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517
그것들을 가리키며 그녀는 나를 바라봤다.”
“그럼에도.””
그녀가 내게 미소 지었다.”
다른 선택지를 고르는 건 어떠냐고, 나를 유혹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로서, 부모로서, 인류의 보호자로서 그녀는 내게 묻고 있는 것이었다.”
“당신의 생각은 변치 않나요?””
그 선택을 너는 후회하지 않겠느냐고.”
“예.””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인도자는 길을 비추는 사람이니까요.””
나는 내 대답을 들려주었다.”
“어둠 속에서 앞을 바라볼 등불이 되어주는 이, 그들이 잃어버린 길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이, 그들이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조언하는 이.””
인도자라 해봐야 별거 없다.”
그냥, 스승 혹은 조언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일 뿐이다. 적어도 내 생각은 그랬다.”
“제가 생각하는 인도자는 그런 존재에요. 그런 존재여야만 하지요. 사람들을 통치하고 그들에게 무조건적으로 ‘이 길이 옳다’며 하나의 길을 제시하는 건 인도자가 아니라 폭군일 테니까요.””
나는 그런 존재가 될 생각이 없었다.”
“결국에, 길을 걷는 건 그들 자신의 역할이에요. 인도자는 길을 가리킬 뿐 대신 걸어줄 수는 없어요.””
각자에겐 각자의 삶이 있다.”
저마다 에겐 저마다의 길이 있다.”
“넘어져도, 비틀려도··· 다시 일어서서 길을 걸을 수 있도록 그저 도울 뿐이지요. 그리고, 그건 제가 이 자리에 신으로서 남아있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가요?””
예, 하고 답하며 내가 웃어 보였다.”
“인간은, 서로에게 의지해 앞으로 나아가니까요. 굳이 신과 같은 거대하고 초월적인 존재가 필요할까요. 앞으로 나아갈 각오를 다지는 데는 대화 몇 마디면 충분한걸요.””
내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별의 앞에 바로 섰다.”
“그러니, 이 세상에 더는 신과 같은 초월적인 존재는 필요하지 않아요.””
“그렇기에, 당신이 내놓은 답이 그것이군요.””
그녀가 내 눈동자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회천의 불길이 일렁이고 있으리라.”
역천도, 개천도, 등천도 아닌 회천(回天).”
그것이 내가 내놓은 답이었다. 신도, 초월자도, 그 어느 것도 존재하지 않는 본래의 하늘로 돌이키는 것이 내 목적이었으니까.”
“이야기는 잘 들었습니다. 그것이 당신이, 인류가 내놓은 답이라면······.””
별이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나는 회천을 끌며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내 손에 닿는 순간 자신의 몸이 바스러져 소멸할 것을 알고 있음에도 별은 내 손을 맞잡았다.”
“저는 그저 응원할 뿐입니다. 당신들의 앞길이 평온하기를.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기를.””
나와 별의 손이 맞닿았다.”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눈 안에서 청백색의 고리가 거세게 회전했다. 아마도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권능을 나는 모조리 해방했다.”
회천(回天).”
나는 내가 내놓은 답을 하나의 불길 삼아 밤하늘 위에 떨어트렸다. 불길이 가장 먼저 태우는 것은 수만 년의 세월 동안 이 자리에 존재했던 인간을 위한 신이다. 불길이 별의 외면을 이루는 잔가지들을 모조리 불태웠다.”
“따스하군요.””
그리고, 내면을 이루는 그녀 또한.”
타들어 가는 불길이 그녀의 몸을 감쌌다.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던 별빛과 신성이 불에 타 바스러졌다. 그렇게 잿가루가 흩날리는 가운데, 나는 무심코 눈을 깜빡였다.”
불길이 지나가 별빛이 벗겨진 곳.”
그녀의 눈동자에서 백금색이 벗겨져 있었다. 그리하여 드러난 것은 백금색의 눈동자가 아닌··· 녹색의 눈동자였다.”
“작별입니다.””
그녀가 말했다.”
“자랑스러운 나의 후배님.””
별빛과 잿가루가 흩날렸다.”
불길에 휘감겨 여인은 바스러졌다.”
잿가루에 뒤섞여 흩날리는 별빛을 라니엘은 한참 동안 바라봤다.”
「작별입니다.」”
「자랑스러운 나의 후배님.」”
그녀가 남긴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불에 타 바스라질 적, 별의 내면을 책임지던 여인의 눈동자는 백금색이 아니었다. 별빛이 바스러지며 드러난 건 녹색의 눈동자였다. 글레투스의 것과 같은 녹색의 눈동자.”
본인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별빛이 벗겨지며 드러난 글레투스의 파편이었을 뿐일까.”
무엇이 정답인지 알 길은 없었다. 이미 별은 불에 타 바스러졌으니까. 결국 받아들이기 나름이다. 흩날리는 잿가루를 한동안 바라보던 라니엘은 쓰게 웃었다.”
“하여간.””
마지막까지 제멋대로구먼.”
흩날리는 별을 향해 라니엘이 살짝 고개 숙였다. 글레투스 본인인지, 그녀의 파편이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어느 쪽이든 경의를 표할만한 상대였으니까.”
라니엘이 숙였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수만년의 세월 동안 밤하늘에 뿌리내려, 인류의 곁을 지켜왔던 별은 불에 타 바스러졌다. 돌고 도는 회천(回天)의 불길은 별과 별이 남긴 것들을 남김없이 불태웠다.”
별도, 별빛도, 별의 축복도, 그 모든 것을.”
이제는 인류에게 필요 없는 것들을 라니엘은 모조리 불태웠다. 그렇게 흩날리는 잿가루 사이에서 라니엘이 길게 숨을 내뱉었다.”
“후우···.””
참 멀리도 왔다.”
멀리도 왔지만, 결국에 도착했다. 길게 숨을 뱉어내며 그녀가 입을 열었다.”
“이거면 됐지?””
그녀의 눈동자에 담긴 것은 짙은 잿가루.”
자신이 피워올리는 잿가루가 아닌, 자신의 몸에 붙어있다가 이제야 흩날리는 잿가루를 바라보며 라니엘은 가벼운 웃음을 지었다.”
재의 여신, 미래의 자신.”
줄곧 자신에게 붙어있던 그녀의 잔재가 흩날리는 모습을 보며 라니엘은 쓰게 웃었다. 정말로 그녀에겐 많은 도움을 받았다. 마지막 순간까지 말이다. 그렇기에, 이곳에 자신이 내놓은 답은 미래의 자신에게 바치는 찬사이기도 했다.”
타닥, 타다다닥···.”
더는 태울 것이 없어지자 불길은 천천히 사그라졌다. 사그라지는 불길 사이로 라니엘은 걸음을 옮겼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으니까.”
“······.””
그녀가 말없이 눈을 감았다.”
감은 눈동자 위를 손으로 덮었고, 덮은 손을 턱 아래로 쓸어내렸다. 그녀가 감았던 눈을 뜨자, 본래 그녀의 눈동자에 새겨져 있던 청백색의 고리는 온데간데없었다.”
라니엘이 쓸어내린 손을 펼쳤다.”
그곳에는 손을 그릇 삼아 청백색의 불길의 고리가 담겨 있었다. 라니엘이 가진 권능, 신성, 신으로서의 격을 상징하는 것. 그것을 라니엘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밤하늘 위에 떨어트렸다.”
이 세상에 더는 신은 필요 없었으니까.”
이런 권능은 자신에게 필요 없으니까.”
라니엘은 자신의 신성을 반납했다.”
후두둑, 하고 밤하늘 위로 떨어진 청백색의 불길은 이윽고 고리를 이루었다. 밤하늘의 한가운데에 청백색의 고리가 떠올랐다.”
“이런 느낌이구나?””
그곳에 자리 잡은 자신의 상징을 바라보며 라니엘은 무심코 웃음을 흘렸다. 만약, 자신이 요르문처럼 규율을 새기고자 했다면 저 자리에 규율이 자리 잡겠지. 하지만 라니엘이 남긴 청백색의 불길은 규율이 아니었다.”
그저, 등불일 뿐이다.”
길을 비추는 등불. 아주 작은 불길.”
이제부터 격변할 세상에서 사람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그들을 비추는 등불.”
‘적응할 시간은 필요하겠지.’”
특히나 마법사들이 말야.”
라니엘이 쓰게 웃었다.”
별이 사라짐으로써 마법의 체계는 지금과는 다소 달라질 것이다. 여태껏 마법사들은 별을 거쳐 섭리와 거래를 해왔지만, 별이 사라진 지금은 섭리와 직접 거래를 해야 했다. 그리고 그건 하루이틀 사이에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별이 사라지며 제약도 사라졌으니, 깨달음을 얻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을 테지만···.”
그래도, 적응할 시간은 필요하다.”
라니엘은 자신이 남긴 불길의 고리를 바라봤다. 저 청백색의 불길은 당분간 별이 했던 역할의 몇 개를 대체할 것이다. 섭리와의 거래, 사제들의 기도, 그 외에도 자잘한 것들을.”
오랜 세월 인류가 반복해와,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진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되는 순간까지 불길은 이곳에 남아있으리라.”
‘그리고.’”
때가 되어서.”
인류가 충분히 바뀐 세상에 적응해 더는 불길을 필요로 하지 않을 때가 오면, 그때 불길은 사그라들 것이다.”
화르륵.”
타오르는 청백색 불길의 고리를 바라보며 라니엘은 미소 지었다. 신성과 함께 전지, 전능이 떠나간 몸은 무거웠지만··· 이 적당한 무게가 라니엘은 좋았다.”
전지(全知)고, 전능(全能)이고, 미래시고.”
그런거 다 부질없는 것들이다. ”
신이라고 하여 그리 위대한 것도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된 마당이니 더더욱. 라니엘은 인간으로서의 자신이 좋았다. 신성을 반납해도 자신은 여전히 더럽게 강한 마법사였고, 인류의 영웅이었으니까.”