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509
라니엘이 몸에 두르고 있던 역뢰가 흐름에 휩쓸렸다. 그녀가 펼쳐둔 회로가 파도에 휩쓸리듯 별빛의 너머로 사라졌다. 역천이 흐름을 거스르는 일격이라면, 천리는 흐름으로 휩쓰는 파도와 같았다.”
휩쓸린다. 밀려드는 파도에 부서진다.”
그렇게 밀려드는 요르문의 창날 앞에 라니엘은 눈을 가늘게 떴다. 창날이 노리는 것은 자신의 심장. 라니엘이 이를 악물고 손을 뻗었다.”
카, 가가가가각.”
그녀의 손아귀에서 다시 튀어 오르는 검붉은 번개가 흐름에 휩쓸리기 전에, 기어코 창날의 궤적을 비틀었다. 천리를 완전히 거스르진 못하지만, 그 궤적을 바꾸는데 라니엘은 성공했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실패이기도 하다.”
푸욱.”
궤적이 비틀렸다곤 하나 요르문이 쥔 별자리는 라니엘의 옆구리를 꿰뚫었다. 그 순간 별자리에 압축돼 있던 흐름이 모조리 터져 나왔다. 거센 격류가 라니엘의 육체와 영혼을 휩쓸었다.”
투확.”
별자리에 꿰뚫린 옆구리에 구멍이 뚫렸다. 별자리는 마치 나무가 뿌리를 내리듯이, 뚫린 구멍을 통해 라니엘의 육체에 파고들었다. 별자리가 만들어내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라니엘의 영혼과 육체를 휩쓸었다.”
파스스스스···.”
라니엘의 몸에 균열이 내달렸다.”
그녀의 몸에서 튀어 오르는 역뢰(逆雷)가 흐름에 저항하긴 하나, 그마저 조금씩 사그라지고 있었다. 그렇게 더는 붉은 번개가 튀어 오르지 않게 된 순간 요르문은 승리를 확신했다.”
이걸로 끝이리라.”
천리에 휩쓸린 순간 돌아올 수 없다.”
하지만, 요르문은 무언가 위화감을 느꼈다. ”
천리의 여파가 없었다. 거대한 흐름은 라니엘의 몸을 모조리 바스러트리고 더 나아가 이 도시 전체를 뒤흔들어야 할 텐데? ”
그러나 주변은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다. 라니엘의 옆구리를 꿰뚫은 창날 또한, 그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그 모든 흐름을 저 한 몸으로 받아냈다는 것처럼.”
“쿨럭, 컥···.””
그 순간이다. 라니엘이 피 섞인 기침을 뱉어내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아.””
그녀가 신음했다.”
라니엘 반 트리아스가 신음하며 웃었다.”
콱, 하고.”
들어올린 손으로 그녀가 제 옆구리를 꿰뚫은 별자리를 움켜쥐었다. 맨손으로 거대한 흐름을 움켜쥐었음에도, 그녀의 손은 바스러지지 않았다. 요르문이 별자리의 창을 뽑아내려 하나··· 창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당황한듯한 요르문을 향해.”
라니엘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이런 거였구나?””
요르문이 라니엘과 눈을 마주쳤다.”
그 순간 요르문은 보았다. 라니엘의 푸른 눈동자에 타오르던 불길이 서서히 고리의 형태를 이루는 것을. 마치, 요르문 자신이 지닌 용안(龍眼)과 같이.”
불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회전한다.”
회전하는 불길은 하나의 고리를 만들었다.”
회(回), 청백색의 고리.”
저 기이한 눈동자를 요르문은 언젠가 본 적이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미래, 혹은 과거의 시간대에서 자신의 앞에 선 비틀린 신이 가지고 있던 눈동자다. 재의 여신이 가지고 있던 눈동자.”
하지만, 그것과는 조금 다른 눈동자.”
그 기이한 눈동자를 바라본 순간 요르문은 깨달았다. 요르문이 헛웃음을 흘렸다. 라니엘이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은 까닭이었다.”
“제정신이 아니로군.””
저 놈, 일부러 맞은 것이다.”
천리(天理)를 이해하고자, 탐닉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제 몸을 내주었다. 목숨마저 내건 도박수, 그리고 그 결과 그녀는 본질에 닿았다.”
치이이이이이이익.”
그녀의 몸 위로 튀어 오른 검붉은 번개가 그녀의 몸에 내달렸던 균열을 모조리 수복했다. 제 영혼과 육신을 휩쓸던 천리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 번개가 끝내 별자리마저 좀먹으려는 순간 요르문이 팔에 힘을 주었다. 투확, 하고 별자리를 뽑아내며 그가 뒤로 물러섰다.”
후두둑.”
핏물이 떨어졌다. 떨어진 핏물이 튀어 오른 번개에 닿아 증발했다. 요르문은 거리를 둔 채 라니엘을 흘겨봤다. 별자리가 휩쓸었던 그녀의 영혼과 육체가 빠르게 제자리를 찾고 있었다.”
“···후우.””
제 입가를 손등으로 쓸며, 라니엘이 천천히 숨을 내뱉었다. ”
카일이 가니칼트가 휘두르는 역천의 검을 보고 검사로서 완성됐듯이, 라니엘 또한 요르문이 펼치는 천리를 마주한 순간 마법사로서 완성됐다. ”
천리에 꿰뚫림으로써 그녀는 천리를 이해했다. ”
영혼이 휩쓸리고 죽음이 밀려드는 그 순간 그녀는 답을 움켜쥐었다. 움켜쥠으로써 지금껏 부족했던 단 하나의 조각을 채웠다. 튀어 오르는 검붉은 번개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를 띠고 있었다.”
“······.””
요르문이 말없이 라니엘을 노려봤다.”
도박수는 실패했다. 그는 더이상 천리를 갈무리하지 않고 그저 흐름이 가는 데로 놓아두었다. 거대한 별자리가 신전을 바스러트리며 펼쳐졌다.”
더는 숨기는 것이 의미가 없었으니까.”
요르문은 제 앞에 선 인도자를 바라봤다.”
청백색의 고리를 눈에 새긴, 자신과 같은 경지에 오른 한 명의 마법사를 바라봤다. 이제 두 사람 사이에 놓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라니엘이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요르문은 보았다. 수만 년의 세월 동안 나타나지 않았던 새로운 별자리가 나타나는 것을.”
별을 향해 손을 뻗어온 인간은, 끝내 자신만의 별자리를 손에 넣었다.”
“신의 권능이란 거, 하나같이 눈동자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거 알고 있습니까?””
언젠가 글레투스는 말했었다.”
“인간의 형태를 가진 신이던, 짐승이던, 벌레던, 그림자든 간에··· 모든 신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눈동자 안에 그들 자신이 가진 권능이 담겨있지요.””
“권능?””
“예, 권능.””
그녀가 손짓했다.”
“당신이 처음으로 만났던 ‘끊임없이 흐르는 불’을 예시로 들어볼까요? 그녀의 눈동자에는 불길이 담겨있습니다. 거세게 타오르는 불길이 말입니다.””
그녀가 땅에 그림을 그렸다.”
타오르는 화염과 같은 눈동자를 지닌 여신의 그림을 가리키며 글레투스가 말을 이었다.”
“그녀가 상징하는 것은 불, 그녀가 바라는 것은 모든 땅을 다만 잿더미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녀의 눈동자에는 거센 불길이 담겨있지요. 다른 신들도 마찬가지고요.””
전쟁, 수해, 칼날, 어둠··· 수많은 신들의 눈동자를 하나씩 그려내며 글레투스는 말했다.”
“눈은 영혼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신들에게 있어선 더더욱 그렇지요. 그러니, 상대를 알고 싶을 땐 눈을 관찰해보십시요.””
글레투스가 손을 뻗었다.”
요르문의 멱살을 움켜쥐어, 자신의 이마와 요르문의 이마를 맞댔다. 숨결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거리에서 글레투스의 눈동자가 반개(半開)했다.”
“기억하십시오. 눈동자입니다, 요르문.””
언젠가, 나와 당신의 눈동자에도 문양이 새겨지겠지요. 이 땅을 지탱할 단단한 기반과 같은 문양이.”
“우리도 언젠가 그들과 같은 존재가 될 겁니다. 원치 않아도 그리되겠지요. 인도자란 결국 하늘에 닿을 자격을 손에 넣은 이들이나 마찬가지이니.””
하지만, 하고 그녀는 말했다.”
“우리는 어쩌면 틀릴지도 모릅니다. 언제나 옳을 수는 없는 법이니, 언젠가 그들과 같은 존재가 되어버릴지도 모르지요. 그러니 경계해야 합니다.””
“너는 틀리지 않아. 너는 언제나 옳다, 글레투스.””
“아니요, 아닙니다 요르문. 나도 틀립니다. 나도 실수를 합니다. 인간은 홀로서 완벽할 수 없는 존재이니.””
그녀가 미소 지었다.”
“그러니 서로의 눈을 봅시다.””
“···눈?””
“예, 당신이 틀린 것 같다면 내 눈을 거울삼아 당신의 눈을 보십시오. 나 또한 그리할 테니.””
서로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됩시다.”
“내가 틀린 것 같다면 말해주십시오. 당신이 틀렸다면, 언제나 내가 당신을 붙잡아줄 테니까.””
글레투스는 그리 웃었다.”
수만 년의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웃음. 그녀의 눈동자를 떠올리며 요르문은 천천히 감았던 눈을 떴다.”
눈을 뜨면, 보인다.”
“······.””
요르문은 말없이 제 앞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기어코 자신을 따라잡은 후배가 있다. 완전히 개화하고만 인도자가 그곳에 서 있었다.”
라니엘 반 트리아스.”
그녀의 눈동자를 요르문은 바라봤다.”
푸르스름한 눈동자에 담긴 것은 청백색의 불길이다. 불길의 형상을 가진 눈동자는 질리도록 봐왔지만, 그녀가 지닌 불길은 무언가 기이했다. 불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회전하고 있었으니까.”
회(回).”
꼬리에 꼬리를 물고 회전해 마침내 하나의 고리가 되어버린 불길을 바라보며 요르문은 쓰게 웃었다. 라니엘이 무엇을 바라는지 알게 되었으니까.”
그것이 네 신념인가.”
결코 자신과 공존할 수 없는 신념이다. ”
그렇기에 인간은 반목한다. 스스로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요르문은 말없이 라니엘을 바라봤다. 여기까지 왔으면 시간의 흐름 따위 무의미했으니.”
막고자 하였거늘 라니엘은 완성됐다.”
결국, 정면에서 맞부딪쳐야 한다.”
시간 싸움도, 압박도, 소모전도, 선공이니 후공이니 하는 그 모든 게 다만 무의미해졌다. 요르문은 그저 기다렸다. 라니엘이 움직이기를. 그녀가 찾아낸 답을 자신의 앞에 보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