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4
〈 4화 〉 뭐야 돌려줘요(3)
* * *
“커헉···.”
쿠웅, 하는 소리와 함께 흑기사 다이크의 거구가 고꾸라진다. 피를 한 움큼 토해낸 다이크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가 자랑하던 흑색 갑주는 움푹 패여 있다. 그의 대검은 반으로 부러진 채 바닥에 꽂혀 있다. 그것은 곧 다이크의 완전한 패배를 의미했다.
“아···.”
레페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단 한합. 이 모든 게 라니엘이 팔뚝의 주문을 해방하고, 단 한합만에 이루어진 결과였다.
그가 팔뚝에 있는 주문을 전부 해방했냐고?
아니, 차라리 그랬다면 억울하지라도 않을 것이다.
레페는 똑똑히 보았다.
라니엘이 발동시킨 주문은 고작 세 개에 불과했다.
이중 주문(DoubleSpell).
주문 강화(Spellreinforce).
분쇄(Smash).
세 개의 주문.
두 개의 주문으로 강화시킨 하나의 주문.
첫 번째 타격에 다이크가 치켜든 검이 반으로 쪼개졌다. 이어진 두 번째 타격이 갑주를 뭉개고, 다이크의 맨살에 맞닿았다. 그리고, 그걸로 끝이었다.
화려한 마법도, 기교도 필요 없었다.
충격에 떠밀린 다이크는 벽에 처박혔고, 그 뒤론 미동도 하지 않는다. 살아있는지조차 미지수다.
꼴깍.
레페는 마른침을 삼키며 천천히 시선을 돌린다.
그곳에는 라니엘이 서 있다. 지친 기색도 없는 그 괴물이, 레페를 바라보고 있다.
“·····.”
가늘게 뜬 푸른 눈동자.
그 눈동자를 마주하며, 레페는 직감한다.
더이상 도망칠 곳이 없음을.
자신이 정말로 죽을 수도 있음을.
터벅, 터벅.
가볍게 땅을 울리는 발걸음 소리에 맞춰 레페의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린다. 이빨을 딱딱, 맞부딪치며 레페는 이 자리를 벗어날 방법을 궁리한다.
‘구슬.’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구슬’이다.
총사령관 ‘불사의 기사’가 레페에게 맡긴 물건.
네가 빨아들인 정기를 그 안에 담아라.
그 안에 담긴 것이 무엇인지 의문을 품지 마라. 천박한 네년이 할 것이라곤, 그저 그 구슬 안에 정기를 담는 것 뿐이다.
구슬 안에 무엇이 담긴 지는 레페 역시 모른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구슬에는 레페가 지난 수년간 모은 정기가 축적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서큐버스에게 있어 정기란 곧 마나를 의미한다.
‘어쩌면···.’
수십 년 분의 마나라면, 저 괴물 같은 마법사를 멈춰 세울 수 있지 않을까. 그리 생각하며 레페는 허공에 손을 집어넣는다. 가장 깊은 곳에 숨겨둔 구슬을 움켜쥔다.
구슬 내부서 요동치는 암기(??).
레페는 구슬을 콱, 움켜쥔다.
쩌적.
구슬에 금이 간다. 갈라진 구슬의 틈새 사이로 레페는 정기를 빨아들인다. 마나가 채워짐을 느낀다.
“아?”
그러나, 그것도 잠시.
“꺄,꺄아아아아악!”
구슬에서 새어 나온 검은 안개가, 레페를 집어삼킨다.
* * *
‘검은 안개?’
레페를 집어삼킨 검은 안개의 모습에, 라니엘은 눈을 가늘게 떴다. 처음 보는 형태의 주문이었다.
‘안개를 까는 마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저 안개는 무언가 이상했다.
시야를 가리거나, 유독성 물질을 품은 독 안개를 까는 종류의 주문과 달리 저 안개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어디서 본 것 같긴 한데···.’
정확히 어디서 봤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라니엘은 한숨을 내쉬며 왼팔을 앞으로 뻗었다.
“일단 어떻게든 해야겠지.”
중지와 엄지의 끝마디에 스톡해둔 주문.
주문 포착(SpellCapture).
강타(Smite).
라니엘은 손가락을 튕기며 주문과 주문을 마찰시킨다. 두 개의 주문이 하나로 합쳐져 2중의 주문이 된다.
주문 강타(SpellSmite).
딱, 소리를 내며 튕긴 손가락에서 잿빛 마나가 퍼져나간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잿빛 마나는 대상을 찾지 못 한 채 허공에 흩어진다.
라니엘은 눈살을 찌푸렸다.
‘주문이 아니라고?’
그러는 와중에도 검은 안개는 꿀렁거리며 레페의 몸을 집어삼킨다. 그녀의 뒤집힌 눈동자 틈새로, 살짝 벌린 입술 사이로 검은 안개가 새어 나온다.
“·····.”
검은 안개가 자욱하게 낀다. 안개는 위로 올라오지 않았다. 바닥을 기어 다닐 뿐이다. 그 모습이 꼭 벌레를 보는 것 같았다. 라니엘은 그 안개의 시작을 쫓는다.
안개의 시작점엔 레페가 있다.
안개에 완전히 집어 삼켜진 그녀는 실 끊긴 인형처럼 뚝,뚜둑 소리를 내며 팔을 들어 올린다. 그녀의 팔을 따라 안개가 피어오른다.
소름 끼치는 모습이었다.
“환장하겠네 진짜.”
라니엘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상황인진 몰라도, 썩 좋은 상황이 아님은 분명했다.
“■■.”
안개에 삼켜진 레페는 알 수 없는 언어를 중얼거린다. 얼핏 들으면 주문언어 같기도 하지만, 그 결이 달랐다.
“■■■■(■■■■■■■■).”
“뭐라 씨부리는거야. 미친년이.”
라니엘은 자세를 다 잡는다. 뭔지는 몰라도, 저 주문을 끝까지 외우게 두면 안될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다가가는 건 위험하다.’
검은 안개가 무엇인지 모르는 마당에, 무턱대고 달려드는 건 미친 짓이다. 어차피 다가갈 필요도 없다. 낭비를 줄이기 위해 근접전을 벌이는 것 뿐, 라니엘은 딱히 전사가 아니었으니까.
라니엘이 양팔을 앞으로 쫙 뻗는다.
그의 양 팔뚝에 스톡(Stock)된 주문들이 빛을 발한다.
저것이 무엇이던 간, 대응할만한 주문은 차고 넘친다. 하나로 안된다면 열로, 열이 안된다면 백 개의 주문으로 상대하면 그만이다.
‘주문 강···.’
그렇게 라니엘이 주문을 해방하려던 찰나였다.
“쿨럭.”
마른 기침 소리.
라니엘은 심장을 움켜쥔 채 무릎 꿇었다.
후두둑.
그의 입가에서 피가 한 움큼 쏟아진다. 쏟아진 피는 검붉은 색이다. 덩어리가 진 핏물. 그 순간, 라니엘은 깨닫는다.
‘이런 시발.’
저 검은 안개.
‘저 미친년, 뭘 들고 다니는 거야.’
저 흑무(??)의 정체가 무엇인지 라니엘은 기억해낸다. 떠올리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본디 저것은 저런 안개의 형태가 아니었으니까.
3년전, 검은 들판에서 마주했던 괴물.
결정적으로 카일과 틀어지게 된 계기.
저주의 집합체, 마왕(?王).
저 검은 안개는, 그 괴물의 육신과 닮아 있었다. 형태가 다름에도 라니엘이 그리 확신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쿨럭, 컥. 커흡···.”
라니엘의 심장에 고인 저주.
마왕이 남긴 그것이, 저 안개와 반응하고 있었으니까. 심장이 옥죄이고 눈에 핏발이 선다. 피가 들끓는 것 같다.
“후욱, 후우···.”
라니엘은 가쁜 숨을 내쉬며 눈에 힘을 줬다.
“■■···.”
레페의 주문은 완성을 코앞에 뒀다.
그러나, 레페의 몸 또한 성치 않다. 끽해봐야 한번. 지금 외우고 있는 주문이 끝나면 더이상 움직이지 못할 테지.
‘한번.’
한 번만 막으면 된다.
라니엘은 혀끝을 씹으며 정신을 붙잡았다.
“■.”
이윽고 완성된 주문이 레페의 손에서, 안개를 타고 퍼져 나온다. 핏발이 선 눈으로 라니엘은 그것을 노려본다. 마나에 담긴 주문을 읽는다.
육체 변이.
정신 오염.
그리고 알 수 없는 것 하나.
당연하게도, 이를 대비할만한 주문은 차고 넘친다. 당장 스톡(Stock)된 주문만 해도 수십 개다. 그러나, 문제는 저 검은 안개다.
저 안개는 일반적인 주문으로 대응할 수 없다.
모든 주문은 흑무(??) 앞에 그 빛을 잃는다.
이미 한차례 경험한 일이었다.
라니엘은 쓸데없이 주문을 낭비하지 않는다.
“커흡, 퉷.”
라니엘은 입안에 뭉친 핏덩이를 내뱉는다. 입가에 묻은 피를 훔치며 팔을 뻗는다. 그리곤, 그대로 양 손바닥을 맞부딪쳤다.
짝.
손가락 끝, 손가락 마디, 손바닥에 새겨진 주문들이 차례로 충돌한다. 마찰한다. 잿빛 마나가 들끓는다.
‘내가, 3년을 뻘로 보낸 건 아니지.’
3년 전, 마왕과 마주쳤을 때.
라니엘은 자신의 삶을 부정 당했다. 처참하게 짓밟혔다. 그가 쌓아 올린 마법은 저주 앞에 무너졌다. 그가 자랑하는 주문들은 마왕이 두른 어둠에 흠 하나 내지 못했다.
그 패배로부터 3년이다.
누군가는 좌절로 낭비했을 3년이지만, 라니엘에겐 이를 갈며 답을 찾아낸 3년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답을 보일 차례였다.
쩌억.
맞부딪친 손바닥에서 피어오른 잿빛 마나가, 스톡(Stock)된 주문들을 모조리 집어삼킨다. 검은 안개를 흉내 내듯, 살아 움직인다.
“주문은 주문으로.”
라니엘은 창백한 얼굴로 미소짓는다.
“저주는, 저주로.”
Cursed Mana.
검은 안개와 잿빛 마나가 뒤섞인다. 잿빛 마나는 온전치 않다. 잿빛이 놓친 안개가 라니엘의 몸에 스며든다. 그러나, 놓친 것보다 집어 삼키는 것이 더 많다.
쩌억.
잿빛은 바닥에 깔린 안개를 게걸스레 먹어치운다. 덩어리진 안개는 할퀴어 뜯어낸다. 먹잇감을 물어뜯는 맹수처럼 재는 안개를 탐한다.
깨진 창문 너머로 달빛이 들어온다.
푸르른 달빛 아래, 재가 어둠을 물어뜯는다.
2.
깜빡.
“윽!”
눈을 뜨자마자 느껴지는 건, 온몸이 타들어 가는듯한 고통이다. 레페는 눈살을 찌푸리며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팔은 부러져 있다.
피부는 까맣게 그을려 있다.
제대로 숨을 쉬는 것 조차 어려웠다.
‘뭐…야 도대체?’
기억이 온전치 않았다. 정기가 담긴 구슬을 깼던 것 까진 기억한다. 그러나, 그다음의 기억이 없었다.
“흐,흐억!”
누군가의 목소리에, 레페는 고개를 돌린다.
그곳에선 언제 정신을 차렸는지,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떨고 있는 흑기사 다이크가 있다.
“뭐야, 다이크. 너 무사했어?”
“히,히익!”
무사한 것 같진 않았다.
그는 마치 괴물을 보는듯한 눈동자로 무언가를 보고 있다. 레페는 그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다.
“·····.”
그리곤, 레페는 숨을 헛삼켰다.
잿빛의 무언가가 레페를 노려보고 있다.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정말로 ‘무언가’란 단어로밖에 설명이 안 되는 것.
그것이 레페의 움직임을 따라 움직인다.
레페는 뒤늦게 건물의 안을 살폈다. 마치 거대한 짐승이 할퀴고 지나간 것 같은 모양새다. 무너지지 않은 게 용한 수준이었다.
꼴깍.
레페는 마른 침을 삼키며, 이런 참상을 만들어냈을 남자의 모습을 찾는다. 머지않아 남자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핏기가 가신 창백한 얼굴.
핏물에 젖은 로브.
당장 죽어도 이상할 것 없는 모습으로, 벽에 기대어 앉은 라니엘의 모습에 레페는 눈을 깜빡였다.
‘···도대체 뭐야?’
알 수 없었다.
‘죽은…건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고 마무리를 하자니, 그 길목을 가로막은 잿빛이 신경 쓰인다. 가까이 가면 안될 것 같은 꺼림칙함을 느낀다.
“다이크.”
“히,히익!”
“지랄 말고 일어나봐. 이 틈에 도망가게.”
잿빛은 레페를 노려볼 뿐, 레페를 쫓지는 않는다. 레페는 다이크를 깨워 등에 들쳐멨다.
‘뭔진 모르겠지만···.’
레페는 더이상 그곳에 있으면 안될 것 같다고 느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