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331
〈 331화 〉 집결(4)
* * *
“괜찮으십니까, 선배님?”
괜찮아 보이냐, 이게?
그렇게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힘들다. 라니엘은 헛웃음을 흘리며 칼트의 부축을 받고 일어섰다.
바닥까지 끌어다 쓴 덕에 마나는 모조리 탈진됐고, 숨을 내쉴 때마다 들썩이는 가슴팍이 욱신거린다. 대마법사가 펼치는 최고위 주문을 맨몸으로 뚫어낸 탓에 성한 곳이 한 군데도 없다.
‘게다가 한쪽 눈은···.’
실명 직전까지 갔다.
회복이야 되겠지만, 다시는 와쳐(Watcher)와 같은 특이 체질과의 감각 공유는 불가능할 것이다. 애당초 미친 짓이었다. 자칫했다간 그대로 폐인이 될지도 모르는 미친 짓.
‘와쳐만이 견딜 수 있게 설계된 시야를 짧게나마 공유했으니, 뭐···.’
어느정도 각오한 부분이다.
머리가 지끈거려 라니엘은 눈살을 찌푸렸다. 어디가 됐든 좋으니 당장에라도 드러눕고 싶지만···.
‘그래도, 봐야지.’
아직 두 눈으로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
반드시 보아야 할 게 있었다.
라니엘은 칼트의 부축을 받으며 땅을 디디고 일어섰다. 그리곤 툭, 하고 칼트의 등을 떠밀었다.
“······.”
칼트가 말없이 라니엘을 바라본다.
라니엘은 무어라 한 마디 해주려다가, 목이 메 켁켁 마른기침을 내뱉었다. 결국 라니엘은 입 모양으로 칼트에게 말을 전했다.
가봐, 새끼야.
칼트가 고개를 끄덕이곤 앞으로 걸어간다.
라니엘은 그 뒷모습을 본다.
오래전부터 자신을 보좌해왔던 녀석이다. 자신과 함께 숱한 시련들을 마주한 끝에 초인의 자리에 오른 녀석. 칼트의 손에 쥐어진 쿤텔의 검(?)이 어둠 속에서 은백색으로 빛났다.
그 뒷모습이 참 든든하게도 느껴진다.
성장한 것은 칼트 뿐만이 아니다.
가장 앞에선 칼트를 중심으로, 각자의 방식으로 광인을 적대하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 자신이 가르친 아이들의 뒷모습을 라니엘은 바라본다.
라크, 벨노아, 클로에, 아일라.
그리고 쪼개진천장에서 사역마를 타고 내려온 레스티 또한 그 행렬에 함께한다. 고작 1년 사이에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이들이다.
광인이 예측하지 못한 변수.
라니엘이 만들어 낸 변수.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라니엘은 웃음을 흘린다. 자신의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에. 어쩌면 죽는 그날까지도 혼자일 거라 생각했던 이 험난한 길의 초입에 다른 이들이 발을 디뎠음에.
참 잘 가르쳤어.
그런 생각을 하며 라니엘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이미 와쳐(Watcher)와의 감각 공유는 끊긴 지 오래다. 꿰뚫어보고, 분석하여 이해하는 신의 눈동자는 라니엘의 곁을 떠났다. 하지만, 그런 눈동자가 없더라도 라니엘은 확신할 수 있었다.
자신이 길러 낸 제자들의 승리를.
근거 없는 직감이지만, 이 직감을 라니엘은 확신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라니엘의 눈동자에 그들의 뒷모습은 너무나도 빛나 보였으니까.
신성(??).
새로 태어난 별들이, 수백 년의 세월을 살아온 광인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2.
광인은 눈살을 찌푸렸다.
아직 어린놈들이다. 초인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으며, 수백 년 전 과거에 자신을 막아섰던 영웅들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이들이다. 특출난 점이 있다 한들 고작 그뿐.
아무리 잿빛에게 당했더라도.
잿빛 화염에 몸이 타들어 가고 있더라도.
자신이 이길 수 있다. 짓밟을 수 있다.
광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애당초 저들이 자신에게 위험이 될 거란 계산은, 그 싸움에 잿빛 마법사가 함께한다는 전제하에 내놓은 결론이었으니까.
쩌어억.
광인이 양 손바닥을 맞부딪쳤다.
손바닥과 손바닥 사이로 그림자가 질척하게 늘어졌다. 동시에 하늘 위로 수십의 회로가 전개된다. 그 중 태반이 광인의 마나에 침투한 잿빛에 의해 불타 사라지지만···.
그래도, 전부 사라지진 않았다.
이정도면 충분하다. 장식으로 대마법사란 칭호를 받은 것이 아니었으므로, 광인은 남은 회로를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활용한다.
“일어나라.”
광인의 부름에 그림자가 출렁인다.
최상층에서 뚫린 구멍을 향해 그림자가 폭포처럼 쏟아지고, 쏟아지는 그림자가 창칼의 격류로 뒤바뀐다. 그림자로 만들어진 창칼의 파도가 신성들을 향해 덮쳐든다.
그리고, 라크와 칼트가 움직인다.
쿠웅.
동시에, 정확하게 같은 순간 둘은 땅바닥을 내려찍는다. 모든 검(?)은 한걸음에서부터 시작한다. 한걸음 강하게 내려찍으며 라크와 칼트는 같은 자세를 취한다.
갈라트릭 류 제 1식, 초견살.
개(?) 그레이스 류 제 1식, 초견살.
뿌리가 같은 기술이 동시에 섬광을 뿜는다. 손가락에서 뿌득, 소리를 내며 라크가 최초의 성검을 휘두른다. 칼트는 쿤텔에게 물려받은 검을 휘두른다. 두 개의 기술이 겹쳐진다.
촤아아아아아악!
밀려들던 창칼의 파도가 갈라진다. 구정물이 흩날린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길을 따라 라크와 칼트가 달리기 시작한다.
꿈틀.
광인의 그림자가 출렁였다.
광인은 계속해서 회로를 짜내며 응전한다. 구정물에서 가시가 솟구치고, 지형이 뒤바뀌며 완성된 회로에서 특대의 주문이 섬광을 뿜는다.
고위 주문, 불지옥.
그림자가 자글자글 들끓기 시작한다.
일대의 온도가 한순간에 치솟는다. 그러나, 라크와 칼트는 질주를 멈추지 않는다. 뒤바뀐 지형을 박차며 달릴 뿐이다. 도대체 무엇을 믿고?
그들이 믿는 것이 무엇인가.
광인이 그것을 깨닫는 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광인의 마나의 지배를 받던 공간에 일그러짐이 발생한다.
별의 아이, 스텔라(Stella).
식은땀을 흘리며 아일라가 이 공간의 주도권을 빼앗아오고 있다. 완성되려던 마나가 흩어진다. 광인은 눈살을 찌푸린 채 그림자를 움직여보나, 그 또한 소용이 없다.
키이이이이잉!
광인이 한순간 고개를 젖혔다.
직감으로 인한 판단이었다. 직후 백금색의 섬광이 광인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섬광에 닿은 그림자가 불에 탄 듯 바스러진다.
별에게 축복받은 이, 용사(Brave).
클로에가 제 한 손을 쭉 뻗은 채 광인을 노려보고 있다. 그 손바닥에선 다시 별빛이 집속한다. 그녀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마나를, 그녀의 곁에 있는 아일라가 다시 한번 지휘한다.
영창의 가속과 안정화.
‘···이게.’
광인은 땅을 박찬다.
사방에 그림자를 걸고, 일대의 벽을 허물며 질주하는 두 명의 검사에게서 벗어나고자 한다. 허나, 오래가진 못한다.
콰직, 콰앙!
칼트가 한순간 가속한다.
벽과 지형지물이 많은 공간.
그것은 하운드(Hound)인 칼트에게 가장 익숙한 공간이다. 칼트가 벽과 장애물을 박차며 가속하기 시작한다. 은백색의 섬광이 어지러이 얽히며 광인에게 다가온다.
서걱.
그림자의 한 자락을 섬광이 베고 지나간다.
미끄러지듯 땅에 착지한 칼트가, 한 바퀴 돌며 짧게 숨을 내뱉는다. 그 눈빛은 어둠 속에서도 흉흉히 빛난다.
‘대체, 이게 무슨.’
광인은 이제는 당황스러움마저 느낀다.
주문을 흩뿌린다. 사역마로 몰아붙이려고도 해본다. 그러나, 통하지 않는다. 수를 앞세워 상대하고자 하면···.
“일어나라.”
같은 수만큼 솟구친 레스티의 사역마가 그림자를 붙들어 둔다. 사역마에 깃든 잿빛 마나가 그림자를 흐트러트린다.
그렇게 한순간 주의가 끌리면, 사역마들을 발판 삼아 칼트와 라크가 도약에 도약을 거듭한다. 한순간에 거리를 좁혀온다.
“집속.”
특대의 주문으로 요격은 불가능하다.
모든 주문은 저 먼 곳에서 가속된 영창을 하는 용사를 견제하는 데 쓰이고 있다.
‘성가시다.’
쉽게 꺾을 수가 없다.
각자의 방식으로 궤도에 오른 이들이다.
각자가 첨예한 면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한자리에 모여있을 때 장점이 극대화된다. 부족함이 없는 것은 아니나, 다른 이의 힘을 빌려 보완한다.
완성돼 있다.
이미 완성된 이들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시점이다. 광인은 한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자신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은 이가 있다는 사실을.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늦어도 이미 너무 늦은 뒤다.
탁.
출렁이는 그림자를 밟고, 그림자를 두른 누군가 광인의 측면에 바로 선다. 태초의 신과 계약한 주술사. 벨노아가 용의 발톱으로 변한 손아귀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콰직.
광인의 눈에는 벨노아의 목에 팔을 두르고 있는 여신의 모습이 보인다. 그녀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들린다. 여신이 광인을 향해 웃음을 흘렸다.
【어딜 내려다 보고 있느냐?】
움켜쥔 공간을 벨노아가 휘두른다.
【내려와라, 불경한 것아.】
바람의 결이 뒤바뀐다.
바람 한점 불어오지 않던 마탑의 내에, 광풍이 몰아치기 시작한다. 몰아치는 바람이 그림자와 그림자를 엮어 공중을 부유하던 광인을 휘감는다. 땅 아래로 떨어트린다.
콰가가가각!
몰아 치는 바람에 광인이 짓눌린다.
이를 악물고 바람을 흐트러 트리는 순간, 광인은 주변을 가득 옭아맨 별빛 회로를 본다. 거대하기 짝이 없는 별의 회로.
“지랄 맞군.”
광인이 헛웃음을 터뜨린다.
한순간 그림자를 둘러 보호해보나, 타오르는 듯한 별빛에 그림자가 불타 사라진다. 별빛으로 만들어진 회로가 주문을 토해낸다.
중위 주문, 작열(Burning).
열기에 그림자가 짓이겨진다.
중위 주문임에도 고위 주문에 필적하는 위력에 광인의 그림자가 비명을 지른다. 남아있는 잿빛 마나의 잔재가, 별빛을 먹고 다시 한번 크게 불타오른다.
불에 타들어 가며 광인은 저항한다.
품은 원혼을 공양해 특대의 주술을 터뜨린다. 사방에 깔린 그림자가 솟구치고 거대한 짐승의 아가리와 같은 현상으로 변질한다. 계층을 통째로 집어삼킬 구정물의 주술.
허나, 광인이 간과한 것이 있다.
광인은 보았다.
허공을 부유하는 돌조각들을 밟고, 자신을 향해 도약하는 소년을. 그 소년의 손에 들려 찬란히 빛나는 최초의 성검을.
욱씬.
광인의몸이 움츠러든다.
저 빌어먹을 검에 영혼이 베여나갔던 고통을 광인은 잊지 못했다. 움츠러들며 광인은 무심코 뒷걸음질친다. 그림자를 엮어 도망치고자 한다.
스겅.
그 순간 스쳐 지나간 섬광이 광인이 엮은 그림자를 잘라버린다. 빙글, 돌며 광인을 바라보는 칼트가 무표정히 제 칼자루를 잡아당긴다.
절그럭.
칼자루에 묶인 사슬이 광인의 그림자에 파고들어 있다. 한순간의 움직임이 굼떠진다. 늘어지는 체감 시간 속에서 광인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본다.
콰아아아아앙!
카가가가각!
폭발하듯 터져 나온 별빛.
별빛을 휘감고 몰아치는 용의 폭풍.
그것이 자신이 불러낸 구정물 짐승의 아가리를 갈가리 찢어 놓는다. 구정물이 사방으로 비산한다. 비산한 구정물은 그림자에 침투한 잿빛 마나에 타들어가 사라진다.
튀어오르는 구정물.
자글거리며 타들어 가는 그림자.
그리고, 그것들 사이로 자신에게 접근하는 성검을 쥔 소년의 모습. 붉은 꼬리를 그리는 소년의 안광이 어둠 속에서 번뜩인다. 무너지는 계층의 돌 바닥을 밟으며 라크는 다시 한 번 도약한다.
가속(Accel).
라크의 몸이 가속한다.
가열된 육체에서 증기가 피어오른다.
라크는 스톡 해둔 주문을 모조리 터뜨린다. 육체가 강화되고, 칼자루를 움켜쥔 손가락이 뿌드득 소리를 내며 부러진다.
갈라트릭 류, 개(?).
그레이스 류 극의 무형검(無??).
형태 없는 검이 기이한 궤적을 그린다.
서걱.
한순간 섬광이 일대를 갈라놓는다.
계층의 천장에서 바닥까지 비스듬히 그어진 사선. 그 사선이 광인의 몸을 비스듬히 베었다. 검이 남긴 길을 따라 별빛이 범람한다.
‘익숙한 검격이로군.’
광인은 최후의 순간 헛웃음을 터뜨린다.
익숙하다. 익숙하기 짝이 없는 일격이다.
형태도, 완성도도 보잘것없지만··· 그 근간은 최초의 용사 가니칼트 반 갈라트릭의 것과 닮아있다.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모조리 틀어졌군.”
빌어먹을 잿빛.
해골과 비슷한 말을 중얼거린 광인의 시야가, 직후 새하얗게 물들었다.
3.
계층이 무너져 내린다.
무너져내린 돌바닥 사이에서 광인은 몸을 일으키려 하지만 뜻대로 되진 않는다. 이미 사방에 깔아둔 구정물과의 연결은 끊어졌다. 범람하는 별빛에 휘말려 그림자는 타들어 갔다.
그리하여 드러난 것은 인간의 육체다.
꿀렁이는 그림자의 틈새로 늙은 노인의 육체가 드러났다. 광인이 기어코 몸을 일으켜 세웠으나, 그 또한 잠시일 뿐이다.
콰직.
무언가 광인의 발목을 물어뜯었다.
설 수 없게 된 광인은 무릎을 꿇었다. 뒤를 돌아보면 들개의 형상을 지닌 사역마가 발목을 물어 뜯고 있다. 그리고, 터벅. 구두굽 소리가 울린다.
사역마의 주인이 자신에게 다가온다.
“······.”
레스티 엘레노아.
그녀가 광인의 앞에 멈춰 선다.
그녀의 뒤를 따라온 기사가 있다. 본래 광인이 불러낸 기사지만, 그 기사는 이미 레스티에게 주도권이 약탈당한 뒤다.
기사가 레스티에게 무릎을 꿇는다.
두손으로 레스티에게 검을 바친다. 그 검에는 레스티가 만들어낸 잿빛 마나가 둘러져있다. 그 검을 받아든 채 레스티가 광인을 내려다본다. 광인은 조소하려 했으나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주도권이빼앗긴 건 기사뿐만이 아니다. 광인 또한 본래의 주인에게 주도권이 빼앗겨간다. 마지막까지 의지를 잃지 않은 인간이 고개를 든다.
“···레스티.”
그림자에 반쯤 삼켜진 장로가 레스티를 보았다.
레스티는 제 입술을 짓씹으며 장로를 보았다.
“그래.”
장로가 웃었다.
그는 길게 말하지 않는다.
“잘 컸구나.”
장하게도.
그리 말하며 장로가 눈을 감는다.
레스티는 입술을 꾹 깨문 채, 검을 들어 올린다.
푸욱.
검이 장로의 심장에 박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