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3
〈 3화 〉 뭐야 돌려줘요(2)
* * *
내게는 서큐버스 퀸, 레페.
이 박쥐 년을 사냥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녀가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마인이기 때문에? 아니다. 그렇게 따지면 세상에 찢어 죽여야 할 개자식들이 얼마나 많은데.
흐응, 당신이 바로 그거구나? 용사 꽁무니만 쫓아다니는 소문이 자자한 동정 마법사?
나를 놀렸기 때문···도 아니다.
이거, 예쁘네.
내가 가져간다?
바로, 그녀가 내 물건에 손을 댔기 때문이다.
사라와 레미아가 날뛰는 와중, 저 박쥐 년이 내게서 훔쳐 갔던 것. 아깝긴 하지만, 서큐버스 퀸과 다시 만날 일이 없을 테니 반쯤 잊어먹고 있던 물건인데···.
‘박쥐 새끼가 내 앞에 제 발로 나타났다면, 이야기가 좀 달라지지.’
나는 무릎 꿇은 레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내놔.”
“당,당신 뭐야.”
아, 로브를 쓰고 있었구나.
나는 로브를 걷었다. 드러난 내 얼굴을 보더니 레페는 숨을 헛삼켰다.
“아, 그 동정 마법…!”
“흐응.”
나는 왼손을 보란 듯이 들어 올렸다.
오른손에 스톡된 주문을 다 쓰긴 했지만, 아직 스톡된 주문은 많았다. 내 손끝에서 일렁이는 마나를 확인한 레페는 입술을 꾸욱 다물었다.
“···가 아니라, 라니엘 맞지?”
“알아보네. 못 알아봤음 알아볼 때까지 팰 생각이었는데.”
“여자를 패? 용사 파티가 그래도 돼?”
“용사 파티한테 맞아 뒤질 뻔했으면서 새삼.”
굳이 용사 파티에서 나왔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딱히 할 필요를 못 느꼈으니까.
“다시 말한다. 내놔.”
“뭐, 뭘.”
나는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때 네가 나한테서 훔쳐 갔던 휘장 있잖아. 그거 내놓으라고.”
“아, 그 낡은 휘장?”
“낡은 게 아니라 세월을 탄 거지.”
잿빛 마탑의 마법사가 가지는 휘장.
그 난리통 속에서 이 박쥐 년이 내게서 훔쳐 갔던 것.
솔직히 말하면, 그 휘장은 별 쓸모있는 물건은 아니었다. 그게 있다고 잿빛 마탑에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다만, 쓸모가 없다 하여 그것에 의미가 없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었다.
그 휘장, 스승님이 내게 달아준 휘장이었거든.
어디 가서 무시당하고 살지 말라며, 직접 달아주신 휘장.
어깨를 펴라, 라니엘.
출신이 비루하면 어떠하냐? 마법사가 실력만 좋으면 됐지. 당당히 살아라, 라니엘.
그건 내게 있어선 소중한 물건이었다.
“···당신 설마, 내가 그걸 아직까지 갖고 있을 거라 생각해?”
“갖고 있는 편이 좋을 텐데.”
뚝, 뚜둑.
거칠게 손목을 풀자 레페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찾, 찾아볼게. 그러니까 사슬 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구속을 전부 풀어준 건 아니고, 한쪽 손만을 풀어줬다.
“허튼짓하면 뒤진다.”
“나, 나는 성속성 마법 아니면 안 죽거든? 당신 성속성 마법 못 쓰잖아.”
“마나를 쏟아부으면 못할 건 없지.”
“·····.”
레페는 입을 다물고 허공에 손을 넣어 뒤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이윽고 그녀는 낡은 휘장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이, 이거 맞지?”
“맞네.”
나는 손바닥 위에 올려진 휘장을 이리저리 살펴봤다. 그때 그 모습 그대로였다. 어디 달아본 적도 없는 것 같은데.
“근데, 너 이건 왜 훔쳐 갔던 거냐?”
“···줄 알았지.”
“뭐?”
“그 휘장 있으면 마탑 들어갈 수 있을 줄 알았다구.”
니가 마탑에 들어가서 뭐 하게.
그런 눈빛으로 레페를 바라보자, 그녀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마탑에는 동정 마법사들이 많다고 들었단 말야.”
“·····.”
“뭐.”
“···미친년.”
“서큐버스 답다고 해줄래? 미친년이라니, 말이 좀 심한 거 아냐?”
고작 그딴 이유로 이 휘장을 훔쳐 갔었다니.
새어 나오는 한숨을 참으며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야, 레페. 너, 이 도시에 머문 지 얼마나 됐냐?”
“…두 달 정도 됐어.”
“뭐? 근데 왜 현상수배가 안 떠.”
생각해보면, 이상한 점이 좀 있었다.
이 근방에서 유명하신 여성분입니다.
분명, 주점 주인장이 그랬었다. 이 근방에서 유명한 여자라고. 그런 말이 나올 정도면 한 모습으로 오랫동안 다녔다는 이야기였는데···.
그럼 소문이 안날래야 안 날 수가 없을 텐데?
레페가 작정하고 정기를 빨아댔다면 길가에 정기 쫙 빨린 미라들이 굴러다닐거다. 그리고, 그걸 보고도 경비병들이 서큐버스 퀸을 떠올리지 못했을리가 없다.
게다가, 카디낙은 이 박쥐년한테 피 좀 본적이 있는 도시였다.미라들이 굴러다니는 꼴을 봤다면 영주가 당장 개거품을 물며 수배령을 내렸을텐데.
‘근데, 최근에 받은 수배서는 없었단 말이지.’
용사파티에 정기적으로 발송되는 수배서.
거기에 레페의 얼굴은 없었던걸로 기억한다.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니, 레페가 답했다.
“그거야 자중했으니까.”
“뭐?”
“한 명한테 죽을 때까지 안 빨고, 여러 명 데려다가 조금씩 나눠 빨았어. 생각해보니까 죽여버리면 아깝더라고. 그리고, 또 너네 같은 괴물한테 쫓기기 싫었단 말야···.”
과연.
“너도 머리를 쓰긴 하는구나…?”
“당신, 그거 진짜 실례인 거 알아?”
뭐 아무튼.
나는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이제 너를 어찌해야 할까···.”
“돌, 돌려줬잖아! 휘장 돌려줬잖아! 자중하면서 살고 있단 말야! 그냥 풀어주라고!”
“내가 왜?”
뚝,뚜둑. 손목을 풀며 레페에게 다가간다.
사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죽일 생각은 없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죽일 수 없다’가 맞는 표현이겠지. 서큐버스 퀸은 본인의 강함과 별개로 존재의 격 자체는 높았으니까.
‘사라 그년이 있음 몰라도, 혼자는 무리지.’
물론, 마나를 전부 소모하면 잡을 수는 있다. 잡을 수 있긴 한데, 그랬다간 마나가 다 찰 때까지 요양 생활을 보내야 할 것이다.
‘하루빨리 왕도로 돌아가고 싶은데, 내가 뭣 하러.’
용사 파티도 때려쳤겠다, 그런 가성비도 안 나오는 짓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허튼짓 못 하게 적당히 마나만 뽑아 먹고 경비병들한테 넘겨주면 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레페에게 손을 뻗었다.
“으,으읏!”
마나 드레인은 가벼운 주문은 아니었다.
2중으로 이루어진 주문이었기에 손끝이 아닌 손가락 마디에 스톡해둔 주문이었다. 나는 손가락 마디가 레페의 이마에 닿게끔, 그녀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이, 이거 놔!”
“강타 한방 더 꽂기 전에 가만있어라.”
그렇게 마나를 빨려는 순간이었다.
레페! 거기 있나!
건물의 바깥에서 쩌렁쩌렁 목소리가 울렸다.
이윽고 쿵, 쿠웅 하고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나더니, 이윽고 콰직! 하고 쪼개진 문이 방 안으로 날라 들어왔다.
“레페!”
“다,다이크!”
내게 머리채를 붙잡힌 레페는 울상을 지으며 문을 박살 내고 들어온 남자를 바라봤다.
전신을 가린 검은 갑주.
한 손에 들린 시꺼먼 대검.
얼추 보면 중장갑의 기사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테지만, 내 눈에는 기사의 몸 위로 피어오르는 마기(??)가 보였다. 레페와 같은 마인이란 증거였다.
다크 나이트.
아마, 그런식으로 불리는 마인이겠지.
“무사하나, 레페! 분명 도움을 구하는 신호가···.”
흑기사는 말을 하다 말고 방안을 살폈다.
나 또한 흑기사의 시선을 따라 방안을 살폈다.
용도를 알 수 없는 막대기.
누군갈 묶는 용도로 쓰일법한 밧줄.
그리고 가죽 채찍.
음.
‘이 미친년이…?’
이 박쥐 년이 남자들과 즐기기 위해 준비해둔 도구가 방안에 어지러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런 용도’로 밖에 안 보이는 물품들.
그리고 서큐버스 퀸의 머리채를 붙잡고 있는 나.
‘이건 누가 보더라도···.’
나는 삐걱거리는 목을 돌려 흑기사를 바라봤다.
“·····.”
흑기사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아니, 야. 잠깐만. 지금 무슨 생각 하는진 아는데, 그거 오해···.”
“이 추악한 인간 같으니라고오오오!”
아잇 싯팔.
2.
서큐버스 퀸, 레페.
그녀는 마법사에 대해 생각한다.
마법사란 분명 전사의 뒤에서 지원을 하는 존재가 아니었던가? 전사가 시간을 벌어주는 동안 쌓아올린 주문으로, 적을 섬멸하는 존재들.
적어도, 레페가 알고있는 마법사란 그런 존재들이었다.
혼자서 강하기 보단 다른 이들과 함께 있을때 ‘성가셔’지는 존재들. 레페는 여태껏 마법사를 그런 존재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저게 뭐야···.”
저건 도대체 뭐란 말인가.
레페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자신을 속박하던 사슬은 진작에 사라졌지만, 레페는 단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했다.
쿠웅!
바닥이 울린다.
콰직!
무언가를 우그러트리는 소리가 들린다.
“커헉!”
이윽고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흑기사가 바닥을 구른다. 그가 자랑하던 흑갑주에는 이미 금이 가 있었다.
“어우, 야. 그만 좀 날뗘라. 먼지 날리잖아.”
이윽고 반쯤 무너진 건물 사이로, 누군가 걸어 나온다. 그는 자신의 로브에 묻은 먼지를 툭툭, 손등으로 가볍게 털어 낸다.
“딸꾹.”
그 모습을 바라보며 레페는 숨을 헛삼킨다.
먼지를 해치고 나온 남자. 라니엘.
레페가 기억하기를, 그는 용사 파티의 일원으로 알려진 마법사였다.무투가나 검사가 아닌, 마법사였다.
‘저게? 어딜봐서?’
지팡이도 없이 맨손으로 다크 나이트를 때려잡는게, 마법사라고?
레페는 도저히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믿던 말던 라니엘은 움직인다. 한걸음, 한걸음 레페에게 다가온다.
“·····.”
그리고, 그녀의 앞에 멈춰선다.
“야.”
“으,으응?”
“너 뭐 숨기는 거 있지.”
그의 푸른 눈동자가 레페를 향한다. 아래를 내려다 보는듯한 그 시선에, 레페의 어깨가 떨린다.
“니가 정기 빨고 노는데, 왜 저런 흑기사가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냐? 딱 보니까 군단장급은 되는 거 같은데···.”
흐음, 하고 그가 턱을 매만진다.
“아무리 마왕군 수가 많다 해도, 군단장급을 이렇게 놀게 냅두진 않을 거 같단 말이지?”
“쟤, 쟤가 나 좋아하는 거야! 그래서 미행···.”
레페는 변명을 주워섬긴다.
그러나, 그녀가 말을 끝맺는 것보다 먼저 그녀의 머리 위에 붉은 문양이 떠오른다.
중급 마법, 거짓 간파(Detection).
주문이 걸린 대상의 말이 진실이라면 푸른 문양을, 거짓이라면 붉은 문양을 띄우는 마법.
레페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린다.
라니엘의 입가에는 비웃음이 흐른다.
“지랄.”
그가 손을 뻗는다.
뻗어서 레페의 머리를 움켜쥔다.
주문 강화(Spellreinforce).
강타(Smite).
쿵! 머리를 울리는 충격에 레페는 바닥에 고꾸라졌다. 코가 시큰했다. 입안이 비릿했다. 얼굴을 맞댄 바닥에 핏줄기가 흘렀다.
“저놈 조지고 와서 마저 물을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누···구 마음, 대로.”
부서진 침대와 테이블 사이로 흑기사가 힘겹게 몸을 일으킨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라니엘이 툭, 내뱉는다.
“누구 맘대로긴. 내 맘대로지”
그가 소매를 걷어붙인다.
라니엘의 바로 옆에 있던 레페는 문득 고개를 들었다. 흐릿흐릿한 시야로, 드러난 그의 팔뚝을 바라봤다.
단련된 전사들의 것과 같은, 근육질의 팔뚝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한 것이 그 팔뚝을 가득 메우고 있다.
스톡(Stock)된 주문들.
그것도 수십 가지가 넘는 주문이 그의 팔뚝에서 해방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레페는 그 주문이 향하는 곳을 바라본다.
반파된 갑옷, 절뚝거리는 다리.
서 있는 게 고작인 흑기사 다이크의 모습이 보인다.
“아···.”
승산은, 없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