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39
〈 39화 〉 썩은 내가 난다(4)
* * *
주문 훈련실에 침묵이 감돈다.
그 누구도 섣불리 입을 열지 않는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정확하게 상황을 인식한 이는 아무도 없다.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들어온 건 최근 이목을 끌고 있는 신입 교수, 라니아 반 트리아스다.
파삭.
그녀가 뼈를 닮은 무언가를 으깬다. 으깨진 무언가가 바닥에 떨어지기 무섭게, 그녀가 땅을 박찼다.
쩍, 쩌적.
그녀가 결계에 맞닿는 순간, 결계는 종잇장 마냥 찢겨 나갔다. 그녀의 발걸음을 일 초도 붙들어 두지 못했다.
거기까지 깨달았을 때.
상황은 이미 끝나 있었다.
콰아아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주문 훈련실이 떨린다.
바닥에 금이 간다. 먼지가 피어오른다. 눈을 한번 깜빡이는 찰나에 그 모든 게 일어났다.
충격의 중심에 있는 교수들이 있다.
그들은 충격에 떠밀려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흙먼지가 걷히고 드러난 소녀를 바라봤다.
‘방금, 무엇이 일어났는가?’
알 수 없다.
‘주문이 발현됐다. 마력이 요동쳤다.’
그러나, 몇 개의 주문이 발현됐는지는 알 수 없다. 오랜 기간 마도(??)에 발을 담근 그들 조차 찰나에 일어난 현상을 인식하지 못했다.
“·····.”
떨리는 시선으로 그녀를 올려다본다.
라니아 반 트리아스.
그녀의 로브는 핏물로 붉고 푸르게 물들어있다. 온몸에 피 칠갑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가 뺨에 묻은 핏자국을 닦아낼 때, 그들은 불현듯 깨닫는다.
‘자신의 것이 아니다.’
붉기보단 푸름에 가까운 핏물.
마수의 몸에 흐르는 핏물이다.
“후우···.”
그녀가 짧게 숨을 내뱉었다.
그리곤 크게 파인 충격의 중심에 손을 뻗는다. 바닥에 처박힌 변절자를 뽑아낸다.
지익, 찌이익.
그 변절자의 머리칼을 움켜 쥔 채 걷는다. 바닥에 끌리며 묻어 나오는 핏자국은 새까맣다. 그 누구도 그녀의 앞길을 막지 않는다.
“·····.”
말없이 갈라지는 학생과 교수들 사이로 그녀는 걷는다. 그 끝에는 당황한 채 창칼을 손에 쥔 기사들이 있다.
“이거.”
라니아는 끌고 온 변절자를 가리켰다.
“냅두면 정신 차릴 테니, 묶어두고 심문하세요.”
“네, 네에?”
기사들은 눈을 깜빡인다.
아무리 봐도 살아있는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기사들의 시선을 의식한 라니아는, 귀찮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마지막에 마기를 끌어 올렸습니다. 마기를 두른 변절자들은 머리나 심장을 뽑아버리기 전까진 살아서 움직입니다. 죽어도 살아나요.”
툭.
발끝으로 변절자의 몸을 건드린다. 움찔, 하고 변절자의 몸이 떨린다.
“봐요. 살아있잖아요.”
“아, 알겠습니다. 협력에 감사합니다.”
기사들은 변절자를 옮겨 받았다.
구속 구를 채운 채, 주문을 읊지 못하도록 그 입에 재갈을 물린다.
“가 보겠습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녀는 자리를 뜬다.
기사들과 교수, 학생을 막론하고 그들은 멍하니 그녀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흠흠.”
그녀의 스승, 로셀만이 헛기침을 하며 엷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2.
제 4 왕녀, 아일라의 호위 기사 하벨.
다른 기사들은 그 자리가 가시방석이라고 말하지만, 하벨은 아일라의 호위 기사 자리를 무척이나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장차 여왕이 되실 분이다.’
주제넘은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하벨이 생각하기에 아일라는 왕가의 어느 존재보다 지도자의 자리에 어울리는 존재였다.
‘그런 분의 곁을 지킬 수 있다면···.’
그것만 한 영광이 없을 것이다.
하벨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은 책무를 다하지 못했지.’
입안이 썼다.
천만다행으로 왕녀께선 무사했지만, 그것은 하벨이나 기사들이 무언가를 한 덕분이 아니다.
‘교수.’
한 명의 교수가 왕녀를 지켰다.
마수의 무리를 뚫고 기사단의 주둔지까지 안내했다. 그 교수의 이름을, 하벨은 알고 있었다.
‘로셀 교수의 양녀, 라니아 교수.’
지난번, 자신이 직접 로브를 전달한 인물이다.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며 하벨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따로 감사 인사를 전해야겠어.’
자신을 대신하여, 왕녀를 지켜준 점.
그리고···.
“전투 마법학의 조교수, 켈트.”
이 사건의 주동자를 붙잡은 것에 대해서도, 말이다.
하벨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대부분의 마수는 소탕됐다. 기사들이 곳곳을 뒤져가며 남은 마수를 찾아 청소하고 있다.
남은 건, 이 더러운 변절자뿐이다.
하벨의 발치에는 사지를 결박당한 채, 바닥에 무릎 꿇은 변절자가 있다. 그를 내려다보는 하벨의 시선에 경멸이 깃든다.
“인간을 배반하고, 마족의 곁에 붙은 추악한 변절자. 마수를 풀어 아카데미에 혼란을 일으킨 그 죄질이 매우 크다.”
“······.”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변절자 켈트는 공허한 시선으로 허공을 바라본 채, 입을 벌리고 있을 뿐이다.
주륵.
그 입가를 따라 침이 흐른다.
‘정신을 차리질 못하는군.’
쯧, 하벨은 짧게 혀를 찼다.
아무래도 정신을 차리기까진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고문을 하던, 성수에 담그던 그건 그다음의 이야기다.
“후우···.”
하벨은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나저나, 도대체 어떻게 잡은 겁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변절자는 마기를 끌어내기 전까지 찾아내기도 힘들 텐데.”
천막을 나오자, 기사들이 떠들고 있다. 하벨은 그들에게 다가갔다. 기사들이 하벨을 돌아봤다.
“아, 하벨 님. 심문은 마치셨습니까?”
“아직 고문을 시작 하지도 못했다. 고문을 할 만한 상태도 아니었고 말야. 정신을 못 차리더군.”
“과연··· 확실히, 그런 걸 얻어맞으면 정신을 못 차릴 만도 합니다. 살아있는 게 신기하더군요.”
주문 훈련실을 지키던 기사, 클레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기사들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뭐야, 클레드 너는 봤어?”
“전부 다 보진 못했지만, 그 결과만큼은 똑똑히 보았습니다.”
클레드는 기사들의 시선을 받으며 입을 열었다.
그 과정은 하벨 역시 궁금했기에, 하벨은 클레드의 말에 귀 기울였다.
“정말 순식간이었습니다! 피 칠갑을 하고 저 멀리서부터 걸어오는게 보이지 뭡니까. 그래서 물어봤죠. 괜찮으시냐고.”
클레드가 손을 휘휘 내저었다.
“이렇게 ‘비켜봐요’, 한마디 하시더니 말릴 틈도 없이 라니아 교수님이 문을 벌컥, 여는데!”
꼴깍, 기사들이 마른침을 삼킨다.
“그래서?”
“열었는데? 그다음에 뭐?”
“아, 그게, 거기서부터 잘 못 봤습니다.”
“뭐 임마?”
클레드는 에헤헤, 하고 어설픈 웃음을 흘렸다.
“너무 순식간이어서, 볼 틈도 없었습니다. 그냥 쿵! 하고 뭔가 울리고, 건물이 흔들리고··· 그게 끝이었습니다.”
“에이씨, 그걸 뭘 봤다고 말해?”
“아, 그래도 그 변절자 보셨잖습니까? 두개골 움푹 파인 거. 눈동자도 막 튀어나오려 그러고, 이빨은 다 나가 있고··· 어우.”
부르르하고, 클레드가 몸을 떨었다.
“곱상하게 생기신 것과 달리, 되게 무서운 분 같습니다. 머리칼을 잡고 질질 끌고 오는데··· 어우, 순간 지리는 줄 알았지 뭡니까.”
“···말이 천박하다. 주의하도록.”
“앗, 네엡.”
하벨은 한숨을 쉬며, 클레드의 어깨를 몇 번 두들기고 자리를 떴다.
‘···어쨌든, 한방에 변절자를 제압했단 증언은 겹치는 군.’
처음에는 하벨도 믿지 못했다.
변절자를 한 방에 제압하다니?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마족과 거래를 한 변절자는 인간의 것과는 궤가 다른 육체를 가진다.
하물며, 마기를 끌어 올린다면···.
그건 더는 인간이라 볼 수 없다.
‘그리고, 저 변절자에게선 검은 피가 흘러나왔었지.’
검은 피는 변절자가 마기를 끌어 올렸단 증거다.
변절자라 한들 마기를 끌어 올리지 않은 상태에서 흘린 피는, 보통의 인간의 것과 같이 붉으니까.
‘그래서 찾기 까다로운 것이기도 하고.’
하벨은 모은 정보들을 토대로 결론을 내보았다.
하나, 모종의 방법으로 변절자를 발견했다.
둘, 변절자가 마기를 두른 상태에서 교전했다.
셋, 그것을 단 한합만에 제압했다.
정리하고 보니 더 이해가 안간다.
“가능한가, 그것이?”
날뛸 시간도 주지 않고 한 합에 제압했다고? 변절자가 인질로 잡을만한 학생들이 뭉쳐있는 그곳에서?
‘말이 안된다.’
그러나, 결과가 말이 됨을 말하고 있다.
“도무지 알 수가 없군···.”
하벨은 문득, 조금 전 막사를 지나쳐 가던 라니아 교수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교수님, 저 신발···.
새것 사주마, 울먹이지 말거라.
아니, 진짜 그러려 던 게 아니라···.
이해한다. 이해하니까, 일단 그 옷부터 좀 빨자꾸나. 빨리 따라 오거라.
네에···.
로셀 교수와 대화를 나누며 지나가던 소녀.
로브를 벗고 셔츠 차림인 그녀의 몸에는, 핏방울이 좀 튀었을 뿐 상처 하나 남아있지 않았다.
‘지친 기색···도 없었지.’
하벨은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만한 실력자가 왜 교수를 하고 있는거지?”
3.
“때려 치울까···.”
“음? 뭐라 했느냐?”
“아뇨, 로브가 잘 안 빨려서···.”
세탁실에서 나는 로브와 셔츠를 빨고 있었다.
물 마법으로 대충 헹구기엔, 소재가 너무 귀해서··· 좀 죄책감이 들더라고.
‘···다음부턴 벗어놓고 싸워야 하려나?’
그럼 또 셔츠가 피에 젖을 텐데.
전장에선 해본 적이 없는 고민을 하고 있자니,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애초에, 전장에선 피 얼룩이 기본이었다.
신을 대리한다며 흰색 복장을 고집하는, 사라 같은 사제들이 등신이었단 말이다.
‘이건 또 왜 이렇게 하얘.’
그리고, 난 지금 등신들의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후우···.”
새하얀 셔츠를 빨고 있자니 한숨만 새어 나온다. 로브 자체는 군청색 계열이라 그나마 티가 좀 덜나지만, 새하얀 셔츠는 작은 얼룩도 눈에 확 들어온다.
‘나중에 전문으로 세탁하는 연금술사들에게 맡긴다 쳐도···.’
당장 좀 깔끔해 보이게 빨 필요가 있었다.
스승님이 그렇게 시키셨으니까.
교수로서, 최소한의 깔끔함은 추구할 필요가 있다.
당장 겉보기에 거부감이 들지 않을 정도로만 세탁 하자꾸나. 아무래도, 오늘은 오랫동안 머물러야 할 것 같으니.
나는 손에 들린 셔츠를 바라봤다.
셔츠의 목깃에는 금빛 자수가 수놓아져 있다. 로브와 함께 전달된, 왕실의 선물이다.
‘대충 빨기도 좀 그런데···.’
그래서 열심히 문지르고 있긴 하지만, 워낙 하얘서 그런지 핏물이 잘 빠지지도 않는다.
‘그러고 보니, 이 상황 낯설지가 않은데.’
내가 전장에서 빨래를 한 적이 있던가?
그냥 물 마법으로 적당히 헹궈서 썼던 것 같은데. 나나 카일이나 그런 걸 신경 쓰는 부류는 아니었···.
아.
‘···나하고, 카일.’
그 둘을 제외하면 남는 건 둘이다.
문득 그 두 미친년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귀에 환청처럼 목소리가 울린다.
아니, 라니엘! 옷이 이게 뭐예요! 다 구겨졌잖아요!
내 것도! 이게 뭔데!
아니 씨발, 니들이 빨아달라며.
누가 물 마법으로 헹궈 달랬지, 옷을 이 모양 이 꼴 만들어 놓으래요? 하, 이래서 당신이 동정인 거에요!
우매한 인간. 됐어, 너한테 맡긴 내 잘못이지.
멈칫.
하여간, 이래서··· 쯧.
라니엘, 여심을 모르는 남자는 인기가 없답니다? 얼굴이 반반하게 생김 뭐해요. 성격이 지랄 맞은데. 배려심이라곤 눈곱만큼도 없고.
씨발, 너네 그거 다 내놔봐.
그때 내가 뭐 했더라. 아마 사라가 아끼는 일상복을 찢어버렸던 거로 기억한다.
부욱.
맞아, 이렇게.
“어?”
뭔가 나선 안 될 소리가 난 거 같은데? 나는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손에 쥔 셔츠를 바라보았다.
‘이런 미친.’
셔츠를 쥔 손끝이 파르르 떨린다.
“응? 무슨 일 있느···.”
곁에 다가온 스승님 또한 딱딱하게 굳었다. 나는 스승님을 돌아봤다. 스승님과 눈을 마주쳤다.
한참을 침묵하던 스승님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라니아.”
“네, 네에?”
“내가 기억하기로, 이것은 왕실에서 전해준 선물이다. 내 말 맞느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님은 탁, 하고 이마를 치셨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