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499
별빛을 지녔기에 용사가 아니다.”
별의 뜻을 대행하기에 용사는 더더욱 아니다. 인류를 대표하여 가장 앞에 섰기에 그들은 용사였다.”
네 명의 용사가 걷는다.”
해는 아직 뜨지 않았다.”
밤은 여전히 깊었다.”
축제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고, 인류는 아직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으며, 그들은 여전히 무언가에 얽매여있다. 그렇기에 인류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인류를 대표하여 향한다.”
인류가 서야 할 마지막 전장으로.”
하늘에 드리운 별자리가 길을 안내했다.”
빛나는 별과 별이 이어져 만들어진 선, 선과 선이 이어져 만들어진 별자리. 어두운 밤하늘에 수놓아진 별자리는 마치 별의 강을 보는듯했다. 은하(銀河). 백금색의 강줄기를 따라 라니엘은 걸음을 옮겼다.”
“절경이네.””
데스텔이 그리 중얼거렸다.”
카일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라니엘은 침묵을 유지한 채 계속해서 걸었다. 인도자인 그녀의 눈에 비춰 보인 하늘은, 그들이 보는 것과 조금 달랐으므로.”
별은 하나의 그물이다.”
규율이 새겨진 별자리가 라니엘의 눈에는 이 땅을 옭아매는 그물처럼 보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그것은 절경이라기보다는 감옥의 풍경이었으며, 탁 트였다기보단 오히려 숨이 막히는 풍경이었다.”
“···후우.””
라니엘이 길게 숨을 뱉어냈다.”
자신이 별자리를 올려다보듯, 고룡 역시 별을 통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을 터다. 누군가의 시선을 느끼며 라니엘은 계속해서 걸었다.”
숲을 가로질러, 협곡을 지나쳐, 옛 신전들이 놓인 유적을 지나고 지나면······.”
어느덧 도착하고 마는 것이다.”
고룡의 도시로 향하는 단 하나뿐인 통로에.”
“······.””
라니엘이 걸음을 멈췄다.”
그녀가 걸음을 멈춘 곳은 백금색으로 도금된 어느 신전이었다. 깎아지른 절벽 위에 위치한 신전. 파도가 절벽에 부딪히며 부서지는 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그곳에 멈춰선 채 라니엘이 고개를 들었다.”
하염없이 걷다 보니 어느새 밤의 끝은 찾아왔다. 지평선 너머에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떠오르는 해에 바다가 붉게 물드는 가운데, 라니엘은 길게 숨을 내뱉고선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투욱.”
신전에 발길을 내디딘 순간 하늘과 땅이 겹쳐지는 듯한 기이한 감각과 함께, 그녀의 앞에 별자리로 이루어진 다리가 나타났다. 주변을 둘러보면, 드넓게 펼쳐졌던 바다는 온데간데없이 그저 푸르른 하늘만이 펼쳐져 있었다.”
땅과 하늘의 분간이 가지 않는 이질적인 공간.”
그 공간에 홀로 놓여있는 이 다리야말로, 세상과 완전히 분리된 별개의 공간인 고룡의 도시로 향하는 유일한 통로였다.”
“안 열어주면 억지로 열 생각이었는데.””
라니엘이 피식 웃었다.”
“길은 열어주셨네.””
그녀가 다리를 향해 첫걸음을 내디뎠다.”
그녀의 뒤를 이어 카일과 데스텔이 걸음을 옮겼다. 별자리로 이루어진 다리를 밟고 그들은 고룡의 도시로 향했다.”
···깊었던 밤은 끝났다.”
떠오르는 해와 함께 왕도에선 축제가 시작되리라.”
그리고, 용사들은 마지막 전장에 도착했다.”
옛 도읍, 고룡의 도시.”
이곳에 대해 라니엘이 알고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저 몇 개의 역사서와, 몇 개의 금서를 통해 어림잡아 짐작할 뿐이다. 옛 엘프들의 역사서에서 고룡의 도시는 이런 이름으로 불리곤 했다.”
백금탑(白金塔).”
기나긴 전쟁에 종지부를 찍은 어느 신(神)이 잠든 곳. 백금으로 이루어진 도시이며, 백금으로 이루어진 신전과 탑이 자리 잡은 황금의 도시.”
탁.”
그런 묘사를 떠올리며 라니엘이 마지막 걸음을 내디뎠다. 별자리로 이루어진 다리의 끝자락, 그곳에 있는 일그러진 공간에 걸음을 내디딘 순간 시야가 새하얗게 물들었다.”
빛, 소리, 흔들림.”
이윽고 감았던 눈을 천천히 뜨면 보이는 것은 백금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도시다. 건물들은 백금으로 은은히 빛났으며, 도시의 곳곳으로 이어진 수로를 타고 별의 강이 흘렀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보면···.”
그곳에 보이는 것은 거대한 신전이다.”
고룡의 도시에 중심에 놓인 거대한 신전, 혹은 왕궁. 그것을 바라보며 라니엘은 쓰게 웃었다. 과거, 잿빛 마법사라 불리던 시절 이곳에 한 번 방문했던 경험이 있는 라니엘이다.”
‘그때는 이곳이 왜 백금탑이라 불리는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보니 알겠다.”
태초의 시대를 경험한 옛 엘프들이 남긴 문헌에서, 어째서 그들은 이곳을 백금탑이라 불렀는가. 그 이유야 간단했다. 저곳에 본래 탑이 있었을 테니까.”
라니엘의 눈동자는 도시의 한구석을 향했다.”
도시 전체를 순회하는 별의 강이 시작된 곳. 은은히 빛나는 물이 고여있는 강은 본래 어느 구조물의 터였으리라. 아마도 저곳에 탑(塔)이 있었을 테지. 별을 하늘에 걸기 위해 고룡의 마법사가 사용했을 탑이.”
최초의 바벨이 저곳에 있었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없다.’”
하늘에 규율을 박아넣은 뒤, 고룡의 마법사는 자신의 탑을 무너트렸다. 하늘로 향하는 길을 가로막았으며 관련된 기록을 말살했다. 그 누구도 감히 하늘에 발을 디디지 못하도록.”
“익숙하군.””
라니엘의 등 뒤에 서 있던 카일이 입을 열었다.”
“이곳에 꽤 오래 머물렀던 것 같은데.””
라니엘이 카일을 돌아봤다.”
카일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북부에서 가니칼트와 마주했던 직후 말이다. 그때 계약과 관련해서 고룡의 마법사가 왔지 않나.””
그때 끌려온 곳이 이곳이었다.”
그리 중얼거리며 카일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내 기억대로라면···.””
카일이 손을 들어 올렸다.”
그 손끝은 신전의 뒤편을 향했다. 그 손가락에 반응하기라도 하는 듯, 한순간 고룡의 도시가 뒤흔들렸다. 땅과 하늘이 흔들리며 무언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저곳에 고룡(古龍)이 있었다.””
신전의 뒤편에서 몸을 일으킬 것은 태고의 고룡이다. 여신의 날개였으며, 고룡의 마법사 요르문과 함께 대륙을 가로질렀던 거신룡. 신전을 딛고 일어서는 거대한 고룡의 그림자가 도시에 길게 드리웠다.”
용의 뿔과 날개는 꺾여 있었다.”
움직일 때마다 피부에선 비늘이 떨어졌으며, 금빛으로 번들거려야 할 눈동자는 탁하기 짝이 없었다.”
긍지도, 신념도, 그 무엇도 잃어버린 채 오랜 시간 움직이지 않은 노룡(老龍)이 도시에 찾아온 손님을 바라봤다. 혹은, 제 주인을 해하려 이곳에 침입한 침입자를 노려보았다.”
“가자.””
그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넘기며 라니엘이 짧게 말했다. 그녀가 도시 곳곳으로 흐르는 수로를 거슬러 신전을 향해 다가갔다.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듯이.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거기까지.】”
도시에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목소리가 울려 퍼진 곳을 향해 라니엘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시선이 멈춘 곳은 백금 신전의 최상층이었다. 그곳에 그가 서 있었다. ”
고룡의 마법사, 요르문 반 드라고닉.”
금빛의 용안(龍眼)을 지닌 마법사들의 신이 라니엘을 내려다보며 경고했다.”
“그 선을 넘지 마라. 잿빛 마법사.””
선을 넘지 마라.”
언젠가 들었던 경고를 곱씹으며 라니엘은 무심코 웃음을 흘렸다. 걸음을 멈춘 채 라니엘이 고개를 들어 요르문을 똑바로 바라봤다.”
“안 넘을 거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구태여 넘지 않아도 될 선을 넘지 말라는 거다.””
요르문이 길게 숨을 뱉었다. ”
이 상황 자체가 불쾌하다는 듯, 그가 신경질적으로 제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그가 길게 숨을 내뱉을 무렵, 그 말투는 제법 누그러져 있었다.”
“넷의 재앙은 모두 쓰러졌다. 최초의 광인 또한 그대들의 손에 의해 명을 달리했지. 하물며 이 세상에 자리 잡았던 그릇된 신마저 기어코 쓰러트렸지.””
놀라운 위업이다. 칭송받아 마땅한 위업이야.”
그리 중얼거리며 요르문이 말했다.”
“그대들은 영웅이야. 이 땅에서 혼란을 몰아낸 영웅. 위업을 이루어낸 영웅이라 말일세. 나는 그대들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해.””
그가 신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