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515
탁, 하고.”
라니엘이 하늘의 저편에 발을 디뎠다.”
눈을 깜빡이며 그녀가 주변을 둘러봤다. 무너진 하늘의 너머에 존재하는 것은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이었다. 혹은, 수평선이라 불러야할지도 모른다.”
끝없이 펼쳐진 어두운 공간.”
하늘을 올려다보아도, 땅을 내려다보아도 보이는 것은 밤하늘밖에 없다. 다만 그늘과 관련된 것들처럼 불길한 어둠은 아니었다. 포근하고 따스하다고 불러야 할 어둠이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찾던 것 또한.”
“······.””
라니엘이 말없이 시선을 늘어트렸다.”
밤하늘의 중심에 별자리가 새겨져 있었다. 그물처럼 펼쳐진 거대한 별자리. 비틀리고, 바스러져 가루가 흩날리는 낡은 별자리가 그곳에 있었다.”
탁.”
라니엘이 별자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흩날리는 별빛을 거슬러 그녀가 별자리의 앞에 도달했다. 이미 광인과 그늘에 의해 완전무결함을 잃고 망가지고 있던 별자리는, 조금 전 자신과 요르문의 전투로 하여금 완전히 틈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렇기에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리라.”
마치 이 세상을 지탱하는 거목(巨木)처럼 밤하늘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별자리를 향해 라니엘이 손을 뻗었다. 거대한 규율은 그녀의 손길을 거부하나, 거기까지 라니엘이 헤아릴 필요는 없었다.”
“아 좀 비켜봐요.””
우득, 콰직, 드드드득···.”
라니엘이 힘으로 가지들을 뜯어내며 별자리의 안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야 이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처음엔 규칙 같은 존재인 줄 알았는데.’”
라니엘이 쓰게 웃으며 가지들을 뜯어냈다.”
과거 자신은 별을 일종의 자연적인 현상으로 여기곤 했다. 정해진 규칙에 따라 세상을 안정시키고 균형을 맞추는 자연 현상.”
‘하지만, 아니었지.’”
겉으로 보기엔 그리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별은 그런 현상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위화감을 느낀 것은 별을 대하는 요르문의 태도에서였다.”
요르문은 별을 마치 살아있는 지성체처럼 대했다. 그는 별을 가리키며 자신의 친우라고 부르기도 했다. 거기서 느꼈던 위화감이 확신으로 바뀐 건 역천의 검이 되어버린 카일과의 전투 도중이었다.”
그때 들었던 별의 목소리. ”
자신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던 여인의 목소리. 그것이 라니엘에게 확신을 주었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게 많아요.””
그녀가 중얼거리며 잔가지를 해치며 별자리의 깊은 곳으로 향했다.”
“그날 ‘당신’이 바란 것은 인류의 소망을 들어주는 신이었습니다. 모든 소원을 이루어주진 않더라도, 최소한 그들의 소원에 귀 기울여주는 존재가 필요하다고 여겼지요. 별은 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존재였고요.””
그것이 별의 기원이다.”
“세상을 안정시키기 위해선 견고한 규칙 같은 존재여야 하지만, 인간의 소망에 귀 기울이기 위해선 인간과 같은 마음을 지닌 존재여야 합니다.””
그러니.”
“당신은 그 둘 중 어느 것 하나 빠져선 안 된다고 생각했을 테고··· 별의 겉과 내면을 다르게 만들었어요.””
탁, 하고.”
“그래서 이런 선택을 한 거겠지요.””
라니엘이 별자리의 심처(深處)로 들어섰다.”
그곳에 별의 내면이 있었다. 균형을 수호하는 규칙으로서의 별과는 다른, 인간들의 소망에 답하는 신이 그곳에 있었다.”
“······.””
별자리에 못 박힌 채 고개를 늘어트린 여인. 라니엘의 기척이 느껴지자 여인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라니엘은 입을 열어 그녀의 이름을 발음했다.”
“규율의 글레투스.””
아니, 하고 라니엘이 쓰게 웃었다.”
“글레투스의 파편이라고 부르는 게 맞겠네요. 영혼을 잘게 쪼개서 별과 뒤섞은 것에 가까울 테니까요.””
글레투스가 원본이 되었을 뿐, 별자리에 못 박혀있는 저 존재를 글레투스라 부를 수는 없으리라. 저 존재에게서 글레투스가 차지하는 비율은 크지 않았으니까.”
“사람의 소망에 귀 기울인 것도, 광인의 대척점인 스텔라와 와쳐를 만든 것도, 그늘을 쓰러트리기 위한 용사를 만든 것도, 모두 당신이 한 일이죠?””
별자리에 못 박힌 여인의 눈은 탁했다.”
그늘의 등장으로 별이 망가진 탓일까, 완벽한 규칙으로서의 외부의 별과 인간의 마음을 지닌 내부의 별이 경계선 없이 뒤섞여 있었다.”
‘이러니 별이 그 모양 그 꼴이 된 거겠지.’”
쯧, 하고 혀를 차며 라니엘이 손목을 돌렸다.”
어차피 늦으나 빠르나 부술 거였으니, 라니엘은 망설임 없이 여인이 못 박혀있는 별자리를 주먹으로 후려쳤다. 굉음과 함께 별자리가 박살 났다. ”
왠지 모르게 속이 조금 시원했다.”
이러나저러나 별에 쌓인 게 좀 많았으니.”
파스스슥.”
박살나는 별자리 사이로 추락한 여인을 받아, 자리에 앉혀둔 채 라니엘은 그녀가 눈을 뜨길 기다렸다. 몇 초의 시간이 흘렀을까. 깜빡, 하고 그녀가 눈을 떴다.”
“···당신은?””
몽롱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글레투스가 원본이 된 존재를 향해 라니엘이 미소 지었다.”
“구면이네요.””
라니엘이 별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우리 이야기 좀 합시다.””
잡지 않으면 멱살을 잡겠단 태도였다.”
“내가 할 말이 좀 많아요.””
진짜 많아 보이는 표정이었다.”
“내가 할 말이 좀 많아요.””
농담처럼 말했지만 진짜 많았다.”
내가 어디 별 때문에 고생한 게 한두 개여야지. 마음 같아선 지금 악수를 청하는 게 아니라, 이 손으로 저 멱살을 움켜쥐고 패대기치고 싶지만···.”
부모와 자식이 처음으로 대면하는 자리에서, 대뜸 부모 멱살을 잡을 만큼 내가 뜨거운 효자는 아니었다.”
별은 내가 내민 손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그녀가 눈을 깜빡일 때마다, 탁했던 그녀의 눈동자는 조금씩 맑아졌다. 그렇게 백금색의 눈동자가 본래의 색을 찾았을 때 그녀는 미소 지었다.”
“정말 많아 보이는 표정이군요.””
“좀 많긴 합니다.””
“그리고 제게는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의무가 있을 테지요. 부모는 자식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하는 법이니. 예, 반갑습니다.””
별이 고개를 끄덕였다.”
“라니아, 혹은 라니엘 반 트리아스.””
그녀가 손을 뻗어 내 손을 움켜쥐었다.”
수만 년 동안 세상을 다스리던 신의 손길은, 다른 이들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평범한 인간의 손과 같은 감촉이었다.”
“당신의 말을 빌리자면, 구면이로군요.””
“그때 그거, 역시 당신이었군요?””
내가 쓰게 웃었다.”
그늘에 물든 카일과의 전투에서, 녀석의 검에 심장이 꿰뚫려 죽음을 맞이하려던 순간이다. 그때 누군가 내 귀에 속삭였었다. 당신의 소망은 무엇이냐고.”
당신은,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그 물음에 나는 답했고, 별의 무구를 손에 넣었다. 덕분에 카일을 꺾을 수 있었고. 그때 귓가에 울렸던 목소리와, 눈앞의 여인의 목소리는 정확하게 일치했다.”
“그때는 도움을 좀 받았습니다.””
“저는 질문을 했을 뿐입니다. 질문에 답한 건 당신이었고, 답을 찾은 것도 당신이었지요.””
별은 부드럽게 웃었다.”
“조금 더 일찍 당신에게 질문했어야 했는데, 조금 더 일찍 당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 못했다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군요.””
그녀는 말했다.”
“저는 당신들이 알고 있는 별입니다. 또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망가진 신이기도 하지요.””
그녀가 제 가슴팍에 손을 얹었다.”
“본래 별의 외면은 규칙과 균형을 수호하는 냉철한 심판자를, 별의 내면은 인간의 소망에 귀기울이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를 이룹니다. 그것이 저를 만든 글레투스의 바람이었으니까요.””
하지만, 하고.”
그녀의 말을 이어받아 내가 말했다.”
“그늘의 등장으로 하여금 망가졌겠죠.””
“예, 맞습니다. 그늘의 등장으로 별 또한 저울에 올라가고 말았지요. 결국에 저는 외면에 잡아먹혔습니다. 더는 인간의 소망에 귀기울일 수 없게 됐죠.””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이곳까지 오면서 많은 걸 알아보고, 많은 걸 깨닫게 됐으니까. 나는 눈앞의 여인을 바라봤다.”
“저는, 더는 인간을 위한 신이 아니게 되고 말았습니다. 세상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만을 목적 삼아 움직이게 됐으니까요.””
“그러시더라고요. 어찌나 얄밉던지.””
내 툴툴거림에 그녀가 쓰게 웃었다.”
그래도 가끔은, 하고 그녀가 말을 이었다.”
“아주 가끔은 당신들의 소망이 들리더군요. 외면하기엔 너무나도 강렬한 외침. 어둠에 잠긴 의식을 일깨우는 목소리가요.””
“예를 들면?””
“역천의 검과의 전투에서 무언가 되고 싶었다, 하고 소리치는 당신의 소망.””
나의 바람.”
“무언가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다고 바란, 글레투스와 비슷한 영혼을 가지고 태어난 슬럼가의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