던 별빛과는 다르다. 부드럽게 파도치는 별빛과 달리, 격류와 같은 거친 별빛이다.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별빛.
그 별빛은 아직 약하다.
과거 인도자가 사용했고, 최초의 성녀 또한 사용했던 기적에 비하면 보잘것없이 작은 빛이다. 그러나, 그 빛은 분명히 배교자에게 닿았다.
태초에 작은 빛이 그림자를 몰아냈듯이.
빛은 그림자와 닮은 그늘을 몰아낸다.
공간에서 뻗어나 오던 죽음이 멈춰 선다. 그 팔이 멈춰 선 것은 찰나의 순간. 허나, 모든 싸움은 찰나의 순간에 결정되는 것이다.
“···아하.”
배교자가 웃음을 흘린다. 웃음과 함께, 그녀의 입에서 피가 한 움큼 토해져 나왔다.
콱.
부러진 성창이 배교자의 심장에 틀어박혔다.
* * *
개화한 초감각.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미래.
그 미래의 한 가닥을 갈라할은 붙잡았다.
갈라할의 창날이 배교자의 심장에 틀어박혔다. 싸움이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배교자가 피를 토한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갈라할은 창을 조금 더 깊숙한 곳까지 밀어 넣었다.
툭, 하고.
무언가 끊어지는 감각이 느껴진다.
직후, 배교자가 다시 한번 피를 토했다. 붉게 물든 그녀의 눈동자에서 피가 흐른다. 그러나, 배교자는 더없이 즐겁다는 듯 웃고 있다.
“네가 이겼구나, 아이야.”
그러니까, 라고 배교자가 말했다.
“멈춰. 가니칼트.”
갈라할은 고개를 들었다.
제 목에 겨누어진 칼날이 있다. 소리 없이 다가온 칼을 쥔 것은 죽음이다. 죽음의 칼 가니칼트가 갈라할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처음부터 왼손으로 검을 쥐고 있다.
그것이 다 죽어가는 전사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인지, 호적수를 경계하는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가니칼트는 말없이 칼을 거뒀다.
“······.”
그러나, 여전히 그는 갈라할을 바라보고 있다. 가니칼트의 시선에도 갈라할은 겁에 질리지 않는다. 이미 다가오는 죽음에 저항하고 있으므로.
“쿨럭.”
피를 토하며 갈라할이 창날을 놓았다.
그러나, 여전히 쓰러지진 않는다. 갈라할은 비틀거리며 배교자를 지나쳐 걸었다. 배교자의 뒤에는 쓰러져있는 클로에가 있다.
“구하러 왔습니다, 클로에.”
갈라할이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클로에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곤 정신을 잃은 클로에를 등에 업은 채 걷기 시작한다. 비틀거리는 걸음은 불안정하다.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피가 쏟아진다.
코앞까지 다가온 죽음을 거부하며, 갈라할은 걷는다. 자신이 달려온 만큼의 거리를 계속해서 걷는다. 멀어지는 그를 바라보는 이가 둘 있다.
“이름은.”
최초의 용사가 묻는다.
최초의 성녀는 답했다.
“갈라할.”
그녀가 덧붙였다.
“용사야.”
피를 흘리면서도 그녀는 웃고 있다.
마치, 이 상황이 기뻐서 어쩔 수가 없다는 듯이.
그녀는 이 싸움에서 자신이 잃은 것을 떠올려본다.
많다. 너무나도 많다.
마수를 전부 잃었다.
그녀가 자랑하던 갑각룡도, 수백 년간 모아온 마수의 군세도 이제는 남아있지 않다. 그늘은 더이상 자신 대신 대가를 치르지 않을 것이며, 자신의 죽음을 방관할 수밖에 없으리라.
“하, 아하.”
정말로 코앞까지 다가온 죽음에 배교자는 미소 짓는다.
망가진 웃음이 그녀의 잇새를 비집고 계속해서 흘러나온다. 피 흘리듯 배교자는 웃었다.
그런 그녀를 죽음의 칼이 한 팔로 들어 올렸다.
가니칼트는 멀어지는 갈라할의 등을 바라본다.
최초의 초인은 갈라할이 이룬 경지를 한눈에 알아본다. 수백년만에 만난, 진정한 의미의 초인을 바라보며 가니칼트는 조용히 말했다.
“벽을 베었군.”
인류 역사상 오직 자신만이 도달했던 경지.
그와 같은 경지를 이룬 자신의 동류를 향해 가니칼트는 경의를 표한다.
검사로서, 그리고 한때나마 용사였던 이로서.
3.
갈라할은 걷고 또 걸었다.
잃어버렸던 감각이 하나씩 돌아온다.
가장 먼저 돌아온 것은 통각이다. 몸이 무너져 내리는 통증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 갈라할은 이를 악문 채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다시 한 걸음.
멀게만 느껴지는 통로를 향해 걸었다.
가벼웠던 몸은 이젠 무겁다. 너무나도 무거워서,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숨을 골라야 했다.
‘아직은 안된다.’
쓰러질 수 없기에 갈라할은 고통을 견디며 걷는다. 이제는 정말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쓰러질 수 없기에 일어섰다.』
우습게도, 지금 이 순간 떠오르는 것은 어릴 적 읽었던 영웅담이다.
『용사는 적을 쓰러트리는 존재. 재앙을 베는 검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허나, 내 생각은 달랐다.』
구원의 용사 가뉘르.
수많은 인간을살렸던 그는 말했다.
『사람을 구하는 것.』
『재앙에게서 인간을 지키는 것.』
『구원이야말로 용사가 추구해야 할 가치다.』
죽이기 위해서가 아닌, 구하기 위해서 싸워야 한다. 그 말을 곱씹으며 갈라할은 살아왔다. 남들보다 약한 자신이라도, 누군가를 구하는 용사는 될 수 있으리라고 믿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리라고.
별이 이런 자신에게 힘을 준 이유가 있으리라고, 믿고 또 믿으며 갈라할은 살아왔다.
그 삶에 가치는 있었는가.
그 삶 끝에, 자신은 답을 찾아냈는가.
‘답은 얻었다.’
가치는 분명히 있었다.
그간 걸어온 길이, 그가 견뎌온 삶이 무너지는 갈라할의 육신을 지탱한다. 끝나가는 갈라할의 시간에 1초를 더한다.
1초를 더하고 1초를 더해서.
갈라할은 기어코 문 앞에 도착한다.
문 앞에는 라니엘이 서 있다. 갈라할과 눈을 마주친 순간, 라니엘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라니엘.”
갈라할이 웃었다.
“약속, 지켰습니다.”
구했습니다.
그리 중얼거리며 갈라할이 클로에를 문밖에 내려놓았다. 그 순간 왈칵, 하고 갈라할이 피를 쏟았다. 그 눈동자가 흐릿해진다.
“구해 냈, 습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갈라할의 몸이 기울어졌다.
쓰러지는 갈라할을 라니엘이 받아냈다. 그 몸은 끔찍하리만치 서늘했으며, 또한 가벼웠다.
너무나도 가벼워서.
너무나도 서늘해서.
도저히 살아있는 인간의 몸이라 여겨지지 않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