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516
클로에의 바람.”
“자신의 손으론 닿을 수 없는 곳을 향해 손을 뻗으며, 자신의 무능함에 신음하며 무엇이든 바치겠다고 외치던 어느 용사.””
갈라할의 바람.”
“그런 목소리들을, 신음을 들었습니다.””
“······.””
“그리고, 이젠 조금 더 긴 이야기를 들어야겠지요. 신음과 비명이 아닌 인류의 입장에 대해서.””
그녀가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나는 짧게 숨을 내뱉곤, 털썩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았으니까.”
“일단 말이에요.””
내가 턱을 괸 채 눈앞의 별을 노려봤다.”
“저 되게 까놓고 말할 생각인데.””
“예, 하십시오. 당신에겐 그럴 자격이 있으니.””
“욕먹으실 각오는 됐다는 거네.””
움찔, 하고 별의 어깨가 떨렸다.”
내가 쓰읍, 후우우우 하고 길게 숨을 뱉었다. 쌓이고 쌓인 앙금을 드디어 풀어놓을 때가 됐다. 오랜 세월 동안 별과 거래를 해왔던 입장에서 이건 말해야 했다.”
“그, 중간 과정에서 왜 이렇게 떼먹으세요?””
“···예?””
“거래 말이에요, 거래. 중간과정이 진짜 날림이던데? 중간에 뭘 그렇게 많이 떼가요? 까놓고 말하면 당신, 중간 유통업자잖아요. 세상 돌아가게 하는 섭리하고 거래하기 쉬우라고 다리 놓아주는···.””
내가 말을 이으면 이을수록 별의 고개가 조금씩 기울었다. 마치 ‘이건 부모와 아이의 대면이 아니라, 거래자와 거래처와의 대화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하는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자식이고 부모, 좋다 이거다.”
근데 그 전에 난 내가 그동안 떼 먹힌 부분에 대해선 설명을 좀 들어야겠다.”
“뭐, 가니칼트랑 싸우는데 수명의 전부를 내놓으면 힘을 주겠다? 이 씨발, 슬럼가 돌팔이 연금술사들도 그렇게 대놓고 사기는 안쳐요. 내가 진짜 계약서보고 어이가 없어서 씹······.””
“그, 그건···.””
“아직 내 말 안 끝났어요. 기다려요.””
일단 들어라.”
내가 물어볼 게 좀 많았으니까.”
“그 부분에 대해선 이런 이유로··· 이런 과정을 거쳐서,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그럼 이건요.””
“카르테디아 왕국력 1104년, 6월 1일 17시 52분 17초에 발생한 거래에 대해선··· 이런 기준으로···.””
“쓰읍, 아니 이게 기준이 이렇게 깐깐해요?””
“예, 이게 특수 조항이···.””
이상했던 거래에 대해서 하나하나 캐물어 봤는데, 나름의 이유가 있긴 했다. 내가 수명을 저울에 올렸던 거래만 제외한다면 그럭저럭 맞는 편이었다.”
“그래도 많이 남겨 먹으신 것 같은데.””
“세상의 균형과 안정, 거래를 유지하는데 대부분 사용됐습니다. 공익을 위해서···.””
별은 쩔쩔매며 내게 거래의 과정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해줬다. 그 설명을 듣고 있자니 뭔가 차기 마탑주였을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 세금을 뭐 이렇게 많이 뜯어가느냐고 따져 물었을 때, 재무부에서 들었던 설명도 이런 느낌인 것 같은데.”
고액 납세자를 달래며 쩔쩔매던 재무대신이 딱 이런 느낌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럼 마지막으로 가니칼트와의 전투에서 발생할 뻔 했던 수명 거래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별의 실수가 맞다?””
“그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군요.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선 그늘과 당신이 공멸하는 게 옳다고 당시의 저는 판단한 모양입니다.””
“그럼 카일과의 계약 건은요?””
“그건, 중간에 계약 대상자인 카일 토벤이 초인으로 각성함에 따라 과정이 좀 꼬인···.””
흐으음, 하고 내가 턱을 매만졌다.”
그래도 설명을 듣고 나니 속이 좀 풀렸다. 마냥 떼 먹힌 건 줄 알았는데, 나름의 규칙이 있긴 했네. 떼 먹힌 부분이 결코 적은 건 아니었지만 설명을 들으니 간신히 참을 수 있는 범주의 내였다.”
“여기서 더 떼먹었으면 주먹 날아갔을 텐데, 아슬아슬하게 납득할 수 있는 범위 내네요.””
“예··· 예?””
“아무것도 아니에요.””
내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할까요.””
“듣던 중 반가운 이야기군요.””
“기대했던 대화랑은 좀 달라서 실망하셨나 봐요?””
“아니라고는 말 못하겠습니다.””
별은 쓰게 웃었다.”
나는 그런 별을 향해 피식 웃을 뿐이었다.”
“제가 별한테 쌓인 게 좀 많아서 그래요. 그래도, 뭐··· 그건 그거고.””
그건 그거고.”
이젠 해야 할 말을 해야겠지. 그리고, 별이 기다리고 있었을 대화를. 내가 숨을 가다듬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단, 이 말은 드려야겠네요.””
“뭐죠. 또 불안해지는걸요. 이번에는 또 무슨···.””
내가 밑밥을 깔자마자 불안해하는 별에게, 나는 웃음을 흘리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바라보고 있는 별을 향해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허리를 굽혔다.”
허리를 굽히고, 머리를 숙였다.”
그리하여 별을 향해 나는 고개를 숙였다. 굴복의 의미는 아니었다. 사죄의 의미 또한 아니었다. 그저 이 한마디를 전하기 위해 나는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별은 침묵했다.”
별이 침묵한 가운데 나는 말했다.”
“저는 태초의 시대를 알지 못합니다. 남은 기록들로 그 시대를 더듬어 볼 뿐이에요. 그래도, 그것만으로도 알 수 있는 사실은 있습니다.””
끔찍했다는 거.”
혼돈의 시대였다는 거.”
“인간이 인간으로서 여겨지지 않고, 생명의 가치가 한없이 무가치했던 시절이라는 사실을 압니다. 그런 시대를 끝내고 인간의 시대를 연 요르문과, 글레투스, 그리고 당신의 노력에 감사합니다.””
내가 고개를 들었다.”
다시 자리에 앉아 그녀를 바라봤다.”
“제가 그 시대를 경험하지 않았다 한들, 인류의 대표로서 당신에게 감사해야 하는 건 변치 않습니다. 그날 당신과, 당신들이 했던 건 필요한 일이었으니까요.””
그때의 인류에겐 필요했던 건, 자신들을 일으켜 세워주고 보호해줄 신. 그 역할을 별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수행해왔다. 그늘의 등장과 함께 망가지기 이전까지 줄곧 그 자리를 지켰다.”
“그날, 당신들이 했던 선택을 부정할 생각은 없어요. 요르문을 꺾고 이 자리에 올라온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그저, 이야기를 드리러 왔을 뿐입니다.””
내가 쓰게 웃었다.”
“자식으로서. 인류의 대표로서.””
내가 그녀를 바라봤다.”
“버려졌던 인류를 보듬어 준, 수만 년의 세월 동안 보호해 준 당신에게요.””
글레투스의 영혼을 쪼개어 만든 별의 내면.”
그러나 그 눈동자만큼은 다르다. 백금색의 눈동자. 별빛을 머금은 백금빛의 눈동자를 마주한 채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음절 한음절, 힘을 주어 발음했다.”
“인류는 오랜 세월 당신의 품에서 안정된 삶을 누렸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그럴 수는 없지요.””
내가 말했다.”
“인류의 오랜 유년기는 끝났습니다.””
인류의 어머니를 향해 말했다.”
“우리는 이제 세상에 설 준비를 마쳤습니다. 자신의 두 발로 땅을 디디고 서서, 앞을 향해 나아갈 준비를 마쳤지요. 그러니, 나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스스로의 발로.”
스스로의 의지로.”
“이제 인류는 독립할까 합니다.””
자립(自立)하여, 독립(獨立)해야 했다.”
“당신의 품을 떠나,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바라보는 곳을 향해 나아가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곳에 바로 선 제가 그 증거입니다.””
나는 인류의 유년기를 책임진 별을 향해 웃어 보였다. 나 자신을 가리키며, 내가 말했다.”
“당신의 뜻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 이곳까지 도달한 제가 그 증인이니까요.””
나의 웃음에 별은 부드러이 미소 지었다.”
“그것이 당신이 내놓은 답인가요?””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별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가 손짓하자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별의 뿌리들이 천천히 걷혔다. 그리하여 드러난 풍경은 드넓은 밤하늘이다.”
“라니엘 반 트리아스.””
그녀가 내 이름을 불렀다.”
“당신의 말마따나, 당신은 이곳에 오름으로써 자격을 증명했어요. 과거 요르문과 글레투스가 그랬던 것처럼··· 세상을 개혁할 권리를 손에 쥐었지요.””
오래된 신이 제 양팔을 쫙 펼쳤다.”
드넓은 밤하늘을 배경 삼아 그녀가 말했다.”
“전능(全能), 전지(全知), 이곳에 도달하기 전까지의 당신은 전지하진 못했다 한들 지금의 당신은 전지하고, 또 전능합니다. 무엇이든 알고 무엇이든 행할 수 있지요. 신과 같은 존재이니까요.””
그녀가 손짓할 때마다 드넓은 밤하늘에 못 박힌 별들이 출렁였다. 반짝이며 별빛을 흩뿌렸다.”
“무엇이든 할 수 있기에, 당신에겐 수많은 선택지가 제시되어 있어요.””
흩날리는 별가루 사이로 그녀가 말했다.”
“단순하게는 저를 고쳐, 당신의 것으로 만드는 방법이 있겠죠. 복잡하게는 저를 지워버리고 이 밤하늘에 당신만의 규율을 새겨넣을 수도 있어요. 그렇게 거대한 규율의 아래서 당신은 당신만의 시대를 열 수도, 인류의 시대를 열 수도 있겠지요.””
수많고 수많은 갈래로 쪼개진 선택지.”
“영원불멸한 신이 될 수도 있으며, 당신 스스로가 규율이 되어 균형을 유지할 수도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